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독살' 여성간통 사형, 억울한 사형수

박삼중 스님 대증언, 잊을 수 없는 사형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0/03/07 [16:09]

'남편독살' 여성간통 사형, 억울한 사형수

박삼중 스님 대증언, 잊을 수 없는 사형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 입력 : 2010/03/07 [16:09]
2009년 3월 초, 필자는 삼중스님을 처음으로 언론사 사무실에서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스님은 평생을 재소자 교화로 보냈다. 600명 넘는 사형수들은 만났던 스님의 얼굴은 참 편안하게 보였다. 삼중 스님은 그토록 많은 사형수들의 한 서린 말을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주었으며, 위로해줬다. 스님은 마음에서 꾸밈이 없이 느낀 그대로 필자에게 말해줬다. “스님, 큰 복을 지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원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형수들을 만난 덕분에 좋은 인연들을 이 생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런 슬픈 인연(?)들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응대하며,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삼중스님은 요즈음의 자신이 거의 ‘장애인’수준에 가깝다고 말했다. 육신이 점점 쇠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빨은 거의 다 빠져 몇 개만 남았고, 귀의 청력 또한 거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다닌다고 했다. 더욱이 기억력이 많이 쇠하여 기억들이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스님의 소원은 자신의 기억이 더 많이 사라지기 전에, 그 동안 만났던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사형수들을 만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이었죠. 그러나 사형수도 그 이전엔 한 부모의 자식입니다. 내 눈에 비쳐진 그들은 단지 내 자식들처럼 안쓰러웠어요. 요사이 살인을 계획적으로 저지른 사악한 강호순은 정말 용서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내가 만났던 그들은 인간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서 많이도 울었던 사형수들이었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적응하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자식들이었죠. 제게 아직도 남아 있는 적은 시간일지라도 마지막까지 그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그 못난 자식들이 제게 남겼던 뼈아픈 뒤안길을 세상에 모두 내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면 누가 압니까? 단 한 명의 자식이라도 또 뼈골 깊은 한을 품고 하루에도 몇 번 씩 죽어야 하는 사형수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이 생에서 큰 은혜를 또 다시 받는 복 많은 사람일 것입니다.”
 
▲ 박삼중   스님
이렇게 말하는 스님은 잊지 못할 사형수 한춘도의 한을 꺼내, 필자에게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삼중스님과의 인터뷰로 필자가 작성한 사형수 한춘도의 스토리이다.
 
삼중스님 증언 '억울한 사형수'
 
“23년 전에 만났던 사형수 한춘도의 사건을 보면서, 한마디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된다.’는 충고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 여자와의 시한폭탄 같은 악연을 만나 억울한 사형수로 죽은 한춘도는 지금도 가끔 내 앞에서 절절히 울고 있습니다.
 
아마도 1996년 경, 저는 한 3개월 남짓, 부산 구치소에서 피를 토하듯이 악을 쓰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형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어요. 부산 구치소에 있는 한춘도와 같은 감방에 있다가 출소한 사람들마다 제게 와서 부탁을 했습니다. ‘스님, 춘도를 만나주세요. 내가 들어도 너무나 억울해서 제가 스님을 뵈러 이곳까지 왔지 않습니까? 춘도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출소자마다 제가 주지로 지냈던 부산 자비사까지 찾아와서 그의 억울함을 하소연했습니다.
 
한이라도 들어줘야겠구나!
 
그 당시는 제가 ‘한 사형수의 생명을 살렸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터라. 그러니 사형수들마다 저를 만나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 놓으려고 수소문해서 저를 많이 찾아 왔습니다. 무척이나 바쁜 시절이었죠. 한춘도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미 집행만을 남겨 놓은 사형수를 만나 보았자 내가 도와 줄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한 3개월이 지났어요. 출옥하는 사람마다 하도 찾아오던 어느 날 ‘그래, 이리도 억울하다고 하니 내가 가서 그 한이라도 들어주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산구치소에서 한춘도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이 놈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구나.’ 라는 믿음이 첫 만남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은 범죄자와 사형수들을 만났습니다. 사형을 언도 받은 사형수들은 마음을 텅 비우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밝힙니다. 정말 제가 들어도 ‘한춘도는 한 여자와의 악연으로 사형수가 되었구나.’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 면회실에서 함께 한춘도의 통곡에 찬 말을 들었던 교도관에게 제가 물어 보았어요. ‘저 사람 얘기 믿음이 가나요?’ 했더니 ‘네. 스님, 억울하네요.’ 교도관도 한춘도의 억울함을 인정했습니다.

