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와 혐한류(嫌韓流) 사이

한류와 일류(日流)가 부딪칠 때 혐한류가

장팔현 박사 | 기사입력 2005/10/10 [22:38]

한류(韓流)와 혐한류(嫌韓流) 사이

한류와 일류(日流)가 부딪칠 때 혐한류가

장팔현 박사 | 입력 : 2005/10/10 [22:38]
요즈음 일본에서는 혐한류가 거세가 불고 있다. 가히 a급 태풍 ‘나비’를 능가하지 않나 우려된다. 이는 일본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지는 한국.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로 ‘우월성’과 ‘콤플렉스’라는 양면성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한국.한국인들로부터 우월성을 느낄 때는 혐한류(嫌韓流)가 유행하고, 반대로 콤플렉스를 느낄 때는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한류(韓流)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2천년 전 한일 양국의 역사전개로부터 유전되어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1세기 들어 최근의 한일관계는 바로 일본인들이 느끼는 대 한국.한국인에게서 느끼는 복잡한 이중성의 표현으로 한류와 혐한류가 동시에 흐르고 있을 뿐이다. 아니 혐한류는 한류에 대해 일본 우익세력들이 느끼는 시기와 질투와 억지, 그리고 패배감과 자학(自虐)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일본우익세력들이 일본의 서민 대중들이 한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이고도 방어적인 입장으로부터 나오는 단말마와도 같은 최후의 “한국.한국인 싫어!”라는 속내의 표현이다. 이는 바로 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서중석 상임 공동대표가 8월7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나와 인터뷰하면서 일본의 대표적 우익단체인 새역모가 기본적으로 “한국은 '열등국가'이자, 중국의 '속국'”이라 말했듯이 ‘한국은 일본만 못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한류 붐 속에서 나오는 불편한 속내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점점 경제, 문화면에서 격차가 좁혀짐은 물론 오히려 한국문화가 일본문화를 압도하는 현상 속에서 일본우익세력들이 인위적으로 반한(反韓)바람을 일으킬 목적으로 일본국민들에게 일부러 혐한류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불고있는 혐한류에 대하여 간단히 밝혀보고자한다. 

1.현대의 혐한류(嫌韓流)는 한류에 대한 강한 반발의식 

 일본에서 혐한바람은 네 번째 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대 아스카시대가 열리기 전의 신도파인 모노노베씨에 의한 것이요, 두 번째는 여.몽연합군에 의한 두 번에 걸친 일본침공 의해 일던 것이다.
 
세 번째는 에도막부에 의해 일던 한류가 그치고 메이지유신이 일면서 시골무사들에 의해 정한론이 일 때 혐한바람도 동시에 거세게 불었고, 네 번째는 현재 불고 있는 ‘한류’의 반작용으로 일어나고 있는 혐한론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극우인사들에 의한 망언을 종합세트로 구성한 만화 ‘혐한류’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 한류와 혐한류는 동전의 앞과 뒤처럼 붙어 있는 것으로 항상 따라다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멀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부터 가까이는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을 무조건 싫어하는’ 혐일류(嫌日流)가 불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겪은 토요토미에 의한 조선 침략과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직접 혹독한 일제 치하를 겪으면서 조금의 과장을 보탰을지라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혐일류라는 점이다.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위안부로 징용으로 징병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피지배민족으로서 겪은 모진 비인간적 모욕을 바탕으로 혐일류가 분 것이니, 일본에서 이는 혐한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피해자인 우리가 가진 혐일류와 가해자인 일본이 도모하는 혐한류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의 원인도 모르고 일본인들이 혐일류를 무조건 반대하여 혐한류로 대처한다면 이는 현재 일고 있는 표피적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요,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는 침묵하면서 그 원인은 알려고도 연구도 않고 일본의 책임만 회피하고 있는 꼴이다.
 
 고대의 혐한류는 정치가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고, 이러한 혐한 바람은 ‘일본서기’에 칠지도가 백제로부터의 하사품인데도 불구하고 헌상품으로 둔갑되고, 삼한을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허무맹랑한 역사왜곡으로 기술되어 오늘날까지도 한일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중세 여.몽연합군에 의한 일본침공으로 불기 시작한 혐한류는 막부와 민간 모두가 느끼던 것이었다. 당시 대륙과 반도의 양국에서 차출된 일본 침공군은 쓰시마(대마도)와 이키(壹岐)섬을 휩쓸고 북 큐슈(北九州) 지역마저 살육의 도가니로 만드니, 이때 일본인들이 느끼던 공포심과 증오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양국의 침략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본 일본은 두 번 다 때마침 불어준 태풍으로 원나라 지배 하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참상에 대해서는 에마키(두루마리 그림) 자료로 남기어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에게 혐한의 한 축으로 교육시키고 있음이다. 이러한 교육과 혐한의 바람은 곧바로 일본우익들이 한국도 일본을 침략해서 피해를 주었다는 논리를 제공해주고 있음이다.
 
 근대 서양문물이 물밀 듯이 일본에 불어 닥치던 메이지유신기의 혐한류는 유신을 일으킨 시골무사들이 만들어 국민들에게 교육시킨 결과 지금까지도 그 맥을 유감없이 잇고 있음이니, 현재 일본에서 극우세력들을 중심으로 부는 혐한류의 근저에는 사상적으로 메이지유신기 이후 형성된 것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일양국에 대한 고대사의 대한관(對韓觀:한국을 바라보는 관점)도 대개 메이지 때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이 아직도 일본인들의 뇌리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혐한류는 메이지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혐한류로 ‘현대판 한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맞불 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2.혐한류의 유포패턴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조체제로 가동 중
-잡지, 만화, tv, 역사교과서, 학교교육 등 -

①잡지
  현대의 대표적 혐한론자들을 보면 일본 극우세력들로 ‘쇼쿤(諸君)’이나 ‘세이론(正論)’ 등과 같은 월간지나 ‘사피오(sapio)’, ‘플레쉬' 등의 주간지 등 극우 잡지를 통해서 한국을 비하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매체를 통해서 혐한 바람을 불러일으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일이다.
 
 미즈노씨는 극우잡지에 ‘한류에 속지 말라!’고 선동하는가 하면, 한국이 홍길동 유적지는 물론 왕인유적지마저 날조하고 이를 국제교류라는 미명 하에 일본 민간단체나 자치단체와 교류를 행한다면서 매우 못마땅해 한다. 물론 학술적 근거가 약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미즈노 교수는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국인들을 웃기면서 일본에서는 한국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는 전형적인 이중성의 일본인이다.
 
그는 일본의 극우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혐한류를 측면 지원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교류를 지원하기는커녕 혐한바람을 선동하는 우익세력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로 비쳐진 인물이다.
 
 그런데 한 때 한국 방송국에서는 그를 중용하였으니, 그가 진짜 친한파인지 ‘진품명품’인지 가려야할 판에 자주 출연하는 모습에 미즈노 교수보다는 한심한 방송국의 처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 와 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었던 일본인 승려 현소가 첩자라는 것도 모르고 조선의 고관대작들이 융숭한 대접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혐한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주목한 인물이 바로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란 인물이다.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주요 ‘새역모’ 회원으로 극우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김문학이 조국을 헐뜯으며 동포들을 헐뜯는 친일작품에 즐거이 추천서를 써 주며 한국 비판에 올인하는 유명 극우작가다. 이런 인물인 것도 모르고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 ‘무사’가 올해 3월에 번역되어 많은 청소년들이 즐겨 읽는 등 민족혼이 없으니, 우리에게 일본 극우세력을 분별할 연구소도 지혜도 혜안도 없음이다.
 
