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36) - 강태공의 사작경신

이응국 | 기사입력 2007/07/30 [14:34]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36) - 강태공의 사작경신

이응국 | 입력 : 2007/07/30 [14:34]
   생각건대, 경신일이 민간풍속으로 전래된 데에는 강태공에 대한 고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일찍이 道家(도가)에 비결로 전해져 오는 글이 있으니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造作방아’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경신년·경신월·경신일·경신시에 강태공이 방아를 찧는다는 뜻이다. 또한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下馬車’라는 글도 있으니, 이는 경신년·경신월·경신일·경신시에 강태공이 마차에서 내려온다는 뜻이다. 조금의 의미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같은 범주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글이 전해져 내려온 데에는 그 배경이 있다. 때는 殷(은)나라 말기 周(주)나라 초기다. 전설에 의하면, 은나라 마지막 왕인 紂(주)가 폭정을 일삼았을 무렵 서쪽에는 文王(문왕:본래 이름은 昌(창)이며 문왕은 시호)이 제후로 있었다. 그래서 그를 昌侯(창후)라고도 하고 西伯(서백)이라고도 한다. 하루는 문왕이 사냥하려고 점을 치니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잡는 것은 覇王之輔(패왕지보)라’라는 점사가 나온 것이다. 과연 渭水(위수)에서 낚시질을 하던 강태공(이름은 呂尙)을 만나게 된다. 문왕이 그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우리 先君(선군)이신 太公(태공)께서 말씀하시기를 ‘聖人(성인)이 周(주)나라에 가서 주나라가 이로 인해서 흥하리라’ 하셨는데 그대가 진정 이 사람인가?” 하였다. 또한 “우리 太公(태공)께서 그대를 바라신지(望) 오래되었다” 하여 호를 太公望(태공망)이라 하였다. 문왕이 죽고 난 뒤 강태공은 그 뒤를 이은 武王(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쳐서 紂(주)를 죽이고 천하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강태공은, 전쟁을 치르고 이룩한 천하통일이었기에 원혼들의 한이 구천에 떠돌 것이라고 여겨, 전쟁 중에 죽은 원혼들을 달래고 그들에게 작위를 봉함으로써 혼백을 위로하게 하였다. 그들 중 충신․효자들에게는 모두 365位(위)를 베풀어 神(신)을 봉했으니 이를 ‘封神(봉신)’이라 한다. 봉신을 통해서 은나라와 주나라의 맺힌 원한을 풀게 하고 땅 위에 사무쳤던 殺劫(살겁)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강태공의 恩德(은덕)으로 풀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신명이 감동하여, 강태공의 威名(위명) 아래 모든 신명이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잡신이 범접할 수 있겠는가? ‘강태공 조작방아’나 ‘강태공 하마차’라는 말은, 이렇듯 강태공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지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짓고 上樑(상량)할 때, 대들보 위에 ‘龜 모년모월모일모시 立柱上樑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龍’이라 쓰고, 바깥 문에는 누런 종이 위에 ‘경신년월일시 강태공 조작’이라 써 붙였다. 상량뿐만이 아니라 집을 새로 지었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 글을 써 붙였다. 또한 집의 허한 곳에 절구통을 얹어놓고 절구공이 위에 ‘경신년월일시 강태공조작방아’라 써 붙였다. 아마도 강태공 있는 곳이라면 잡귀가 얼씬하지 못하리라는 믿음 때문에서일 것이다.

