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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카스트제도는 존재하지 않는가?
 
김정환 기자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내 마음에 카스트제도는 존재하지 않는가?

조국 법무부장관이 임명장을 받은 9일 밤 서울대생과 졸업생 500여명이 촛불집회를 열고, 조 장관은 ‘장관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세 차례 이상 개최된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는 조 장관의 딸이 대학(원)입시 등에서 불공정한 특혜를 받아 입학했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 장관이 직간접으로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뒤따른다. 또 이런 현상이 평소 조 장관의 발언이나 글과는 달리, 위선적 행태와 다름없다는 정서적 불신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정에서 제기된 이런 이유는 서울대생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하는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서울대생이 아니더라도 이런 의혹은 정치·사회적으로 무수히 많이 제기됐다. 실제로 조 장관이 장관지명을 받은 지난달 9일부터 한 달 동안 나온 신문, 방송의 의혹보도는 11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유례가 없고, 앞으로도 단일 사안에 대한 보도건수는 이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초유의 사태이다 보니 서울대생이 촛불을 드는 상황이 전혀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지성인들이 직접 나서서 부조리나 불공정에 대한 비판적 의사표현은 문제해결의 촉진제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는 개인적으로 마음 한 쪽이 허전하고 불편한 무언가가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조 장관에 대해 딱 떨어진 위법행위나 그런 혐의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기이한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대학생들은 변혁의 주체이다. 대학생들의 항거와 외침은 항상 역사의 변곡점을 구성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학생들이 바꾼 역사의 전환은 너무나 많다. 1960년 4·19의거를 비롯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은 대학생이 변혁의 주체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쉽게 달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응집력과 연대의식이 강하고 사회 변혁적이다. 외국사례도 마찬가지다.
 
1968년 900여 명의 구속자를 발생시킨 미국 컬럼비아대학생들의 시위는 인종차별의 잔재를 사라지게 하는 인권운동사의 한 획을 그었다(조한욱 한국교원대). 같은 해 때때로 ‘성공한 실패’로 묘사되는 독일의 학생시위도 파시즘적 권위주의에 대한 국가적, 국민적 자성을 이끌어내는  밑돌이 됐다(재레드 다이아몬드, <대변동>).

서울대생 촛불집회는 불공정 개선요구 시위이다. ‘기회의 평등’을 침해하고 ‘과정의 공정’을 왜곡하고 ‘결과의 정의’를 저해하는 모든 부조리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불평등 개선을 요구하고 불평등 처사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그동안은 불공정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10일 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 기계에 머리가 끼어 사망했다.
 
이에 앞서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 김아무개(1997년생, 향년 19세)가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이런 사고에 대해 서울대생을 비롯한 어느 대학생 집단도 추모집회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해 촛불을 들고 항의를 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같은 또래청년의 죽음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례를 소환하다보니 서울대생의 촛불집회가 전혀 다른 세상에서의 항의의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 점이 뭔가 공허하고 불편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조국 일가에 대한 비난과 의혹의 한 축은 문화, 경제, 사회 자본을 모두 한꺼번에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자본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P. 부르디외가 그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이들 자본의 많고 적음으로 사회계급을 나눈 개념이다.
 
조 장관의 자녀가 이 세 자본을 모두 갖고 활용했다면, 서울대의 많은 학생들도 같은 시대의 또래집단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있거나 활용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한때 또는 지금도 회자되는,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명문대 진학의 3대 요소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부르디외의 개념에 대입하면 할아버지의 재력은 경제자본이고, 어머니의 정보력은 문화자본이며, 아버지의 무관심은 실은 사회적 위치에 따른 인적네트워크의 사회 자본으로 겉으로만 무심하게 보일 뿐이다.

이들 자본을 기초로 진학한 명문대생은 출발선이 다르고 현재의 사회적 계급도 여타의 또래집단보다 미래로 가는 경로도 다르고 결승점도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지하철 구의역 사망자 김 군이나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사망자 고 김용균씨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신분적 위치가 다른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사망자는 관심 밖의 영역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촛불을 든 것은,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각종 자본을 활용한 조 장관의 딸 부류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으로 서울대에 진학했을 뿐, 자기에게 주어진 현대판 카스트제도의 덕분이 아니라는 항변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앞서의 그, 무언가 불편하고 허전했던 느낌의 근원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이번 서울대생 집회를 보며 오버랩 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 8월 하순 대전시가 시청 북문 앞에 집회 방해물을 설치했다가 결국 철회한 일이 있었다.
 
대전시는 시청 앞 집회 단골장소인 북문 앞에 ‘집시켓(집회+시위+에티켓)을 아시나요?’라는 표지판과 대형 화분과 나무를 심고 벤치 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했다. 사실상 시청 북문 앞에 농성천막이 설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시청 앞 북문광장은 권리와 인권이 침해당한 시민과 단체들이 수시로 찾아와 시위를 벌이거나,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여온 지 오래됐다. 대전시민의 집단적 의사표현의 메카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청 공무원들은 고성과 소음 등으로 불편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가 나서 이런 장소를 봉쇄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스스로 사회적 공감력을 막는 반시민적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회적 약자나 권리침해를 당한 시민들과는 신분적 장벽을 쌓으려고 한 것이다.
 
불편함 해소를 이유로 시와 시민사회, 공직자와 시민 사이에 ‘구별짓기’에 나선 것이다. 구별짓기는 차별이고 계급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전시의 광장 시설물 설치 발상이 이번에 일부 서울대생들이 보여준 신분적 구별짓기와 똑같은 것은 아니었으리라 애써 믿어본다.(2019. 9. 11. 전 대전광역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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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1 [10:57]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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