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과 교수의 포항 흥해지진 답사기

박종관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17/11/29 [14:45]

지리학과 교수의 포항 흥해지진 답사기

박종관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 입력 : 2017/11/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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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과 교수의 포항 흥해지진 답사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052호
지진썸네일
휴대폰에서 요란한 진동이 울리더니 ‘속보: 포항지진 5.5’란다. 순간 패닉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진도 수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포항은 인구 50만이 넘는 대도시다. 다행히도 피해를 입은 곳이 포항 한복판이 아닌 포항시청으로부터 북으로 12km 떨어진 흥해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큰 재앙은 면한 것이다. ‘포항지진’을 ‘흥해지진’이라 바꿔 부르면 어떨까? 포항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없애기 위함이다.

작년 9월 12일의 경주지진은 진도 5.8이었다. 13개월 만에 일어난 이번 지진은 진도 5.4. 60여 차례의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건물이 부서져 81명의 부상자와 15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현장을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지하수가 솟구쳐 논에 물이 고였다는 기사는 답사 본능을 일깨웠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강의를 마친 후 비행기 왼쪽 창가에 올라앉고 말았다. 운이 좋으면 흥해를 내려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
 
대구와 영천을 지나자 기수가 2시 방향으로 틀어짐이 느껴졌다. 포항 시내의 비행로를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경주 안강을 지나자 흥해처럼 보이는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메라에 힘이 들어갔다. 렌즈 바꿀 시간도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흥해분지였다. 지진 발생 하루 만에 지진 피해지를 하늘에서 만났던 것이다(사진 1). 저 땅 속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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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포항시 흥해읍이 위치한 흥해분지 모습. 붉은 색이 진앙지로 알려진 지점이다. 진원지는 깊이 3~7km 지점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는 당초 발표된 진앙지로부터 남동쪽으로 1.5km 옮겨졌으며, 진원지 역시 당초의 심도 9km보다 많게는 6km나 지표면으로 올라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진앙지는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물찬 논 지역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 1과 그림 1을 비교해 보자. 진앙지로부터 읍내까지의 거리는 2.8km. 진원지로부터의 직선거리는 약 7km라는 계산이 나온다. 매우 가까운 거리다. 그 때문이었던지 이번엔 진원지가 15km였던 경주지진보다 피해 규모가 컸다. 경주의 화강암과 기반암의 차이도 차이였지만, 인구 밀집지 인근이 진앙지였던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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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흥해지진 진앙지(A)로부터 주요 지점까지의 거리(1흥해읍: 2.8km, 2액상지역: 0.5km, 3한동대학교: 1.7km, 4법원시장: 2.3km, 5영일만항: 5.9km, 6칠포해변: 3.5km, B용연저수지: 6.6km). 붉은 원은 반경 3km의 지역을, 파란 원은 액상화 현상이 집중 발견된 지역을 각각 표시한 것이다. 진앙지 반경 500m 이내에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띤다. 이번 지진 보도를 보면 피해 지역이 거의 동쪽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재산 피해는 서쪽이 제일 컸다.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시가지였던 탓이다. 그러나 아파트를 포함한 노후건물 몇 군데가 피해를 입었을 뿐 읍내 전체가 타격 당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북쪽 지역의 피해 사례는 언급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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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흥해지진의 진앙지 서쪽에 위치한 읍내의 한 아파트의 피해 모습

지진의 흔적은 주로 동쪽에서 발견된다. 우선 액상화 현상이다(사진 3). 진앙지 중심 반경 500m 지점에서 대거 물찬 논들이 발견되었다(그림 2의 파란색 원 지역). 칠포 해변에서도 이른바 샌드볼케이노 현상이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액상화 현상이란 지진의 힘으로 대수층 내부의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올라와 지반이 약해진 현상을 말한다. 지하 내부의 충격으로 지하수가 솟아올라온 만큼 지층 내부에 공극이 커져 지반침하가 우려되는 현상이다.
 
이번 지진의 키워드는 액상화 현상
 
이 액상화 현상은 이번 지진의 주요 키워드다. 흥해분지 내부의 충적층 지하수가 지진 압력에 밀려 솟구쳐 올라왔을 것이다. 흥해분지 내부의 지하수위 관측 자료가 있다면 별도의 조사 없이 천층지하수위의 움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액상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이나, 시간이 필요한 시추작업은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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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흥해읍 남송리 일대에서 발견된 액상화 현상. 이 지역의 논은 이번 지진의 발생 직전까지 바싹 말라있었다고 한다. 흥해분지 충적평야부에 존재하고 있던 천층지하수가 올라온 것으로 판단된다. 물 위로 넓게 퍼져있는 기름막이 신경 쓰인다.
 
