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농촌진흥청의 탑라이스

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성제훈 박사 | 기사입력 2007/07/17 [09:22]

우리말, 농촌진흥청의 탑라이스

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성제훈 박사 | 입력 : 2007/07/17 [09:22]

안녕하세요.

어제 편지에서 빠뜨린 게 있습니다.
일요일 밤에 대조영을 보는데
설인귀 장군이 영주를 치러 가면서 "세상을 향해 마지막 표효를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음. 또는 그 울부짖는 소리."는 '표효'가 아니라 '포효(咆哮)'입니다.

어제는 방송을 조졌으니
오늘은 제 일터를 좀 조져보겠습니다.
밖을 봤으면 안도 볼 줄 알아야죠. ^^*

제가 가끔 수수께끼를 내고 답을 맞히신 분께 쌀을 선물로 드립니다.
그러면서 그 쌀은 농촌진흥청 직원들이 직접 기술지도하여 만든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쌀이라고 자랑합니다.
맞습니다. 그 쌀은 정말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쌀이고,
그 품질을 국가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 보장합니다.

이렇게 쌀을 자랑하면서도
그 쌀을 뭐라고 하는지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 쌀 이름을 밝히기가 너무나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쌀 이름이 바로 '탑라이스'입니다.
최고의 쌀이라는 뜻으로 'top rice'라고 이름 짓고 우리말 '탑라이스'로 읽은 것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만든 탑라이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top rice'는 로마자표기법에 따라 '톱라이스'라고 해야 맞습니다.
꼭대기, 최고를 뜻하는 top을 발음기호에 따라 한글로 나타내면 '탑'이 아니라 '톱'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으뜸 쌀'이나 '최고 쌀'이라고 이름을 짓지 않은 것입니다.
농촌진흥청은 국가기관입니다.
국가기관에서 나서서 외국어로 엉터리 이름은 지은 겁니다.
외래어표기법에도 맞지 않는 싸구려 이름을 지어놓고,
백성에게는 탑라이스가 좋으니 다른 나라 농산물 먹지 말고 우리 것을 먹자고요?
그게 씨알이나 먹힐 것 같나요?

국가기관이 이러니
담배인삼공사를 kt&g라고 바꿔도 할 말이 없고,
농수산물유통공사를 'at센터'로 바꿔도 찍소리 못하는 것이고,
텔레비전에서 날이면 날마다 have a nice day라고 지껄여도 말을 못하는 겁니다.

'탑라이스'라는 이름을 만든 농촌진흥청 직원이나,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는 기관이나,
탑라이스가 좋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모두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요즘은 '탑프루트'를 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기술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을 생산하겠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농업에 바로 써먹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겁니다.
그러나 똑바로, 제대로 써먹어야죠.

그럼,
내년에는 탑베저터블하고,
내명년에는 탑머시룸을 할 건가요?

우리 문화를 지키지 않고는 절대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한글이 있는데 왜 그것을 쓰지 않고,
엉터리 맞춤법에 싸구려 외국어를 써서 이름을 짓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국가기관에서...


오늘 드리는 말씀은 탑라이스를 먹지 말자는 게 절대 아닙니다.
탑라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쌀입니다. 건강에도 좋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다만, 그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탑라이스를 사실 분은 아래 누리집에 가시면 전화번호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toprice.rda.go.kr/introduction_main.asp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쌀의 맛은 농촌진흥청에서 보장합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고나서
막상 보내려고 하니 걱정이네요.
이 편지를 농촌진흥청 웃분들이 보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텐데......
오늘은 어디선가 전화만 오면 간이 콩알만 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일하고 싶으니
내일은 좀 부드럽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

우리말123

보태기)
1.
빠뜨리다, 빠트리다는 복수 표준어입니다.

2.
앞에서 '조지다'는 낱말을 썼는데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1. 짜임새가 느슨하지 않도록 단단히 맞추어서 박다.
2. 일이나 말이 허술해지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다.
3. (…을) 호되게 때리다.
4. (속되게) 일신상의 형편이나 일정한 일을 망치다. 보기)신세를 조지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1, 2, 3번에 나온 뜻은 속어가 아니고, 4번에 나온 뜻만 속어입니다.
저는 2번의 뜻으로 조지다를 썼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몹쓸/못쓸/못 쓸]

안녕하세요.

또 비가오네요. 제발...

이런 와중에 강원도 수해지역에서,
말리려고 내 놓은 살림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군요.
정말 해도 너무합니다.
그런 몹쓸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을 혼내줄 방법 없나요?

남에게 고약한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흔히 "못쓸 말을 했다" "못쓸 짓을 했다" 등과 같이 '못쓸'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경우 '못쓸'은 '몹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오늘은,
'몹쓸, 못쓸, 못 쓸'을 갈라볼게요.

먼저, '몹쓸'은,
"악독하고 고약한"이라는 뜻으로,
몹쓸 것, 몹쓸 놈, 몹쓸 말, 몹쓸 병, 몹쓸 사람, 몹쓸 짓,
술에 취해 아이에게 몹쓸 소리를 마구 해대고 말았다,
사랑이란 몹쓸 병에 걸렸다처럼 씁니다.

'못쓰다'는,
(주로 '못쓰게' 꼴로 쓰여)"얼굴이나 몸이 축나다"는 뜻입니다.
얼굴이 못쓰게 상하다, 그는 병으로 하루하루 못쓰게 돼 갔다처럼 쓰죠.
또 다른 뜻으로는,
(주로 '-으면', '-어서'와 함께 쓰여)
"옳지 않다. 또는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못써, 무엇이든 지나치면 못쓴다, 그는 너무 게을러서 못쓰겠다처럼 쓰죠.

따라서,
수해지역에서 말리려고 내 놓은 살림을 가져간 나쁜 사람들은,
못쓸 행동을 한 게 아니라,
몹쓸 행동은 한 것이고,
그런 사람은,
못쓸 사람이 아니라,
몹쓸 사람입니다.

나간 김에 조금 더 나가보면,
'못쓰다'와 '못 쓰다'의 다른점도 아셔야 합니다.

'못 쓰다'는,
'쓰다'에 부정문을 만드는 부사 '못'이 온 것으로,
냉장고를 못 쓰게 되었다, 못 쓰는 물건은 버려라처럼,
"사용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몹쓸'은, "악독하고 고약한"이라는 뜻이고,
'못쓰다'는 "얼굴이나 몸이 축나다"는 뜻이며,
'못 쓰다'는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가르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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