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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때려죽인 딸, 감방에서의 통곡
<박삼중 스님 대증언>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
 
김성애 논설위원

삼중스님의 절에는 편지들이 쌓인다. 마음이 담긴 편지들은 삼중스님의 마음을 적신다. 5년 전, 부산 구치소에서 보내 온 한 여인의 편지 봉투에는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편지에 담긴 사연은 기막혔다. 딸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는 모녀의 피눈물이 편지에 녹아 있었다. ‘내가 남편을 먼저 죽였어야 했는데, 딸이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였다. 내가 주범이니 딸을 살려 달라!’는 사연은 가정폭력이 범죄 주범이었다. 부산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모녀의 애간장은 새까만 재로 변한 사연이었다. 1심에서 어머니는 5년, 딸은 15년을 구형받았다. 여성단체는 구명운동을 했다. 가정폭력에 낳은 사건의 밑바닥을 참작하지 않는 구형을 항의했다.
 
삼중스님은 이 사건과 관련, 편지를 받은 인연으로 구명운동을 거들었다. 편지에 담긴 모정에 이끌려 삼중스님은 부산구치소를 찾았다. 면회실에서 통곡하는 어머니의 한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자신이 먼저 남편을 죽였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을 뒤늦게 한탄했다. 자신이 못나서 착한 딸을 이리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어머니는 이미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간호사인 딸이 살인자가 된 사연에는 비틀어 진 가족애가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은 비극적인 살인사건을 일으켰다.
 
간호사 딸이 존속살인자로
 
“삼중스님! 우리 딸을 우선 한번 만나 주세요. 꼭 만나보아 주세요! 보시면 얼마나 예쁜지 놀라실 겁니다. 마음씨까지 비단결처럼 고운 딸내미입니다. 결혼이 오가는 딸을 내가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착한 애가 이 못난 어미를 살리기 위해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어미로서 이 세상을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스님! 스님! 내 딸을 살려주십시오.” 끝없는 통곡에 목이 쉰 어머니는 삼중스님에게 매달렸다.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애끓는 어머니의 통곡에 이끌려 삼중스님은 딸을 면회실에서 만났다. ‘정말 고운 처자였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는 예쁜 처녀가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비극적인 존속살인자로 변했으니 얼마나 비통한 일입니까? 내가 보아도 가냘픈 딸은 아직도 충격 속에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습니다. 그 충격이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존속살인에는 언제나 가정폭력이 깊숙이 깔려있습니다. 한평생 얻어맞고 사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자식들이 품은 분노는 실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죽이려는 아버지를 향해 휘두른 방망이는 살벌한 살해흉기가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딸은 살인자로, 어머니는 사체훼손자로 구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감동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그 집 아들이었습니다. 참 대단한 놈이더군요. 어머니와 여동생의 옥바라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삼중스님은 면회실을 나오면서 어머니와 딸에게 영치금을 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들이 삼중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스님! 어제 제 어머니와 동생에게 영치금을 넣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만 부탁 말씀을 드리려고 오늘 제가 전화를 올렸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영치금을 넣어주지 마십시오. 제 어머니와 동생은 제가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니 절대 영치금은 넣지 말아 주십시오. 제 부탁을 꼭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당당한 아들의 목소리에는 강인한 성격을 내비치었다.

삼중스님은 그런 가족의 애틋한 정에 이끌렸다. 그래서 전화의 목소리를 만나 보았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들이었다.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아들 역시 아버지의 죽음이 낳은 충격에 휩싸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삼중스님에게 심정을 털어 놓았다. ‘내가 죽였어야 했는데, 동생이 죽였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내 손으로 그리 했을 것이다. 내 동생과 어머니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잘 보살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아들을 죽이고 있었다.

“큰일이 벌어진 거예요. 아들이 더 큰 일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어머니나 여동생보다 감옥 밖에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이미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대로 두면 자살을 할 상황에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이대로 둔다면 곧바로 내일이라도 자살을 한다면……. 이 생각까지 미치자 정말 큰 일이 벌어지겠더군요. 만약 아들이 자살이라도 한다면 어머니는? 물론 100%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동생까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아들놈을 살리려면 우선 감옥에 있는 어머니라도 감옥에서 꺼내주어야 했습니다.”

다음 날, 삼중스님은 사건을 책임지고 있는 고등법원 재판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안면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행히 삼중이라는 이름 덕에 재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사건의 내용을 가족들 편에서 소상하게 풀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감옥 안팎에서 가족 3명 모두가 자살이라는 참상이 일어 날 수 있다는 불안한 예감을 털어 놓았다. 그러니 제발 어머니만이라도 가석방이라도 해달라는 요청을 정중하게 했다. 일이 손쉽게 풀렸다. 고등재판장은 어머니를 집행유예로 가석방해 주었다.