 특히 새역모 회원으로 혐한류의 중심에 선 이자와라는 인물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이 한국에 들어와 이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들 일본 극우세력들의 논리에 우리 청소년들이 알게 모르게 오염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혐한류를 퍼트리는 또 한사람의 유명 저널리스트로 여성인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가 있다. 그녀는 야스쿠니 신사 모금광고에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와 죠치대학(上智大學)의 와타나베 쇼오이치 등 극우사상을 전파하는 인사들과 함께 나서고 있는 위험인물이다. 당시 광고(주체는 ‘모두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민의 모임 발기인’이라는 단체)에는 8·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 진행하는 내용을 알림과 동시에 20만 명 참배운동 독려로 기금(1계좌당 5,000엔-약 5만원)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더욱 더 가관이었던 것은 “야스쿠니신사에 가면 막부시절과 메이지 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 때까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선인들을 만날 수 있다.”고 선전선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쿠라이 요시코를 비롯한 우익인사들은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8월 15일 종전일(실제로는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도록 촉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본의 한 민영방송(日本tv계) 뉴스캐스터 출신의 우파 여성 언론인으로 극우성향의 월간지 ‘문예춘추’ 3월호에 자유주의 연대 대표인 신지호 씨를 비롯해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등의 발언을 인용, “한국의 인사들에게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물었는데 이들의 반응은 통상 한국에서 보이던 거센 반발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친일 발언’을 한 것처럼 왜곡 전달하는 등 매우 철저한 혐한파 저널리스트로 유명하다.
 
 이밖에 주간지로 혐한류를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것으로는 ‘사피오(sapio)’와 ‘플레쉬’가 대표적이다. 이 두 잡지에 혐한파 극우작가들에 의해 기고된 글은 주로 한국(북한 포함), 한국인 비판이 대부분으로 도가 지나칠 정도다. 그들이 자주 싣는 글은 북핵문제로부터 김정일의 사생활은 물론 한국에서 일어난 대구지하철 참사 등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 때 더욱 노골적으로 한국 비하에 열을 올린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한국인 친일매국노들까지 동원하여 ‘일제식민지근대화론(일제 식민지 덕으로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 퍼트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와 함께 종 종 한복 입은 한국 여성들의 누드를 한글 이름으로 올려 한국여성을 모욕하기도 주저 않는 것이 이들 3류 잡지들의 혐한류 퍼트리기 전법 중 하나이다. 
 
 ② tv
  tv도 혐한류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매우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tv를 통한 한국비하 발언도 늘 있는 행위이다. 일례로 지난 1월 29일 미즈노씨가 패널로 참석한 니혼tv의 ‘제네쟝’이란 한류스페셜 프로그램에서도 결국은 혐한분위기로 이용만 당한 꼴이 됐었다.
 
실제로 이 프로에 참여했던 일본 젊은이들은 집중적으로 한국 패널로 참석했던 박철현 씨에게 "앞에 말한 ‘겨울연가’에 관한 것은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고, 뒤의 것은 너무 개인적인 의견 아니냐?"라고 질문하는 등 미즈노 씨가 우익잡지에서 주장하던 내용과 너무나 흡사했다.
 
다른 한 일본인 젊은 청년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한 게 아니고, 당시 조선의 총리였던 이완용 씨가 합방에 서명을 한 것이다. 정당한 절차로 인해 맺어진 합방조약인데 왜들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한일합방은 조선이 원한 것이 아닌가?"라는 등 완전히 일본 우익잡지와 ‘만화 혐한류’에서 주장 하는 내용 그대로 소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혐한류 바람으로 깊이 있게 한국과 일본과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대한관(對韓觀-한국을 보는 인식이나 관념)을 심어 줄 것이다.
 
  때문에 tbs 등 일본 민영방송에서 아침 10시와 오후 3시경에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연예계 소식과 한국관련 가십거리는 혐한류를 왕성하게 퍼트리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이를 맹목적으로 보는 주 시청 층인 일본인 주부들에게 일본 우익세력들은 강력한 tv라는 무기를 통해 혐한 바람 일으키기에 오늘도 내일도 여념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tv방송에 친일파인 한국인 또는 한국계 일본인이 빠질 수 없다. 이러한 한국 비판에는 한국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변진일(코리아리포토 편집장)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으며, 부모 중 한쪽이 일본인이라는 백진훈(조선일보 일본지사장 출신으로 민주당 참의원 비례대표의원) 씨가 일본 우익인사들과 별반 다름없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심히 짓밟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일본 tv방송으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거칠게 불고 있는 한류도 언젠가는 그들의 염원대로 강력한 혐한류가 또 다시 일본열도를 진동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일본 tv도 한일합방과 일제시대, 독도문제에 있어 일본 극우인사들의 혐한 논리를 교묘하게 선전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음이다. 그것도 자주 한국인, 또는 한국계 일본인들을 패널로 참석시켜서 그러고 있으니, 한국인 참석자들은 하나의 소품 정도로 이용당하는 감마저 드는 것이 솔직한 소감이다.

③ 서적에 의한 혐한류
 혐한류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가장 큰 맥(脈)은 역시 우익 작가들에 의한 글이 가장 많다할 것이다. 이들 우익작가들에 의한 혐한류 작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작가 중에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친일파 한국인, 한국계 일본인은 물론 태생적으로 친일파인 대만인조차 있다. 그 중에서 필자가 입수한 몇 몇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이러면 한국은 망한다-가공할 부패의 실태-(これでは韓國は潰れる-恐るべき腐敗の實態-1999년, 光文社)’라는 작품이다. 이 서적은 놀랍게도 순수 한국인으로 현재 가야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는 최기호 씨가 썼다고 나온다. 주요 내용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비판서로 제 1장 1999년 12월의 ‘국치’로부터 제 2장 ‘한국-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 제 3장 ‘양반계급’ 부활의 충격, 제 4장 ‘한국’사회 풍토의 문제점, 제 5장 일한관계의 과제로 끝을 맺고 있다.
 
 주된 내용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부정부패와 남북관계, 대일관계에 있어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관료들의 부패를 들어 비판하면서 선진국 출신 관료 등용을 주장하거나 샤머니즘의 병폐를 주장하기도 하고 말미에는 프랑스 지식인에 의한 한국지식인 비판도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가 진정 한국을 위한 비판을 하려 했다면 조국의 치부를 일본에서 발표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매를 드는 심정으로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진의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그도 혐한류를 조장하는 친일인사로 분류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합병에의 길(韓國倂合への道 , 文藝春秋, 2000年, 오선화(吳善花)’,
 
 친일매국노의 대표주자로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으니, 그녀의 오명(汚名)은 이미 이토히로부미의 양녀요, 애인으로 수많은 동족의 피를 뿌리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요녀(妖女) 스파이 배정자의 화신쯤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친일 매족, 매국노에 불과한 오선화(49, 타쿠쇼쿠대학 교수)가 또 다시 한국을 향해 예의 사냥개처럼 예리한 후각으로 킁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일본 우익들이 하나가 되어 열도에서 거세게 부는 ‘한류(韓流)의 조속한 한류화(寒流化)’에 일조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야말로 혐한류가 하루빨리 일본열도에 재정착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친일 매국녀일 것이다. 그녀는 ‘한국 말하는 뼈 속까지 일본인(가짜지만)’으로 비쳐진다.
 
