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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성난군중 돌팔매 맞아죽고싶었다”
<박삼중 스님 대증언>백담사에서 만난 전두환 전 대통령
 
김성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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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82년, 한일양국의 교류는 한창 무르익었다. 양국의 대통령과 수상의 방문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적절하게 재일교포 사형수의 탄원서는 제출되었다. 일본에 살았던 재일교포 손 아무개는 북한관련 사업에 후원금을 건넸다. 이 돈이 사형수라는 죄명으로 쇠고랑을 차게 했다. 고국 방문에 덜컥 실형으로 감옥에 갇혔다. 법을 몰랐다는 변명의 통곡은 통하지 않았다. 재일교포의 인권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들끓었다. 교도소에 관련된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삼중 스님은 총대를 멨다. 뜻을 같이 한 지인들도 뭉쳤다. 전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임박하여 탄원서는 받아들여졌다. 큰 은혜로 사형수 손 아무개는 무기수로 감형되었다. 한일양국의 우호적인 기류에 발맞춘 고마운 마음은 인연으로 이어졌다.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청와대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였다. 삼중 스님은 법무부와 kbs, 서울신문이 공동주간 했던 협회에서 재소자 기여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자로서 삼중 스님은 청와대를 예방했다. 삼엄한 연회장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상자 전원은 부동자세로 머릿속까지 하얗게 긴장할 정도였다. 삼중 스님 역시 처음 대변하는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그러니 변명거리를 찾았다. 올라가도 내려가도 중이라는 신분이 적당했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는 여유로웠다.

어깨 힘을 잔뜩 채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입장은 청와대의 분위기와 제격이었다. 군복만 입지 않았을 뿐 절도 있는 태도는 전직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손을 닿은 순간 모든 게 변했다. 마술사였다. 강인한 대통령으로는 털어놓기 쉽지 않는 인간미를 풍기었다.

“난 교도소 문 앞만 지나가더라도 기분이 나빠요. 뭐라고 감옥을 20년이나 들락거리나요?”

전 전 대통령이 건네는 한마디는 긴장된 얼음판을 깼다. 일국의 대통령이 일반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인양 구수하게 풀어나갔다. 맞는 말을 했다. 교도소 근처라도 지나치면 어딘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게 사람 아니던가!
▲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의 백담사 거주제한은 사실상 정치보복이었다.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서 중이 중값을 하느라 교도소를 다니고 있습니다.”
“스님! 참 좋은 일하네요.”

대통령의 눈매는 소박했다. 그야말로 여론에서 굳어진 선입감을 흔들리게 했다. 대통령은 권위를 찾아 볼 수 없는 순박한 정이 스며있었다.

“범죄의 예방에는 재소자들의 교화가 최선의 길이라고 여깁니다. 재소자들의 교화에 이리 청와대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얼마 전에 각하가 재일교포 사형수를 살려주셔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삼중 스님은 대화를 편하게 풀었다. 경호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는 당황했다. 이상한 중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모습에 황당하다는 듯이 힐끔거렸다. 전 전 대통령의 첫 대면은 삼중 스님에게 구수한 인상을 남겼다. 선입견이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청와대에서의 첫 인상은 참으로 서민적이었다. 그런 여운에 삼중 스님은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 유배(?)에 쫒아 내려갔다.
 
