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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앞둔 사형수가 스님에게 보내온 편지
 
김성애 논설위원

경기도 군포우체국(사) 20-724 번지의 이규상으로부터 박삼중 큰스님 앞으로 묵직한 편지 3통이 왔다. 10년 동안 서울구치소에 있는 사형수 이규상은 편지에 자신의 글을 적었다. 그가 뿜어내는 참회, 용기, 노력, 그리움, 기도, 희망을 느끼면서, 우리의 인생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에 젖는다. 구치소 안의 그의 하루를, 그가 지냈던 10년간의 면면을 느낄 수 있다. 산다는 게 무엇인가? 사형수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편지문을 그대로 지상중계한다. 다음은 그가 삼중스님에게 보내온 편지글의 전문이다.
 
이규상이 보내온 편지문
 
글을 쓴다는 것이 제에게는 참 어색하고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나 꼭 한 번은 써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하여 용기를 내어봅니다. 사형수라는 신분으로 세상이 마지막으로 부여한 여분의 삶을 부여잡고서 부끄러운 과거를 돌아보고 뜨거운 눈물로 참회하며, 소중한 시간들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시’라는 표현을 통하여 틈틈이 적어 두었다가 지금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무엇이 올바른 삶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 배움마저 짧아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한 사형수가 벼랑 끝에 서서 양심으로 쓴 글이라 여기는 넓은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강도살인죄로 사형수
 
▲ 박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저는 1999년 9월 강도살인죄로 서울구치소에 들어와 200년 5월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9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남겨놓은 빚더미에 시달리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보따리 행상으로 근근이 생활하셨고 매일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야 했죠. 암흑 같은 삶속에서 자연히 저는 방치되었고, 자라면서 비틀린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고 희망도 꿈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의 모습은 유년시절부터 예견된 결과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구절절 지난 과거를 꺼내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글을 씀에 있어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저를 조금이나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년시절을 적어보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올해로 9년 연수로는 10년의 세월이 흘러가네요. 이곳에 들어와서 몸과 마음이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 온 그 해,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살인마라고 하고, 같은 수용자들도 살인마라며 피할 정도로 저의 몸에서는 살기가 넘쳐흘렀으니까요.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저 또한 정신이상으로 마음은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고운 눈으로 바라봐 주지 않을 때 자비의 손을 내민 사람은 교정교화과 유화영 계장님이었습니다. 옥방 한 구석에 쭈그리고 멍하게 앉아 있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쇠창들 사이로 불교경전인 지장경을 넣어 주셨습니다. “종교를 떠나 좋은 경전이니 한 번 읽어봐.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 건강을 챙겨야지. 참회해야 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도리야!”하시며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분이셨습니다.

그 땐 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저 또한 다른 수용자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지장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너무도 무서운 겁니다. 지장경 내용은 지장보살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 사후세계인 천상과 지옥을 다니며 한탄하는 내용과 인과응보를 표현한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공포 소설도 아니었는데도 왜 그리도 무서운지 앞으로 제가 겪어야 할 지옥의 고통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 두려움 속에서 읽어야만 했던 경전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어서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할이지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불교는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남들은 모두 내가 싫어 한상에서 밥도 함께 먹으려하지 않는데 저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람들의 눈을 한 번도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거울에 비친 나의 눈조차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라 할까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다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조차 두려웠지요. 그 당시에는 사형선고를 받으면 짧으면 6개월에서 3년 안에 사형집행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해 있을 때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우여곡절 끝에 ‘이제 세상과 이별하는구나!’하는 마음에 평화 아닌 평안이 잠시 찾아오기도 했지요.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종교에 귀의하게 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본연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저 또한 극도의 불안 속에서 불교와 인연이 되었고 마음공부에 심취하였지요.
 
천일기도 중 어머니 뇌출혈
 
마음공부를 하면서 제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살생업을 지어 무간지옥에 떨어질 저에게 진심으로 참회할 기회를 준 사회에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여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집행장으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어린아이처럼 착한 심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공부를 할 것입니다. 허락되는 한도 안에서 주위에 힘들고 어려운 수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지은 죄업을 참회의 삶으로 티끌만큼이나마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형수가 된 후 천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천일기도를 다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무사히 천일기도를 끝내고 벌써 3차 천일기도 중이네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차 천일기도 중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시는 바람에 너무도 죄스럽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였습니다. 천년만년 저의 곁을 지켜 주실 거라 믿고 철없이 칠순 노모께 모진 말을 하고 노모의 가슴에 상처 내는 짓도 많이 하였습니다. 이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불효인지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만하니 그만 노모께서 세상 버리시는 바람에 피를 토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감싸주시던 노모를 그리며 그 당시 마음을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살아생전 당신의 모습에서 태산을 보았는데/이리 떠나시고 나니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고난 속에 저를 길러 불자 반드시 후에/후회도 미련도 없이 세상 버리셨습니까./다음 세상에 오실 때에는 큰 보살님으로 오셔서/만중생의 빛이 되소서. 어머니.(‘어머니’의 전문)”

