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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중 스님의 잊지못할 사형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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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남긴 착한마음 찾으러 교도소行
박삼중 스님 대증언/ 잊을 수 없는 사형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삼중스님이 만났던 사형수와 재소자는 아마도 수천 명이 넘을 것이다. 그 많은 그들 중에서 스님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남겨 준 사람이 있었다. 생지옥 감옥에서 자신의 피땀으로 번 돈을 스님에게 선뜻 건네 준 사람이었다. 그가 건네 준 돈은 그냥 돈이 아니었다. 그의 생명이었다. 마음이란 돈이라는 잣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돈이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참 아름다운 전과자였어요. 내가 지금까지 교도소에 드나드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의 착한 마음이 내 가슴 한복판에 심어 있어요. 아주 죄질이 나쁜 전과자에게 피해를 당했더라도 금세 미움을 없애주는 힘을 그가 남겨 주었지요. 앞으로도 교도소로 발걸음을 할 것입니다. 출소해서 나오는 사람들을 만날 거구요. 그가 남긴 착한 마음은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마다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삼중스님은 그를 잊지 못했다. 그와 함께 했던 세월에서 남겨진 기억들은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 스님이 다른 전과자들로 인해 수많은 실망들이 넘치더라도 자신을 이끌어 주는 마음에는 그가 있었다. 
 
▲ 박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그의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 이야기를 합니다. 저의 구차스러운 일면도 담고 있지요. 그는 45년 전 대구교도소를 드나들 때 만났습니다. 다른 교도소에서 교화하던 시절, 그를 만난 지 10여년쯤 지났을까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내가 활동한 내용들을 소상히 알고 있더군요. 편지의 끝머리에 자신의 딱한 처치를 털어 놓았습니다.
 
감옥생활 19년에 가석방을 할 수 있는 시기이나, 신원보증인이 없어 나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하소연 했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자신의 보증을 부탁하는 내용이었어요. 편지에 적힌 ‘스님, 저는 아무도 없습니다.’는 이 한 구절이 마음을 찌르더군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신원보증을 부탁할 사람으로 나를 택한 그에게 마음이 닿았습니다.”
 
삼중스님은 그의 편지에서 ‘스님이 저를 풀어 주신다면, 스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습니다. 꼭 한 번 도와주십시오!’는 애절한 그에게 믿음을 주었다. 대구교도소에서 그가 숨어서 했던 선행을 잊지 못한 스님은 그의 진면목을 믿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 적었던 글귀 그대로 스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신원보증서로 자유인
 
“그는 1심에서는 사형수, 2심에서는 무기수로 대구교도소에만 19년을 살았어요. 그래서 그를 사형수라고 지칭을 해요. 그 당시 나는 금강경을 강의했어요. 강의시간 전에 누구가가 매번 금강경 원본을 정성스럽게 칠판에 잘 써 놓았어요. 몇 년 동안 그가 했다는 말을 다른 재소자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신원 보증서 한 장으로 그는 자유인이 되었지요. 출소를 하는 길에 찾아 와서는 고맙다는 큰 절을 하더군요.
 
그의 큰 절 한 자락이면 나는 충분했어요. 남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는 받을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였으니, 그런데 이 멋진 사내에게는 사는 동안 감동을 많이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그에게 갈 거처를 물었다. 어물거리는 그에게 스님은 절에 둥지를 틀게 하였다. 스님은 그에게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 캐묻지 않았다. 재소자나 사형수들을 만날 때도 죄목에 대한 대화는 되도록이면 피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입에서 자신의 죄목을 밝힐 때 지나간 사연으로만 들어준다고 했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들리지 않는 것도 그들을 교화하는 예의라고 했다.
 
