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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중 스님의 잊지못할 사형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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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나면 까치밥으로 보시해주오”
박삼중 스님 대증언…사형수 양동수 어머니의 절규[1탄]
 
김성애 논설위원

"‘이 늙은이, 내 자식이 감방 차가운 냉골에서 추위에 떠는데 어찌 어미가 뜨뜻한 방에서 발을 뻗고 잘 수가 있습니까? 자식과 자신은 공범자이니 추운 냉골에서 죄 값을 조금이라도 치러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어요. 자신도 공범자이니 자식과 함께 감방에 넣어주면 그 놈 옆에서 살겠는데, 그러하지 못하니 공범자인 내가 교도소 담장 밑에서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어요.”

“스님!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내가 죽거든, 내 뼈를 곱게 갈아 밥풀과 꿀을 발라 까치 밥으로 만들어 주세요!” 늙은 할머니의 절규는 삼중스님의 뇌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5월 ‘어버이 날’을 맞아 삼중스님은 잊지 못한 사형수의 어머니 이야기를 토해 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사람을 죽인 사형수 아들을 잘못 키웠으니, 내 죽고 나면 내 몸뚱이를 화장해서 까치의 밥으로 보시해 달라는 피맺힌 어머니의 절규! 그 뼈를 곱게 갈아 밥풀과 꿀에 버무려 까치 밥으로 보시하고 싶다는 통곡소리에 삼중스님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늙고 초라한, 양동수의 어머니 김상순은 15여 년 전 세상을 떠나 지금은 까치가 되었다는 이야기에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삼중스님이 만난 할머니의 이름은 김상순이다. 진주가 고향인, 11 남매를 둔 아주 자그마한 73세 할머니 모습을 아직까지 스님은 또렷이 기억한다. 1970년대 시절의 73세라는 나이는 현대 의학의 발달로 지금의 80세가 훨씬 넘는 고령의 나이와 엇비슷하다. 아주 꾀죄죄하고 자그마한 할머니는 그 옛날 추운 엄동설한을 3번이나 겪으며 교도소 담장 밑 움막에서 살았다.
 
움막 바닥은 냉골이었다. 교도소 감방에 갇혀 추위에 떠는 자식 생각에 그 어머니 역시 같은 환경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할 조그만 움막 냉골에서 3년 째 불 한번 지피지 않고 지냈다. 이런 어머니의 한 맺힌 심정은 자식을 가진 이 세상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사형수 자식을 둔 어머니 역시 똑같은 공범자로 무섭게 손가락질하는 세상을 향해 숙연히 참회하고 있었다.
 
죄값 치러 죽은자 명복 빌어야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엄동설한 음력 12월 경 할머니의 움막 안 냉기는 무척이나 찼어요. 너무도 자그마하고 꾀죄죄한 할머니가 안쓰러워 연탄을 사드리겠다고 하니, 그 할머니 대단해요. 불심이 깊은 할머니는 삼배 합장을 한 후 ‘이 늙은이, 내 자식이 감방 차가운 냉골에서 추위에 떠는데 어찌 어미가 뜨뜻한 방에서 발을 뻗고 잘 수가 있습니까?
 
자식과 자신은 공범자이니 추운 냉골에서 죄 값을 조금이라도 치러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어요. 자신도 공범자이니 자식과 함께 감방에 넣어주면 그 놈 옆에서 살겠는데, 그러하지 못하니 공범자인 내가 교도소 담장 밑에서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어요.”
 
삼중스님은 사형수의 자살소동으로 사형수의 어머니 움막을 찾아 갔다. 사형수 이름은 양동수, 스님은 1976년 이른 봄에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와의 인연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참새를 사랑했던 사형수 방영근이 그를 소개했다. 마음씨 착한 방영근은 늙은 노모가 있는 양동수를 스님이 꼭 한 번 만나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진주 태생인 양동수는 11 남매의 막내다. 사건은 197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생했다. 양동수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웠다. 그 당시 천원이면 소주 두서너 병을 마실 수 있는 시절이었다. 다시 친구와 소주 서너 병을 마신 후 대취한 그는 사람을 죽였다. 너무 취한 나머지 자신의 애인 집을 착각하여 다른 집에 잘못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잠을 자고 있는 여자가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한 그는 반항하는 여자를 죽게 했다. 양동수는 사형을 구형받았다.
 
“사실 양동수에게 제가 감동을 받아 어머니를 찾은 것은 아니에요. 감동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평범한 사형수였어요. 중은 사형수의 교화를 하러 사형수를 만나요. 그러니 사형수의 가족은 만나지 않을뿐더러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와의 만남 이전에 제 가슴속에는 아픈 자식으로 남아 있는 착한 사형수 한 명이 있었어요.
 