 그동안 수 십 권의 한국 비난서를 냈음에 그 필력에 놀랄 만 하지만, 그녀를 접해 본 사람들로부터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아마도 일본 우익작가인 카세 히데아키가 한국인이 넘겨준 원고를 개작하여 일본 우익이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해댄 ‘추한한국인’처럼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어쩌면 이름만 빌려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어찌됐건 그녀가 ‘오선화’라는 실명을 빌려준 이상 그녀도 일본 우익들이 한국 비난하는 글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 우익인사들에 의한 협박에 의하든, 영주권과 빵을 쉽게 구하기 위해 입을 빌려주었던 그녀의 영혼은 이미 조국을 배신하고 비난하는 일본우익인사들과 동렬에 들었거나 그 이상임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친일매국노 오선화는 일본 우익들이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영주권(‘친일파 오선화는 일본에 영원히 살아도 좋다’)을 손에 쥐고, 이젠 뼈 속까지도 ‘일본인보다도 더 일본인’이 되기 위해 냄새나는(?) 김치조차 일부러 안 먹는다면서 오늘도 단무지 씹으며, 우익들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을 것이다.
 
 오선화는 물론 그들 일본 극우세력과 주파수가 동조되고 있는 한국 내 친일매국노들도 끊임없이 친일 작품을 써 자수를 해옴에 따라 그 더러운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적을 확실히 알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하여튼 그녀가 그동안 조국 한국 비난을 위해서 썼던 글들은 ‘스커트의 바람-일본영주를 목표로 하는 한국의 여자들-(スカ-トの風-日本永住をめぜす韓國の女たち-), 角川文庫, 1997年)’로부터 ‘속 스커트의 바람-한을 즐기는 사람들-:續スカ-トの風-恨(ハン)を樂しむ人びと-, 角川文庫, 1999年)’, ‘나는 어떻게 해서 ‘일본신도’가 됐는가(‘私はいかしして「日本信徒」となったか, PHP文庫, 2003年)’, ‘반일한국에 미래는 없다(反日韓國に未來はない, 小學館)文庫,2001년)’ 등 등 수십 권을 넘는 다작을 내놓았다. 물론 그 대부분의 내용은 한일 문화비교를 빙자한 한국 비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한류의 조기진화에 절치부심하는 주인 된 일본우익들의 성향과 흐름을 사냥개의 탁월한 후각으로 캐치한 오선화다. 주인을 위해 매국녀가 크게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야 고급스런(?) 먹이가 주어지기 때문임은 그녀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매국녀가 ‘한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 앞잡이 역할을 자임하고 선봉에 섰으니, 참으로 가련하고도 불쌍한 인생이다.  
 
 매국녀 오씨는 예의 일본우익 입노릇 하는 월간지인 '문예춘추(文藝春秋)' 7월호에 ‘욘사마와 결혼한다면’이라는 제목에 ‘한류 결혼의 현실’이란 부제로 ‘한국남성 깎아내리기’에 올인 하는 어리석음을 또 다시 만천하에 자랑하고 있다.
 
 한국인, 그 중에서 ‘한국남성’에 대한 증오심은 오선화 개인이 겪은 군대에서의 연애에서 비롯됐다고 매국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매국녀가 겪은 연애 파경(破鏡) 담이 어느새 일반화 되어, 한국남성을 호도하는 재료가 되어 일본우익에 아부함이요, “일본 아줌마들이여! 한류에 속지 말고, 한국남자에 속지 말라!”고 열심히 선동하고 있는 동인이 되었음이다. 그야말로 혐한류를 일본에 전파하는 ‘혐한 전도사’로 부를만한 여자다.
 
 매국녀 오선화, 기고문 서두에 왈,  “한국남성을 ‘정열적인 로맨티스트’라며 좋아하는 일본여성이 늘어나는 현실을 보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글을 썼다.”며, 자신의 못남과 질투심을 감추고 있다. 물론 한국남성들도 매국녀 오선화보다야 한국남성을 좋아하는 양심적인 보통의 일본 여자들이 한일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더 좋게 비칠 것이다. 
 
 매국녀 오선화는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가며 여자를 유혹하려 애쓰지만 일단 결혼에 성공하면 ‘남존여비’의 남자로 표변하고 만다.”며, 인류의 반인 남성 모두가 가지는 속성을 마치 한국남성들만의 특성인 양 유치한 발상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편, 매국녀는 한 술 더 떠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 “바람기와 폭력, 남아선호사상, 고부간의 갈등 등을 통해 여성들을 견딜 수 없이 괴롭힌다.”고 한국 남성 전체가 그런 듯 매도하고 있다. 바람기에 있어 일본이 한국남성보다 훨씬 비교우위에 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상식이요, 고부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일본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음은 필자가 일본 거주 시에 항상 느끼고 듣던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일반화 해 ‘일본이 한국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는 식으로 그녀는 한국 비난과 모독에 일본 우익을 대신해 열심히 조국을 물어뜯고 있다. 물론 그 대가로 어느덧 일본에 영원히 살아도 좋다는 영주권도 손에 쥐고 때때로 우익인사들이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돈)의 부피도 점점 더 커질 것을 기대하면서 그녀는 늘 사냥감을 모국에서 찾고 있음이니, 그 영혼의 가련함은 일제시대 동족을 물어뜯던 일제의 주구 배정자와 진배없는 그녀의 화신(化身)이거나 그 영혼이 빙의된 여자일 것으로 생각된다.

㉰ ‘역설의 일본사(逆說の日本史, 小學館文庫, 1996年)’를 쓴 이자와 모토히코라는 일본 극우작가를 주목하라! 

 다음은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원으로 혐한류에 관한 글쓰기와 한국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이자와 모토히코라는 인물에 대하여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4월10일 도쿄의 한 모임에서 한국을 비난하면서, “반일(反日) 보도를 하는 언론과 반일이 목적인 일본의 좌익보도기관이 문제다.
 
역사의 명장면인 러ㆍ일전쟁은 세계사에서 비(非)백인이 백인에 승리한 전쟁이다. '타케시마'(독도) 문제에 있어 한국은 공정하지 않다. 타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반도침략의 제1보는 타케시마가 아니다.”라고 말한 인물이다.
 
 그는 나고야출신으로 tbs 보도국 기자를 거쳐 시리즈로 ‘역설의 일본사’ '야망패자'와 역시 극우인물인 후지오카 노부카츠(藤岡信勝)와의 공저로 ‘no라 말할 수 있는 교과서( noといえる敎科書) -진실의 일한관계사-)’를 쓴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 '역설의 일본사', '야망패자(전7권)', '무사(전 7권)'는 한국에서 모두 번역 출판되었다. 뒤의 두 책은 양모씨의 번역에 의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책이다. 참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자와가 쓴 ‘무사(武士)’(7권의 시리즈로 출간)는 한국의 모 출판사에서 올해 3월에 번역 출판했다함은 경천지동할 일이다. 과연 그가 ‘쾌도난마의 결단’이란 부분을 썼을 때는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묘사했을지 의문이다.
 
