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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중 스님의 잊지못할 사형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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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열판사와 사형수 권갑석의 슬픈이별
박삼중 스님 대증언, 잊을 수 없는 사형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삼중 스님은 한 사형수와 맺은 판사와 변호사의 인연을 끄집어냈다. 사형될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그리고 사형을 구형한 판사, 이 삼각구조의 아름다운 인연을 삼중 스님은 상당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에 그대로 담고 있었다. 삼중 스님은 우선 권갑석 사형수와 만나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삼중 스님은 박준석 변호사와 평소에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박 변호사는 “스님, 대구교도소에 갈 일이 있으시면, 사형수 권갑석을 한 번 만나주시죠.”하는 요청을 했다. 당시는 사형 집행장이 대구교도소에 있어서 사형수들은 그 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박 변호사가 변호 맡았던 권갑석은 사형을 언도받았다. 사형으로 구형된 재판은 누가 들어도 변호를 잘했다는 평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판에서 사형 구형을 받은 권갑석은 "변호사님, 저 같은 놈을 위해 애써주셔서 참 수고했습니다. 이승에서도 고마움을 전합니다."라고 말하며 재판장에서 바닥에 큰절로 인사를 했다. 이같은 권갑석의 의연한 행동에 박 변호사는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사형수 권갑석과 박 변호사는 따뜻하게 인간교류를 나누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주변에서 권갑석 사형수의 구명을 요구하는 운동 소식을 듣고 마음이 괴로웠다고 한다. 같은 감방 동료들이 출소하여 여러 단체에 그의 구명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
 

▲ 박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권갑석 사형수는 억울하게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의 인품은 훌륭하다. 본인이 죄를 다 짊어 안고 사형 언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권 사형수의 구명운동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권 사형수에게 뭔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삼중 스님을 일부러 찾아 만났던 것. 권 사형수를 한번 만나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스님, 권 사형수가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스님이 한 번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재심이라도 한번 해 주고 싶습니다."
 
사형수의 편안한 모습에 압도
 
스님은 박 변호사의 따뜻한 마음과 진심에 끌렸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교도소를 찾아가 권 사형수를 면회를 했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아직도 그와의 첫 만남에서 나눴던 대화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키가 늘씬한 사람이었어요.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목례를 하면서 들어왔어요. ‘밖에 있을 때 스님에 대해 신문기사를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제가 구치소에서 스님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권의 모습에 압도되었다고 기억했다. 마음 속으로 ‘이 놈 참 남자답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님은 권 사형수에게 앉아라고 권했다.
 
"내가 자네를 만나고 싶어서 여기 오지는 않았네. 사실은 박준석 변호사의 요청으로 이 자리에 왔네. 박 변호사는 지금도 자네의 사건을 잊지 않고 있어. 억울한 사연이 있으니 나더러 들어보라고 요청을 했어. 그래서 내가 자네를 찾아 왔네."
 
권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박 변호사님이 저를 지금도 잊지 않고, 바쁜 스님에게 요청하니 그 관심에 참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미 떠날 준비가 끝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천주님께 가겠습니다. 저는 신앙인입니다. 이제는 제 죄에 대해 이랬느니 저랬느니, 변명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생명이 나로 인해 죽었습니다. 저는 무어라고 할 말이 필요 없는 사람 입니다."
 
스님과 권 사형수는 교도소네 교무과장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교화실보다는 교무과장실이 편안한 분위기 였다. 눈치 안보고 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권 사형수는 대화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 사형수의 그 같은 의연한 태도에서 삼중 스님은 또 한번 반(?)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 첫 인사,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권 너 참 멋있다! 생긴 것만 멋진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준비나 태도 역시 다 멋지구나.”
 
