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5일장, 살아남은 것에 대한 예의는 없는가?
실제로 대전시 유성구에는 학문을 연마하는 현대판 선비들이 많이 산다. 각종 정부출연연구소가 들어찬 대덕연구단지가 있고, 충남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대학 6곳이 자리하고 있다. 석사급 이상 고학력자가 3만 명이 넘어 인구비례로 볼 때 국내 최고의 고학력자 밀집지역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5일마다 장(4일과 9일)이 서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강원도 정선 등 5일장이 유명한 곳이 많지만 대도시에서 5일장이 열리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과학기술분야의 인재와 연구자가 많은 첨단과학도시에, 100년이 넘는 전통적인 저자거리인 장시(場市)가 어우러지고 있는 곳이다.
당시 유성 옆의 진잠현감으로 있다가 일본군 토벌을 위해 공주부 관헌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는 죄로 옥살이를 한 문석봉(1851~1896) 선생이 그 해 9월 18일 지역 유림과 함께 유성장터에서 의병 모집에 나선다.
의병 300여명으로 부대를 편성한 문 의병장은 회덕현을 급습해 무장한 뒤 당시 충청지역 치소로 관찰사가 근무하는 공주부 공격에 나섰으나 패하고 만다. 을미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창의의 효시였다.
장사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연설을 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약 300여명이 따라서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후 3월 31일과 4월 1일에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이 같은 장소에서 3차례나 일어난 건 거의 유일하다.
대전시가 이 지역 시유지 사용에 동의함으로써 추진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이 지역에 3천여 세대의 49층 고층아파트 단지 건설이 본격화되면, 유성장터는 영원히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낙후지역의 재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촉진하는 것이 시의 업무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재개발로 인한 부가가치만을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 사고이다. 실패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 지역의 상징성을 사라지게 하는 행위를 공공기관이, 더욱이 3·1만세운동 100주년의 해에 기다렸다는 듯이 했다는 것은 ‘공공의 역사’라는 개념을 말살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관광특구로서 없던 스토리도 만들어야 할 판에 갖고 있는 스토리도 지워버리겠다는 건 단견이다.
유성 5일장은 그동안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점의 출현과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 변화에도 전통적인 시장기능을 상실하지 않아 왔다. “대형 마트의 매출이 매년 30%씩 성장할 때 전통시장은 7%씩 감소하며,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업체 상인들의 폐업률은 매년 15%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가 현실이다.
내면 깊은 어느 곳에 숨어있는 기억과 멋, 그리고 맛을 찾아 불편함을 감수하며 가는 곳이다. 오래됐지만 낡지 않고, 낡았지만 멋스럽고, 멋스럽지만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소박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그런 품위 있는 멋과 맛이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지속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 각자가 자신들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임을 확인받는 일이다. 너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기계적이고, 그러다보니 창의적 상상력이 없는 관료조직으로서는 이런 소소한 삶의 행복을 찾아낼 수도 없고, 활용할 수도 없다.
전통시장은 그렇게 유일한 재화가 있는 전시장이어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장구한 세월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재화가 독보적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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