속된 말로 ‘뺑뺑(춤)이 잘못 돌리다가 넥타이공장(사형)에 간 사나이’ 한춘도가 악마를 만난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건이 일어 난 당시, 한춘도는 한 40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버스 운전을 했습니다. 부인도 있고, 애들도 딸아이가 그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 그 밑 아들이 중학교 2학년쯤 됐을 겁니다. 내가 그 부인과 자식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내 기억이 정확할 겁니다.
 
버스 운전이 없는 쉬는 날에 무료해진 한춘도는 카바레에 갔습니다. 카바레에서 한 여자를 만나서 춤추다가 깊은 관계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한춘도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는 남편이 없는 과부라고 했고, 나도 홀아비라고 속이고 둘이 사귀었어요. 그 여자는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엄청 좋아해서, 내가 이 여자를 좀 좋은 방향으로 순화시켜야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자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사형수들의 사건에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를 그냥 흘러 보낸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문제가 될 만한 싹수는 처음부터 끊어버려 문제를 키우지 말아야 되는데, 사형수들은 이 문젯거리를 그냥 남겨두고 지나갑니다.
 
둘은 사실상 내연관계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동에서 여자의 남편이 돌아 왔다고 하더군요. 여자 남편이 돌아와 보니, 생명을 담보로 3년 동안 죽도록 일하고 송금한 돈은 이미 다 쓴 상태였고, 자기 여편네가 바람이 난 것을 첫눈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남편도 무슨 죄가 있습니까? 자기 자식들 잘 키워 볼 욕심에 그 뙤약볕에서 일하고 온 남편 아닙니까? 그래서 남편은 여자에게 매질을 하게 되고, 이 여자는 본래 알코올 중독에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도 맞다 보니 본 남편을 죽일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한춘도도 참 억울하고 불쌍하지만, 자기 부인 손에 죽은 그 남편도 얼마나 불쌍하고 억울합니까? 또 강조하지만 ‘사람이 사악해지니 이리도 사악해지나’라는 생각으로 남자들은 여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남편이 중동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한춘도는 여느 때처럼 여자집 안으로 쓱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방 앞에 남자신발이 있어서 깜짝 놀라 밖으로 뒷걸음치면서 나왔다고 합니다.
 
싸이나를 구해준 게 악연
 
그 여자에게 연락해 봤더니, 글쎄 그제야 남편이 중동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이 여자의 행동을 보면 분명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때부터 한춘도가 여자를 피하자, 여자는 한춘도를 계속해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찾아와서는 한춘도에게 꿩 잡을 때 사용하는 독약인 ‘싸이나를 구해 달라’고 말했답니다. 이 싸이나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싸이나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더운 나라에서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친정 근처 남해에 내려가서 꿩이나 잡고 살려 한다.’하며 6번이나 찾아 와서 졸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는 어디서 싸이나를 파는 줄도 모르는데 나에게 왜 사다 달라고 하느냐?’고 계속 거절했답니다. 6번이나 끈질기게 찾아오는 여자가 지겹기도 하고, 또 끝낼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싸이나를 구해서 그 여자에게 주었답니다.
 
싸이나를 구해 여자에게 주었다는 이 대목이 사형을 당하는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어떤 사람들은 말해요. ‘아니, 왜 싸이나를 사다 줘요?’ 맞는 말이죠. 그래요. 보통 사람들은 맺고 끊는 심지가 있어서 이런 문제가 되는 싹수는 사전에 아예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한춘도는 뭣 때문인지 문제의 싹수를 끊지 못했어요. 결국 그 여자는 싸이나를 음식에 타서 남편을 죽였습니다.
 
사건이 이리 되었으니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하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 당시 간통죄도 아주 무섭게 다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부남과 간통한 여자가 자기 남편을 독살했으니, 이 얼마나 흉악한 사건이겠습니까?  그래서 한춘도도 경찰에 붙들려가서 며칠 밤을 새며 조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한춘도는 반복되는 심문에 계속해서 말했답니다. ‘여자가 꿩 잡는다고 구해 달라 6번이나 매달려서 구해준 것뿐이다. 나는 그 싸이나로 남편을 죽이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정말 이 말이 사실이죠. 여자도 한춘도의 말에 맞는다고 동의 했답니다.
 
