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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 창출 논의가 부러운 이유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    
광주형 일자리 창출 논의가 부러운 이유

높은 실업률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문제로 ‘중병’에 걸렸다가 ‘고용의 기적’을 이뤘다고 칭송받는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1980년대 네덜란드는 마이너스 성장과 10%가 넘는 실업률, 특히 30%가 넘는 청년실업률 등으로 ‘네덜란드 병’에 걸렸다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던 1982년 11월, 노동조합연맹총위원장이 경영자총연합회장이 사는 조그만 휴양도시 바세나르를 찾아가 긴 줄다리기 끝에 ‘임금을 억제하는 대신 고용기회를 넓힌다’는 내용의 약속을 한다. 노동시장 개혁의 물꼬를 튼 이른바 ‘바세나르 협정(Wassenaar Accord)’이다.
 
정부도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는 등 이 협약을 적극 지지한다. 네덜란드는 이를 통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과 4%대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 약속은 노사 서로 신뢰하고 협조해, 상생의 길을 찾은 사회협약이라고 해서 폴더모델(Polder Model)이라고 불린다.
 
바다보다 낮은 지형이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힘을 합쳐 간척지를 만들어 국토를 넓혀나갔다. 간척지를 만들 듯 서로 힘을 합쳐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다고 해서 폴더모델이라고 붙인 것이다. 

지금 광주광역시에서는 바세나르 협정보다도 더욱 고무적인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광주시가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광주시와 현대차가 7000억 원을 투입해 빛그린 산업단지 내 62만 8000㎡ 부지에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 대 양산하는 합작법인을 세우는 내용이다.
 
이 공장이 설립되면 1000여 명의 직접고용을 비롯, 간접 고용까지 더하면 1만∼1만 2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광주시는 지역노동계와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정신’을 구현하기로 합의했다. 적정임금과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의 원칙과 기준이 그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적정임금을 유지하는 대신 지방정부가 주택·교육 지원 등 ‘사회임금’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현재 당사자간 이해관계 상충으로 최종단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사될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현대자동차와의 막바지 투자유치 협상을 앞두고 있다.

지방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신설 법인의 설립주체로 직접 나선 것은 사회협약이 발전된 유럽에서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3자 합의주의에 참여한 기업에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노동 쪽에는 주택, 의료, 교육 등의 사회임금을 지원하고 있다.
 
자유로운 자본이전이 가능해진 세계화로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급격히 자본 쪽으로 기울게 했다. 이에 따라 자본에 의한 고용창출 기회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 사업은 기울어진 노동과 자본의 균형추를 맞추는 노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보자는 ‘적극적 노동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 시도는 적극적 노동정책보다 더 큰 함의가 있다. 우리는 현재 “케인스가 죽고 하이에크가 부활한 시장의 시대(Keynes is dead and Hayek is back)”에서도 가장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만발한 자유경쟁시대에서 나타나는 고용 불안정, 소득 불평등, 실업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시장에 내놓아진 그저그런 상품의 하나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논의는 일자리가 ‘시장의 가치가 아닌  인간의 가치’로 따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탈상품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시대에 대처하는 (지방)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150만명 안팎의 인구, 산업규모, 경제력 등에서 비슷한 대전과 비교할 때 광주형 일자리 정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50대 초반의 젊은 허태정 대전시장의 취임 후 첫 재정사업은 최고 4500억  원을 쏟아 붓는 야구장 신축이었다. 최근엔 최소 200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둔산센트럴파크 사업의 계획수립에도 나섰다.
 
대전에서 가장 고밀도 지역인 둔산동 일대의 녹지축 이음 사업이라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규모 토목사업이다. 일몰 시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인근 월평공원의 도시숲 문제 해법에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추진하는 모양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포클레인의 작동소리가 요란할 토목사업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토목사업은 예전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생계형 임금살포 효과를 잃은 지 오래다. ‘우리 지역은 인간적 가치가 시장의 가치를 대체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광주와는 결이 다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서 안정적 일자리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가리지 않고 ‘위기관리정치의 핵심 기제’이다. 고용기회를 갖지 못하는 실업자의 비율이 높아지면 사회는 불안정해져 정치의 위기가 찾아온다. 시민들에게 이전소득을 더 많이 주는 것이 질 좋은 정치나 복지가 아니다.
 
낮은 임금이라도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확보하도록 해주는 것이 참다운 정치이고 복지이다. 이런 사회적 노력이 돋보일수록, 여성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공적 행복’은 가득해 진다.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은 정교하고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계약서가 아니다. 노사 간의 상생과 신뢰의 정신을 담보할 간단한 약속을 담은 단 두 쪽의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의 징표인 이 서류는 이후 90개에 이르는 노조와 사용자의 각종 성명과 공동합의의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된다. ‘낮은 임금과 높은 고용기회’를 교환한 이 합의는 매월 1만명에서 1만5천명씩 발생시키던 실업자를 반감시키는 ‘고용의 기적’을 이룬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은 한국판 폴더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사회적 배려와 연대를 통해 더불어 사는 방안을 찾는 너무나 인간적 실험이기도 하다.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는 이제 인간화된 도시를 꿈꾸고 있다.
 
이는 광주형 일자리 창출 시도가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이유이자, 다른 지역 시민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광주를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쓴이<손규성 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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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20 [15:22]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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