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 나를 순간 이동 시켜줘

엔터프라이즈호 - 스타트렉에 나오는 우주선 이름

박상준 SF/과학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05/02/27 [20:06]

스팍! 나를 순간 이동 시켜줘

엔터프라이즈호 - 스타트렉에 나오는 우주선 이름

박상준 SF/과학칼럼리스트 | 입력 : 2005/02/27 [20:06]

영어사전을 보면 ‘트레키(trekkie)’라는 단어가 있다. 바로 미국의 sf연속극인 <스타트렉>의 열성 팬들을 뜻하는 말이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으면 팬들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생겨나서 사전에까지 올랐을까? 게다가 이들의 열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있으니, 미국 최초의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졌을 때 행정부가 있는 워싱턴으로 40만 통 가까운 편지가 날아들었다는 사실이다.
 

편지 내용의 대부분이 우주왕복선의 이름을 ‘엔터프라이즈’로 붙이도록 미항공우주국(nasa)에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물론 엔터프라이즈 호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스타트렉>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근거리 공간이동(물질전송) 장치이다. <스타 트렉>의 우주탐사대원들은 낯선 외계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아무 때나 모선인 엔터프라이즈 호에다 이렇게 구조요청을 한다.

스팍 : 커크선장님 그곳은 위험지역입니다.
커크선장: 알았다. (커크선장 가슴에 손을 올리며~) 스팍! 나를 올려 줘 (beam me up).

사실 이것은 단거리용 우주선 세트를 만들 여력이 없어서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나중에는 이 물질전송 장치에 현실 가능성을 따지는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과학적 상상력의 자극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이런 물질전송장치는 비교적 최근 영화인 <배틀필드(2000)>에도 선보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치의 과학적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떤 물체를 순간 이동시킨다고 하면, 먼저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 원자들을 해체했다가 도착지에서 다시 조립하는 식의 과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립 과정에서는 일종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물체의 형태나 성질 등을 처음과 똑같도록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전송장치는 물체의 구성입자들뿐만 아니라 설계도라는 ‘정보’ 역시 함께 이동시켜야 한다.

<배틀필드>나 <스타트렉>에서 처럼 사람이 순간 이동한다고 하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지도도 그대로 고스란히 함께 가야 한다. 이 dna정보는 인간게놈 프로젝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방대한 양이다. 게다가 유전자지도처럼 분자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들 개개에 대한 정보들까지 모두 전송해야 한다면, 물질전송과는 상관없이 정보전송만으로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된다. <스타트렉의 물리학>이라는 책을 쓴 로렌스 크라우스에 따르면, 이 정도의 정보량은 요즘의 10gb용량의 pc용 하드디스크로 은하계 전체를 메울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니 물질전송은 고사하고 저장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정보의 저장 및 전달매체가 고도로 발달하여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정작 원자들의 이동은 또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물체를 해체하여 이동시킨 뒤 도착지에서 다시 결합한다고 할 때, 도중에 구성원자들은 일종의 에너지 형태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핵폭탄의 무시무시한 위력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물질이 에너지로 바뀔 때에는 엄청난 비율로 열(에너지)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50kg의 물질을 전송 가능한 에너지 형태로 바뀔 경우 대략 1메가톤급 수소폭탄 1천 개의 폭발력과 맞먹는 에너지가 발생할 정도이니 과연 이 정도의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하거나 제어할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어떤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을 해체하는 일이다. 화학 실험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물체를 분자구조 수준에서 해체하거나 변형시키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열을 가한다거나 다른 물질과 반응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고, 심지어 상당수의 물질들은 자연적으로 분자구조가 서서히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자가 아닌 원자구조 수준에서 물질을 해체하는 일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은 다시 양자와 전자 등의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입자들은 전기적인 척력에 의해 서로가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 척력을 깨뜨리고 개개의 입자들을 떼어놓으려면, 물체 전체가 에너지화해 버릴 때의 10%정도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50kg의 물질을 원자구조 수준에서 해체하려면 1메가톤급 수소폭탄 100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해체된 입자들의 가속에 필요한 에너지 문제 등, 물질전송은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질전송장치를 정말로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우주여행 수단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과학기술 이론체계로는 그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을 구경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 의 과학향기' (http://scent.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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