‘사람을 살린 적이 있나요?’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유배 당 했다는 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 매서운 겨울 날씨처럼 전국은 얼어붙었다. 그 뉴스를 접하자마자, 다음날 저녁에 삼중 스님은 백담사에 도착했다. 눈이 하얗게 싸여있었다. 하얀 눈 속에 경호원들은 사방에 박혀 있었다. 지금처럼 대리석 다리가 세워지기 전이었다. 힘겨운 계곡을 건너서니, 내외신 기자들 수백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삼중 스님의 출현에 특종을 잡았다는 듯이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댔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질문들로 정신이 쏙 빠졌다. 정말로 할 말이 없는 삼중 스님은 그저 웃기만 했다. ‘전두환 죄수가 백담사 형무소에 갇혀있으니 스님이 교화하러 오셨죠?’라는 요상한 말들이 오고갔다. 이 시점에서 웃기만 한다면 그대로 신문지의 일면을 장식할 판이었다. ‘아니다. 내가 옛날에 진 빚을 갚으러 왔다.’는 말에 대뜸 시나리오는 거침없었다. ‘돈 받으셨냐?’는 기자들의 특종 놀이판에 한참이나 시달렸다. ‘돈은 무슨 돈! 아무튼 다녀와서 말하자. 정치인도 아니니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는 선심에 기자들은 길을 비키면서 이야기를 키워나갔다.
백담사 안에서도 복병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 입산은 백담사 주지에게는 큰 복(?)인지 큰 화(?)인지 바짝 긴장할 사건이었다. 백담사 주지는 삼중 스님 앞을 가로막았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대통령을 위로해주러 왔으니, 만남을 주선해 주시게나.”

경호실에서 접근을 금지하는 판에, 삼중 스님의 뜬금없는 방문에 주지는 당황할 뿐이었다.
“좋은 뜻이긴 하네만 본인한테 동의라도 얻어야 할 것 같으니, 잠깐만 기다리게나.”

“무슨 동의야! 그냥 밀어 붙이게나.”

경호실의 눈치를 살피던 주지를 따라 삼중 스님은 선방에 들어섰다. 백담사 경내를 맴도는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전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백담사행은 전국을 어수선하게 했다. 사전 준비도 없던 백담사 경내는 더할 나위 없었다. 황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선방의 문풍지들은 죄다 제대로 뚫려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골 잠바를 껴입은 사람은 떨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대통령 신분인 사람이 너덜거리는 문풍지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사형수의 생명을 살려 주신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으러 찾아왔습니다.”

그는 삼중 스님을 처음으로 대하는 듯 정신이 없어보였다. 2년 전에 청와대에서 수상자들 속에서 끼여 겨우 악수만 하였으니, 당연했다.

“저도 사람을 살린 적이 있나요?”

광주 항쟁의 살인마라는 꼬리표가 달린 현실에서 사람을 살렸다는 말에는 반응했다. 그는 이리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었다. 백담사의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면서 삼중 스님의 마음은 편해졌다. 몇 년 전 사형수의 감형은 단지 결재로만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기억하지 못했다. 은혜로 받은 사람만이 기억했다. 산속 백담사에서 그의 형색을 보니 삼중 스님은 안쓰러웠다. 따스한 마음으로 그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백담사는 그야말로 감옥소처럼 변해 버렸다. 불자들의 발걸음도 어지간하면 막았다. 백담사 안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외출도 장사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그는 넋이 빠져있는 듯 멍해보였다. 삼중 스님은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순금 지장보살님을 선물로 내놓았다.

“지장보살님을 몸에 지니면 큰 고통은 피해가실 것입니다. 제가 아끼던 보살님입니다. 대통령님이 일본 방문 직전에 한 사형수를 살리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와대에서 수상자의 신분으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 듯 지장보살을 어루만졌다. 따뜻하게 건네지는 온기에 조금씩 얼굴이 밝아졌다.

“지장보살님을 손에 쥐니 참 마음이 편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그의 순박한 미소는 여전했다. 삼중 스님을 이제야 반겼다. 정신을 놓은 현실에서 삼중 스님과의 이야기에 시간을 내버려두었다. 무려 4시간 동안이나 지나갔다. 달변가인 그는 구수한 이야기로 마음을 달랬다.

대다수의 기자들의 태도에서도 그의 달변가를 입증했다. 전 전 대통령의 욕을 하다가도 그와 만나 이야기를 섞은 다음부터는180도로 변했다. 욕이 사라졌다. 그의 순수한 인간미에 대한 후한 점수는 대단했다. 그 정도로 구수한 인간미가 있었다. 또한 대장부로서의 신의와 우정은 남달랐다.

