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류는 일본 특유의 응석문화(甘え文化)

응석문화가 창조해가는 새로운 일본문화

장팔현 박사 | 기사입력 2005/11/22 [17:29]

혐한류는 일본 특유의 응석문화(甘え文化)

응석문화가 창조해가는 새로운 일본문화

장팔현 박사 | 입력 : 2005/11/22 [17:29]

  요즈음 일본에서 세차게 부는 한류는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한국, 한국인 인식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면에는 ‘혐한류’라는 맞바람이 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일본에서는 한류와 혐한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일본인들이 역사적으로 한국, 한국문화에 가지는 우월성과 콤플렉스의 반영으로 뉴욕타임스조차  "일본의 '혐한류'는 열등의식 때문"이라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한국을 미개국으로 인식하면서 1885년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탈아입구(脫亞入毆-동양을 벗어나 서구로 들어감)'사상에 매몰된 상황에서 일본의 우익인사들은 지금까지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다. 이는 동양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동시에 서양인에 느끼는 열등감이다. 메이지유신 때 일본인들이 키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으니 수염이라도 하면서, 팔(八)자 형태의 카이젤수염 기르기에 열중했던 이유이기도하다.
 
  실제로 일본 우익인사들은 아직도 한국, 중국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양국의 경제적 발전으로 일본이 장차 아시아에서의 패권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져있음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 중국의 일본 추월로 이어지고 이는 곧 메이지 이전 시대로의 아시아 질서 재편 및 복귀를 뜻하는 것으로 일본우익인사들은 절대로 꿈속에서라도 인정할 수도 바라지도 않음이요, 이를 막지 못할 것 같은 작금의 분위기에 딴지걸기와 생트집, 억지로 한국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한류문화의 열풍으로 일본 우의의 문화기반마저 한국에 열세일수 있음을 인식하면서 혐한류가 세차게 부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혐한류가 기세등등하게 세계인이 비웃는 것도 모르고 유치찬란한 만화로까지 나타나고 있음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양심세력들의 목소리는 점점 묻혀지고 산케이신문 등 우익언론과 우익지식인, 단체가 동조하면서 한류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음이다.
 
  일본문화의 특질
 
  일본은 고대로부터 한반도로부터 밀려드는 문화를 전래받아 성장했다. 특히 백제로부터 전래받은 이식문화가 아스카(飛鳥)문화요, 당나라로부터 영향 받은 문화가 하쿠호오(白鳳)문화다. 이러한 반도와 대륙으로부터의 어머니 젖과도 같은 모유(母乳)를 빨면서 일본문화는 소화, 흡수하며 무럭무럭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문화를 받아들여 흡수하면서도 결국은 독특한 일본문화를 만들어 갔으니, 왕인박사로부터 한자를 전래받은 후 한시의 유행은 물론 영웅의 일대기 등 서정을 묘사한 시집인 ‘만요오슈우(万葉集)’와 ‘와카슈우(和歌集)’ 등이 만들어지고 ‘고사기’ ‘일본서기’등 역사서도 출현하였다. 794년 쿄오토(京都)로 천도한 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일본식 문화인 ‘국풍(國風)문화’가 발흥하여 융성했던 것이다.
 
  그로써 한자의 부수를 본 떠 드디어 카타가나(片仮名)가 만들어지고 초서체를 본 떠 히라가나(平仮名)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오만할 정도로 아끼고 발전시키면서 일본인의 조상숭배 사상인 신토오와 더불어 일본판 중화사상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근세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조선은 길을 빌려 달라’며, 무모하고도 방자한 ‘정명가도’라는 국서를 보냈을 정도였다. 이는 이미 현소 등 첩자를 조선에 보내 조선국이 문화적으로는 발전했더라도 정쟁이 심하고 국방력은 제로에 가깝다는 보고를 받아보고 조선은 아예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명나라를 치겠다는 심산이다.
 
