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민영화의 폐해와 공공성 추구의 길

[김철웅교수 기고문]민영화 수술대에 눕혀질 지방의료원의 서글픈 운명

장계원 기자 | 기사입력 2008/09/24 [16:49]

지방의료원 민영화의 폐해와 공공성 추구의 길

[김철웅교수 기고문]민영화 수술대에 눕혀질 지방의료원의 서글픈 운명

장계원 기자 | 입력 : 2008/09/24 [16:49]
▲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민영화 수술대에 눕혀질 지방의료원의 서글픈 운명 

 
해방 이후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오던 지방공사 의료원이 197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걸어오다, 이제 본격적인 민영화의 수술대에 눕혀질 서글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지난 4월 16일 경상남도 김태호 도지사는 진주의료원과 마산의료원의 누적 적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2~3년 간 더 운영한 뒤에도 적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17일, 강원도 한봉기 행정부지사는 도내 5개 지방의료원의 적자 수준을 우려하면서 “강력한 경영쇄신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경영쇄신 방안이란 지방의료원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수익성을 강조하겠다는 것인데, 그 방안은 역시 민간위탁이나 매각일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의 지방의료원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을 말하는데, 이것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은, 소유는 공공으로 두되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민간위탁 방안, 또는 소유와 운영을 모두 민간에 팔아넘기는 매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진적 민영화를 선호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장차 지방의료원의 민간매각이 일어날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경험적으로 현실화된 지방의료원의 민영화 방안은 민간위탁이었다.   
 
지방의료원 민영화(민간위탁)의 목적은 경영 적자를 줄이는 것, 이는 소탐대실
 
지난 1990년대 말에 마산의료원(1996년 11월, 경상대학교 병원), 이천의료원(1998년 4월, 고려대학교 병원), 군산의료원(1998년 11월, 원광대학교 병원)이 경영 적자를 줄이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명분으로 각각 대학병원에 위탁되었다. 이들 지방의료원에서는 민간위탁이라는 민영화 조치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민영화 이후, 이들 의료원 중 일부에서 경영수지의 적자폭이 줄어들었다. 수입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 수입의 증가는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기실, 수입 증가의 대부분은 환자수의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자 1인당 부담 진료비의 증가에 기인한 것이었다. 
 
마산의료원은 민간위탁 직후 1-2년 동안 입원 환자 1인 1일당 진료비가 민간위탁 이전에 비해 2.8배 증가하였고, 이천의료원은 2배 증가하였다.

외래 환자의 경우에도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이들 공공병원들은 민간위탁 이후에는 동일한 규모의 민간병원들보다도 진료비 수준이 더 높아졌던 것이다. 이에 비해, 민간에 위탁되지 않았던 지방의료원들의 진료비는 뚜렷한 증가 없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민영화(민간위탁) 이후에 나타나는 이러한 환자 1인 당 진료비 증가의 경향은 의료급여(의료보호) 환자의 경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지방의료원이 추구해야 할 최소한의 공공성 기능인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적 지원 기능마저 훼손된 것이다. 민간위탁 이후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는 마산의료원에서 3.1배, 이천의료원 2.1배, 군산의료원 1.2배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간에 위탁되지 않았던 지방의료원들의 의료급여 환자 진료비는 같은 기간에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리하자면, 민간위탁의 결과로 지방의료원의 경영 적자폭은 줄어들었으나, 이는 공공의료를 주로 이용하던 저소득층 환자를 포함한 어려운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추가로 나온 돈으로 메워냈던 것이다. 즉,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진료 비중을 줄이고 환자 당 진료비를 대폭 늘리는 등 민간의료기관과 별 다름없는 진료 행태를 보임으로써 얻어낸 경영 성과였던 것이다. 이는 의료 공공성이라는 소중한 사회적 가치를 희생해서 얻어낸 작은 경영 성과에 불과한 것으로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지방의료원 경영 적자의 가장 큰 이유는 업무의 공공성 때문
 
우리나라에서는 값비싼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 상업적 진료를 많이 하지 않는 이상, 의료기관이 경영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다.
 
더구나 진료비 부담능력이 취약한 의료급여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공공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수익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기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방의료원 의료급여 환자 1인당 평균진료비는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입원의 경우 62.8%, 외래의 경우 79%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지방의료원은 전체 환자 가운데 의료급여 환자의 비율이 평균 24.0%로, 비슷한 규모 민간병원의 의료급여 환자 비율 14%에 비해 크게 높았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값비싼 진료를 하지도 않고, 돈 안 되는 의료급여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상황에서 지방의료원의 경영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방의료원 경영 적자의 또 다른 원인은 의료수가의 적용을 받지 않은 예방사업의 수행인데, 병원 방문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한 무료 방문 진료나 알코올 상담센터의 운영, 무료 건강검진 등 민간병원이 담당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는 것도 지방의료원의 적자를 키우는 한 요인이다.
 
이런 사업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나, 실제로는 지방의료원이 예산의 대부분을 댄다. 충남 홍성의료원은 2005년 치매 환자 관리, 무료 방문 진료, 건강 강좌 등에 7억6천여 만 원을 썼지만 이 중 88%인 6억7천여 만 원을 의료원이 부담했다. 
 
불행하게도, 지방의료원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미약한 상황에서 ‘수익성’을 강조하는 지방정부의 경영수지 개선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지방의료원들은 본래의 공공성 목적에 충실하기는커녕 수익을 위해서는 비용-효과가 증명되지도 않은 진료를 남발한다든지 장례식장이나 매점의 경영과 같은 의료 외 수익추구로 경영수지의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익성을 추구하느라 이렇게 일그러진 지방의료원의 현재 모습은 우리가 추구하는 공공의료의 참모습이 아니다.  
 
지방의료원을 양질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 발전시켜야 
 
지방의료원은 민간병원이 수익성 때문에 포기하는 진료 활동 등의 공공성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의 획기적인 재정지원과 공적 투자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더 나아가 시설과 장비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적절한 진료의 질을 확보하고 인력 및 장비 운용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병상수를 300병상 이상으로 확보해야 하고, 최고의 대우를 제시하여 양질의 의료 인력을 초빙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공공의료의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시장주의 의료제도의 종주국인 미국도 전체 병상의 33%를 공공병상으로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공공병상 비율은 겨우 18%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마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지방의료원마저 민영화가 속속 진행된다면, 도대체 우리나라 의료의 최소한의 공공성은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공공의료의 영역은 사적 경영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다 대놓고 경영수지의 적자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우리나라 공공부분에 대한 정부 인식의 신자유주의적 천박함이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공부문에서는 공공성을 얼마나 잘 견지하고, 공공성의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였는지를 엄밀하게 평가하여 공공기관 경영 성과를 논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다.
 
지금 지방의료원을 위시한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들은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한 수익성의 추구나 민간위탁 등 민영화의 추진이 아니라 더 많은 공공성, 과감하고 적극적인 재정투입과 공적투자를 필요로 한다. 지방의료원을 양질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 발전시키려는 혁신적 공적 투자를 시작하는 데서부터 우리나라 공공의료 강화의 첫 걸음을 내딛도록 해야 한다. 
 
 
김철웅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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