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우리에게 준 교훈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6/24 [17:28]

메르스가 우리에게 준 교훈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 입력 : 2015/06/24 [17:28]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이 진정세로 접어들었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19일)와 달리 지난 21일(일) 3명의 추가 확진자와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총 감염자 172명, 사망자 27명(22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국내 메르스 치사율은 15.7%로 올라섰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95명이고 14명은 불안정한 상태다.
 
또 메르스 발병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격리 중인 인원은 약 4천 명에 달한다. 사람들이 메르스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는 메르스를 독감과 비교하며 두려움이 과장됐다고 우려하고, 혹자는 메르스를 과소평가 한 탓에 메르스 발병국 2위라는 오명을 안았다며 안전 불감증인 대한민국을 질타하고 있다.
 
■ 백신없는 메르스, 괜찮을까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망자가 70~80대로 천식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치사율이 15.7%로 높고, 특별한 질환이 없었던 40~60대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또 평소 건강했던 30대 의사와 경찰관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어떤 확진자도 내가 메르스에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백신이 없는 병에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메르스는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메르스는 RNA 바이러스 계열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태양의 표면의 코로나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일 뿐 큰 의미는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스(SARS)도 코로나바이러스다.
 
문제는 메르스가 RNA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정보를 저장한 위치에 따라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나누는데 RNA 바이러스는 구조상 불안정해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발병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중동에서 발견한 메르스 바이러스와 100% 일치하진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백신 개발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백신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반해 백신 개발 성공률은 10% 미만이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그레펙스, 이노비오, 노바박스와 같은 중소 바이오 기술업체들이 메르스 백신을 개발 중이나, 아직 임상실험 이전의 초기 단계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같은 대형 제약사들은 상황을 관망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누가 백신을 사용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상업적 시장이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이 부분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백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백신이 없다고 메르스를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치료도 가능하다.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 치료에 가장 많이 쓰는 치료법은 대증요법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고, 기침이 나면 멎는 약을 쓰는 것처럼 나타난 증상에 맞춰 이를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 메르스는 항바이러스제인 리바비린과 면역증강제인 인터페론을 활용해 바이러스에 맞설 힘을 키우는 치료를 추가한다.
 
특히 메르스는 폐를 공격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호흡기 치료가 주가 된다. 메르스는 고열과 기침, 가래, 후두염 등을 시작으로 폐포의 상피세포에 침범해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데 이 때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호흡을 돕는다.
 
최근 언론에 많이 소개된 에크모(ECMO)는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넣어주는 장치로 체내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없을 때 사용한다. 지난 주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와 평택 경찰관인 119번 환자에게 시행했던 혈장치료는 백신이 없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메르스 완치자의 혈액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혈액 중 액체 성분인 혈장을 환자의 몸속에 투여한다. 혈장에는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항체가 있는데 이를 환자 몸에 넣어 바이러스와 싸우게 하는 것이다.
 
혈장치료는 에볼라가 유행했던 콩고 등지에서 사용해 일부 효과를 본 적은 있지만 아직 효과에 대해서는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로 대안치료로 시행되고 있다.
 
■ 공기감염, 가능할까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새 감염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메르스 감염의 97%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8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의 응급실과 다인병실의 공간적 특성 탓이 크다. 메르스는 환자가 위중한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가장 활성화되고, 이 때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한 경우 전염력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실은 환자가 위급할 때 찾는 곳이고 공간이 좁은데다가 인원이 밀집돼 있다. 게다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기 좋은 고령자, 면역저하자, 당뇨병과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다.
 
또 환자를 가족이 직접 간병하고 환자 외에도 많은 수의 외부인이 문병을 오는 등 자유롭게 병실을 드나드는 의료 환경, 부실한 병원의 감염관리도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응급실과 병실은 공기감염 우려가 있는 장소라는 점이 크다. 응급실에서는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삽관을 시도하거나 기관삽관 전 가래를 빼기 위해 석션(빨아들이는 장치)을 사용하다보면 다량의 바이러스를 함유한 에어로졸(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고체 입자나 액체 방울, 1㎛ = 1m의 100만분의 1)이 생길 수 있다.
 
에어로졸은 공기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보통 기침을 통해 감염이 이뤄지는 범위인 2m보다 더 넓고 멀리 퍼질 수 있다. 실제 평택성모병원에서는 같은 병동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염이 된 환자가 있는데, 역학 조사 결과 병실의 에어컨 중 3곳의 필터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확진자의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나온 침과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으로 접촉한 환자복에서 나온 먼지를 에어컨이 빨아들였고, 에어컨이 찬공기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뿜으면서 바이러스가 번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도 한국의 메르스 확산에 대해 공기전파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비를 강조했다. 병원같이 에어로졸이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에어컨을 통한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먼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병원 밖 공기전염에 대해서는 우려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만약 공기로 전염이 가능하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통해 전염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중교통이나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데 지나친 공포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맞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메르스로 27명이 사망하고 격리를 경험하거나 격리 중인 사람이 1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 이르게 한 건 메르스를 ‘독감’ 정도로 여기고 과소평가한 정부 탓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이럴 땐 믿을 건 안타깝게도 스스로밖에 없다. 사람이 많은 곳, 병원에 갈 때는 마스크를 꼭 하고 다녀온 뒤에는 손을 꼭 씻자.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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