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전의 건축I
조선 중기 선비들, 소박하지만 개성있게 설계
대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중리동에 있는 쌍청당이다. 은진 송씨 중시조이며 고려 우왕 때부터 조선 세종 때까지 벼슬을 지낸 송 유 선생이 회덕으로 낙향하여 1432년(세종 14년) 청풍명월의 맑은 기상을 다짐하고자 ‘쌍청(雙淸)’이라고 지었다. 이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택 건물로서는 드물게 단청이 칠해져있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세종 이후 민가에서 값비싼 단청을 꾸미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개인 집을 단청으로 꾸민 것은 조정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이 역성혁명의 혼란기에서도 대학자들의 존망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않았나 싶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은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보물 제209호)이다. 송 유 선생의 7대 손이자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1653년 지었다. 동춘당의 뜻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과 같이 항상 살아 움직이는 집’이다. 선생이 지은 동춘고택은 조선의 전형적인 양반가의 주거형식을 보여주고 있고 인접한 쌍청당, 별당으로 지어진 동춘당과 더불어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동춘당은 동춘고택의 별채인데 교육과 강학의 공간이었다. 고층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섬처럼 남아있지만 그래도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손자를 맞는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건물이 동춘당이다.
조선 중기에는 사치를 수치로 여겼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선비들만의 정취와 멋을 설계에 그대로 담아냈다. 또한 옥류각과 남간정사는 소박하지만 몽유도원을 꿈꾸었던 선비들의 이상향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계곡물이 옥과 같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옥류각은 계곡에 세워진 유일한 전통 건축물이다. 송준길 선생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양대 학파를 계승한 예학의 대가답게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을 여러 채 남겼고, 우암 송시열, 시남 유계, 송애 김경여, 창주 김익희 등 당대 석학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 선생도 당대 최고의 거물급 정치인답게 가양동에 남간정사라는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을 남겼다. 남간정사의 조경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기법이 특징인데, 동쪽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연목 앞에서 조그만 낙수를 만들고 대청 밑을 거쳐 흘러 들어온 또 다른 물과 연못에서 합쳐진다. 옥류각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 대나무 숲 사이의 시원한 바람, 미풍에 하늘하늘 부딪히는 왕버들의 백색소음은 문생들로 하여금 절로 인격도야와 학문정진에 몰입토록 하였으리라. 이 외에도 대전 최고의 사찰로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식장산 중턱에 자리잡은 동구 대성동의 고산사, 대전 최초의 사액서원인 유성구 원촌동 숭현서원이 있다. 또 숙종 때 대덕구 읍내동에 세워진 제월당과 중구 무수동의 유회당과 여경암, 인조 때 지어진 중구 옥계동의 봉소루 등 정사를 논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유서 깊은 고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건물은 사람의 온기를 만나야 그 생명력과 강건함이 유지된다. 건축물들은 그 옛날 집주인들이 보다 많은 사람이 찾고 발길이 닿길 원하는 열린 마음으로 집터를 잡고, 좋은 뜻으로 이름을 지었기에 그 건물의 형태와 가치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 대전이 갖고있는 소중한 건축물이고, 자랑스런 보물들이다. 글쓴이 송용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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