“한 번 만나 부탁했는데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참 좋더군요.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부드럽게 좋은 일을 한 셈입니다. 판사를 딱 한 번 만났습니다. 이리 보람 있는 일을 거든다는 게 이 세상에 사는 맛을 더해줍니다. 그 가족들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왕래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가정 형편도 차즘 나아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논 변두리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떡을 만들어서 절을 찾습니다. 참 기쁜 마음으로 떡을 한 입 먹는 맛에 행복을 느낍니다. 좀 더 나아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합니다.”

아들은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여동생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다. 삼중스님은 이 가족과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삼중스님은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방송이나 신문에 그들의 실명이라도 밝혀지면 아끼는 가족에게 해가 될까 걱정했다. 안정된 생활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80세 아들과 100세 아버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가정폭력은 비참한 비극을 낳습니다. 가정의 아름다운 풍선은 휘두르는 폭력에 쉽게 터져버립니다. 가족에 얽힌 유사한 사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 번은 신문에서 아주 비극적인 할아버지의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80살인 아들이 100세인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머니 묘소에서. 80살에 살인자가 된 할아버지를 만나러 전라도 고흥 경찰서를 찾아 갔습니다.”

삼중스님은 경찰서 면회실에서 누추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깡마른 노인네의 눈물을 보았다. 종교를 묻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제 손을 부여잡으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너무나 깡마른 80 노인네의 눈물에 저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음에 담긴 사연을 털어 놓더군요. 60이 막 넘어서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혼자가 된 노인네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으니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다른 형제들이 모시지 않겠다고 하니 지금까지 혼자서 100세 아버지를 수발했더군요. 자신의 거동도 힘든 80세, 건강하기만 하면 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에게는 누워있는 아버지가 제일 걱정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묘소에서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 뒤 자신도 죽으려고 했답니다. 죽지도 못한 할아버지는 존속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삼중스님에게 간절한 부탁을 했다. ‘스님! 초면에 죄송스럽습니다. 제 부탁을 꼭 좀 들어주십시오. 우리 아버지의 49제를 올려주십시오. 제를 올려주시면 논을 팔아서 꼭 갚겠습니다. 꼭 극락세계에 가도록 빌어주십시오.’ 삼중스님은 노인네의 눈물과 약속을 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할아버지의 49제를 저희 절에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할아버지의 건강이나 우선 챙기십시오.’ 할아버지에게 국밥을 사드렸다. 죽은 아버지의 49제는 삼중스님의 절에서 잘 지내주었다. 돈을 받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80세 노인네의 착한(?) 효심에 감동한 것이다. 그 뒤 그 노인네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삼중스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재주가 뛰어나다. 가난한 마음에 담긴 따스한 정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난 세상 사람들을 맨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밑바닥까지 다 만납니다. 그 폭은 엄청납니다. 대통령에서부터 사형수까지. 그런데 내 마음이 닿는 곳은 가장 밑바닥 이예요. 근근이 살고 있는 마음들에게 더 편안함을 얻습니다. 그러니 한 평생 누가 떠밀지 않아도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죠.(웃음) 요사이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엔 내가 보아도 참 멋진 구석도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가진 게 조금 있다고 가진 것을 지키려고 어지간히 변해버렸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기억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힘으로 기쁘게 살 수 있답니다. 한번은 행사장의 강연을 끝마치고 나오는데 한 여인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예전부터 알고 지낸 임보살이었습니다.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는 아주 가난한 분이었습니다. 행색도 정말 엄청나게 초라한 생활보호 대상자였습니다.”
 
가난한 여인네의 돈십만원
 
그 여인은 삼중스님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가난이 몸에 찌든 여인은 건강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스님! 며칠 만에 겨우 걸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전생에 복을 짓지 못해서 이리 박복하게 사는 게 아닙니까? 스님! 사형수에게 가실 때 제가 좀 복을 짓고 싶습니다. 이 돈은 복을 짓는데 좀 써 주십시오.’ 삼중스님은 가난한 여인의 돈이 무서웠다. 건강이 나쁜 여인은 돈벌이를 하지 못했다. 병에 걸려도 병원을 찾지 못할 지경인 여인이 건네 준 돈은 너무나 엄청나게 귀한 지폐였다.

