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근교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여행의 미학-일상의 여행

진정한 자유는 일상의 여행이다.

이용근 공주대 교수 | 기사입력 2017/06/28 [17:58]

이용근교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여행의 미학-일상의 여행

진정한 자유는 일상의 여행이다.

이용근 공주대 교수 | 입력 : 2017/06/28 [17:58]
 
▲ 이용근 교수     ©김정환 기자 
자유의 상징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크레타섬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이라클리온(헤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32세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중국과 일본까지 여행하고 많은 책을 썼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로 유명해졌다.
 
조르바는 자유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라오지앙후 최막심’이란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오지앙후(老江湖)는 중국어로 오랫동안 외지를 돌아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인 나그네라는 뜻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소설속의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가 그가 만난 중년의 그리스인을 묘사한 것이다. 조르바는 한 때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미쳐 녹로(轆轤)를 돌리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기꺼이 자기 손으로 집게 손가락을 자른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손가락이 꼭 다섯 개가 다 있어야 한다는 육체의 구속을 초월한 생각을 뒤집어엎는 전복적 사고를 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신체적인 열등감을 뛰어 넘는 것이다. 현실의 굴레와 억압,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그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 날에는 서재에서 책을 썼고, 자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책상 위에 지구본까지 놓고,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가는 그를 여행이 서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은 곧 자유이었다. 그의 묘비는 크레타섬 베네치안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르니테고 요새 제일 높은 곳에 있다.
 
그는 죽은 후에도 묘비명에 여행을 통해 깨달았던 진정한 자유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명언을 남겼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오직 노예상태일 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 유일한 자유이다. 여행을 떠나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자유를 행사하려면 일정한 대가가 뒤따르기 때문에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즉,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내리든 신경쓰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어야만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바보는 방황을 하고, 지혜로운 자는 여행을 한다”는 풀러의 말처럼 자유는 잘 못하면 방종이 된다. 방종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여행을 떠나 자신 내면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인생을 발견해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삶 속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힘들어 미움을 받게 된다. “지금 떠나면 더 이상 회사로 돌아올 수 없다.” “가정을 등지고 떠나는 것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 데 도망치면 안 된다.” 등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촘촘한 일정과 세상의 감시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여러 세기 동안 자유를 소리 높여 요구했지만 사회의 수많은 제도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데 실패했다. 진정한 자유는 인간이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을 극복할 때만 주어지는 것이다. 니체는 용기있는 자들만이 자신의 한계에 저항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자유는 용기있는 자들의 특권이라고 했다.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바로 진정한 자유를 얻는 방법이다. 자유는 “나는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만 나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온다. 인을 하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이다.” 안연에 인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대답해 달라고 묻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고 했다.

일본 동경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닛코를 방문한다. 닛코를 보지 않고서는 일본을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닛코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당이 있는 도쇼구가 있다. 마굿간으로 사용되었던 신큐샤가 있는데 원숭이가 말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원숭이의 일생을 표현한 8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 중에 2번째에 세 마리 원숭이를 의미하는 산자루가 있다. 산자루(三ざる)는 세 마리의 원숭이(三猿)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지마라(~ざる)는 의미도 있다. 즉 듣지도 말라는 기카자루(聞かざる), 말하지도 말라는 이와자루(言わざる), 보지도 말라는 미자루(見ざる)가 산자루(三ざる)가 되는 것이다.

8개의 조각상을 통해 어린 원숭이가 태어나서 다시 자신의 아이를 가질 때까지 원숭이의 일생을 조각해 놓았다. 첫 번째는 엄마 원숭이는 아기원숭이의 먼 장래를 바라보지만 아기는 엄마의 얼굴만 보고 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은 나쁜 것은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홀로서기 전의 원숭이로 아직 앉아 있지만 조만간 독립하기 기대한다. 네 번째는 청운의 꿈을 가지고 하늘을 본다.
 
다섯 번째는 친구들은 그를 격려하고 있는데 인생에서 좌절하고 낭떨어지기를 절망스럽게 보고 있다. 여섯 번째는 사랑으로 상사병을 앓게 된다. 일곱 번째는 신혼부부가 되어 건친 인생의 바다를 함께 항해한다. 여덟 번째는 다시 임신한 엄마가 되어 다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이로서 부모의 수고로움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가 없다. 학교나 직장에서 상벌에 따라 좋은 평가를 받아 성공해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벌로 이루어진 수직적인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조직의 목표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살아야 한다.
 
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한 자유와 용기마저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들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자신의 꿈이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더 이상 그 꿈을 꿀 수도 없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꿈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용기이다.

자유를 얻으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타인으로부터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사람이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 그 앞에 두려워할 것들이 저절로 나타난다. 결국 욕망과 두려움은 자신을 속박한다. 이는 곧 자유를 상실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 사상과 일치한다.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헤르만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돈, 직업, 가족, 사람 등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진정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여행에서 맛보는 뜻밖의 해방감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에 느끼게 된다. 엄청나고 복잡하게 얽혀진 필연적인 사회구조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다.
 
여행은 자유의 여신과 함께 노는 것이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여행을 떠나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일인가?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지만 내면에서는 새로운 탐구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와 환희를 느끼게 된다. 외부적인 파멸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행복여행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원초적 생리욕구, 사회적 인정욕구 등의 억압과 소외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여행에서 만나는 세상은 울퉁불퉁 엉망이다. 짜여진 틀에 맞는 완벽함을 기대할 수 없다. 그때 그때 다가오는 인연과 순간을 기꺼이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여행에서 맛보는 자유는 외적인 억압과 맞서 싸우면서 내적 욕망을 조율하는 것이다.
 
스스로 힘과 소통으로 헤쳐 나가면서 ‘나를 찾아 돌아오는 행복여행’이 바로 진정한 자유이다. 내부로부터 시작되어 외부로 퍼져나가는 자유는 더 이상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는 여행을 통해 내적인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자유라는 나무의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고, 삶 속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글쓴이  이용근 교수
          국립공주대학교 국제의료관광학과장 겸 한국의료관광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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