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22)

복희씨의 치적 2

이응국 | 기사입력 2007/04/23 [11:53]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22)

복희씨의 치적 2

이응국 | 입력 : 2007/04/23 [11:53]

  태호 복희씨의 치적은 참으로 많다. 동방의 어둠을 밝힌 태양과 같이 그의 치적은 상고시대를 찬란하게 비춘 것이다. 복희씨의 여러 치적 중에 우선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 ‘글’을 발명한 것이다.「사기」에 의하면, 복희씨가 처음으로 글자(書契)를 만들어서 結繩(결승)으로 하는 政治(정치)를 대신했다 한다. 복희씨 이전에는 아마도 끈을 엮는 방법(結繩)으로 意思(의사)를 전달했던 모양이다. 결승은 문자가 없었던 상고 시대에 끈(繩)으로 매듭지어서(結) 표현한 것이니 큰일에는 끈을 크게 묶고 작은 일에는 끈을 작게 묶는 등의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書契(서계)는 글자를 말하니 글(書)은 도에 부합(契)하는 것으로, 글이란 비유하자면 道(도)를 담은 그릇과 같다. 그릇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듯이 글이 없으면 도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복희씨 이전에는 글이 없었던 시절로 알 길이 없었으므로 후세의 학자들이 인류 문화의 시원을 복희씨 이후로부터 기록한 것이다.

  또한 禮樂(예악)을 제정한 이도 복희씨라 한다. 그는 처음으로 혼인 제도를 정해서 한 짝의 가죽(儷皮)으로 예물을 삼았다. 상고시대에는 布帛(포백)이 없었고 짐승 가죽을 입었기 때문에 가죽으로 예물을 삼았던 것이다. 지금도 남녀 혼례 때 幣帛(폐백)을 주고받는 것이 이에 근거한 유습이다. 예가 있으면 음악이 따르는 법이다. 복희씨는 25줄로 된 비파(瑟)를 만들어 그물과 덫을 만들어 물고기도 잡고 짐승도 잡는 데에 비파를 타며 노래 부르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河水(하수)에 龍馬(용마)가 나타났다. 대략 서기 전 3,500년 전의 일이라 한다. 河水가 지금의 黃河(황하)인지, 용마가 과연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치로 말하자면, 하늘에 通(통)한 것이 河(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聖人(성인)의 德(덕)이 위로 하늘과 짝하여 하늘이 그 상서로운 靈物(영물)을 내려주신 것이니, 이것이 바로 龍馬(용마)라는 것이다. 용마의 등에는 一(일)로부터 十(십)에 이르기 까지 55점의 旋毛(선모)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 주역 책에 있는 河圖(하도)의 동그라미를 배열한 모습과 유사했을 것이다. 주자는 이 동그라미 모양이 ‘星象(성상)과 같으므로 圖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河圖의 기원과 이름에 대한 뜻을 말한 것이다. 여하튼 복희씨는 용의 상서로운 모습을 보고 官名(관명)에 龍(용)자를 붙이고 그의 군대를 龍師(용사)라 불렀다 한다. 이처럼 복희씨는 용과 유관함을 알 수 있다.

  주역의 팔괘 역시도 복희씨가 만들었다. 맨 처음 팔괘를 만들었으므로, 복희씨를 ‘作易者(작역자)’라 부른다.「태백일사」신시본기에서 복희씨에 대해 말하기를, ‘하루는 몸에 三神(삼신)이 降靈(강령)하는 꿈을 꾸고 온갖 이치가 洞徹(통철)해지자 곧 三神山(삼신산)에 가서 祭天(제천)하고 天河(천하)에서 卦圖(괘도)를 얻으니 그 그림이 三絶(삼절) 三連(삼련)하였으며 位(위)를 바꿔서 理(이)를 유추해 보면 三極(삼극)을 묘하게 합하고 변화가 무궁하다’ 하였다. 天河(천하)에서 괘도를 얻었다는 것은 河圖(하도)를 가리킨 것이고, 삼절 삼련은 八卦(팔괘)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팔괘와 하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주역의 팔괘는 용마의 등에 그려져 있는 河圖를 보고 나서 그렸을까? 아니면 용마와는 관계없이 팔괘를 그린 것일까? 주역에서는 다만 복희씨가 팔괘를 그렸다고만 말했지 이들 간의 관련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주역」계사전에서, ‘옛날에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적에 우러러 하늘에서 象(상)을 살피고 구부려 땅에서 法(법)을 살피고 鳥獸(조수)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살피며, 가까이로 내 몸에서 취하고 멀리 사물을 취해서 이에 팔괘를 만들어 (안으로) 신명의 덕을 통하고 (밖으로)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였다’ 하였다. 이 부분이 복희씨 作易(작역)에 관한 유일한 글로서, 이로 미루어 보면 용마와 관계가 없는 듯도 하다.

  그렇지만 易이라는 글자를 살펴보자.「說文解字」에서 許愼(허신)은 역을 도마뱀에 비유한 상형문자로 보았다(易에서 ◉는 머리와 눈을, 勿은 몸통과 다리를 나타내고 있다). 도마뱀이 때에 맞게 변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일견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易이 가지는 의미를 겨우 도마뱀에 비유함은 왠지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다. 이와는 달리「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 보면, ‘易은 즉 옛날 龍의 本字라’ 하였으니 이는 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또한 「태백일사」의 신시본기에서도, ‘복희가 신시에서 나와 우사가 되었으며 神龍(신룡)의 변화를 보고 卦圖(괘도)를 만들었다’ 하였다. 이때의 신룡이 하도에서 말하는 용마와 같은 것인지는 알 길은 없지만 아무튼 용의 출현은 있었던 모양이다.

  주역 乾卦(건괘)에서도 각각의 효를 龍(용)으로 비유한 것이 그 좋은 예다. 도마뱀과 용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습은 비슷하다. 정말로 ‘역’이라는 글자가 도마뱀을 취상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연유로 용에서 도마뱀으로 바뀌어졌는지는 한번 연구해 봄직하다. 필자가 판단하건데, 아마도 후세의 학자들이 복희씨가 팔괘 만든 것을 기념하고 천지자연이 용처럼 변화무쌍함을 비유해서 易이란 글자를 만들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복희씨의 作易(작역)은 용마 출현 이후의 일이 아닐까 판단된다.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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