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마저 ‘침묵의 봄’이 오게 하려는가?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기사입력 2019/05/07 [10:29]

월평공원마저 ‘침묵의 봄’이 오게 하려는가?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입력 : 2019/05/07 [10:29]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김정환 기자

월평공원마저 ‘침묵의 봄’이 오게 하려는가?

벌과 나비가 날아오지 않는다. 새들의 지저귐도 듣기 힘들다. 계절의 여왕 5월을 꽃가루 범벅으로 맞이할 벌들의 잉잉거림과 나비의 나풀댐이 없다. 온 세상이 희고 붉고 노란 꽃 천지인데도 벌과 나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공원 꽃밭에는 수정을 위한 암술과 수술의 신방이 차려지지 못한다. 벌과 나비가 꽃술과 어우러져 소란을 떨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싱그러운 봄날의 화창함이 무안하다. 도시의 봄은 그렇게  왁자그르르함이 없는 아지랑이처럼 긴 침묵에 빠진 지 오래다.

미국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1907~1964)의 지적과 경고는 57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효하다. 그녀는 1962년 펴낸 <침묵의 봄>을 통해 화학물질의 유해성, 구체적으로는 DDT라는 살충제의 폐해를 통렬하게, 그러나 누구나 알기 쉽게 고발했다. 환경과 생태계는 과학을 맹신하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충제 살포는 박멸대상의 퇴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에게 사용량의 8만 배가 축적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런 살충제 사용의 만연으로 벌레가 죽고 그 죽은 벌레를 먹이로 한 새들도 죽어갔다. 생태계는 새들의 노래가 그친 침묵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봄이 돼도 새가 울지 않고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지 않는, ‘침묵의 봄’은 그렇게 나타났다.

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아파트 화단에는 ‘수목 소독’이라는 이름으로 1년에 몇 번씩 살충제가 살포된다. 아파트 주변 근린공원은 1년에 여러 차례 해당 구청주관의 살충제 세례를 받는다. 살충살균의 방제작업을 하지 않으면 송충이 등 벌레 출몰에 따른 주민들의 민원제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러다보니 도심공원에는 새와 벌, 나비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살충제 살포로 이들 곤충이 박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밀원은 산적하지만 꿀을 먹으러 올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이다. 새들도 벌레 등의 먹이가 없다보니 공원의 텃새로 자리잡지  못한다.

 

까치나 산비둘기 따위 2~3종 잡식성 강한 조류만이 찾아오거나 살게 된다. 그 흔하게 보아왔던  참새마저도 구경하기 힘들다. 봄이 화사하게 계절을 뽐내고 있지만 새가 날아다니지 않고,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이 계속되고 있다.

벌과 나비가 거의 없다보니 꽃들이 제대로 수정을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원에 핀 순백의 흰철쭉 잎이 누렇게 오그라들며 마르고 있다. 짙은 갈색으로 마른 채 가지에 붙어있는 꽃은 영양분 부족 때문이 아니다.

 

암술과 수술이 제때 수정을 못한 채 꽃으로서의 생애주기가 끝난 것들이다. 이는 수정된 꽃들은 암술을 제외하고는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것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대체로 수정확률은 벌, 나비의 활동성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살충제에 의한 화학방제로 벌과 나비가 사라지니 꽃가루가 수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도심 공원과 화단의 꽃들은 화려한 봄날을 맞아 신혼의 첫 날밤 대신 외롭게 빈 방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현재 대전에서 근린공원 존치여부를 놓고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곳이 서구 갈마동일대 월평근린공원 갈마지구이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월평공원은 오랫동안 공원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개발의 손때가 거의 타지 않았다.

 

높은 밀도의 나무숲으로 생태환경도 탁월해 ‘대전의 허파’라고 불리는 곳이다. 2020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공원을 해제해 개발을 허용하거나, 아니면 대전시에서 해당지역 임야를 사들여 공원으로 존치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

 

토지소유주 등 민간개발자와 환경시민단체 등의 찬반논쟁도 치열하다. ‘월평근린공원 갈마지구 개발행위 특례사업(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은 민간사업자가 서구 갈마동 산26-1번지 일원 17만 2438㎡ 부지에 2개 단지 32개 동 아파트를 건설해 분양하는 대신, 121만 9161㎡ 공원을 조성해 대전시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

대전시의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은 월평공원 갈마지구를 포함해 모두 31곳, 1485만㎡에 이른다. 내년 7월 도시공원 해제에 대비해 공원지역 사유지를 매입해야 하는 추정금액만 약 1조 2000억 원에 이른다.

 

대전시가 이를 대비해 올해까지 확보한 토지매입비는 2500억 원에 불과해, 일몰제 대비를 위한 재정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재정확보를 위해 지방채 발행도 검토할 수 있으나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등 긴급한 다른 용처도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전대응도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지난해 국토부가 자치단체 일몰제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장기 미집행 공원 지방채 이자 지원’에 나섰지만, 전국에서 이를 신청하지 않은 도시는 대전이 유일했다.
 
대전시 방침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시는 지난해 12월 의견수렴기구인 시민공론화위원회로부터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을 추진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26일 열린 도시계획위원회는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도시계획위의 이런 결정 연기는 장기 미집행 공원에 대한 시의 확고한 원칙과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분명한 원칙과 기준 아래 개발여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도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야 한다. 생태계를 보전하는 결정이라면 재정여력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고, 개발사업 허용결정이라면 도심녹지 확보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은 아파트 건립사업이다. 개발이냐 환경보전이냐의 철학적 논쟁을 띤 사업이 아니다. 그냥 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를 환경이 잘 보전된 공원해제 지역에 지어 수익을 올리겠다는 이익창출사업이다.

 

이를 허용하면 대전시의 환경보전 정책의 명분이 약해진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짓는 아파트는 중구 목동의 옛 목원대 부지에 지은 산꼭대기의 아파트단지 하나로 족하다. 목원대 부지 아파트는 ‘대전의 바벨탑’으로 일컬어지며 도시경관의 흉물로 각인되고 있다.

 

월평공원의 고층 아파트 건립허용은 도시 자체를 기형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월평공원도 침묵의 봄 대열에 강제 편입시키는 반(反)생태적 행정이라는 비난이 뒤따를 것이다.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목적이 수익창출에 있으므로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해결했으면 한다. 공원을 영원히 보전하기 위해 다른 곳에 토지를 마련해주어 아파트를 건립하게 하는 방법이다.

 

큰 틀에서, 공원 사유지를 기부채납 받고 그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의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는 ‘갑천호수공원 아파트건립부지’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선 개발이익 환수도 가능해 대전의 허파를 지키고,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도 얻을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생태계 오염의 위험을 일깨워 환경운동을 일으켰고 자연환경 보전운동을 촉발시켰다. 월평공원에 아파트가 건립되면 살충제의 다량살포에 따른 공원의 침묵이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후대에게 벌과 나비, 새가 없는 공원을 물려주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다. 57년 전 레이첼 카슨이 봄의 침묵을 지적하고 경고한 환경재앙을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날, 과학의 도시 대전이 스스로 초래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2019. 5. 7. 전 대전광역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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