 이자와 씨의 사각형 얼굴과 짙은 눈썹으로 볼 때, 그는 순혈(純血)의 야마토민족이라기 보다는 일본열도 최초의 원주민인 아이누민족, 또는 양자의 혼혈로 보인다.

이자와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 푸들’로서 즐거워하는 매저키스트 오선화는 물론 중국동포인 김문학.명학 형제와도 깊은 교류를 가지고 있다. 김씨 두 형제가 한국, 한국인 비난 목적으로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를 더욱 강도를 높여 일본어로 번역해서 쓴 ‘한국민에 고함(韓國民に告ぐ)’ 출간 시 ‘ 여기까지 써도 괜찮을까?’라는 비아냥조로 추천서를 써 준 인물이다.
 
 그들 혼을 일본 극우세력들에게 저당 잡힌 친일 매국노들은 그들에게 스스로 접근해서 빵을 구하는 인물들로 일본의 장기 패와 같고, 바둑판의 사석과 같은 존재들이다.
 
 일본 극인세력들은 이들 친일매국노들의 뇌를 최면술로 장악했는지, 돈으로 매수했는지, 한국 비난 시에는 그들 김문학이나 오선화 등 ‘한국말 잘하는 일본인들’을 아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학생시절 나관중이 쓴 ‘삼국지’를 읽고 유비, 현덕을 좋아하고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했으나, 실제 당시 우리민족은 지리적 여건으로 조조의 위나라와 접촉이 많았었다.
 
 아마 당시 우리민족은 유비의 촉나라보다는 조조의 위나라 편향정책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고구려는 위나라의 직접적 위협을 느껴 가끔 손 권의 오나라를 이용하는 ‘원교근공’의 외교정책도 썼지만......,
 
 하여튼 역사서를 쓰는 편자나 작가는 기본적으로 색깔과 주관적 의식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때문에 일본 우익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작가의 논리에 깊숙이 세뇌당할 여지가 커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극우인물인 이자와 모토히코가 쓴 작품을 읽으라고 번역 출판하는 한국 출판사까지 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출판사가 이자와라는 극우 작가의 성향을 몰랐거나, 작품성이 좋거나, 또는 상품성(장사 가치) 때문에 책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쓴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무슨 영향을 받고 자랄지 정말로 걱정이다. 아마, 이자와는 한국어판 출판에 있어 선뜻 자신의 작품이 한국 독자층에 알려지기를 바라고 승낙하지 않았을까한다. 그리하여 알게 모르게 자신의 극우논리가 교묘히 한국인들에게 세뇌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하여튼  일본 우익 세력들의 자본이 한국 출판시장 내에도 상당히 잠식 해 있음을 사금융 자금의 침투 이상으로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 아니, 1875년 이후의 상황과 어찌 다르다할 것인가?
 
 작금 일본 무협지나 소설, 만화에 일본 극우 작가에 의한 작품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들을 모르기에 장사 속으로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우리는 그만큼 아직도 일본을 모르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상전에 있어 아직도 일본에 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극우인물 중의 한 사람인 이자와 모토히코란 자의 작품이 한일 양국이 치열하게 외교전을 펼치는 이 와중에도 번역 출간되어 나오는 것에서도 증명된다. 혹시 이자와란 자가 자기 작품의 한국어 번역출판 기념회에 보무도 당당히 승리자의 오만한 폼으로 참석하지 않았을까 역겨움마저 느껴진다. 
 
 한국의 담당부서에서는 일본문화 개방도 좋지만, 최소한 일본 극우인물들의 작품은 한 번 쯤 걸러주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에서도 얄팍한 장사 속에만 눈멀지 말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생각하여 작품 선정에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정부나 단체는 일본 극우세력을 지원해주는 ‘새역모 후원자 307인’을 철저히 배격하고 그들의 성향을 낱낱이 파악해 놓아야한다. 그리하여 혐한론자들의 한국 입국 자체를 막기 위한 법률을 속히 제정해야 하고, 극우인물들의 작품이 번역 출판되지 못하게끔 강제해야 한다.
 
 자라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상이 알게 모르게 일본 극우세력들의 논리로 잠식당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출판시장도 어느덧 치밀하고 교활한 일본 극위세력에 의해 장래의 지모씨, 한모씨, 조모씨 같은 친일매국노의 탄생을 염려하는 상황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일본 극우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수천 배로 농축된 일본 극우의 논리가 책 속에 교묘히 숨어 들어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적당히 해라 한국(‘いい加減にしろ韓國-日本を嫉妬し蔑む眞の理由)’, 祥傳社, 1998年, 20刷本, 토요타 아리쯔네(豊田有恒)’
 
 일본 우익작가인 토요타라는 작가 또한 혐한류에 일조를 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 비난하는 서적을 자주 내는 인물로 2002년도에서 ‘지금 한국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いま韓國人は何を考えているのか, 靑春出版社, 2002年)’라는 등 오지랖 넓게 한국 사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물 같다. 물론 비난과 비판이 주를 이루는 혐한 작가이다.
 
그는 ‘적당히 해라 한국’이라는 책 속에서 ‘일본은 한국의 분풀이 국가’라 하면서 언제나 사과를 계속하지 않으면 용서가 없는가? 따지듯 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소한론(疎韓論-한국과 멀어진다는 의미)’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한국 내의 악의를 가진 날조보도가 문제라고 적반하장 격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울러 한국경제가 일본에 등을 돌렸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못 듣는 일본의 기술원조’이기에 더 이상 한국에 기술원조 해줄 필요 없는 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울러 우리 역사를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살해 되었다’고 하면서 ‘한국의 역사는 가혹했다.’라는 등 우리역사마저 왜곡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한국인이 일본인을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토요타 씨는 그 원인 규명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특히 토요타는 이 책 속에서 일제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눈을 질끈 감고 한국에서 보이는 현재의 상황만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재단하는 단세포처럼 일제의 만행에는 눈을 돌리면서 오히려 한국을 비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 언론이 일본에 대한 보도가 왜곡되어졌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한합병(한일합방)은 일본에도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전형적인 일본 우익답게 ‘여자정신대는 위안부가 아니다.’라 주장하면서 ‘하지 않은 일로 반성할 의무는 없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가히 혐한 바람을 일으키는 그의 필력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동조할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 ‘한국과 역사를 공유할 수 없다-일한역사공동연구의 환상-(‘韓國と歷史は共有できない-日韓歷史共同硏究のまぼろし-』, 小學館文庫, 2002年)’
 
 메이세이대학 전후교육사연구센터에 근무하는 카츠오카 칸지(勝岡寬次)라는 인물도 혐한류를 퍼트리는 악성작가이기는 이자와 모토히코 못지않은 유유상종의 인물로 보인다. 이러한 판단은 그가 쓴 ‘한국과 역사는 공유할 수 없다’라는 책 속에서 확인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은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시비 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가해국과 피해국은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아니 오리발마저 내밀며 일제 때 한국, 한국인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요리저리 변명을 하면서 일본 역사는 미화하고 한국의 정당한 비판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원인규명에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왜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이 일본에 징용, 위안부 문제, 우키시마마루 침몰사건, 우투로 토지 문제 등 많은 부분에서 일본에 그 해결책을 묻는지 진지하게 들으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영광스런 일제의 영광’만을 되찾으려 억지와 왜곡과 날조로 한일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카츠오카라는 작가 또한 전형적인 우익인사들과 똑 같이 혐한류를 일본인들의 뇌리 속에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 ‘중국.한국의 역사왜곡 -왜 일본인은 침묵하는가-(中國.韓國の歷史歪曲- なぜ、日本人は沈黙するのか, 光文社, 1997년)’
 
 상기 책은 1938년 대만 태생으로 1964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과 메이지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태생적인 친일파 황문웅(黃文雄)이 쓴 글이다. 그는 전형적인 친일파로 일본 우익 이상으로 한국과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며, 그 영혼을 일본 우익에 저당 잡힌 희대의 친일파로 유명하다.
 
