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가 늘어나는 여자.

수필가 박종희 | 기사입력 2007/05/29 [06:35]

잔소리가 늘어나는 여자.

수필가 박종희 | 입력 : 2007/05/29 [06:35]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집에서 자꾸 내 목소리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 마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 안 된다. 등등.


  남편 친구 부인들이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잔소리하고 살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별수 없이 나도 요즘은 남편을 향해  잔소리가 늘어 만 간다.


  우선 휴대전화 청구서가 날아오거나 차량벌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거느냐,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지 못하고 꼭 딱지를 떼이고 다니느냐,  용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잔소리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편을 자극하게 된다.

  왜 그러지?  결혼생활 17 여년을 했지만 난 웬만한 일은 그저 남편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고 늘 남편의 일은 남편에게 맡기는 편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잔소리가 생겨나고 그런 나를 보고 딸애는 구두쇠 엄마라고 부른다.

  살면서 나이가 들고 허리 사이즈가 늘어날수록 점점 느긋해지고 넉넉해져야 하는데  난 어째 거꾸러 가는 것 같다며 남편은 "이 사람이 왜 점점 이상해지는지 모르겠네, 안 하던 잔소리를 다하고"한다.

  사는 게 정말 무엇인지, 큰 욕심을 바라고 사는 것도 아닌데 삶은 늘 나를 야박한 여자로 만들어버린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물 흐르듯이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성격 탓에 따지고 싸우고 하는 것을 못해서 늘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살아왔는데 그런 내 성격도 용량이 초과했는지 나도 모르게 이젠 무엇을 하든 정확한 셈을  하는 야박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은근히 걱정스런 눈빛을 보낸다. 마치 저 여자는 죽을 때까지도 화 한번 못 내고 억지 한번 못쓰고 늘 숨죽이며 고개 숙이며 살아갈 여자라는 것처럼. 그렇게 믿고 살았던 여자가 갑작스럽게 제어를 걸고 숫자에 관심이 많아지니.

  언제나 머리보다는 가슴을 많이 열며 살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내 인생의 손익계산서가 나를 자꾸 숫자에 눈이 머물게 한다. 사람이 좋아 그런지 남편 주변엔 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남편은 숫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관심이 없는 건지 재미가 없는 건지. 그러다 보니 늘 숫자를 우습게 여기고 흘리고 다닌다. 

   그렇게 남편이 떨어뜨리고 다니는 숫자를 뒤따라 다니며 줍기에 바빴던 내가 이젠 남편을 향해서 반기를 들게 되니 남편도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는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서  숫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처럼  나도 이런 내가 싫다.

  나도 우아하게 교양 있게 늘 미소 띤 얼굴로 살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잔소리는 정말 안 할 거라는 맹세를 했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에 하나, 둘 흰머리가 늘 듯 하루하루 늘어나는 잔소리에 내 자신도  놀라는 삶이 오늘도 상처를 남겨두고 지나간다.
충북 출생.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충북여성문협회회원. 충북수필가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회원. 중부매일 에세에뜨락 수필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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