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전 방문의 해’, 호연재를 아십니까?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기사입력 2019/01/10 [10:54]

2019년 ‘대전 방문의 해’, 호연재를 아십니까?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입력 : 2019/01/10 [10:54]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김정환 기자 
2019년 ‘대전 방문의 해’, 호연재를 아십니까?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최고급 아파트는 수도 스톡홀름 바닷가에 있다. 외무성, 상무성 건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건물 모양과 높이, 색상도 비슷해 외국인에게는 아파트인지 청사건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아파트는 스웨덴이 1895년 제1회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때 조직위원회가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왕조 고종의 정비인 명성황후가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떠돌이 무사들에게 무참히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건립된 지 120년이 넘었는데도 현재 가장 비싼 아파트이다. 문화적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을 유인할 수 있는 도시가치로 새롭게 제시되는 개념인 “도시의 박물관화”를 구성하는 큰 요인이다. 당연히 문화재급 수준의 근대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2019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전방문의 해’이다. 자체적으로 방문의 해를 선포한 전남 순천시의 유치목표 방문객은 1,000만 명이다. 대전시는 5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아래 여러 유인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실 대전은 관광지로서의 이미지가 약한 지역이어서 목표 500만 명 달성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준비마저 철저하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해 말 문광부가 선정·지원하는 전국 41개 ‘문화관광축제’ 가운데 대전에서 유일하게 포함됐던 ‘효 문화축제’가 탈락했다. 지난해 여름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휴가 중에 남몰래 찾아 관심을 끌었던 ‘장태산 휴양림’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서 빠졌다.
 
민간이 주도하는 ‘계족산 황톳길’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정부가 향후 5년간 최대 100억 원까지 지원하는 ‘문화도시’ 선정에도 대전시와 동구가 동시에 신청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달빛아래 도보로 관광하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야행’ 선정에서도 대전은 선택받지 못했다.

이쯤 되면 대전시장부터 국장,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문화관광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대전 방문의 해를 맞이하고도 현실이 이러하다면, 문화관광정책의 실종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는 공직자들이 책임감이나 사명감 없이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 밑바닥엔 ‘아이젠하워 신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스웨덴은 복지수준이 너무 좋아 무료해진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다. 1960년대 스웨덴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였지만 자살률은 중위권에 머물렀을 뿐이다. 아이젠하워는 ‘주관적 착각 속에 객관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대전은 뿌리와 역사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문화의 불모지라는 것이다. 최근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가 함께 한 조사결과를 보면 이런 말들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대전을 찾는 국내여행객은 전체 여행객 가운데 1.6%를 차지하고 그나마 친척과 친지방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순수하게 관광을 위해 대전을 찾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특히 관광자원 풍족도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놀거리만 전국 최하위를 면한 C등급이고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 쉼거리는 전국 최하위 D등급이다. 한마디로 특색 있는 역사적인 도시가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여행객을 유인할 소재가 거의 없다는 평가인 것이다.

이는 객관적 오류다. 솔직하게 말해, 관광객들에게 객관적 오류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대전은 역사적 뿌리가 깊은 도시이고,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역사적 자산, 그것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숨은 자산이 정말 많다. 스토리텔링을 재대로 못해 ‘아이젠하워 신화’가 강화된 것뿐이다. 도심의 박물관화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선, 대전만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자산은 기호학파(畿湖學派) 선비들이 남긴 혼적들을 꼽을 수 있다. 기호학파는 경기도·충청도 지역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학설을 따르는 문인과 학자들의 집단을 지칭한다. 퇴계 이황을 따르는 영남지역 학자들의 영남학파에 대항되는 학파이다.
 
기호학파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의 성리설과 예학 등에서 많은 학문적 성과를 남겼다. 특히 조선조 16대 왕 인조시대 이후 김장생을 거쳐 송시열에 이르러서는 연산·회덕 등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가 정계·학계의 주도권을 차지했다.

대전시 대덕구 송촌, 중리, 법동 등의 옛 회덕에는 기호학파의 철학과 사상, 정치, 인맥 등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이 즐비하다. 송준길의 별당인 동춘당, 김경여의 송애당, 송유의 쌍청당, 호연재 김 시인의 소대헌·호연재 고택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 국가 또는 시 문화재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수백 년 전에 건립돼 철학적 사유와 논쟁, 정치적 노선형성과 투쟁,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문학과 예학 등이 녹아 스며든 곳들이다. 이런 자산을 보유한 대전을 뿌리와 역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거짓뉴스인 아이젠하워 신화를 객관적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단지 도심 박물관을 만들고도 남을 문화적 유산을 가졌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젠하워 신화를 깨부수고 도심을 박물관화 할 수 있는 정책효과를 가진 역사적 인물로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 1681~1722)를 들 수 있다. 여성 시인인 호연재는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표현력으로 2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시집과 저서는 그녀가 살던 곳에 지금도 남아있다. 보통 조선의 3대 여성시인으로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를 꼽는다. 하지만 황진이가 시조시인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시의 3대 여류시인으로 호연재가 꼽힐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호연재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세자빈 강씨와 원손 등을 호위해 피난 갔다가, 청나라에 함락되자 화약을 안고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의 증손녀이다. 남한산성에서 강화론자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찢어버린 주전론자 김상헌이 그녀의 작은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아버지 김성달은 부인 이옥재와 부부시집 <안동세고>를 냈다. 호연재는 이런 부모의 문학적 기질을 받고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살 때 소대헌 송요화와 결혼해, 동춘 송준길의 증손며느리가 된다. 그녀의 혼인은 같은 학맥, 같은 학파, 같은 당색의 명문 가문 간의 결합이었다.

우선, <호연재 문학상> 제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전광역시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문학상을 제정해 그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대전을 알렸으면 한다. 그녀의 문학적 성가가 높아질수록 그녀와 연결된 회덕일대의 많은 기호학파 유형문화자산도 덩달아 살아날 것이다. 그녀의 삶과 문학을 가슴으로 느끼는 한편, 기호학파의 철학과 사상을 머리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는 자산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제정은 대전을 역사와 문학, 철학과 정치, 젠더와 페미니즘의 고장으로 정체성을 새로 정립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이는 대전이 과학기술도시라는 정체성에다, 인문학적으로도 수준 높은 품격을 갖춘 지성적  도시라는 평판을 얻는 것이다.
 
또 문학상을 수상한 창작물은 영화,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장난감, 출판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하여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원형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라는 문화산업 전략을 통해 대전을 알리고 살릴 수 있는 상업적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문화적 누진효과를 지속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 “여행은 돌아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한다. 여행객에게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독서하는 맛을 보여줘야 한다. 검색하고 사색하며, 탐색한다는 3색(索)의 맛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이는 현대 지리학에서 말하는 ‘도심의 박물관화’에서 나온다.
 
호연재 시인을 통해 회덕 일대에 산재한 기호학파 학자들의 건축물을 박물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스웨덴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서 보듯, “건물은 고쳐가면서 쓰고 지역은 정비하면서 보존하는 것이다.” 대전 방문의 해를 맞았다고 해서 단숨에 성과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다. 누진적 효과가 나타나도록 찬찬히 쌓아나갈 필요가 있다.
 
대전을 재구조화해 관광 대전으로 거듭나는 데는 뜻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2019. 1. 10. 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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