학대해온 남편죽인 여자를 사랑
 
그날 이후 삼중 스님은 권 사형수에게 여러 번 요청,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저는 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 회사 이름을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큰 회사입니다. 과장으로 남들처럼 직장 일하고 집안도 화목한 편이었습니다. 회사 앞에서 식당을 하는 한 여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주 그 식당을 드나들다가, 남편에게서 머리채를 휘어 잡혀 맞고 있는 식당 아줌마를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남편은 지독한 의처증 환자였죠. 아내에게 수시로 폭력을 아무 때나 휘둘렀어요. 식당 아줌마인 아내는 남편에게 맞고서도, 열심히 식당일을 했어요. 처음엔 그 아줌마를 인간적으로 동정 했습니다. 그 남편은 여자가 번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구타를 일삼아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 눈이 잘못 되었는지, 그 여자가 볼수록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 동정심이 사랑으로 변했습니다.
 
짐승보다 못 한 남편의 학대를 받고 있었던 여자를 사랑하게 된거지요. 그 여자가 사랑을 했으니 금세 들통이 난 거지지요. 술주정뱅이 남편은 결국 저와의 관계를 알게 됐죠. 나를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었죠. 여자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 다급한 마음에 남편을 죽였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제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남편을 죽였습니다. 경찰 수사 중에 그 여자와 나의 관계가 밝혀지게 됐죠.
 
살인의 공범죄로 의심을 받게된 거죠. 저 역시 조사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신문지상에도 크게 실렸지요. 이 지경이니 회사 동료들, 집 사람, 아이들까지 저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집사람은 제가 바람난 것도 못 참을 지경인데, 그 여자의 남편까지 살인한 공범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 치를 떨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싸움이 났습니다.
 
집사람이 저한테 달려들며 대들기에 홧김에 밀었던 게 잘못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넘어지면서 그만 머리가 작은 농 모서리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우발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스토리가 권 사형수의 사건의 전부이다. 삼중 스님은 권 사행수의 사건을 뒤집어 풀이했다.
 
“두 사건 모두가 여자로 인해 일어났어요. 정말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해 버린 사건입니다. 권 사형수는 자포자기에 빠져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누라까지 밀어서 죽였고, 사랑했던 외간 여인은 자기를 살리고자 한 생명을 죽였으니, 두 생명 모두 자신으로 인하여 죽었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런 마음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거지요. 재판장에서 두 생명을 자신이 죽였다고 하니 판사는 당연하게 사형을 구형하겠지죠. 식당 아줌마는 1심에서 7년 구형, 권갑석은 사형을 언도 받았어요. 실체적인 진실이 제대로 처리 되었다면, 사형 구형은 받지 않았겠지요. 두 사건의 죄를 스스로 끌어안고 사형수가 된 거죠.”
 
판사가 사형수에게 보낸 편지
 
어느 날 박 변호사가 또다시 삼중 스님을 찾아왔다. 권갑석이 옥중에서 외부로 보낸 편지였다. 권갑석 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손지열 판사가 사형수 권갑석에서 보낸 편지였다. 삼중 스님은 그 동안 수백 명의 사형수를 만났지만, 이런 아름다운 사연은 처음 접했다고 했다. 스님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권갑석 씨에게,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인은 귀하에 대한 재판을 맡아 주관한 재판장입니다. 우리가 귀하의 행위에 대하여 국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형을 선고하였지만, 귀하의 인격을 정죄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죄인이며 어느 누가 다른 누구보다 선할 수 없는 것이니, 정죄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귀하가 겪고 있는 충격과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며, 어떤 경위로든 귀하와 인연을 맺었던 한 인간으로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들의 죄를 모두 씻어 주셨으며, 더 이상 우리의 죄를 보지 않겠노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 받지 못할 죄란 없으며, 모든 죄인은 그 안에서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인간에게 더 이상 슬픔과 괴로움은 없으며, 오로지 기쁨과 평안함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귀하에게 전하기 위하여 이 서신을 쓰며, 아울러 그 말씀이 실린 성서를 보내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영접하시고 놀라운 새 삶을 사기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신앙의 길잡이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교도소 내에 계신 목사님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본인도 기꺼이 귀하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본인도 귀하와 똑같은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감히 고백합니다. 귀하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985년 12월 30일. 손지열“
 