삼중 스님의 교도소 교화에 맞춘 이야기로 넘어섰다. ‘지방에 시찰할 때면 언제나 지방교도소 소장과 도지사를 함께 불러 면담을 했다. 감옥이 제 기능을 다 해야 사회 안정을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벽을 허물면서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삼중 스님은 적어도 그리 느꼈다. 서로 인간적으로 좋아졌다. 밤 1시가 넘어서야 백담사를 나섰다. 그는 삼중 스님의 배웅하러 따라 나섰다. 날이 추우니 나오지 말라는 만류에도 그는 이순자 여사를 불렀다. 그러면서 눈짓을 했다. 어느새 봉투 하나가 삼중 스님 손에 쥐어주었다.
 
백담사도 일종의 감옥?
 
삼중 스님은 봉투를 받지 않으려 했다. 백담사도 일종의 감옥인데, 갇혀 있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스님! 좋은 일 많이 하시라고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형님과 동생도 형무소에 있습니다. 다들 형무소에 있으니 안됐지 않습니까?’ 이리 소탈하게 주변인물까지 엮으면서 봉투를 쥐어주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교도소 명분에 받았다. 백담사 주지스님도 그 시간까지 기다려 삼중 스님을 마중했다.

삼중 스님은 주지스님에게 절반을 떼서 50만원을 건넸다. ‘저 양반 반찬이나 사드리시게나. 나머지 50만원은 내가 재소자들을 위해 쓰겠네.’ 후문에 그는 누구를 만나서도 건넨 돈 봉투는 일종의 행사였다는 소리가 들렸다.

삼중 스님은 백담사를 다시 찾았다. 그가 보고 싶었다.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몇 달 만에 찾은 백담사 주변은 예전보다는 안정을 되찾은 듯 따사로웠다. 주지스님은 반갑게 맞았다.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왔네!’하면서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그 역시 무척 반갑게 맞았다. 오랜 세월동안 만난 지인들처럼 오고가는 구수한 이야기는 끝없이 넘쳤다.

삼중 스님은 사형수 조봉암선생이 남긴 유언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집행장에서 기록된 유언을 기억해냈다. 어찌 달리 생각해보면 전 전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 내가 사형장에서 생명을 던지는 것은 공산당이라서 죽는 게 아니다. 죄명은 공산당 누명을 썼지만, 이승만과 정권경쟁에서 졌다. 그래서 이승만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법이 나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간첩행위로 실정법을 위반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승만에게 도전했다는 정치보복으로 죽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살인이다.(강하게) 이 정치적인 살인은 나 하나로 족하다. 이 땅에서 끝냈으면 좋겠다!’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정치적인 살인’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그는 자신의 심정을 토해냈다. 누구한테도 해서는 곤란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 자신의 직선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소탈한 마음을 내비치었다. 아무런 걸림돌 없이 여과되지 않는 실연을 했다. 그의 전직은 숨길 수 없었다. 군인정신을 살아 있었다. 그 정신으로 거침없는 이야기에서는 대장부의 면모를 담고 있었다.
“스님! 나도 사실은 백담사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함성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백담사로 왔겠습니까? 내 자신의 결심으로는 단신으로 종로바닥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난 군중들의 돌팔매에 맞아죽고 싶었습니다.”

그가 정치인이라는 명분으로 권력의 맛을 보지 않았다. 정치를 모르던 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정치인이었다면 절대 이런 식의 실연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군중들에게 획을 그어주고자 피투성이로 죽고 싶었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을 돌팔매질로 죽인 다음의 공황을 군중에게 던지고 싶었다. 그 물결은 나 전두환 하나로 정치적인 보복을 끝내기를 바랐다.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이런 수난을 겪지 않기를 원했다.’ 삼중 스님은 기억했다. ‘그 분이 이런 의중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내 기억에서는 군인 정신으로 처절한 심정을 토해 냈다.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은 통했다.’
두 사람은 마음을 꺼내보였다. 이런 마음에 삼중 스님은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나폴레옹 황제가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한 후 죄인이 되었다. 섬으로 유배가기 직전, 한 친구가 나폴레옹을 찾았다. ‘자네는 참 불행하다. 세계를 1/3을 가졌다가 전부를 잃었다. 그것도 모자라 섬으로 유배를 가다니 참 불쌍하다.’ 친구의 동정에 ‘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 내 일생을 통해서 오늘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고 나폴레옹을 대답했다. 친구는 황당하여, ‘무슨 소리냐? 너 약간 돌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세계를 재패했던 시절에 내가 미쳐있었다. 지금은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보인다. 내가 보이니 나를 알겠다. 내가 내 자신을 아는 순간이 진실한 순간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난 권력의 광대였다.’는 뼈있는 이야기로 서로의 마음을 녹였다. 그날 밤도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삼중 스님은 백담사를 떠났다.
 