“그는 방배동 자비사에서 19년 만에 출소한 첫걸음마를 했지요. 자비사의 신도들에게 금강경을 강의했어요. 참 인연도 희한하죠. 그가 교도소에서 지낸 19년의 세월이 세상에 나와서는 금강경을 신도들에게 강의할 정도이니. 강의도 뛰어났지만 참 성실했어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루 온종일 숨어서 일을 했어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티를 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모든 신도들은 다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바탕은 다른 일반사람들과 달랐다. 그 시절 자비사에는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그를 포함하여 5명이나 머물렀다. 보통 사람들은 앞에서만 일하는 척을 대다수 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했다. 그런 그의 행동은 한 방에 지내는 다른 출소자들에게 부담을 주었다.
 
일하는 티 없이 묵묵히
 
“그는 참 무뚝뚝 사내였어요. 내 절에 머물고 있는 다른 출소자들도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다른 신도들이 그를 더 많이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따돌림을 당하더군요. 초파일 행사를 끝내면 신도들은 절에 있는 식구들에게 돈 몇 푼씩으로 인사치례를 해요. 자신은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돈을 돌려주었지요. 죄업이 많은 사람이라 부처님 도량에서 돈을 챙기면 자신의 죗값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해석까지 덧붙였어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의 죄 값을 꼭 갚은 후 죽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그가 죽고 난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삼중스님은 자비사 앞마당에 포교당을 새로 신축했다. 그런데 신축 공사비에 문제가 발생했다. 스님의 여동생이 공사비용을 책임지기로 한 것이 잘못 처리되었다. 이리 되다보니 건설업자는 공사비를 주지인 스님에게 책임을 물었다. 건설업자는 스님을 여러 차례 찾아와서 공사비의 대금을 재촉하였다.
 
“그가 형무소를 막 출소했을 때는 19년 갇힌 세월의 공백을 메우려면 절에서 잠시 머무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1년 쯤 지난 후에는 굳이 절에 머물 필요는 없던 시절이었어요. 공사 대금을 재촉하려는 건설업자는 언제나 서너 명의 일꾼들은 데려와서는 난장판으로 만들었지요. 서너 차례 이런 과격한 광경을 보다 못한 그가 조용히 뭔가를 내게 내밀더군요. ‘스님, 이 돈으로 공사 대금을 지불하십시오.’ 그 당시에 돈 백만 원이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천만 원에 해당될 돈 일거에요. 나도 한 성미한지라 한 마디를 내뱉었어요.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라!”
 
그가 내민 돈 백만 원은 감옥에서 19년간을 희생한 자신의 피와 땀이 서린 전 재산이었다. 일반 출소자들의 무의식에는 갇혀 있는 세월을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고자하는 마음에서 으레 돈을 쉽게 써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그는 감옥 안에서나 세상 밖에서나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가 선뜻 자신의 전 재산을 내 놓았던 돈의 가치는 실로 엄청났었다.
 
피땀 어린 돈 백만 원
 
“그리 착한 사람이 나를 많이 생각했지요. 아무리 급한 처지일지라도 그 사람의 돈을 쓸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서너 차례 협박이 더 가해지자 내가 내 손을 번쩍 들게 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그의 돈을 빌리게 되었어요.(웃음) 내가 그의 생명줄인 돈을 꾸게 되었지요. 그 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된 거라, 곧 갚으려는 생각에서 빌렸으나 어디 세상사가 쉽게 내 뜻대로 풀리나요? 거리를 걸을 때 교통사고라도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내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어요. 돈을 갚지 못한 몇 달 간은 참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절에서 돈을 만들기란 어디 그리 만만하겠는가? 몇 년 동안 적금을 해도 뭉치 돈을 만들기란 어려운 시절이었다. 삼중스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조갈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자비사의 불전함에서 자그마한 사고들이 연일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에 불전함에는 대략 5~6만 원 정도의 돈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 돈을 누군가가 연달아 빼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출소자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손버릇을 잊지 못한 자신들 중에서 못된 짓거리를 한다는 의심은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내 생각에는 그리 불전함까지 손을 대는 사람은 오죽하면 그리 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어요. 그런데 한 방에 지내는 5명은 하루도 편치 않았다고 하네요. 어느 날 김무한이 새벽에 소피를 보러 가다가 어린 소년수가 불전함에 손을 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조용히 와서 하더군요. 그런데 이 비밀은 스님 혼자서만 꼭 알고 계시라는 당부를 했어요. 만약 비밀이 새나가다면 자신은 절에 절대로 머물 수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어린 소년수의 나이는 19살, 끈끈한 아교를 긴 막대기 끝에 붙여서 불전함의 구멍으로 돈을 끌어 올렸다. 삼중스님은 어린 소년수가 ‘얼마나 군것질을 하고 싶으면 그리 했겠느냐?’는 생각에 느긋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출소자들끼리의 불신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런 불신은 점차 그들의 행동을 거칠어 만들었다.
 