다른 사람들과 한 방을 쓰다 보니 마음 놓고 울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 잠든 시간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꺼이꺼이 울었죠. 징역생활이란 마음대로 즐거워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수용자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기 때문이죠. 옛 말에 부모 돌아가신 후에 자식이 철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밀려오는 슬픔과 후회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드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저로 인하여 슬퍼하고 아파했을 피해자분들께서 얼마나 힘들어 하였을까를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고 한 달여가 지난 후 어머니께서 접견을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보고 살인마라고 모두 너를 용서할 수 없다카드라. 다들 그리 말해도 나는 네 어미이기 때문에 너를 용서한다. 그러니 너는 다른 생각 말고 앞으로 어미만 보고 그 동안 지은 죄 달게 받고 참회의 삶을 살아라. 알아 들었제! 내 부산에 계시는 큰 스님께 갈거니 깐 그리 알고 어미가 있으니 걱정 말고 착하게 생활하거라. 응!”
 
어머니의 작은 등이 태산처럼
 
이런 말씀을 하시고 접견장을 빠져나가시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머니는 참 대단하시다.’ 돌아서 나가시는 어머니의 작은 등이 그 때 태산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모란 자식을 나아 먹이고 입히고 길러 세상의 한 부분이 되게 하는 존재 바로 신이구나! 살아있는 생불이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거칠고 황폐해진 저를 순화시켰습니다. 한 때 짐승만도 못했던 제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언제인가부터 부끄럽게도 스님소리를 들을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천일기도를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였습니다. 백일씩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였지요. 그 당시 기도를 하지 않고 헛된 삶을 살고 있었다면 아마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종교의 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빛을 발하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 품속이 참 포근함을 느꼈습니다./조금씩 자라면서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았습니다./성인이 되어 삶에 허덕일 때 어머니의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한지 알았습니다./세월이 흘러 당신의 등이 굽을 때 아련한 슬픔을 알았고/영원히 이별한 지금 얼굴가득 주름진 당신의 미소가 그립습니다. 어머니!(‘어머니’의 전문)”
 
기도는 잠자던 재능을 깨우고
 
슬픔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의 불심은 깊어갑니다. 진정한 참회가 무엇인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존재하게 하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며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곤 하였습니다. 지장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때 어린아이들이 백사장 모래위에서 놀다가 손가락으로 부처님 상을 그리고 한 번 합장만 하여도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우연이 비루를 바라보다 지장경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비누불상을 조각하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누조각을 시작하였지요. 처음에는 조각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솜씨가 늘어 지금은 조각가가 되는 게 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떠한 인연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부터 시작이지요. 진심으로 기도를 하다 보니 저의 몸 안에 잠자던 재능들이 깨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기도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교도관 세 명이 하얀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왔습니다. 문을 열며 ‘나와! 집행이다!’하는 꿈을 꾸고 놀라서 잠을 깬 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마 그 때 사람들이 ‘저 사형수 미쳤다!’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 꿈을 꾼 다음부터 저는 언제 집행될지 모르니 오늘 이 시간부터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려니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더군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삼천 배를 하였습니다. 오체투지를 하며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정말 세상이 다 무너지는 줄 알았죠. 그 때 삼천 배를 우여곡절 끝에 끝낸 후 감정은 대성통곡을 한 후 후련한 마음과 잃어버렸던 길을 찾아 기쁜 마음 그런 감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느낌을 글로 남겼지요.

“오른쪽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옵니다./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가슴이 터져 버리듯이/숨이 차 허덕거립니다./부처님 앞에서 절하기를 수백 번인 데/한 번 절 할 때마다 세상이 무너질 듯 고통이 따라옵니다./고통의 눈물이 참회의 눈물이/땀방울과 함께 방울방울 떨어집니다./쓰리고 따갑고 아련한 아픔이/왼쪽 무릎에도 느껴지는 걸 보니/피가 나는 모양입니다./저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현상들을/부처님께 모두 맡기오니 알아서 하소서.(기도)“
 
마음속의 부동심은 굳건히
 
불같은 신심 속에서 마음속에 부동심이 자리를 잡아가고 슬픔도 즐거움도 삶에 한 형상이란 걸 깨달아 갈 때 천일기도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천일기도 중 많은 일들이 생겼지요. 함께 공부하던 사형수가 무기수로 감형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또 대한불교 교육통신 전문대학에 등록을 하였고 표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또한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인권이라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어 사형폐지론이 부각되었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지요.

천일 간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를 하였더니 기도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고, 나약한 마음 강하게 하는 힘이 있고, 그릇된 마음 바로잡아주는 힘이 있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란 삶을 살며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깨끗한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홀로 모든 아픔 견디어가며/힘겨운 몸부림으로 참회하게 하소서./깨어지고 부서져 산산이 흩어지고 난 후/텅 빈 곳에서 참 자유를 노래하게 하소서./험한 삶을 부여잡고 통곡할 때/당신이 자비의 손으로 저를 어루만져 위로하소서.(‘기도’의 전문)”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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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16 [22:17]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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