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화약고, 한화 대전사업장의 잇단 산재사고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기사입력 2019/03/13 [18:02]

도심의 화약고, 한화 대전사업장의 잇단 산재사고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입력 : 2019/03/13 [18:02]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대전의 화약고, 한화 대전사업장의 잇단 산재사고

영국의 대형유통점인 ‘맥스 앤 스펜서(Marks & Spencer, M&S)’가 2013년 말 소비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한 고객이 샴페인 한 병을 구입하려고 계산대에 올려놓자, 무슬림 여성인 계산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하기를 거부했다. 옆 계산대에 동료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알코올을 불경시하고 손도 댈 수 없게 한 무슬림 교리를 그 이유로 들었다. 고객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진열대에 버젓이 진열된 샴페인 구매를 직원이 막은 꼴이니 말이다. 이에 고객은 회사에 거칠게 항의했고 맥스 앤 스펜서는 즉각 사과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우선 해당 직원은 해고에 직면했을 것이다. 매장 책임자는 직원교육 잘 시키겠다며 고객에게 싹싹 빌 것이다. 직원에게 무릎 꿇고 고객에게 빌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이 사례를 소개한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의 저자 이상헌은 M&S는 “직무배치를 할 때 종교적 신념을 고려해야 한다는 회사 내부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며 회사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한다. 당연히 이 직원은 무사했다.

 

이 회사는 종교적 신념에 맞춰 직무를 배치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다른 유통업체들도 비슷한 정책을 오래 전부터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아까운 청춘들이 또 죽었다. 지난 2월 14일 한화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김승회(31), 김태훈(24), 김형준(24)씨 등 3명이 숨졌다. 대전시 유성구 외삼동의 이 사업장은 지난해 5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1년도 되지 않아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사망해 ‘위험의 외주화’ 문제로 세상이 난리가 난 지 2개월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 폭발사고로 9명의 사상자가 나자 한화 대전사업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총 48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를 적발했다. 조치기준별로는 사법처리 126건, 과태료 322건(2억6156만원), 시정지시 31건, 권고 7건이었다.

 

그런데도 같은 사고가 재발한 것은 어떤 시정지시도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찌 보면 아예 그런 단어나, 그런 경영상 목표가 없다는 표현이 더욱 맞는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특별감독에서 ‘근로자 안전·보건 총괄관리가 부재함’이라고 지적했을까. 이해불가 기업이고 어이상실 사업장이다.

위반행위 486건 가운데 ‘폭발·추락·전도 방지 미조치’ 등 안전 문제가 87건,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진단 미실시’ 등 보건문제도 108건이나 된다. 작업지침과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매뉴얼이 없는 것과 같다. 매뉴얼이 없는 기업의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매뉴얼이 없다는 것은 노동의 숙련을 저해한다. 개별 노동자의 경험과 감만으로는 숙련노동자가 양성되기 어렵다. 숙련노동자의 부족은 숙련된 기술의 축적을 방해한다. 이런 악순환은 제조업의 활력을 저해하고, 기업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 대전사업장이 유지되는 것은 독점적 특수사업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라는 유일한 수요자에게 공급자로서의 역할만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체로서 독점기업이다 보니 경쟁업체가 없다. 그러니 어떤  대형 사고에도 시장을 상실할 위험이 없다.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할 경영 마인드가 필수적이지 않다. 모두 486건의 특별감독 지적사항이 나온 배경이다.

심지어 한화는 현장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사업장에서 130여 건이 넘는 위험요인을 발굴해 보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위험요인 발굴서는 현장 노동자들이 모든 공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과 위험요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고, 회사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를 기록한 작업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5월 발생한 폭발 사고 이후 안전대책 중 하나로 시행되었다. 한화는 이 조차도 무시한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1차적 책임은 한화임이 분명하다. 무서운 폭발력으로 상시적 위험성을 지닌 화약공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경쟁 기업이 전무한 사업체라는 특권아래 직원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간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화약을 생산했더라도 지난해 사고 이후에는 달라져야 했다.

 

사업장내 모든 공정과 환경을 과감하게 혁신해 노동자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혁신의 실패’이다. 또 노동과 노동자를 보호해 지속가능하고 경쟁력 있는 제조업으로 나가는 전략이 있어야 했다. ‘축적의 실패’이다.

고용노동청과 방위산업청의 감독소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지난해 1차 사고로 그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노동청은 근로감독이나 산업재해 안전사항을 거의 점검하지 않았다. 방위산업청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규제와 감독의 실패’이다.

대전광역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거대도시 한복판에 화약이나 미사일 추진체 원료 등의 무기생산 공장이 존재하면 관리감독 의무가 막중할 수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인명피해는 물론 사회적 비용 발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자칫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연결될 수 있다.

 

안전도시 이미지가 깨진다. 불안한 도시가 되지 않도록 감시와 감독의 권한을 행사해야 했다. 잠재적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했다. ‘공공관리의 실패’이다.

의류, 가정용품, 고급 식료품 등을 주로 판매하는 ‘맥스 앤 스펜서’사는 ‘고객은 언제나 완전히 옳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고객만족도를 강조하는 회사이므로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도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이유이다. 그러니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직무배치의 조화까지도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기업들도 이런 경영적 가치를 실천하는 날이 올까.

국회 일각에서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기업살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면 그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위험한 일은 하청기업에 주어 비정규직 일로 왜곡하고, 위험을 원청기업이 담당하지 않고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외주화가 만연한 상황을 바로잡자는 취지이다. 노동과 노동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진짜 책임자에게 책임을 지워 산업재해를 막자는 것이다.

이제 독일 등에서 정착돼 실질적으로 독일경제의 지속가능과 경쟁력을 이끈 ‘노사공동결정제’ 도입도 논의해봄직 하다. 노동이사와 주주이사가 50%씩 참여해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권이 강화되고 경영참여율도 높아져 산업재해 방지책 도입 등의 혁신적 경영이 대폭 강화될 수 있다.

한화 대전사업장은 최고 등급의 보안성을 요구하는 특수사업장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노조구성도 못하거나 하더라도 활동자체가 매우 제약받는다. 기업적 폐쇄성이 아주 크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통제나 감시로부터 자유롭다.

 

이러한 극심한 폐쇄성을 완화시키기에는 노사공동결정제도 같은 노동자 경영참여 폭을 넓히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비록 생산요소 가운데 자본의 크기가 노동에 비해 월등히 커졌고,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시각도 많은 우리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산업재해 손실규모를 산정해 공개하는 방안도 산재 감소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산재가 발생하면 기업이 입는 손실과 지역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구체적으로 계량화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윤의 최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 수치화된 손실은 기업 경영자에게 주는 압박감이 클 것이다.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파업으로 인한 생산손실 규모를 산정해 발표하곤 한다. 이처럼 산재가 발생할 경우 이의 손실규모를 의무적으로 산정해 공개하도록 하거나, 제3의 기관이나 단체가 맡도록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산재로 인한 기업 이미지의 추락만으로 사고의 재발을 막기에는 우리 기업들의 경영주 얼굴은 너무도 두텁다.

이도 저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를 안전한 삶터로 만들기 위해 시민자위권을 발동해야 한다. 잠재적 위험요소가 많은 사업장에 대해 사전에 위험요소를 공개하도록 하고, 이의 제거노력을 보고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대전시가 이를 정기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시 조례로 만들어 강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운동을 벌여나갈 필요도 있다. 산업재해로 한 해 200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 21세기 대한민국. 희생자를 줄여야하는 노력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2019. 3. 12. 전 대전시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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