 그가 중국과 한국을 비난 하면서 쓴 저서만도 수 십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중국 ‘역사교과서’를 철저히 비판한다(韓國,中國「歷史敎科書」を徹底批判する, 小學館文庫, 2001年)’로부터 ‘일본을 함정에 빠트리는 중국,한국의 텇- 날조된 근현대사(‘-日本を陷れる中,韓國の罠-捏造去れた近現代示史, 2002년 德間書店)’, ‘대동아공영권의 정신’, ‘왜곡되어진 조선총독부(歪められた朝鮮總督府)’, ‘회복 될 수 없는 한국(立ち直れない韓國)’, ‘한국인의 ‘반일’ 대만인의 ‘친일’’ 등 동 아시아 문제에 얕은 일본 우익사상을 저변에 깔고 오지랖 넓게 참여하며 망령된 소리를 일삼는 인물이다.
 
  특히 ‘날조된 근현대사’라는 저서 속에서는 “중국침략, 일한병합, 남경대학살, 종군위안부 등의 문제에 있어 일본인은 이렇게 속았다!”라면서 중국과 한국에 의한 ‘역사왜곡’ 그 거짓과 음모를 밝힌다고 거창하게 일본 우익을 대변하여 한국과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감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치밀하지 못한 지식으로 한,중,일 문제에 터무니없이 나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수레 앞에 서서 막으려는 우매한 짓)’ 정도 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단, 그의 저서 또한 다작인 것을 감안하면 진짜 그가 혐한류와 혐중류(嫌中流)에 뛰어들어 직접 글을 쓰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오선화처럼 일본 우익인사들에게 매수되어 일부는 그가 직접 썼다고 해도 대부분은 뒤에서 일본 우익 작가가 써 주거나 공저가 대부분일 것으로 판단된다. 어쩌면 그도 매명(賣名-이름을 팜)의 대가로 일본에서 생물적 목숨의 연장을 위해서 손쉽게 빵과 바꾸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특이한 인물로 혐한류에 앞장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황문웅이라는 대만출신 친일파도 연구대 상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린(山野車輪)작)’는 한국 싫어하는 日,우익의 결정판
 
일본 우익세력들은 수구지심의 원초적 본능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문화에 빠져드는 한류에 매우 불편함과 수치심을 느껴서인지, ‘한류를 혐오한다.’는 뜻의 ‘혐한류’라는 만화를 만들어 뿌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평소 한국에 대해 가지는 우월성과 콤플렉스의 양면성 중 한류에 대해 느끼던 콤플렉스의 거센 반발로 볼 수 있다.
 
한국에 콤플렉스를 느끼던 일본 우익세력들이 평소 잠재의식 속에 가지고 있던 ‘혐한’의식을 일거에 폭발시키고 있는 중이다. 한류를 싫어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인 이 만화는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아마존재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잘 팔리고 있다.
 
 일부 독자들도 이 만화를 ‘일본인 모두가 읽어야할 필독서’라고 추천할 정도다.
 
  만화의 주요내용을 보면, “한국에는 더 이상 사죄와 보상이 필요 없다.”, “한국은 어째서 일본의 영토, 타케시마(독도)를 침략하는가?”, “한국이 일방적으로 ‘이승만 라인’을 그어 독도를 빼앗고, 1965년 한일어업협정 체결 때까지 3929명의 일본 선원을 억류해 교섭카드로 사용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안중근 의사를 ‘어리석은 테러리스트’로 묘사하기도 했다.
 
  목차만 보더라도 매우 선정적이고 악의적이다. 예를 들면, “제1화, ‘일한공최(공동개최) 월드컵의 이면-한국인에게 더러워진 월드컵배 축구의 역사’, 제2화, ‘전후 보상 문제-영원히 요구되는 돈과 사죄’, 제3화, ‘재일 한국.조선인의 래력(來歷)-재일동포가 걸어온 역사와 ‘강제연행’의 신화’, ‘제4화, 일본 문화를 훔치는 한국’, 제5화, ‘반일 매스컴의 협위(위협)’, ‘제6화, 한글과 한국인-자칭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는 한글의 역사와 비밀’, 제7화, ‘외국인 참정권의 문제’-외국인(=재일한국인)이 참정권을 갖는다는 일’, 제8화, ‘일한합방의 진실-조선의 근대화에 노력한 일제 36년의 공죄(功罪)’, 제9화, ‘일본령 침략-타케시마(독도)문제-서로 영유권을 다투는 일본과 한국 각각의 주장’, 에필로그, ‘일한 우호에의 길’로 끝맺고 있다. 글 대부분은 한국 측이 잘못이며 억지라며 헐뜯기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잠재의식적으로 가지는 한국에 대한 맹목적 편견과 싫어함을 이 만화는 혐한류라는 함축된 단어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조금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제1화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른 경위를 심판의 불공정으로 내몰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9인 대 11인의 경기가 된 포르투갈 대 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설기현의 팔꿈치 치기로 후부두를 맞고 구부리는 훼르난도.고오토, 팔꿈치 치기로 머리를 감싸는 죠르쥬.코스타, 배후로부터 왼쪽 다리를 채여 무릎을 꺾인 휘고.노루잇슬, 완전 캐치 직전에 키퍼에 몸으로 부딪치는 최진철, 왜인지 카드를 꺼내지 않고, 포르투갈 측에는 레드카드가 2장 나와 9 대 11인의 경기가 되다.”, ‘유혈,병원보내기의 악질 플레이를 받고 사라진 이탈리아 대 한국’, ‘완벽한 2점을 취소당한 스페인 대 한국’ 등으로 일방적으로 한국 축구를 매도하고 있다.
 
당시 친유럽 팬이 많은 중국에서 공한증에 대한 반대심리 탓인지, 아니면 ‘속국’이라는 속내 때문인지 한국 축구를 비하하던 때가 있었는데, ‘만화 혐한류’도 가히 중국 축구팬들의 맹목적인 한국 비하와 별반 다름없음을 절실히 느낀다.
 
 제 2화에서는 ‘일한보상문제’를 거론하면서, “이것은 일본과 한국의 국교가 맺어졌을 때 완전히 끝났습니다. 일한기본조약으로 이것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라고 되어있음을 확인한다.’라고 되었습니다. 만약 보상을 받지 않은 한국인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정부에 요구해 주세요!”라고 비꼬는 투로 일관하고 있다.

