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무장 1200년의 잠에서 깨어나다

연해주에서 발해무장의 것으로 보이는 석실분 발굴

김기석 | 기사입력 2004/07/27 [16:34]

발해 무장 1200년의 잠에서 깨어나다

연해주에서 발해무장의 것으로 보이는 석실분 발굴

김기석 | 입력 : 2004/07/27 [16:34]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단(단장: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정석배 교수)은 연해주 우쑤리스크 부근 ‘체르냐찌노 5 발해고분유적’에서 발해(698~926년) 武將의 것으로 보이는 석실분을 발굴 조사하는 초유의 성과를 올렸다.


71호 고분으로 명명된 이 석실분은 연도가 있는 횡혈식이며, 평면상 장방형을 띠고 있고, 입구 부분에는 1열을 돌을 깔아 문지방을 만들어 놓았다. 전체 규모는 530x430cm, 현실 규모는 275x250cm 정도이다.


이 석실분에서는 모두 2구의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그 중 현실 중앙에 있는 인골이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였다. 이 인골은 엉덩이 부분과 정강이 부분에서 화살촉과 창 끝부분이 발견되어 전투에서 전사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신장은 약 165cm, 나이는 30대로 추정되었다. 이 인골을 중심으로 입구에서 우측은 완전히 도굴되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홍옥으로 만든 구슬과 은 귀걸이가 발견되고, 또 이웃하는 토광묘들에서 발해의 창과 검, 그리고 철제 찰갑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화려한 무구와 귀중품이 부장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인골은 특히 두개골이 잘 남아있는데, 연해주 발해유적 발굴조사 50년 역사상 이와 같은 형질인류학적 및 dna 분석이 가능한 인골이 출토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중국에서도 발해인의 인골에 대한 형질인류학적인 분석 자료가 아직 발표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71호 석실분 인골은 발해인의 족속문제를 밝힐 수 있는 미증유의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64호 및 69호 토광묘에서 발견된 발해의 창과 검은 연해주에서는 처음으로 발굴조사된 것들이다. 검은 길이가 40.5cm로서 비교적 짧은 편이나 예리한 예봉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어 적을 살상하기에 대단히 적합한 무기로 생각된다. 창은 모두 2점이 출토되었는데, 좌우대칭의 날카로운 예봉이 아래로 곡선을 이루며 짧게 넓어지다가 다시 좁아지고 그리고 다시 날의 기저부에서 좁아져 자루 끼우개와 연결된다. 이러한 형태의 창은 말갈이나 여진유적에서는 없는 것으로 발해 고유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의 길이는 모 부분이 각각 23.4cm와 25.4cm이다. 한편 70호 석실분의 딸린무덤으로 추정되는 유구에서는 말의 이빨이 출토되었다.


이로서 우리는 발해 무인들이 철제 갑옷을 입고, 세련된 모양의 창과 짧은 검, 대도(1975년에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유물이 있음), 그리고 일찍이 잘 알려져 있는 활과 화살로 무장을 한 기병이었음을 알 수 있다. 69호 토광묘에서 검 및 창과 함께 발견된 길이 7.3cm의 작은 휴대용 숫돌은 무인들이 무장을 경량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음을 보여주며, 짧은 검은 발해인들이 육박전에서도 대단히 능하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60호 고분에서는 발해인들의 식생활을 알려줄 토기 내에 음식물을 담아놓은 것이 확인되었다.


‘체르냐찌노 5 발해고분유적’은 발해인들의 장례풍습, 무덤양식, 무구, 일상생활 용기, 식생활 등에 대해, 그리고 발해인 자체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 준다. 이 고분의 주변에는 발해 주거유적과 발해 산성이 있으며 이 유적들은 발해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전투에 대해 알게 한다.


한국전통문화학교는 향후 지속적인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발해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자료를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그 동안 발해유적에서 직접 발굴 조사한 유물 및 기존에 러시아 학자들이 조사한 발해 유물을 국내에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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