일본 기자 다치카와의 보도
 
백담사 주지스님이 삼중 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백담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해 놓고 왜 그리 신문지상에 떠드느냐? 전 전 대통령께서 불쾌하게 생각한다.’ 삼중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불쾌하게 생각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신문지상에서 떠드는 이야기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삼중 자신이 백담사를 오고 간 사실뿐, 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섞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담사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그는 여전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불쾌한 구석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삼중 스님은 금강경 법문을 강의했다. 여러 좋은 이야기에도 그는 이상한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 해 8월 추석에 그의 비서가 삼중 스님을 찾아왔다. ‘3백만 원’의 돈 봉투를 주었다. ‘좋은 일하는데 쓰라는 인사’라는 명목에 삼중 스님은 백담사로 인사하러 갔다. 평상에 앉아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반갑게 맞았다. 그제야 요상한 냄새를 풍기는 말을 비췄다. ‘스님! 이러쿵저러쿵 거리는 사람들이 많던데, 내가 한마디 했어요. 그 분은 원효대사 같은 스님이다. 어려운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가지 않는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는 스님이니 원효대사로 칭해도 좋지 않습니까?’ 그날도 역시 밤 1시쯤 백담사를 내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기자가 연락을 해왔다. 잘 알고 지내던 여가수의 남편을 통해서 일본기자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를 소개받았다. 전 전 대통령의 취재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인의 부탁이라 거절하지 못하였다. 삼중 스님이 백담사만 다녀오기만 하면 신문기자들은 들쑤셨다. 삼중 스님은 마치 전 전 대통령과 잘 지내는 사이처럼 기사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니 일본 주간지의 기자 역시, 삼중 스님을 통하기만 하면 전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주선해 줄 것을 믿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삼엄했던 시절인지라 어느 누구도 백담사의 통행은 자유롭지 않았다.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의 요청은 당연히 묵살되었다. 삼중 스님에게 전 전 대통령을 만난 이야기의 취재로 돌아섰다. 그래서 삼중 스님은 지금까지 전 전 대통령과 만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일이 크게 팡 터졌다. 일이 그리 터지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취재에 응하지 않았을 것을. 일본기자는 취재에 응해준 답례비로 20만 엔을 주었다. 참 큰돈이었다.
 
정치보복 당했다는 기사
 
사건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더욱더 커다랗게 번졌다. 일본 기자가 쓴 기사는 마치 전 전 대통령과 직접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여 졌다. 기사의 귀퉁이에 삼중 스님의 조그마한 사진이 실렸었다. 이 사진은 기사를 끝까지 읽지 않는 독자들의 눈에는 띄지도 않았다.  기사는 전두환의 말을 인용,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정치보복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동경 특파원들은 이 같은 일본 신문기사를 인용해서 서울로 기사가 보냈다. 일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전 전 대통령을 만나니 정치보복 당했다’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대권을 친구인 노태우에게 넘겨주었는데도 정치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말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청와대가 바삐 움직였다. 삼중 스님도 신문에 난 제목을 보니 놀랐다. 백담사도 벌컥 뒤집어졌다. (계속)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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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08 [22:16]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선진조국 19/09/02 [15:42] 수정 삭제  
  말이나 못하면 법을 어기면 그 법 이상의 형벌을 가해서 사회정화의 본을 보이겠다더니......사형선고 받고도 살아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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