  또한 ‘庚申(경신)’이라는 글자 자체에도 制殺(제살)의 의미가 있다. 터를 닦는 날이나, 주춧돌을 놓는 날, 기둥을 세우는 날, 지붕을 덮는 날 등에도 吉日(길일)로 경신일을 택하기도 하니, 모두가 이의 유습일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왜 하필 사작경신의 날이며 하필 조작방아라고 한 것일까? 이것이 비결이다. 경신년월일시에 강태공이 방아를 찧는다 했는데, 이 사작경신은 지금 사용하는 月建法(월건법)에 의하면 千萬年(천만년)이 가도 나올 수가 없다. 혹자는 말하기를, ‘庚申(경신)’은 ‘庚辰(경진)’의 잘못된 표기이며 강태공이 경진년월일시에 출생하여 勳功(훈공)이 높고 智謀(지모)가 또한 많았으며 죽어서 또한 神(신)이 되자 百鬼(백귀)가 두려워해서 피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庚申(경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사작경신’은 ‘甲(갑)’을 ‘庚(경)’으로 고치면 나올 수 있다. 갑을 경으로 고치게 되면 甲申(갑신)년은 庚申(경신)년이 된다. 갑신년의 7월 달인 壬申(임신)월이 乙年(을년)이나 庚年(경년)의 경우, 이때 甲을 庚으로 고치게 되면, 정월이 甲寅월이 되어 7월은 경신월이 된다. 오직 日(일)은 불변이므로 경신일 그대로 되고 甲申(갑신) 時(시)는 변해서 경신시가 된다. 이렇게 해서 경신년월일시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갑신년 임신월 경신일 갑신시에서, 갑을 경으로 고치게 되면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60년에 한 번씩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때가 온다고 해서 무조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은 원리는 周易(주역)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 한정된 지면이라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다만, 甲(갑)을 庚(경)으로 고치는 이치를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주역의 爻辭(효사)를 지으신 周公(주공)이 重風巽卦(중풍손괘) 九五爻(구오효)에서 ‘先庚三日(선경삼일) 後庚三日(후경삼일)’의 뜻으로 庚의 의미를 은밀히 전하였고, 孔子(공자)는 山風蠱卦(산풍고괘) 彖傳(단전)에서 ‘先甲三日(선갑삼일) 後甲三日(후갑삼일)’로 甲(갑)이 庚(경)으로 되는 이치를 비결로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송의 학자인 소강절 선생이 지은 『皇極經世書(황극경세서)』에 이에 대한 뜻을 은밀히 밝히긴 했으나 이 역시 주역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한 일이라 역시 한정된 지면 위에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여간 사작경신일에 강태공이 마차에서 내려와 방아 찧는다는 말은 이때에 신을 부린다는 것이며 신도행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작경신’을 보면, 天干(천간)이 모두 ‘庚(경)’이고 地支(지지)가 모두 ‘申(신)’이다. 묘하게도 庚(경)자는 손으로 절구공이를 잡고 있는 모습이고, 申(신)자 역시 臼(구:절구)자에 丨(곤:절구공이)자가 합성된 것이니 강태공의 조작방아를 연상케 할 수 있는 글자이다. 방아는 搗精(도정)을 하기 위한 것으로, 벼를 찧어서 알갱이와 쭉정이를 구분하게 된다. 神(신)이라는 글자도 神明(신명)을 상징하는 示(시) 변에 申(신)을 합한 글자이니, ‘강태공의 조작방아’라는 말은 즉 강태공의 神道行事(신도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庚申(경신)’ 두 글자는 모두 후천을 의미한다. 갑이 선천의 시작이니 후천의 시작은 경에서 이루어진다. 天道(천도)에서는 음양의 변화가 子午(자오)에서 일어나므로 午(오)에서 후천의 시작으로 잡지만 人道(인도)는 寅申(인신)을 기준하므로 申(신)에서 후천이 시작되는 것이다. 坤卦(곤괘)의 坤(곤)이라는 글자도 申(신)으로써 후천의 시발을 삼은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강태공의 ‘사작경신’은 후천이 오는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강태공의 조작방아를 통해서 후천이 이루어짐을 뜻하게 된다.

  실제로 강태공을 대행해서 사작경신을 쓴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李也山(이야산) 선생이다. 1944년 음7월 6일이 바로 간지로 갑신년 임신월 경신일 갑신시가 되는데, 이날 선생은 聞慶(문경)의 矢弓洞(시궁동)이라는 곳에서 남녀 36명과 더불어 방아를 찧는 행사도 하고 풀무놀이도 더불어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서도 역시 주역으로 자세히 설명해야 되겠지만 간단한 언급만 하고자 한다. 聞慶(문경)이란 ‘경사를 듣는다’는 뜻이고, 矢弓(시궁)은 새를 쏘아 잡는 도구이다. 36명이라는 숫자는 갑을 경으로 고칠 경우 갑신년이 경신년이 되니 이로 인해 36년이 비워지게 된 것을 의미하며, 방아 찧는다는 것은 후천이 이르렀음을 의미하며, 풀무는 주역 革卦(혁괘)의 상이니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 같은 이치를 살펴보면 일제가 우리나라를 36년간 지배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천도가 스스로 그러한 이치에 의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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