  토요토미가 명나라를 굴복시키고 일왕은 북경에 살게 하고 자신은 상해 근처의 영파에 살겠다고 섬나라에 앉아서 호언장담한 것으로 봐 정명가도는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방자함에서 온 정신과잉 상태로 분석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처럼 어리석은 군주의 잔꾀로 아무 죄 없이 애꿎은 조선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문화마저 약탈당하였다.
 
  토요토미의 이러한 무모한 침략발상은 바로 ‘일왕이 우주를 지배한다’는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사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사상은 황국사관과 버무려져 ‘태평양전쟁’ 시의 ‘대동아공영권’ 사상으로 이어져 세계 패권까지도 바라보다가 결국 원자폭탄 두 방에 무고한 자신들의 백성들마저 수십만을 죽게 한 뒤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일왕을 정점으로 세계는 한 식구’라는 신토오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창가학회나 천리교 등에서도 엿 볼 수 있는 사상으로 일본우익인사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사상이자 관념이다. 그들 종교는 일왕의 위치를 우주를 주관하는 것으로 올려놓고 교황이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일본은 국력이 넘쳐날 때마다 섬나라를 벗어나 무모한 도전을 세계에 던지는 것이다.
 
  일본문화의 형성 사이클
 
  일본문화는 수입→소화흡수→이탈→새로운 일본문화 창조라는 단계에서 보여지 듯 완전 일본화 한다는 특색이 있다. 이러한 단계는 아스카문화와 하쿠호오문화가 입증하며, 임진왜란 시 포로로 잡아간 도자기공들로부터 기술을 흡수하여 우리문화보다 발전시킨 도자기문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례로 심수관이나 이삼평 등 도공을 일본으로 데려가 그들을 조선과는 달리 잘 대우해주고 도자기라는 창조물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 주면서 새로운 일본식 도자기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일본판 도자기는 조선과 달리 에도시대부터 멀리 유럽으로 팔려나가 ‘사쓰마야키’, ‘이마리야키,‘아리타야키’,‘타카토리야키,‘하기야키’등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작금 일본에서 부는 한류와 혐한류는 결국 한 뿌리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인이 한국, 한국문화에 대하여 가지는 우월성과 열등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복잡한 카오스적 현상이다. 다수의 한국문화에 대한 동경이 한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며, 우익인물 등 반한인사들이 가지는 열등의식이 혐한류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일본에 부는 혐한류에 대하여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는 고대 일본에 백제로부터 불교나 문화가 이식될 때도 있었던 현상일 뿐이다. 결국 혐한류는 일본인들이 한국으로부터 수입, 소화 흡수하면서 유행중인 한류라는 동경의 대상에 대하여 일본문화를 지키려는 자존심의 발로로 보면 된다.
 
  그들이 갈고닦은 일본문화보다 더 유행을 타는 것으로 느껴지는 한류에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당황하여 트집 잡고 폄훼하며 어리광과 응석부림이 곧 혐한류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응석문화는 바로 일본인들이 자주 말하는 ‘아마에(甘え)’ 정신구조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인들이 가지는 아마에문화에 대하여 혐한류보다 더 주의를 표해야한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어른의 논리적이고 권위적인 기품에 눌려 응석이나 어리광부리면서 성장하듯 일본문화는 선진 외국문화에 대하여 동경하면서 수입하여 대유행(한류)을 시키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응석(혐한류)부리면서 또다시 ‘새로운 일본문화’로 융합 창조하여 일본식 국풍문화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일본문화의 형성과정과 완성은 바로 이처럼 수입→소화흡수(한류)→이탈(혐한류)→새로운 일본문화 창조 및 지키기(守)를 지나 역수출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지는 순환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류와 동시에 불고 있는 일본에서의 혐한류는 한국문화에 대한 일본 우익인사들의 열등감의 표출이자, 응석부리면서 한류로부터의 이탈을 꿈꾸며 새로운 일본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때문에 필자는 당장 부는 혐한류보다도 앙탈과 응석으로 성장해 가는 일문문화가 더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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