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열 후보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김대중 돕던 부친이 남긴 빚 부인과 갚아나가

김기석 기자 | 기사입력 2006/03/11 [16:09]

류수열 후보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김대중 돕던 부친이 남긴 빚 부인과 갚아나가

김기석 기자 | 입력 : 2006/03/11 [16:09]
▲  보문산 위령비를 찾은 고 류인범씨(가운데 검정넥타이) 와 심대평 대전시장. 류 후보는 이 사진이 81년 경에 찍은 거 같다고 밝혔다  

5·31 지방선거 출마 후보 중 부모님의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2세 정치인이 눈에 띄는데 국민중심당에서 시의원으로 출마 준비를 하고 있는 류수열 후보의 결혼 과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듯 하다.
 
국민중심당 중구 제2선거구 (중촌동, 목동, 용두동, 오류동, 태평1ㆍ2동)에서 시의원으로 출마를 준비중인 류수열 후보는 11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고 류인범 씨의 큰아들이다.
 
류수열 후보가 보내온 자료를 살펴보면 그의 가족사는 한 편의 한국정치사를 보는듯하다. 영광과 부침 성공과 몰락 등을 거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류 후보의 각오는 대단해 보였다.
 
평생 김대중 총재를 돕던 부친은 97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끝내 지켜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알려온 류수열 후보는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빚 수억 원을 상속을 포기하면 떠안지 않아도 됐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청해서 와이프와 두세 가지 일을 하면서 갚아 나가고 있다며 밝히기 어려운 가족사까지 소상히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및 류수열 후보의 자기소개서
 

 # 출마를 하려는 지역과 분야를 말씀해 주십시오.

류수열 "대전광역시 중구 제 2선거구 시의원 출마예정 입니다."
 
# 아버님의 약력과 옆에서 지켜 본 아버님이 추구했던 정치가 무엇이었는지 느끼신대로 말씀해 주십시요.

류수열 "제 아버님은 무엇보다 “신의”를 중시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선이 유리한 당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래서, 대전에서는 불모지였던 평화민주당ㆍ신민당에서 활동을 하셨고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하셨습니다."
 
# 정치를 하는 아버님을 존경하는지.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요.

류수열 "저는 말뿐만이 아닌 정말로 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제가 성장하면서 남자로서 제 인생의 모델ㆍ목표가 바로 제 아버지였습니다."
 
# 아버님의 대를 이어 정치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요.

류수열 "가족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남기신 부채로 인해 가족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그 고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더 그랬습니다.
 
제 아버지가 11대총선에 출마 하실 때 아버지는 야당의 후보였고, 장인은 그선거를  관리하는 중구청장 이셨습니다.(그당시 시장은 심대평 국민중심당 공동대표)

그래서, 두분이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셨겠지만 불편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와 장모님은 대전여고 동기 동창이셨고요...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저와 제 집사람의 교제는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시련이 많으면 더 단단해 지는 것처럼 8년동안 교제기간을 거쳐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반대의 이유들이 오히려 두 집안을 더 화목하고 친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민선 1기 시절 장인이 민자당 동구청장에 출마 하셨습니다.
출마를 하시기위해 하시는 행사장 마다 당시 야당(신민당→민주당)의 대전시 위원장 이셨던 아버지가 참석하셨고, 그것이 기사꺼리가 되곤 했습니다."
 
# 국민중심당에 대해서 자랑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것만은 고쳤으면 하는 점도 있으면 밝혀주십시오.
 
류수열 "심대평 공동대표님을 뵈면 저는 제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신의”가 있으시고“명예”와“책임”을 최우선으로 하시는 분 같아서 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이념논쟁 보다는 국민의 어려운 생활을 위해 “국민속으로 함께  가자”하여 모인 사람들의 당이“국민중심당”이기에 저는 제가 속한 국민중심당이  자랑스럽습니다. 고칠점 으로는 어떤 상황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당선이 된다면 어떻게 의정을 펼쳐 나갈 것인지 밝혀 주십시오.

류수열 "제가 출마하는 지역은 재개발지역이 많습니다. 그리고, 중구에서는 유일하게 대학이 있고 훌륭한 고등학교가 4개나 있습니다.

