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23)

* 역의 세 가지 뜻.

이응국 | 기사입력 2007/04/30 [14:38]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23)

* 역의 세 가지 뜻.

이응국 | 입력 : 2007/04/30 [14:38]

   지난 호에 역을 정의하기를 ‘일월이 역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으나 역을 어찌 한가지로 단정해서 설명할 수 있으랴!

  한나라 시대에 나온 책으로『易緯乾鑿度(역위건착도)』가 있다. 이 책에는 ‘易(역)은 이름은 하나지만 세 가지 뜻을 담고 있다[一名而含三義]’고 말하며, ‘세 가지 뜻’으로 易(이)와 變易(변역)과 不易(불역)으로 설명한다. 易緯乾鑿度(역위건착도)』에서는 易(이)를 德(덕)이라 하였다. 안으로 덕을 쌓아 세상을 밝히는 것으로 역의 의미를 삼았으니 역을 수신지도로 말한 것이다. 다음으로 變易(변역)을 氣(기)라 하였으니, 천지가 交合(교합)해서 오행이 차례로 유행하니 사람 역시 늘 변역의 도로써 항시 日新(일신) 又日新(우일신)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불역은 位(위)로 설명하는 데, 세상만사는 항시 변하는 법이지만 그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이치가 있다 한다.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아비는 윗자리에 앉아 있고 자식은 아래 자리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불역의 뜻인 것이다. 『역위건착도』에서 말하는 易(역)의 뜻을 필자가 직역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德(덕)과 氣(기)와 位(위)의 세 가지 요소로써 개략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후한 시대 사람인 鄭康成(정강성)도 이 뜻에 근거하여 『易贊』과 『易論』이라는 책에서  ‘易一名而含三義’라 하면서 簡易, 變易, 不易의 이치가 있다 하였으니『역위건착도』에서 말하는 易(이)를 簡易(간이)로 달리 표현하였을 뿐이다. 

  대저 사람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려면 먼저 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고, 時變(시변)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위가 있어야만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德(덕)은 무슨 뜻일까? ‘얻는다[得]’는 뜻을 담고 있다. 하늘에서 流行(유행)하는 五行(오행)의 氣(기)를 땅이 받아 들이 듯이 사람이 도를 얻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내가 누구 덕 봤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破字(파자)를 통해서 德(덕)의 뜻을 알아보자.
 
덕은 전체 劃數(획수)가 15수다. 글자 자체도 「 德=彳+十+四+一+心」이니 彳(척)은 行(행)의 半字(반자)로서 15의 마음을 행한다는 것이며, 15는 만물을 생하는 生數[생수는 1, 2, 3, 4, 5를 말한다]의 총합수(1+2+3+4+5)다. 달도 15일 간격으로 차고 기울며 만물을 생육한다. 만물을 생하는 基礎(기초)가 덕이라는 것이다. 또한 덕이라는 글자는 파자 중의 四를 세로로 세워보면 「彳+直+心」도 되니 ‘直心(직심)’ 즉 ‘정직한 마음을 행하는 것’이 덕의 뜻이라는 것이다. 정직이란 ‘거짓 없는 마음’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내 마음이 책상 앞에 올려진 淸水(청수)와 같이 맑은 상태를 정직이라 하는 것이다. 이를 精誠(정성)이라고도 말한다. ‘至誠(지성)이면 感天(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의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는 법인데 사람이 감동하지 않을 것이며 귀신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달리 말해서 덕이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이처럼 덕이란 정성으로 얻는 것이다. 만약 덕이 있는 사람이 뜻을 펼치려 한다면 세상사를 대하는데 참으로 쉬울 것이다. [역위건착도]에서 말하는 易(이)를 ‘쉬울 이’로 해석함은 비로 이런 뜻에서 말한 것이다.

  位(위)는 무슨 뜻인가? 破字(파자)해보면 「位=人+立」이니 立身(입신)을 말한다. 즉 세상에 나가는 의미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려면 우선 덕을 쌓아야 한다. 덕이 없는 사람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세상을 위해 덕을 베풀어야 한다. 덕이 있는 사람이 덕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의무다. 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덕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의 罪人(죄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덕이 있어도 位(위)가 없으면 덕을 쓸 수 없다. 아무리 제갈공명 같은 신출귀몰한 사람이 있어도 位(위)가 없이는 그 재주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位(위)에서 數(수)가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에서 말하기를, ‘성인이 큰 보배로 여기는 것이 바로 位(위)’라 했다. 혹자가 생각하기를 ‘아니 성인이면 됐지 무슨 위가 필요한가?’라 하며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위가 있고 없고의 여부는 도를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關門(관문)이 된다. 만약 位(위)가 없는 사람이 禮(예)를 지키면 자신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남은 살릴 수 없으며, 만약 아비(父)라는 位(위)에서 예를 지킨다면 그 집안사람들은 살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한 나라의 대통령이 예를 지킨다면 그 나라 전체가 다 살 것이다.
 
이처럼 位(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天壤之差(천양지차)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 공자는 세상에 도를 펼치기 위해서 수레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녔다[周遊列國]. 위를 얻기 위해서다. 小人(소인)은 자신을 위해서 位(위)를 얻으려 하겠지만 공자는 세상을 위해서 위를 얻으려 한 것이다. 만약에 공자 같은 성인이 위를 얻었다면 그 당시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德(덕)이라는 것은 안에서 갖춰지는 것이고 位(위)는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내 몸 안에서 갖춰지는 것이 덕이므로 내가 노력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位(위)는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덕은 도를 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위를 얻을 수 있는 근본이 되므로 내가 덕을 갖춘 연후에 위를 얻기를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덕을 갖추고 있으면 일정하게 오는 것이 때다. 덕이 없다면 때가 와도 별 볼일이 없겠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 때를 얻는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참으로 수월할 것이다.

  이처럼 역의 뜻이 참으로 廣大(광대)하다. 밖으로 천지를 덮을 수가 있고, 안으로 이 마음을 수양하는 데에도 역은 모든 것을 網羅(망라)한다. 그러므로 역을 ‘천지의 도요 건곤의 덕이요 만물의 보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 연락처 : 대전동방문화진흥회 (042)823-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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