 제3화에서는 재일동포들의 일본 이주를 왜곡하고 있다. 즉, “자! 강제연행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국민징용령’이라는 법률에 기초해서 일본국민의 의무로써 ‘징용’은 존재했다......., 1939년에 국민징용령이 성립했다. 이것은 공장과 탄광 등에 국민을 근로노동 가능하게 한 법률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일부였던 조선반도(한반도)에서는 실시되지 않고, 그 대신에 기업은 조선(한국)에서 노동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 때까지는 일본 내지에서의 실업자 증가를 막기 위해 조선인(한국인)노동자의 이주를 제한하고 있었다.
 
그리고 1942년 ‘관 알선(官斡旋)’이 시작되어 관청이 일할 곳을 알선하도록 했다. 그러나 조선(한국)에 있어서의 ‘관 알선’은 알선된 직장에서 그만둬도 벌칙이 없고, 일본 내지(열도)와 대만에서의 ‘징용’과 비교해도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라고 변명과 억지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제4화에서는 한국이 일본문화를 훔치고 있다고 분개해 한다. 검도에 관해서도 일갈하고 있다. “한국은 ‘검도의 기원은 한국에 있고 일본은 검도를 스포츠화한 것뿐으로 이아이(居合-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잽싸게 검을 뽑아 베는 검법)와 무사도의 기원도 한국에 있다.’는 주장을 한국 내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 이 엉터리(사실을) 큰 거짓말로 발신하고 있다......(필자 중략)...... 그들은 ‘겐도오’를 한국식 한자음의 ‘검도’라 칭하며, 더욱이 검도용어를 한국어로 바꾸고 룰조차도 개변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전검련(全劍連-전일본검도연맹)이 쇼와 50년(75년)에 발표한 ‘검도의 이념’을 함부로 고쳐서는 신라시대의 ‘화랑’을 ‘조선세법(朝鮮勢法)’, ‘본국검법(本國劍法)’이라는 극히 적은 기록을 근거로 신라 이래의 전통 검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단다.
 
 일본에 있어서 연면(連綿)히 이어져 내려온 검술.검도의 역사와 문화를 모욕(侮辱)하고 있단다. 한국에도 독자의 검도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도와 보호구를 버리고 한국 자신의 검도를 하면 좋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일본의 검도라는 집을 빌려 본채를 탈취하는 행위를 하고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말로써 세계를 상대로 유포시키고 있단다.”라고 일본의 검도라는 무술과 스포츠를 한국이 빼앗아가 ‘검도의 발상지는 한국’이라고 날조하여 세계에 대고 선전한다며, 일방적인 일본 측 주장만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일본은 607년 성덕태자가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는 국서를 들어 그 때부터 일본은 중국의 속국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한국은 청일전쟁 후까지도 쭉 중국의 속국으로 있었다고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이러한 화이질서와 유교사상에 따라 중국을 부모의 나라 한국을 형, 일본을 아우로 본다고 못 마땅해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쿠로다 카츠히로 씨도 항상 주장하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만화(‘우주흑기사’, ‘람바’), 애니메이션 게임(‘스페이스 간담’), 식품공업의 디자인(‘해적왕장피’, ‘초코송이’, ‘고래밥’), 캐릭터 등 모든 것이 진행형으로 도둑맞고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제5화에서는 일본 내 양심적인 매스컴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일본의 방송법은 물론 tbs의 방송기준을 들이대며 우익인물에 의한 발언에 총련을 포함한 재일동포들의 반발과 마이니치신문 등이 오히려 일본인사들(대부분이 우익인사)의 발언에 비판한다고, 이를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일례로, 2003년 10월28일 ‘도쿄를 구하는 모임(救う會東京)’ 주최 ‘동포를 탈환한다(同胞を奪還するぞ)’ 전도(全都)궐기집회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일본은 결코 무력으로 침범을 일으키지 않았다.
 
조선반도(한반도)가 분열되어 통합되지 않았기에 그들(한국인)의 총의로 러시아를 선택할까, 지나(중국)를 선택할까, 일본으로 할까하다가 같은 얼굴색을 한 일본인의 도움을 얻기로 하고 세계 여러 나라가 합의한 상태에서 합병이 행해졌다.”고 왜곡을 일삼는 발언에 한데 대하여 일본 매스컴이 이를 도와주지 않고 비판한다는 내용이다.   
 
  제6화에서는 한글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한국)을 합병하기 전에는 100개의 학교도 안됐던 공립 소학교(초등학교)가 종전(8.15패전)까지는 5000교까지 증가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교육시설도 획기적으로 일본제국이 은혜를 베풀었다면서, “원래 1886년에 이노우에(井上 角五郞)가 한자와 한글로 혼합문을 신문에 사용함으로써 한글이 보급되었다.”고 왜곡까지 한다.
 
또한 “다이쇼오 9년(大正 9년-1920년)에 조선어사전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조선총독부란다. 대개 조선어는 여섯의 방언으로 구분되었는데 그것을 체계화 시킨 것도 조선총독부란다.”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이 한글을 말살시켰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주장인데 반해, ‘만화 혐한류’에서는 조선어(한국어)수업에 관하여 쇼와 13년(1938)에 전면개정이 이루어져, 필수과목으로부터 제외되었다고 인정하면서 “조선어 수업을 하고 말고는 교장의 판단에 맡겨졌다.”며, 일본인 교장은 전혀 조선어 필수과목을 폐지하지 않고 실행했는데, 조선인(한국인) 교장이 조선어(한국어) 수업을 폐지했다면서 억지와 왜곡을 일삼고 있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그 어떤 협잡꾼도 울고 갈 일이다.
 
 제7화 외국인 참정권 문제에 있어서는 “참정권이라 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가지고 있다. 권리.의무로써 외국인이 외국적인 채로 타국의 정치에 참가할 수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일본과 재외 외국인(여기서는 재일동포를 의미)의 조국(한국)간에 이익이 대립한다면, 내부로부터 파괴되고 만다.”면서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 요구에 강한 의구심과 반발을 보이고 있다.     
 
 제8화에서는 한일합방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 친일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을 두고 마치 전체 한국인들이 일본과의 합방에 동의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즉 “한국인 자신도 일한병합을 원했다.
 
한국최대의 정치조직인 일진회가 병합을 주장했다. 일본과 연대함에 의해 문명개화를 달성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힘으로 조선에서의 유신을 목표로 했다. 그것과 대립했던 것이 청국과 러시아에 사대하던 조선왕실과 양반이다. 즉 개혁파인 일진회, 농민, 일본 대 왕실, 양반, 청, 러시아와의 대결양상으로 결과 한국은 일본에 병합되었지만, 근대 법치국가가 되어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이 정비한 인프라의 은혜를 입어 이씨조선시대(‘조선시대’가 올바른 표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근대적인 생활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라고 날조와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안중근 의사조차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고 있음이다. 즉 “아아! 한국병합에 신중한 자세를 표한 병합 찬성파를 억제하고 있던 이토오 히로부미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네요. 그의 테러행위는 병합에의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정치는 부패하고 관리는 무능, 농민은 착취되어 개혁파와 보수파의 정쟁으로 국력은 쇠퇴, 이토오 히로부미라고 하는 한국의 좋은 이해자를 멍청한 테러행위에 의해 스스로 잃다니......., 이제 일본과 합병하는 수밖에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없었다.”라고 호들갑 떨며 동양평화와 진정한 자주 독립을 원하던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폄훼, 왜곡과 날조로 일관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멍청한 테러리스트’로 표현함은 물론 이토오 히로부미에 대한 저격으로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 책임을 일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비열하고도 뻔뻔스런 일본 우익들의 속내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제9화에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이승만라인(후의 ‘평화선’)을 설정하고 일본어선 328척에 어부 3929인을 억류, 이를 무기로 1965년 맺어진 ‘일한어업협정’ 시 재일한국인 범죄자(‘혐한류’의 표현 그대로) 472인을 가석방하고 그들에게 재류특별허가마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 만화에서는 한국의 타케시마(독도)점거는 불법이기에 일본에 즉각 반환하라고 주장한다. 마치 거리에서 스피커로 소음공해를 일으키며, “한국정부는 타케시마(독도)를 즉각 반환하라!”고 외치는 일본우익단체의 행동대원들과 같은 주장을 만화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 