제가 당선이 된다면, 교육사회위원이 되어 재개발과 교육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서울의 강남지역에서 처럼 교육의 질을 높여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나아가 다시 찾아오는 지역으로 만들어서 경제적인 성장이 함께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어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대전지역 최고의 사교육기관이었던 대성학원에서의 수업 및 운영경험과 교육기관 납품사업을 통한 이벤트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젊은 일꾼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그리고, 머리는 하늘에 두고 발은 땅에 있게 하여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어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명예로운 의원이 되겠습니다. "

 

  이력서 / 자기소개서

 성명 : 류 수 열(1965년 02월 05일 출생)
 본적 :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51번지
 학력 : 성모초, 동산중, 대성고,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경력 : 대성학원(대흥동소재) 기획실장 및 재학생부 원장(1990-1997)
        한국보이스카우트 대전연맹 이사, 대전광역시 배드민턴협회 이사,
        (사)한국교직원 배드민턴협회 사무총장, 대성고등학교 운영위원,
        태평중학교 운영위원, 동산중학교 총동문회 이사,
        대성고등학교 총동문회 이사
 가족사항 : 배우자 - 김 선 주 (중구청장,대덕군수ㆍ동구청장등을역임 하신 고 김덕중 청장님의 2남 3녀중 3녀)
              자 - 류 지 연 (태평중학교 1년 재학중) 


저는 1965년 02월 고 류인범(11대국회의원)의원과 박영희 여사 사이에서 2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꿈이 있어 매사에 열심이셨던 분들입니다.

어려운 학교 교사에서 학원장으로, 다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높여가시는 아버지와 그 뒤를 불평없이 아니,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재자신 또한 모든일에 적극적이었고, 성실하였다고 자부할수 있습니다.

학창시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학생회활동 보이스카우트활동(79년도충청남도최우수대원, 80년도 최우수대원)도 열심히 할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정치인의 꿈을 꾸게되었습니다.

84년 대학에 입학하고 85년에 학생회장 출마를 준비하던중 같은과 복학생 선배가 학생회장 출마를 선언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선배와 함께 날을 새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으며 그선배를 돕기로 하였습니다.

이유는 너무오래 준비한 저는 “자리”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그선배는 “일”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거의 결과는 저와 함께한 그선배의 압승이었습니다.

87년 군에 입대하여 공군본부 본부대 행정계에서 단기사병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50 - 200명 정도의 단기사병들을 대하면서 인간 및 조직에 대한 관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복무기간중 학력 미달의 단기사병들에게 뜻맞는 다른 현역들과 야학을 하여 검정고시 합격을 시켰고 많은 대화를 통해 퇴근후, 부대 밖에서의 사고를 대폭 감소 시켜 본부사령 표창도 받았습니다.

후회없는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90년 복학 92년에 졸업을 하고 대전에서 아버님이 경영하시던 대성학원(대흥동소재)에서 기획실장을 하다 93년 대성학원 재학생부를 신설하고 원장으로서 97년 08월까지 수업 및 운영을 하였습니다.

잘 도와준 선생님들 덕택에 학력이 떨어지는 중구 였지만, 인근지역 학교의 전교1등을 거의 본학원생들이 차지하였고 과학고 차석도 배출하였습니다.

야당으로서 3회에 걸친 총선출마와 2회의 김대중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셨던 아버님이 97년 08월에 돌아가시면서 많은 빚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상속을 포기하였지만, 아버님의 “책임”을 다하고 아버님의 “명예”를 다하기 위해 자진하여 수억원의 빚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집사람은 그 빚을 갚기위해 집사람은 보험설계사(삼성생명)로 저는 보험설계사(lg화재), 도시락회사 영업, 학원강의 등을 동시에 하면서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씩 정리가 되어지면서 저의 부부를 도와주는 주위분들도 많아지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인해 제가 다시 적극적인 사회활동(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이사, 대전광역시 배드민턴협회 이사, 동산중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및 이사, 대성고등학교 총동문회 이사, (사)한국교직원협회 사무총장)을 할수 있게 되었으며, 새로운 꿈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과거의 중구는 대전을 대표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둔산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한 도심 공동화로 재개발이 절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떠나는 중구에서 머무르는 중구, 돌아오는 중구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국민이 가장 중심에 서는” 국민중심당 창당중비위원의 한사람으로서 공동대표인 심대평 충남도지사와 함께 중구 발전, 나아가 대전발전, 그리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최선봉에 서겠습니다.

저는 작고 하신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과거 중구가 누렸던 부흥과 새로운 대전의 신중심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하루도 두발을 쉬지 않은 채” 지역을 누비며 “중구 발전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문득, 대학교시절 학생회장 출마때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결코, “자리”가 아닌 진정 “일”을 위한 입지가 되기를 다시 다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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