약속을 저버린 후회
 
“한 방에서 반장격인 한 출소자는 지들끼리 지내는 방이 감방보다 더 험악하다는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은 절대 불전함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신세타령을 한도 끝도 없이 했어요. 여러 번 목 맨 그의 말에 참다못해서 나도 모르게 ‘내 누가 했는지 알고 있으니, 너를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내 누설이 화근을 자청했습니다. 계속 물고 늘어지는 통에 김무한한테서 들은 목격담을 전해 주면서 신신 당부를 했죠. 너만 알고 지내라는 당부!(웃음) 그게 지켜지나요? 땡 중인 나도 지키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후회스럽습니다.”
 
말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 대형사고가 터졌다. 다른 출소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는 그를 향한 테러는 단행되었다. 비밀을 누설하고자 하는 나쁜 마음에서 내뱉은 말은 아니더라도 결국 한 사람을 거의 죽게 만들었다.
 
“한 팔이 부러져서 붕대를 동여 맨 채 김무한이 방안에 들어 왔어요. 거의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모습에 그저 황당하기만 하더군요. 어제 밤에 자신을 땅에 생매장을 시켰다는 웃지 못 할 참상을 짤막하게 들려주더군요. 말이 워낙 없는 사람인지라 거의 죽음을 면할 만큼 두들겨 맞았나 봐요.
 
이 순둥이 녀석이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 제가 어제 사람을 죽일 뻔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때문에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리 말하는 그를 쳐다 볼 면목이 없어 진땀을 흘렀습니다. 나를 생각해서 자신의 몸뚱이를 실신할 때까지 내 주었다는 말에 가슴이 소금에 절여지는 듯 아팠습니다. 이제 자신은 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절을 떠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스님은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그에게 절에 보름만 더 머물러 줄 것을 요구했다. 굳이 떠나가려는 그를 붙잡는 스님의 속사정은 돈이 걱정거리였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자신의 돈 걱정에 붙잡는 내 심정을 알아채는 말을 꺼내더군요. ‘제가 스님에게 건넨 돈은 이미 스님에게 시주하려 했습니다.’하는 말은 오금이 딱 절려왔어요. 그의 생명인 돈을 갚지 못하는 내 처지도 한심스러웠지만, 그의 입에서 ‘시주’라는 말에서 심장이 멈추는 듯 했지요.
 
그에게 간절히 청을 했습니다. ‘어떤 말로 더 이상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게나. 자네의 생명인 돈은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곧 갚을 걸세. 자네가 머물 수 있는 절을 내가 알아봄세.’ 다행히 내 뜻을 받아들어 주었지요. 그래서 그는 부산에 있는 바닷가 경치 좋은 용궁사로 다음 날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난 지 한 달 뒤 쯤 삼중스님은 그의 편지 한 통을 받아 들었다. 급히 떠나느라 자비사에 두고 온 자신의 자전거를 팔아 달라는 부탁에 덧붙여서, 그 돈을 불전함에 넣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원을 적어 보냈다.
 