▲만화 혐한류     © 장팔현


㉵ 역사교과서에 의한 혐한류
 
 요즈음 일본에서 부는 혐한류는 역사교과서도 한 몫하고 있다. 이들 일본 우익인사들이 역사교과서로 전파하려는 한국관련 역사왜곡은 대략 30여 가지로 요약된다. 그 대부분의 내용은 후소오샤 발행 ‘새로운 역사교과서(新しい歷史敎科書)’에 올라있는바, 다음과 같다.
 
“고대에 한국남부지역은 일본이 지배한 임나일본부였다.”로부터 “고구려.백제.신라는 야마토정권에 조공했다.”, “칠지도(七支刀)는 백제왕이 일본왕(왜왕지)에게 하사한 것이다.” 또한 왜구를 해적집단이라 하지 않고, “무역에 종사하던 일본인”으로 왜곡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왜구는 제주도와 북큐우슈우를 거점으로(제주도를 왜국의 거점으로 왜곡)있었다.”, “왜구의 주력은 고려, 조선인이다.”, “고려를 무너트리고 새로 건국된 나라는‘이씨조선’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출병’ 또는 ‘진출’이다,”,,  “조선통신사는 장군습직 축하사절이다.”, “부산에 대마도의 ‘종씨(宗氏)왜관’이 설치되었다.”, “중국의 복속국이었던 조선”, “사이고오 타카모리는 자신이 조선에 가 살해되면, 그 것을 명목으로 일본이 출병할 수 있다고 봤다(조선에서 사이고오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던 것처럼 가설을 내세움).”. 그리고 의도적으로 일으킨 강화도 사건을 마치 “일본군이 측량 및 시위하는 것을 보고 조선군이 먼저 공격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군제개혁을 지원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철도,관개시설 등의 개발을 위해 힘썼다(일명, 식민지 근대화론).” 등 등 왜곡과 날조로 우리역사를 비하내지는 중국의 속국으로 치부하고 일본역사는 과대 포장하여 미화하고 있다. 

④ 거리의 혐한파- 그들은 일본우익의 행동대-
 거리에도 혐한류는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바로 우익인물들과 물 밑으로 손을 잡고 있는 야쿠자(조직폭력단) 단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 우익단체들이다. 이들은 대개 정심숙(正心塾) 등과 같이 ‘○○塾’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혐한류를 거리에서조차 거세게 불게 하는 행동대 역할을 하고 있다.
 
거리의 행동대원들은 차량에 일장기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키미가요를 틀어가면서 천황숭배를 주장하거나 황군(皇軍-좁은 의미로는 천황을 지키는 근위병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자위대의 천황 직속 군대화를 의미)창설을 크게 떠들면서 우익사상을 전파한다. 그들은 메이지유신의 근간이었던 ‘천황숭배’와 조상숭배 사상인 ‘신도(神道)’의 맹신자들로 전 일본 국민들에게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국은 타케시마(독도)에서 당장 나가라!”라는 말과 ‘일본해’를 한국이 ‘동해’라 왜곡한다면서 비난하는 일이 그들이 찾고 부르는 18번이다. 이들 거리의 행동대원들이 바로 혐한류를 대중 속에 선전하는 피에로 같은 광대로서 그들은 대개 우익정치인들과 뒤로 손이 닿아 있음이다.
 
 이들 단순하고 무식한 거리의 우익인물들이 행동대원으로 움직이는 사이 그들 단체의 두목은 밤거리를 누비며 우익정치인들과 물 밑 거래를 하면서, 정치인들이 내리는 지시를 거리로 옮겨 선량한 일본국민들에게 소음방해를 일으키며 오늘도 내일도 한국 비난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일본의 우익정치가들은 그들이 속 시원히 하고 싶은 말을 거리의 대원들에게 맡겨서 하게끔 조종하고, 대개 야쿠자로 이루어진 그들 단체는 우익사상을 거리에 전파하며 조직폭력과 탈법 행위로 모은 돈으로 정치헌금을 하면서 법의 제재에 대한 반대급부를 우익정치인들로부터 은근히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야쿠자 출신 우익인물과 정치가들이 대낮에 교류하는 것은 터부시된다. 이러한 사실이 일반 국민들에게 들통 나면 우익정치인도 끝장이지만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쉽사리 노출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거리의 우익인물들도 알고 보면 일본의 우익정치가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사이로 그 둘만이 아는 비밀스런 물 밑 스와핑 즐기는 불륜관계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우익사상을 가진 정치가와 이를 거리에 전파하는 행동대원들은 혐한류라는 공동의 인식을 기초로 한류에 대한 물 타기 전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일본의 주류와 검은 비주류가 뒤로 손을 잡은 양상이다. 
            
⑤ 유명인사들을 통한 혐한류
 정치계의 고이즈미 수상을 필두로 아베 신조오, 아소오 타로오, 오쿠노 세이료오, 이시바 시게루, 시마무라 요시노부, 이시하라 신타로오(도쿄 도지사) 등 우익인물들이 오늘의 일본을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죠치(上智)대학의 와타나베 쇼오이치(渡邊昇一)교수가 쉬지 않고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우익계 언론을 통해 삐뚤어지고 오도된 우익적 사시(斜視-사팔뜨기)의 시각으로 한국을 공박하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저널리스트인 사쿠라이 요시코가 또한 우익적 시각에서 한국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녀는 “종군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일 협정으로 모두 끝난 문제입니다. 한국인 스스로가 끝내자고 도장을  찍어놓고 이제 와서 뭔 소리입니까?”라는 논리로 일본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정계, 학계, 언론계가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우익인물들이 뭉쳐 과거 지향적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의 혼네는 바로 “돌아가자! 영광의 메이지시대로! 되돌리자! 대동아공영권의 제국시대로......,”임은 확실하다. 미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제국주의 일본을 그리워하며 그 시대를 다시 향하자고 우익분자들은 오늘도 일본인을 선동하며 연일 외치고 있는 중이다.
 