또한 남동쪽으로 1.7km 떨어진 한동대와 2.3km 떨어진 법원시장도 지진 피해가 컸다. 건물이 금 가며 외벽이 무너지고, 상하수도관이 터져 피해를 키웠다. 동쪽으로 6km 떨어진 영일만항에서도 확장시킨 부두 경계부를 따라 10cm 정도로 틈이 생겼다(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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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한동대학교와 영일만항에 나타난 흥해지진의 흔적들

그렇다면 왜 이번 지진은 반경 3km 정도 지역에서 단층의 동서 방향, 특히 3~4시 방향에 집중되어 나타났을까? 단층선을 따라 발생된 지진이 왜 단층선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그 흔적을 남긴 것일까? 서쪽의 용연저수지(그림 1의 B)가 멀쩡한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다. 저수지가 당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피해 지역이 동쪽으로 집중된 이유가 이번 지진을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될 전망이다.
 
이번 지진의 성인(成因)은 경주지진과 마찬가지로 판구조론이 아닌 단층운동에 의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단층운동이란 정단층이나 역단층에 의한 지괴운동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정단층이 발생되면 땅이 갈라져 틈이 생기며, 역단층이 생기면 땅이 부딪쳐 올라오게 된다. 우리와 외국 간의 이견이 있어 아직 확정적이진 않으나, 이번 지진은 역단층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래서 그 피해가 경주지진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지진이 한반도 쪽으로 밀어올린 스트레스가 이번에 터진 것일까?
 
그보다 더 깊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 평균 깊이는 5km다. 이 지역의 기반암은 강도가 매우 약한 이암(mudstone)으로 구성된 지역이다(사진 5). 이 이암은 대체 어느 깊이까지 들어가 있을까? 경상분지의 백악기 퇴적암층 깊이가 9km라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진도 5.4와 진원지 5km의 깊이를 고려할 때, 진원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이암은 전부 깨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반침하가 더욱 염려되는 이유다. 이 지역 지하수 개발업체의 전언에 의하면, 흥해 지역의 이암층은 지하 600m까지, 그 하부엔 사층이 10m 정도로 나타나며, 이하 안산암층 1000m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지진의 성인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
 
이번 지진의 정확한 성인(成因)을 알기 위해선 이 지역의 기반암층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밝혀진 도면 위에 단층선을 그리고 진파 등 관측 자료와 피해 규모, 종류 등을 얹혀 지진 내용을 분석해야 한다. 흥해분지의 퇴적암층 두께와 종류는 이번 지진의 해석을 위한 열쇠다. 더욱이 진앙지로부터 불과 500m 떨어져 있는 지열발전소의 위치는 이번 지진 발생의 원인으로 해석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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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흥해 지역의 기반암인 이암층은 깊이 600m까지 발견된다. 이 이암은 이 지역에서 ‘떡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손으로 집었다가 떨어뜨리면 바로 박살이 날 만큼 강도가 약하다. 지열발전소 현장에 이 지역의 시추자료가 있을 것이다.

사진 6은 필자가 얼마 전 일본 나가사키 답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 부산 상공에서 찍은 양산단층 모습이다(맨 왼쪽). 한눈에도 엄청난 규모의 단층선임을 알 수 있다. 저런 무시무시한 단층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우리나라의 지진은 지괴운동, 즉 활단층운동에 의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영월댐 건설 포기 선언도 단층에 의한 영월지진이 한 몫 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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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양산단층 모습(맨 왼쪽)

내친 김에 하나 더. 흥해 지역은 중생대 백악기 때 형성된 경상분지에 속한 지역이다. 경상분지에는 과거 수심이 얕은 호소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흥해 주변의 나지막한 구릉지는 해발 150~200m의 고도를 갖고 있다(사진 7). 영천, 포항, 경주, 울산 등지에서도 이와 똑같은 지형이 나타난다. 하늘에서 보니 물결 모양의 능선이 참으로 기묘하다. 지상에선 곡선으로 평야부와 만나는 산지 경계선에서 호반 냄새가 풍긴다. 흥해분지는 과거 호소였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 호소는 언제쯤 사라진 것일까? 그것이 이번 흥해지진과는 상관없는 것일까? 흥해의 이암층을 1,200만 년 전부터 융기해 올라온 해성층으로 해석해도 옳은 것일까? 흥해 이암층이 단층운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꺼내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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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흥해 상공에서 바라다 본 흥해 남부의 구릉지 모습. 해발 150m~200m의 고도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해발고도를 지닌 물결 모양의 저산성 구릉지는 영천, 포항, 경주, 울산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글/사진: 박종관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출처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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