죽기 전에 결혼이 소원
 
“60이 다 된 그는 장가를 가고 싶어 했습니다. 죽기 전에 착한 여자를 만나서 며칠이라도 부부간으로 살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지요. 그가 장가를 가려면 우선 취직자리를 알아보아야 했어요. 그래서 부산 갱생보호회의 신 아무개 지부장에서 부탁해서 그는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몇 달간 있는 동안에도 그는 성실하게 잘 지냈어요. 취직을 알선한 신지부장은 그의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자신이 20년 동안 갱생보호회를 운영했는데 이리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칭찬은 대단했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100명이라도 추천을 해 달라는 흐뭇한 소식에 내 어깨도 우쭐해졌습니다.”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다 보면,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그 곳의 땟물에 젖어든다. 그런데 김무한 그의 남다른 착한 심성은 감옥이라는 땟물이 전혀 묻히지 못하게 했다. 부산에서 성실히 일하는 그에게 스님은 겨우 마련한 돈 백만 원을 건네주었다. 더불어 그의 결혼 작전은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부산에 있는 동안에도 돈을 알뜰히 아껴서 많이 모아 두었어요. 그런 그에게 참으로 좋은 일이 생겼어요. 착한 과부를 만나 곧 결혼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참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며칠 뒤 결혼날짜에 맞추어 부산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신지부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가 중태에 빠져서 생명이 위독하다는 천청 벽력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참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곧 결혼할 그에게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봉고차가 인도를 걷고 있는 그를 들이 받았다는 소식은 부처님을 향하여 불경스런 마음을 갖게 했다. ‘부처님, 너무 하시네요. 그리 살아보려는 발버둥치는 착한 사람에게 왜 이리 형벌을 내리십니까?’ 살아생전 만나지 못했던 그의 가족들을 찾기 위하여 스님은 경찰에 의뢰했다.
 
부처님뜻 죄업 씻고
 
“그 착한 사람이 결혼을 코앞에 두고 그만 죽고 말았어요. 도대체 왜 이리 착한 그를 황망히 데려간 부처님이 야속하기만 하더군요. 그의 생전에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어 보지도 자신도 말하지 않았어요. 무슨 운명이었기에 뼈에 사무치도록 소망하는 결혼을 앞두고 왜 그를 데려갔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 왜 이러십니까?’는 설음에 그저 눈물만 나오더군요.
 
그런데 가족이라고 나타난 조카 2명에게서 그의 죄목을 그때서야 듣게 되었지요.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서 가족들도 등을 돌렸다고 하네요. 그의 큰 죄업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답니다. 그가 모은 돈과 교통사고로 생명과 바꾼 보상금은 조카 2명이 모두 들고 가버렸습니다.”
 
손가락마다 커다란 반지를 끼고 왔던 조카들과 다른 유족들이 참가하지 않는 그의 49제를 스님은 홀로 지냈다. 삼중스님은 그의 49제에서 불현 듯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아! 맞다! 부처님은 살아계시다!’ 지금 성실하고 희망에 찬 이 시기에 그를 황망히 데려가신 이유를 알 듯 했다.
 
“세상사의 이치대로 그를 데려가셨어요. 그 시절 60세는 아주 늙은 나이입니다. 지금 세상의 싱싱한 60세 나이와는 전혀 다른 시절이었어요. 60세가 다 된 나이에 아무리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한들 뻔한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몇 달만 살다보면 아마도 결혼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뻔한 세상 이치이지 않습니까? 남은 생에서 그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깊은 뜻에서 데려간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더욱이 그에게 자신이 지은 금생의 죄 값을 다 갚도록 배려했습니다.
 
그가 번 돈은 그에게 쓸 자격을 주지 않았죠. 교통사고로 탄 보험금 역시 다 버리도록 했습니다. 금생에 지은 죄 값은 이미 다 갚을 수 있는 시간만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가 살아생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생활을 했으니, 다음 생에는 분명히 좋은 세상을 살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전생에서 자신이 결혼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길 것입니다.(웃음) 나에게 남긴 그의 착한 마음을 찾으러 교도소에 드나듭니다. 제 2의 김무한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면서요.”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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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29 [21:35]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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