삼중 스님은 판사-변호사-사형수 간의 아름다운 삼중 인간관계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형을 구형한 손지열 판사, 변호를 맡았던 박준석 변호사, 그리고 사형수 권갑석, 이들의 삶의 자리는 각각 다르지만, 자신들이 처해있는 진실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건네 준 손지열 재판장의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나 자신도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박 변호사에게 ‘우리 권갑석을 살립시다. 집행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봅시다.’라고 제안하게 됐지요. 내 말에 박 변호사도 동의했어요. 스님이 나서면, 자신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둘은 대통령에게 탄원을 하게된 거죠. 사형을 무기형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고 그런 운동을 시작했어요. 우선 법무부장관을 일차적으로 만나기로 했죠. 그 당시 박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과 친한 사이였어요. 장관실에 직접 찾아가서 진정서를 제출할 준비를 했어요. 진정서 준비를 하는 중에 제가 좋은 생각이 났어요. 권갑석 사형수에게 편지를 쓴 손지열 판사, 그 때 당시 그는 대구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었어요. 그래서 손 판사를 찾아 갔어요. 우리 둘이 권갑석 사형수의 진정서를 법무부 장관에게 올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손판사도 함께 동참을 해달라고 요청했죠.”
 
“진정서에 도장을 찍어 드리지요”
 
이때 손지열 판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삼중 스님, 참 좋으신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권갑석에서 사형을 언도한 판사입니다. 제가 스님과 박 변호사와 함께 법무부 장관님께 가는 것은 저의 직분상 부적절합니다. 그렇지만 권갑석에 대한 진정서에는 제가 도장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박 변호사, 손 판사와 더불어 구명운동을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 마침 권갑석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삼중 스님은 권의 사형이 집행된 그 날, 박 변호사로부터 밤늦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스님, 오늘 저는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권갑석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멋진 권을 위한 애석주를 제 사무실 직원들과 밤새워 마셨습니다. 너무 애석합니다. 스님,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권갑석이 형 집행장으로 가는 당당한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그 전화를 받고 스님도 밤새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이 사건과 관련, 삼중 스님은 믿음직한 사법부의 법관과 변호사를 자랑했다.
 
“나는 지금도 박 변호사와 손 판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제가 인천의 한 기념관에서 초청되어 특강을 했어요. 법대생을 상대로 특강을 하던 중 제가 한 2~3분간 손 판사를 믿음직한 분이라고 자랑했어요. 며칠 후 손 판사가 나에게 전화를 해왔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손 판사를 자랑해서 고맙다는 전화인가?’ 라고 생각했지요. 그랬더니 ‘스님, 저는 현직에 있습니다. 공인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님께서 하신 저에 대한 말은 제가 칭찬으로 들을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로 스님이 저의 실명을 쓰시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손 판사와는 그 후에도 인간적인 인연이 계속됐다고 한다.
 
“손 판사가 공직에서 은퇴한 이 후, 새문안교회 장로 시절에 한 번 만나 점심을 했어요. 손 판사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였어요. 그래서 이야기 도중 그 실형언도는 용기가 대단했다는 칭찬을 하니 그 곧은 성품이 어디 변했겠어요. ‘스님 제가 그리 안하면 제가 죽었을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니 당연히 그리 해야죠.’하는 모습에 이런 판사들이 있는 우리나라 사법부는 참 믿음직스럽다고 느꼈어요. 참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요.”
 
사형당한 권갑석의 시신은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시간이 흐른 뒤, 삼중 스님은 박 변호사와 함께 권갑석의 묘에 다녀왔다고 했다.
 
“자신이 변호를 맡았던 사형수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박 변호사는 천주교 신자였어요. 그리고 사형을 언도한 손지열 판사는 기독교 신자였죠. 그리고 저는 불교의 승려입니다. 세 종교를 믿고 있는 이들이 권갑석 사형수를 인연으로 지금도 인간적으로 뭉쳐(?)있지요. 사형수 권갑석은 저 세상으로 먼저 갔지만, 그가 우리에게 맺어준 인연은 아름다운 인간애가 담긴 이야기이지요.”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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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27 [19:36]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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