집행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방영근입니다. 교도소에서 어린 참새를 키운 마음씨가 너무나 착한 방영근은 내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어요. 자신은 그리도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보지 못하고 죽지만, 스님 저 대신 늙은 노모가 있는 사형수 양동수를 살려주세요. 방영근은 자신의 어머니를 간절히 보고픈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착한 놈이 양동수의 늙은 노모가 형무소 문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요. 그 모습에 감동하여 같은 처지의 사형수인 양동수를 내게 주고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나 사랑했던 방영근을 떠나보내고 참 허탈한 마음으로 한동안 보냈어요. 저 놈만은 꼭 살려야 했는데 하는 생각에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같은 시기에 천주교 신자 사형수가 한 명 살아났어요.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생명을 건 진거죠. 그 사형수의 구명운동에는 천주교 신자인 박찬종 국회의원과 이효상 국회의장, 수녀님들이 체계적으로 뛰었어요. 방영근과 같은 대구교도소에 있었던 사형수 박은석을 살려낸 거예요. 방영근과 박은석은 같은 시기에 구명운동을 시작했지만, 박은석만 살아났어요.
 
제가 따질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죄질이나 상황으로 봐서는 참새를 키운 방영근이 훨씬 더 안타까웠죠. 저 혼자서 하는 구명운동이니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은 한 나라의 실세인 국회위원과 국회의장이 뛰어들어 법무부장관을 만나 성공을 했어요. 물론 사형수는 죽음을 도리로 여겨야지요. 그러나 방영근의 집행이 네게는 한이 되었어요.
 
자식같이 정 들었던 방영근을 떠나보내고 그의 유언에 따라 삼중스님은 양동수를 만나게 되었다. 양동수는 시간이 지나 불심이 깊어갈수록 자신의 불효를 참지 못하였다. 불같은 성격을 지닌 양동수는 자신의 자살로 마지막 효도를 하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
 
자신이 빨리 죽어야만 늙은 어머니를 고향에 내려가게 할 수 있다는 마지막 효심이 그를 자극했던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삼중스님은 양동수를 달래도 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도저히 그대로 두었다간 무슨 일이 금방 벌어질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그의 어머니를 설득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살려달라고 부처님께 매달려
 
“양동수는 효자였어요. 감옥에 갇혀 있는 3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은 어머니의 면회로 효심이 더욱 깊어진 거예요. 처음에는 늙은 노모의 얼굴을 보는 게 기쁜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늙은 노모에게 불효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에 못이 박힌 것이죠. 사형 집행은 언제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노모의 고생을 끝내는 것은 자살밖에 없다는 결론에 대단히 강했어요.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네가 자살하고 노모가 고향으로 가신다면 과연 행복하겠느냐며 설득에도 움쩍하지 않았어요. 진주에 있는 다른 형제들은 아주 잘 살고 있었어요. 불심이 강한 그에게 불교에서 자살하면 다음 생으로 이사도 못가며 떠돈다는 협박도 해보고... 아무튼 교화 중인 사형수가 자살을 하면 어찌되겠어요? 그래도 마지막 효도가 어머니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최고의 효심이라 여겨 자신의 생명을 던지겠다는 거죠.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의 어머니를 만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요.”
 
삼중스님이 만난 양동수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새벽 3시 일어나서 자식이 있는 교도소 담 벽을 향해 기도 한 후, 교도소 아래에 위치한 화장사 암자에서 주지와 함께 부처님께 108배로 기도했다. 그 연세에는 삼배만으로도 일어나지 못 할 지경인데 무릎이 깨지도록 108배를 날마다 했다.
 
그의 어머니는 몸을 던져 뼈가 으스러져 죽을 각오로 자식만을 살려달라는 기도에 부처님께 매달렸다. 날이 훤히 밝아오는 새벽녘 어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동네 거리 구석구석을 깨끗이 쓸었다. 빗자루로 지저분 거리를 쓸 듯이 자식의 죄업을 참회로 대신했다.
 
동네 사람들은 3년 동안에 하루도 거르지 않는 할머니의 정성에 반했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1번으로 면회를 신청하고 자식을 보는 세월이 3년째이다. 면회자 1번은 어머니의 번호였다.
 
“경상도에서는 불심이 대단히 강해요. 불국토, 그 중에서도 진주가 제일 강해요. 할머니를 설득할 요량으로 스님이라는 직분을 내세웠어요. 부처를 믿는 불자인 할머니에게 미리 내 말을 믿고 따라줄 것을 선약하라 했어요. 불심이 강한 할머니는 무조건 스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합장을 하더라고요. ‘보따리를 싸십시오.
 
고향으로 내려 가십시오!’라는 말에 할머니는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도 그 말씀만은 거역하겠다고 했어요. 자식이 자살한다니, 자살하면 중음신이 되어 저승에도 못 가게 할 거냐는 협박에도 막무가내였어요. 그 자식이 자결하고 싶으면 그리 하라는 대답과 함께 목 놓아 통곡을 하더라고요. ‘내 새끼가 죽으면 그 시신을 내 손으로 인수해서 부처님의 법으로 화장하렵니다.
 
