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과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기사입력 2019/10/15 [15:59]

지역화폐는 과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입력 : 2019/10/15 [15:59]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지역화폐는 과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시기의 사건이나 시대의 흐름에 대한 기억 또는 체험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공유되기 마련이다. 이런 기억이나 체험의 공유화가 공고해지면 하나의 세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산업화세대는 가난 탈출 경험을, 586세대로 대표되는 민주화세대는 독재정권 타도 경험을 고리로 한다.

특정지역이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다면 그 지역 사람들은 독특한 지역적 유대감을 구축한다.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부산, 마산, 광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체험의 공유화는 세대는 물론 지역이나 도시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지역화폐도 대전이라는 지역의 정서적 공동체나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난 9월 24일, 지역화폐 발행을 위해 시의회에 제출한 대전시 조례안이 결국 유보됐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지역화폐 발행 시 동서지역 간 경제적 격차가 쏠림현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도입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했으나, 시행에 들어갔을 경우 지역 간 양극화가 확대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력과 인구가 서구와 유성구로 편중돼 있는 현 상태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면 부의 쏠림현상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우려한 의회가 보완책 마련을 요구한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대덕구가 제기한 기초와 광역자치단체 사이의 역할분담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올 7월, 대전에서는 처음으로 지역화폐가 대덕구에서 도입됐다. 현재 발행액이 100억 원을 넘어서면서 성공적으로 정착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초단체가 선도적으로 도입해 정착단계에 들어선 지역화폐를 광역단체가 발행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은 애써 틔운 싹을 자르겠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대전시가 지역화폐 도입을 중단하거나 늦추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광역시 단위의 경제공동체 조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아래 야심차게 지역화폐 도입을 추진한 대전시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대덕구 주장이 무리하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의회와 대덕구가 제기한 지적은 대전시가 자초한 면이 많다. 지역화폐 도입을 기획 설계하면서 역내 지역별 경제력 차이에 대해 고려했는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대전은 기초행정단위 별로 경계구별이 없는 통합 생활권이고 단일 경제권이라는 표피적인 조건만을 고려해서는 곤란하다. 동서 간 경제력과 인구, 기능과 업무에 대한 불균형 현상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했다.

대전이 전국 13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지역화폐 발행액이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벗어나려는 조급함이 배어있을 수도 있다. 대전시는 지역화폐 발행액수가 100억 원이다. 인천 6505억 원, 전북 5137억 원, 경북 4972억 원, 경기 4681억 원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사실 지역화폐 발행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례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의회의 지적처럼 지역화폐를 유가증권 형태로 만들면, 상품권 깡이나 싹쓸이 매입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게 틀림없다. 결국 투명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대안은 없을까?

지역화폐 유통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위·변조 위험이 없고, 4차 산업혁명 특별시라는 대전의 도시정체성도 담을 수 있는 복합적이고 산업적인 정책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지역화폐 도입이라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향한 기반기술의 하나인 ‘블록체인’이 그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 위·변조 방지와 유통 투명성, 익명성 등을 보증하는 최첨단 기술이다.
 
여기에 대전이 4차 산업혁명 특별시라는 정체성을 지역화폐 도입을 통해서도 과시할 수 있다. 기왕 조례안이 유보된 만큼 좀 더 정교한 설계와 작업을 통해 완벽한 정책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첨단과학기술을 적용하면 가능하다. ‘과학도시 지역화폐는 역시 과학이다’라는 평가와 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대전광역시가 선포한 4차 산업혁명 특별시는 시민과의 약속이다. 어떤 정책이든 정책수립 과정부터 시민에게 했던 약속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화폐를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의 하나인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하겠다는 방법을 제시했더라면 시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사례가 됐을 것이다. 또 이를 둘러싼 논란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대전지역의 상징인 첨단기술 기반의 지역화폐 발행은 ‘체험의 내면화, 또는 공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특별시민으로서 먼저 체험하고 활용하다 보면, 과학도시라는 정체성이 공유될 것이다. 시민들이 첨단과학기술을 내면화하면 이런 기술을 응용한 정책을 펴나갈 때 거부감이 없어져 정책수용 역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블록체인 연구 및 구현하는 스타트업이 대전에 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 기술기업의 지역 내 정착과 성장을 이끌어 내는 견인효과도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산업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뿐더러 관련 스타트업 기업의 집적화 등으로 일자리 창출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론 다른 행정 분야로의 응용도 확장시킬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는 대전시에서 민간에게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절대로 위·변조할 수 없고 지원자금의 최종 사용처가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준공영제로 인해 올 한 해 대전시가 시내버스 회사에게 지급하는 재정지원 보조금은 670억 원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보조금의 사용처는 투명하게 드러난다. 혈세낭비 논란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스마트시티 건설에도 블록체인 기술 적용은 필수적이다.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체험의 공유를 통한 대전이라는 지역정서 구축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책적 과제이다. 과학의 산물로 태어날 때 지역정서는 더욱 공고해진다. 과학을 떠난 대전을 상상할 수 없도록 대전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만이 대전이 살 길이다.(2019. 10. 15. 전 대전광역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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