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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5일장, 살아남은 것에 대한 예의는 없는가?
 
손규성 전 대전시 일자리특보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유성 5일장, 살아남은 것에 대한 예의는 없는가?

유성(儒城)은 선비(儒)들이 모여 사는 땅(城)이다. 이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부른 이름이다. 지명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현재의 모습을  유성이라는 한자 이름과 비교해 보면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실제로 대전시 유성구에는 학문을 연마하는 현대판 선비들이 많이 산다. 각종 정부출연연구소가 들어찬 대덕연구단지가 있고, 충남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대학 6곳이 자리하고 있다. 석사급 이상 고학력자가 3만 명이 넘어 인구비례로 볼 때 국내 최고의 고학력자 밀집지역이다.

예부터 온천으로 이름난 유성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거나 독특한 것이 많다. 우선 특구가 2개나 있다. 온천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특구’와 연구단지이기에 가능한 ‘연구개발(R&D)특구’가 그것이다. 대도시의 한 구역임에도 ‘전통시장’인 5일장이 열린다.

 

도시 한복판에서 5일마다 장(4일과 9일)이 서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강원도 정선 등 5일장이 유명한 곳이 많지만 대도시에서 5일장이 열리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과학기술분야의 인재와 연구자가 많은 첨단과학도시에, 100년이 넘는 전통적인 저자거리인 장시(場市)가 어우러지고 있는 곳이다.

유성장터는 ‘을미의병’의 시원지이다. 을미의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에 반발한 유생들이 중심이 돼 왜적 토벌의 기치아래 창의한 의병투쟁을 말한다.

 

당시 유성 옆의 진잠현감으로 있다가 일본군 토벌을 위해 공주부 관헌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는 죄로 옥살이를 한 문석봉(1851~1896) 선생이 그 해 9월 18일 지역 유림과 함께 유성장터에서 의병 모집에 나선다.

 

의병 300여명으로 부대를 편성한 문 의병장은 회덕현을 급습해 무장한 뒤 당시 충청지역 치소로 관찰사가 근무하는 공주부 공격에 나섰으나 패하고 만다. 을미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창의의 효시였다.

유성장터는 3·1만세운동이 3번이나 일어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19년 3월 16일 지족리(현 지족동)에 살던 이상수, 이권수 형제가 유성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장사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연설을 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약 300여명이 따라서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후 3월 31일과 4월 1일에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이 같은 장소에서 3차례나 일어난 건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유서 깊은 유성 5일장이 존폐기로에 서 있다.


대전시는 지난 3월 5일 유성 5일장 자리인 유성구 장대동 B구역 재개발 사업지역에 포함된 시유지 사용에 동의했다. 시의 시유지 사용동의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들의 조합구성 법적 요건을 충족시켜주는 행위이다.

 

대전시가 이 지역 시유지 사용에 동의함으로써 추진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이 지역에 3천여 세대의 49층 고층아파트 단지 건설이 본격화되면, 유성장터는 영원히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대전시의 이번 조처는 너무 기계적이고 단세포적인 행정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시는 동의 사유에 대해 “재개발 구획으로 지정한 곳은 개발이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게 관례”이고, “내년에 재개발촉진지구 지정의 일몰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낙후지역의 재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촉진하는 것이 시의 업무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재개발로 인한 부가가치만을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 사고이다. 실패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유성장터는 을미의병의 시원지일뿐 아니라 3차례에 걸친 3·1만세운동의 유적지라는 희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성장터의 역사적 현장성은 이 지역일대 주민들에게 근대 독립운동의 시원지라는 집단적 ‘기억의 문화’를 새겨주고 있는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지역의 상징성을 사라지게 하는 행위를 공공기관이, 더욱이 3·1만세운동 100주년의 해에 기다렸다는 듯이 했다는 것은 ‘공공의 역사’라는 개념을 말살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관광특구로서 없던 스토리도 만들어야 할 판에 갖고 있는 스토리도 지워버리겠다는 건 단견이다.

대전시의 재개발 승인행위는 유성 5일장의 생존과 활용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의 대표적 사례이다. 유성 5일장은 문석봉 의병부대 역사에서 보듯, 최소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유성 5일장은 그동안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점의 출현과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 변화에도 전통적인 시장기능을 상실하지 않아 왔다. “대형 마트의 매출이 매년 30%씩 성장할 때 전통시장은 7%씩 감소하며,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업체 상인들의 폐업률은 매년 15%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성 5일장은 생존 DNA가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시장의 브랜드 파워에서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성장터 폐쇄 길을 터준 시의 처사는 이런 전통시장이 갖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지속가능성의 핵심을 찾아내지 못하고 파괴하는 무지함을 드러낸 것이다.

유성 5일장이 급변하는 소비패턴 변화 속에서도 장구한 세월동안 지속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제품구매의 편리성을 추구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내면 깊은 어느 곳에 숨어있는 기억과 멋, 그리고 맛을 찾아 불편함을 감수하며 가는 곳이다. 오래됐지만 낡지 않고, 낡았지만 멋스럽고, 멋스럽지만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소박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그런 품위 있는 멋과 맛이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지속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 각자가 자신들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임을 확인받는 일이다. 너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기계적이고, 그러다보니 창의적 상상력이 없는 관료조직으로서는 이런 소소한 삶의 행복을 찾아낼 수도 없고, 활용할 수도 없다.

스웨덴의 전통시장은 규격화된 재화를 취급하지 않는다. 기계로 찍어낸 제품은 아케이드나 백화점에 있다. 전통시장은 손으로 만들어낸 생산자의 재화만을 진열해서 판다. 하나하나 모두가 작품이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창조물이다.

 

전통시장은 그렇게 유일한 재화가 있는 전시장이어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장구한 세월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재화가 독보적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의 전통시장, 유성의 5일장도 모든 재화가 그렇지는 않지만, 손수 만들고 생산해낸 물품들이 많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로컬푸드의 그 신선함, 이를 판매하는 상인들의 그 풋풋함을 따라올 수 있는 유통구조는 없다. 가까운 곳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와도 그 발랄한 생명력을 쫓아올 수 없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이고, 세월이 흘러도 낡음을 떨쳐내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살아남은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기계적, 관행적, 편의적, 단견적 시정 대신 살아남은 것에 대해 예의를 차리는 역사적 정체성, 감수성, 창의성 넘치는 시정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5일 장터를 끌어안는 국내 최초의 재개발 사업은 정녕 불가능한가? (2019. 3. 19. 전 대전시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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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9 [13:50]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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