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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문화공간, 대전 ‘철도 관사촌’은요?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김정환 기자

근대역사문화공간,  대전 ‘철도 관사촌’은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은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독일어인 이 말은 걸려 넘어지다(stolpern)와 돌(stein)의 합성어이다. 독일 베를린 시내 거리 곳곳을 걷다 보면 종종 발견하게 된다.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 가로, 세로, 높이 10㎝의 돌을 심고, 그 위에 황동 판을 붙여놓았다.

 

1993년 처음 심기 시작한 이 걸림돌은 현재 독일과 유럽 전역은 물론 멀리 아르헨티나까지 퍼져 세계적으로 7만개 가까이 설치됐다. 이 동판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출생연도, 체포일시 및 피살 정황과 함께 “그가 여기 살았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1930년부터 1945년 사이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 살다가 히틀러의 나치 당국에 체포돼 사라진 사람들이다. 걸림돌은 그(또는 그녀)가 살았던 집 앞이나 학교, 예배당 등 실종된 장소에 설치돼 있다. 특히 유대인이 많이 살았던 동네에는 한 집 앞에 여러 개의 걸림돌이 박혀 있는데, 이름과 생년으로 3대가 몰살당한 것도 찾을 수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행위예술가 군터 뎀니히는 “번호로 불리며 살해당한 희생자들이 자유인으로 살았던 마지막 거처에 그들의 ‘이름’을 되돌려놓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슈톨퍼슈타인은 누군가를 ‘기억하자’는 추모의 돌이자, 독일인 스스로에게 울리는 경고의 돌이기도 하다.

2019년 1월 중순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근대문화유산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직접 목포를 방문해 그 현장을 확인하는 관람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김영삼 대통령 때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거행된 ‘옛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 철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손혜원 의원의 이 지역에 대한 투기 논란 덕분에 촉발됐지만, 이제까지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시선은 문화재적 가치가 아니라 재산 가치에 더 기울어져왔다. 근대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으나 낡은 데다 대개는 옛 도심에 위치하다보니, 많은 건축물들이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되기 일쑤였다.

 

이번 투기논란의 진위여부를 떠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증폭된 관심은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바람직하다. 근대문화유산이 가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상기할 수 있는 점’은 의외의 성과이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지난해 8월 군산, 영주와 함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거리 통째를 가리키는 ‘면’(面) 단위의 등록문화재로 처음 지정됐다. 10여 채의 건물을 포함한 목포 옛 도심부 근대거리의 공간적 경관 자체가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문화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 “면 단위 공간의 등록문화재 지정은 문화재청과 문화재 전문가들의 숙원”이었지만, 재원 부족으로 제자리걸음만 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매년 50억원대 이상의 예산 지원이 가능해 졌다. 퇴락한 중소도시의 근대문화유산들이 면 단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도심 활성화 사업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시 동구 소제동의 ‘솔랑시울길’에 있는 철도 관사촌을 생각하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중국 소주(蘇州)의 호수를 본받아 만든 소제호(蘇提湖)가 있어, 소제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의 한 가운데 골목길이 솔랑시울길이다. ‘반짝이는 솔랑산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솔랑시울길 주변의 ‘대전 철도관사촌’은 이런 면 단위 등록문화재 지정은커녕 야금야금 철거만 거듭되는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현재 대전역 뒤편에 있는 솔랑시울길 좌우 주택에는 1920~30년대 일본 철도 기술자들이 많이 살았다. 당시에는 100여 호 이상의 관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40여 채도 남아 있지 않다. 소제호도 경부선 철도부설과 대전역 설치 등의 이유로 일찌감치 메워져 이름만 전해올 뿐이지만, 관사 건물들은 6.25 전쟁 때도 훼손되지 않았다. 서양건축과 일본식 건축양식이 결합된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근대문화자산으로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대전역세권 재정비와 재개발 추진 바람이 불면서 100년 전통의 철도 관사촌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대전시가 지난 2018년 10월부터 역세권 도로확장 공사를 벌이면서 6채의 관사를 철거했다. 나머지 관사들도 곧 철거될 위기를 맞고 있다. 15채의 관사가 있는 소제동 옆 삼성동 삼성 4구역에 1,600세대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이곳의 관사촌 역시 이름만 남을 게 뻔하다.

대전의 옛 모습이 담긴 근대건축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대전시 등록문화재였던 중구 대흥동 뾰족집도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 이전 복원했다. 하지만 절차를 무시하고 해체가 진행되면서 옛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건축물은 시대의 산물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건축물은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상황을 어떤 특정한 양식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해 쌓는 구조물이다. 당대의 주된 흐름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담아,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유형의 가치를 표출한 것이다.

 

근대건축물에는 ‘근대’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일본에 침략을 당한 역사가 담긴 ‘네거티브 문화자산’ 가치가 함께 들어있다. 역사교훈여행이라고 다듬어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제시한 ‘도심의 박물관화’라는 개념에도 부합하는 도시 건축물의 한 장르이다.

식민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이지만 그것은 관념에 의한 인식일 뿐이다. 당시 민중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후대 사람들은 피부에 닿도록 느끼기 힘들다. “일제의 공출로 일제패망 직전에 이르러서 조선인의 식량소비량은 1910년 시기와 비교할 때 절반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일제강점의 식민의 역사는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 ‘수탈의 역사’이다.

 

그 수탈의 혈로가 철도이고 기관사들은 혈로의 첨병이었던 것이다. 그들 역할의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인이 기관사가 되면 그의 고향에서 카퍼레이드를 해줄 정도로 크게 우대했다. 그들이 살던 곳인 철도 관사촌을 보존하고 탐색한다는 것은 피침의 역사도 우리 역사이고, 그 가시적 흔적이 근대역사문화자산이 된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식민의 역사를 오늘에 읽어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무관심을 떨치고 기억하자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슈톨퍼슈타인을 만드는 일이다.

‘이탈리아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불리는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라고 선언한다. 크로체는 과거의 사실은 현재의 삶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어야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고 보았다. 과거의 사실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인식인 것이다.

 

독일의 걸림돌 슈톨퍼슈타인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 무관심에 대한 철퇴를 가하는 심판이며, 과거의 기억을 오늘에 끌어내는 소환장이다. 그 때 이웃인 당신은 무관심으로 동조한 것은 아니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의 철도관사촌 훼손은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일본제국주의가 뿌려놓은 근대유산은 ‘우리의 슈톨퍼슈타인’이기 때문이다.(2019. 1.22. 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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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22 [18:44]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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