뼈를 내 손으로 곱게 갈아서 밥풀과 꿀에 묻혀서 까치 밥으로 보시시키려 합니다. 짐승이라도 내 새끼의 몸을 먹어주어야만 살인의 죄업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합니다. 자식을 먼저 저승으로 보낸 어미가 어찌 하늘이 무서워 살 수 있겠습니까? 나도 내 자식 죽은 이 자리에 돌아와 자결하렵니다. 스님이 이 늙은이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스님 손으로 화장해 주십시오. 나 같이 죄 많은 늙은이 뼈를 곱게 갈아 밥풀과 꿀을 발라 까치 밥으로 만들어 주세요!’ 할머니의 한 서린 통곡에 두 손을 들고 말았어요.”
 
사형수 늙은 어머니에 반해
 
삼중스님은 사형수에게 감화되어서 구명운동은 시작하지 않았다. 사형수의 늙은 어머니는 삼중스님을 반하게 했다. 스님은 어머니 앞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에 두 손을 든 삼중스님은 사형수의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 사형수를 살린다는 생각보다 그 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구명운동에 뛰어 들게 되었다.

양동수는 12살 어린나이에 뇌를 다쳤다. 재판에서 정신감정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기각된 채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삼중스님은 다시 한 번 재심에서 정신감정을 요청하였다. 이 재심 요청서에는 양동수 노모에 대한 자식 사랑을 감동스럽게 써서 함께 제출했다.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은 무거운 재판부의 손을 들게 했다. 하늘이 도우셨던지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정말 재심이 받아들여져 정신감정을 받게 된 것이 꿈만 같더라고요. 할머니의 사랑은 계속 기적을 만들었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정신감정 요청이 재심에 받아들여진 것 같았어요. 사형을 구형받기 전 수차례 정신감정을 요청하였지만,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일이니 얼마나 흥분되겠어요. 스님인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부산대학병원 정신과 감정의를 만나기 위해서 수소문 했어요.
 
그 시절 파계사에 계셨던 석성우 스님이 그 감정의를 잘 알고 있다고 해요. 석성우 스님은 현 불교방송 사장을 하고 있죠. 감정의가 다행히 불자인데 석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자주 만나다고 하니, 이 또한 일이 잘 풀렸어요. 그러니 제출된 정신감정서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재심에서 기각되었어요. 재판부도 고민을 했겠죠. 그러나 아무리 정신적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전체적인 사건을 집어보면 계속 마비될 정도의 큰 정신이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거예요.”
 
대통령 사면권에 호소하다
 
그 시절에는 재심에서 기각되면 바로 집행을 들어가던 때였다. 그러니 박정희 대통령의 사면권만이 집행을 막을 수 있었다. 삼중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사형수의 어머니를 물고 늘어졌다. 처음으로 불교방송에 있는 최정희 기자에게 구명운동을 청탁했다. 불교방송 최 기자는 더 영향력이 큰 주간한국 기자인 이형기 기자를 소개해 주었다. 이형기 기자는 스님의 열정이 담긴 어머니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1면에 특종기사를 써주었다. 이 톱기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시절 mbc 방송국에서는 ‘법창야화’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참새를 사랑한 방영근과 함께 구명운동을 같이 했던 무기수 박은석도 이 ‘법창야화’의 소재가 되어 도움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삼중스님은 이 기사를 들고 ‘법창야화’ 연출가를 만나기로 작정했다.

“불교에서는 대단했던 윤청광 방송작가의 도움을 받아 ‘법창야화’ 팀을 만날 수 있었어요. 연출을 총감독하는 고무송 pd는 이미 주간한국을 읽어나 봐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10분밖에 시간이 없으니, 시간 내에 끝내 달라는 무미건조한 태도를 보였어요. 그 시절 젊었으니, 내가 참 이야기를 잘 했어요. ‘이 이야기는 범죄를 예방하는데 참 좋은 소재이다.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했더라도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하지 못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가까운 어투로 말을 이끌었어요.
 
물론 늙은 할머니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는 사람들을 넘어가게 하죠. 10분이 20분으로 넘어가고 결국 고 pd의 허락은 떨어졌어요. 방송을 하는 대신 나보고 두 가지를 해결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한 가지는 방송을 내년 1월 달 예정으로 앞으로 석 달은 촬영을 진행한다. 방송을 마감하는 시점까지 양동수의 사형의 연기하겠다는 사형집행 연기서를 받아달라고 했어요. 두 번째로는 피해자 유족들이 방송국에 항의하지 않도록 서면서를 받아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기가 막히죠. 어디 가서 사형집행 연기서를 받아야 하는지 그저 막막했어요.<2탄 계속>”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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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6/14 [20:51]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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