고이즈미, 이시하라(‘제3국인 발언’), 기타노 타케시(일본의 영화감독) 등이 혐한류를 이끌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도 배용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건은 지난 9월4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발생했다. 욘사마 배용준 씨가 이날 정오 귀국 후 제6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참석 후 뒤늦게 도착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면서, 공항에 기대하고 있던 수 십 명의 기자가 배용준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이에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취재진을 보며 “‘욘사마’를 취재하러 온 것이었느냐. (배용준이 ‘미소의 귀공자’라면) 나는 ‘벌레의 귀공자’였나?”라며 자조 섞인 말을 토해냈다고, 일본의 스포츠신문인 ‘스포니치’가 ‘다케시 욘님에게 대항?’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알려져 화제가 됐고 이를 한국의 모 스포츠지가 인용하면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다케시감독은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며 항상 1/4(쿼터) 한국계임을 주장하는 특이한 일본인이다. 그는 고이즈미는 물론 세상의 유명인 모두를 개그 대상으로 삼는 인물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를 우익인물로 분류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가끔 한국계임을 내세우면서도 그 잘난 개그로 한국인들이나 재일동포들의 마음을 뒤 흔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그래도 애교로 봐 줄만한지도 모른다. 워낙 유명한 개그에 타고난 말 솜씨꾼으로 그의 내면의 진실을 아직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의 개그로 치부 할만 하지만, 한국인의 피가 섞인 일본인으로 발언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밖에 일본의 우익신문인 산케이신문과 요미우리 사설 및 특파원 코너도 ‘한국의 내셔널리즘이 지나치다’, ‘타케시마(독도)는 일본영토’ 등 한일 양국의 외교 현안에 대하여 항상 일본우익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써대고 있는 대표적인 혐한류 생산 공장이다. 
 
역사적으로 본 일본인들의 혐한심리(嫌韓心理)를 역이용할 때 

 일본인들의 대 한국.한국인에 대한 혐한심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는 이미 고래로부터 형성된 역사적 유물이자, 심저(心底) 깊숙이 뿌리박은 잠재의식이다. 고대에 일본열도에는 최초로 만주와 러시아 대륙과 사할린 쪽으로부터 홋카이도에 아이누민족이 이동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곳에 ‘키 작은 인종인 왜(倭)’라는 민족이 중국 대륙에서 일본열도와 한반도 남부로 흘러들었고 한반도 남부의 왜인들은 고조선의 멸망으로부터 남하한 부여계 민족에 의해 또다시 일본열도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러한 중첩된 일본민족의 형성과정에서 최후의 승자는 가야, 백제로 이어지는 기마민족에 의한 지배 및 통합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피지배자로 내려앉은 왜열도의 왜인들이 느끼던 한반도.한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최초 정복자인 가야, 백제계에 이어 한반도인 전체로 확대 이식되어 오늘날의 일본인들도 잠재의식적으로 혐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내용 속에는 신라인들이 가끔 일본 해안에 상륙하여 죄 없는 민초들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신라인이 일본열도에 난파선으로 인해 상륙했다가 이유 없이 100여명이 맞아 죽었다는 내용도 있다.
 
 하여튼 한일 간에는 고대로부터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던 이웃 국가로서 상호 나쁜 인식만이 잔영으로 유전되어 남아있으니, 더욱 증오하고 밉게 보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으로부터 받는 인상 또한 왜적의 수없는 침략과 신라왕자를 인질로 잡아가는 악행을 저질렀고 고려 말부터는 왜구가 들끓어 임신한 여자마저 칼로 배를 갈라 죽였다는 등의 역사기록이 잊혀질 수 없는 것이다. 조선중기에는 임진왜란에 정유재란이 이어졌고, 조선말에는 강화도 침략을 당하고 급기야 나라마저 빼앗기고 35년간을 피지배민족으로 살아야하는 굴욕감도 맛보았다.
 
 일본민족에게 있어서는 한반도인들이 대량 이주하면서 열도의 선주민족을 해하고 지배하였으며, 신라인들의 침략행위와 뒤 이어 중세에는 두 번에 이은 여,몽연합군의 큐슈 침략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처참한 살육을 당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때 당한 살육에 대하여 일본인들이 에마끼(繪卷-두루마리 그림)라는 그림으로 남기니, 지금도 그것을 역사교과서로 배우면서 고려인의 후손인 한국인들을 증오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일 양국민은 역사로부터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식으로 서로가 나쁘다고 두 나라에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 걸릴 때마다 상호 핏대를 세우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대한국, 한반도 인식에서 콤플렉스를 느끼면 평화시대가 도래하나, 만일 우월성을 느끼게 될 때에는 반드시 한국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는 이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총과 칼이란 무력으로 한류(당시의 최첨단 기술)를 난도질하며 도적질 해가던 역사에서도 입증된다. 때문에 일부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문화침략’이라고 단정한다.
 
이때 일본군은 조선 땅에서 당시의 최첨단 기술자이던 도자기공으로부터 활자공 등을 포로로 데려갔음은 물론 강항(姜沆)과 같은 유학자마저 데려갔다. 이러한 만행은 메이지시대는 물론 쇼와시대에도 이어졌으니, 그 최대의 피해국은 바로 한반도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라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일본인들이 콤플렉스를 느껴 한류 붐이 불도록 계속 문화 훈풍을 일본에 보내야한다. 아울러 이러한 훈풍이 오래가도록 문화 콘텐츠의 폭 넓은 개발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유전적으로 한반도.한국인에 대하여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우월감과 콤플렉스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잠재의식 속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 한류이며, 이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이는 한류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일본 농민들이 첫 수확 후 북쪽을 향해 감사의 합장을 하는 것도 그들 선조들 본래의 고향을 향함이며, 고대로부터 형성된 하나의 습관이다. 이러한 습관 말고도 일본인 노부부의 싸움에서도 발견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즉 부부싸움하면서 감정이 격해지면, “당신은 신라계, 나는 백제계라 우리 부부는 이렇게 싸우는 것이요!”라는 말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한류와 함께 부는 혐한류는 한국에 대해 일본인들이 가지는 잠재의식 속의 ‘우월감과 콤플렉스’라는 감정 중 늘 가지고 있던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선입견의 분출에 다름 아니다. 혐한류는 일본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지는 본능으로부터 파생된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을 고대의 모노노베요, 근세의 토요토미와 같은 일본 우익세력들이 차단하려함이다.
 
혐한류가 줄어들고 한류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문화콘텐츠를 넓혀 가면서 일본을 정확히 알고 이해해가면서 그들을 분석, 대비할 때만 지속가능하리라고 본다.
 
 어쨌든 혐한류가 거세게 불면 불수록 그만큼 한류도 일본에서 맹위를 떨친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가지는 잠재의식 속의 우월성과 콤플렉스 심리를 잘 분석하여 더욱더 한국문화에 콤플렉스를 느끼도록 우리문화를 살찌우자! 그러면 일본우익 세력들도 어느새 혐한류에서 가슴 저 밑에 잠자는 회귀본능에 의해서 한류 신봉자로 탈바꿈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 바람에 맞불 놓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거세게 한국, 한국인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혐한류 조장에 우리는 냉정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분석하고 대응해야한다. 섣불리 ‘만화 혐한류’로 응축 표현된 일본 극우세력들의 한국역사왜곡과 비난에 일희일비 할 필요 없이 우리의 문화 역량을 더욱 살찌우고 종합적인 국력을 크게 늘려감으로써 친한파 일본인을 만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일본 극우세력들에 의해 왜곡되어지는 혐한류에 대하여 우리는 문화대국으로 대응함으로써 자연적으로 혐한 바람도 한류 바람으로 바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대응자세 나름이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상기 내용은 요약되어 '신동아' 10월호(pp.412~418)에 '일본,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로 게재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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