며칠 동안 밤새워 한춘도와 여자를 대질 신문하고 협박 속에서 조사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더 이상 추궁할 건더기가 없자, 한춘도에게 이제 그만 나가보라고 했답니다. 경찰서 조사를 받던 날, 한춘도의 고1짜리 딸내미가 주판 경시대회에서 1등으로 신문에 사진이 크게 나왔나 봐요. 조사하던 경찰관이 한춘도에게 ‘딸내미 하나는 잘 났네. 딸내미 봐서라도 앞으로 정신 차려! 풀어준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잘못했으면 넥타이공장에 갈 뻔 했잖아!’하며 충고했다고 합니다. 막 경찰서 문으로 걸어 나오는데, 한 경찰관이 한춘도에게 ‘잠깐만 기다려! 내가 더 조사할 게 있으니 좀 앉아 있어.’하더니 자기 상사에게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요청하더랍니다. 그래서 한춘도는 이제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맥 풀린 채 앉아 있는 동안, 사건이 뒤바꿔진 것입니다.
 
정부와 짜고 남편독살했다?
 
그 경찰관은 여자가 정부와 짜고 남편을 같이 죽였다는 큰 범죄사건으로 키울 욕심에 모든 진술을 뒤집어 놓은 장본인입니다. 경찰관 이름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밝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디선가 살아 있겠죠. 상사에게 시간을 얻은 경찰관은 여자를 가두어 놓은 유치장 쪽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내가 추측하건데 아마도 경찰관이 여자에게 ‘너는 사형을 당한다. 저 놈은 살아서 걸어 나간다. 내가 사는 법을 알려주겠다.’하니 이 말을 들은 여자는 가만히 보니 저 한춘도 때문에 자기가 남편을 죽인 꼴이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그래서 지칠 대로 지친 여자는 매달렸을 거예요.
 
‘한춘도가 약을 가져다주고 남편을 죽이라고 시켰다 하면 너는 10년만 살면 된다. 사형은 받지 않는다.’하니 분명 그 여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거라는 추측이 듭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볼펜으로 진술서를 썼습니다. 이 전에 작성한 진술서는 찢어버리고 새로이 진술서를 쓰게 해서 360도로 상황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뒤집어진 진술서를 한춘도가 봤으니 얼마나 펄쩍펄쩍 뛰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여자를 데리고 나와서 다시 대질 신문을 시키더랍니다. 악마로 변한 여자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네가 약 갖다 주면서 남편 죽이고 같이 살자고 했잖아!’하면서 길길이 날뛰더랍니다. 참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요.
 
지금도 검찰 심문은 무섭습니다. 그 당시는 더 굉장했어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개 패듯이 때리고 여자는 머리채 잡히는 것은 다반사이고, 사람 취급을 안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춘도와 여자는 살인죄를 저지른 중죄인인데 오죽 했겠습니까? 결국 한춘도는 1심에서 무기, 여자는 사형이 구형되었습니다. 한춘도에게 언도된 무기형은 그래도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조금이나마 미진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 경찰관에 의해서 뒤집어진 진술서와 한춘도가 피를 토하듯이 외치는 주장에서, 조금은 참작되어 구형이 무기형으로 내려진 것일 것입니다.
 
항소심에서 결백하다 소리쳐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여자를 또 다시 만나, 두 번째 악연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항소심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났으니, 참으로 기막혀요. 본래 공범들은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로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법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을 받으러 가는 운송차량에서 한춘도와 여자가 한 차에 태워진 것입니다. 물론 교도관들의 잘못으로 그리 되었으니 누구한테 탓할 수 있겠습니까? 운송 차에 같이 탄 여자를 보고 한춘도가 ‘왜 그리 말했냐? 내가 왜 무기를 받아야 하냐? 내가 죽이는데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졌더니 ‘할 수 없었다. 경찰관이 시켜서 거짓말을 했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한춘도는 다시 피가 거꾸로 돌면서 자신이 결백하다고 항소심에서 고함쳤을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판사들의 권위의식은 대단했습니다. 한춘도는 결백을 주장하려 하니 거의 난동을 피운 결과 밖에 남는 것을 없었을 것입니다. 의자를 부수고 고함을 치고 욕을 하는 중죄인을 항소심에서는, 법정태도 불손죄가 추가되어 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대법원에서는 접수된 서류만 가지고 심사합니다. 99.9%가 서류로만 사형을 판결 내립니다.
 
저는 한춘도의 집행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법무부에 찾아 갔습니다. 사형 집행명령은 검찰 2과장이 순번을 뽑아 집행일을 결정합니다. 요직이죠. 사형 집행 서류를 가지고 있는 권한, 그 사람만 잘 설득하면 집행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춘도라는 이름을 듣고 기록을 찾아보더니 담반에 ‘이 삶이 무슨 죄를 지은 줄 알고 있나요? 스님에게 뭐라 하나요? 아주 죄질이 나쁩니다. 죄질이 나빠서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류에는 이미 한춘도가 1차로 죽는 악마로 되어 있었습니다.
 
너무도 억울해서 궁리 끝에 부산구치소를 드나드는 신부님을 찾아 갔습니다.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으로 가서 억울한 사형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 여자에게 고해를 받아 주십시오. 그것으로 춘도의 재심을 요청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십시오.’하니 신부도 황당하나 한번 여자를 만나보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교도소에서 천주교 신자로 개종한 상태였습니다. 신부님이 여자의 고해성사를 듣고 와서는 ‘스님, 스님이 원하는 게 뭔지 압니다. 안되었습니다.’했습니다. 이것도 내 추측인데 ‘같이 죽어야 된다. 결과적으로 춤추고, 돈 썼고, 그러니 저승길도 같이 가야 한다. 같이 죽고 싶다.’는 아마도 재정신이 아닌 여자가 이렇게 고해성사를 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억울합니다. 스님’ 통곡
 
‘억울합니다. 스님’ 통곡하는 한춘도에게 ‘그래, 누구라도 억울한 상황이라는 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여자 하나 잘못 만나서 너도 책임지고 너도 죽는구나.’하며 같이 울었습니다. 사형 집행만 남아 있는 사형수에게는 재심을 한다해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한춘도가 마지막 소원을 말하더군요. ‘스님, 애들 엄마가 한 번도 면회를 안 옵니다. 애들도 면회를 안 오구요. 딴 여자와 바람나서 살인까지 한 아비를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스님이 내 자식들을 만나주세요. 이 아비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애기 좀 해 주세요. 내가 못된 여자와 바람나서 춤추고 관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억울하게 사형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애들에게 꼭 좀 해주세요.’
 
한춘도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 줄 요량으로 한춘도의 아내와 큰딸, 아들을 절에 불렀습니다. 다행이 한춘도의 아내가 불교신자였습니다. 절에 온 한춘도 가족에게 억울한 사형수가 썼던 책 한권을 주었습니다. 책을 주자마자 아들놈이 벌떡 일어나면서 ‘그런 얘기는 듣기도 싫습니다.’하고 나가려고 하고, 딸애는 울면서 ‘엄마 가자’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 이야기를 우선 들어봐라. 네 아버지는 죽는다. 나보고 살려달라고 했는데. 이 시간에도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 갈 수 있다. 그렇다. 나쁜 짓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내가 뭐가 답답해서 설득하겠느냐? 살인만은 안했다. 당사자 입장으로 봐라. 고민이 바로 그 부분이다. 용서받지 못하지만, 진실은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설득을 장시간 하니 한춘도의 아내가 서럽게 울더라고요. ‘스님,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습니까?’하는 말에 ‘실체적인 진실은 한춘도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만은 부인과 자식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바쁜 사람인데 뭐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부인은 계속해서 울면서 ‘스님 말씀대로 면회를 가겠습니다.’ 딸과 아들도 ‘스님, 우리가 잘 몰랐습니다.’하며 온 식구가 펑펑 울고 갔습니다.
 
그 다음 면회에서 한춘도는 ‘스님, 가족들이 면회 와서 풀고 갔습니다. 이젠 웃으면서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하면서 면회실에서 나가는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한춘도는 여자와 같은 날, 같은 부산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사형수 20명을 한꺼번에 집행했던 그 날, 여자와 남자가 같은 날에 사형장에 끌려갔습니다.
 
지금 다시 물어 와도 한춘도 사건은 한 경찰관이 한 생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경찰이 있었어요. 살인행위였죠. 범인이 아닌 줄 알면서 경찰관이 사건을 만들어서 죽인 것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항의 해온다면,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하면서 여자를 만나서 진술을 뒤집는 그 경찰관은, 범인이 아닌 줄 인지해 놓고 사건을 만들어간 사건입니다. 큰 사건을 만들겠다는 그 아집이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게, 어디 이런 경찰관이 세상에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sungae.kim@hanmail.net

*필자/브레이크뉴스 논설위원. 수필가. 이화여대 국제사무학 학사, 서강대학교 국제경제학 석사. 경희대학교 국제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인덕대학 전 전임교수. 경인여자대학 전 전임교수. 저서로 '현대비서 실무' '영어 전화응대(한국 금융연수원 공저)'



 
광고
광고
박상중 스님의 잊지못할 사형수 이야기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