“그 귀한 돈을 서울구치소에 있는 이 아규상 사형수에게 가져다 줄 예정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면회를 갔더니 눈이 땡글해져 있더군요. ‘아니? 어디 아프냐? 뭘 해서 그리 눈이 쑥 들어갔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한치 앞도 모르는 사형수가 참 좋은 대답을 하더군요. ‘요새 그림을 배웁니다. 경기대학교의 미술교수에게 그림을 배우는데 참 좋습니다.’ 언제 집행당할 지도 모르는 놈이 그림을 배운다는 말이 그리 좋더군요. 그림을 배우는 목적도 큰 뜻이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나서 감옥에서 나가면, 그 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그림을 주고 싶습니다.’ 이 말이 곧 법문이었습니다.”

죽음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사형수이지만 마음에는 고마움이라는 꿈을 담고 살았다. 행동으로 한 법문이었다. 그 가난한 여인이 준 돈을 이규상 사형수에게 준다면. 복 짓는 마음이 더욱 보태질 것이다. 봉투에는 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 가난한 여인에게는 너무나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돈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였다. 아마도 10억이나 될 듯 한 돈 십만 원을 건네주는 여인의 마음은 삼중스님만이 가름할 수 있었다. 삼중스님은 절대 돈과 마음을 헛되게 쓰지 않는다. 마음의 파장을 잠재우는 수행이 서울 한복판에서 자주 일어난다.

“며칠 전 밤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초저녁이라 사람들은 그리 붐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나이 먹은 노인네가 창가에 서있는 내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을 전도하는 광적인 노인네였습니다. 등을 탁 때리면서 ‘이 미친놈아! 관세음보살이 뭐냐? 왜 대답 안하냐? 이 미친놈아!’ 지하철 창문에는 내 얼굴이 비쳤습니다. 계속해서 등을 탁탁 때렸습니다. ‘무릎 끓어! 어서 이 미친놈아!’ 하는 말에 유리창에는 얼굴이 찌그러져 갔습니다. 노인네가 그냥 몇 마디만하고 가기만을 기다렸죠. 그런데 노인네는 신이 났습니다.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탔습니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그 노인네를 이상스럽게 쳐다만 볼 뿐, 거들지를 않았습니다. 시간으로는 2~3분 정도였지만 참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이 미친 중놈아! 무릎 꿇어! 너 마귀지?’하는 목소리는 지하철 칸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점차 일그러져 갔습니다. 일그러진 내 얼굴에게 속으로 욕을 했습니다. ‘이 새끼야! 너 못 참으면 넌 죽는 거야! 이 새끼야!’ 내가 생각해도 잘 참았습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의 삼중스님이라면 노인네의 면상을 쳤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처럼 나이 든 삼중스님은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진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혈기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노인네의 희롱으로 삼중스님의 손은 어느새 부들부들 떨렸다. 늙은 삼중스님은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참 좋게 비쳤다. 참다못한 삼중스님은 결국에는 터뜨렸다.
 
참았어야 했는데 바보 짓거리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 노인네를 쳐다보았어요. 고개를 돌린 눈에는 살기가 있었나봐요. 노인네가 놀래서 다음 정거장에 내려주었습니다. 아예 뛰어 내렸습니다. 참! 그 짓거리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참 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넌 아직도 멀었구나!’ 성질을 내면 내가 벌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 때문에 분해서 폭발하는 짓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정말로 노인네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야 했는데……. ‘야! 끓어! 빨리 무릎 끓어!’하는 호통에 그만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끝까지 당해주었더라면 더 잘했을 텐데.........”

한 번은 삼중스님은 서울역 로비에서 기차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서울역에는 ‘예수 천당, 지옥 불’이라는 빨간 글씨의 간판을 들고 다니는 광신자들이 간혹 눈에 띠였다. 그들도 역시나 삼중스님의 장삼자락 앞에 서서 간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삼중스님은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난다. 무리들은 깃대를 흔들면서 그 뒤를 따라다닌다. 하는 수 없이 삼중스님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들은 화장실 앞에서 ‘마귀’를 부르짖으면서 기다린다. 화장실에서 나온 삼중스님을 다시 계속 따라다닌다. 삼중스님은 거의 도망하다시피 숨을 곳을 찾아 음식점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리 수모를 한바탕 당하고 나면 진이 빠져요.(웃음) 그러면서도 이 옷을 입고 다닙니다. 이런 저런 경우가 많습니다. 스님들이 조금 바보 같으니 견디지 영악했더라면 아마 큰 싸움이라도 날 것입니다. 일부 열성적으로 포교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옷을 보기만 하면 아주 난처하게 대합니다. 통행의 자유를 보장받고 싶습니다.(웃음) 도심 한 복판에서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에게는 좋은 신앙생활을 기원합니다. 기독교인 사형수들과도 좋은 만남을 수십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좋은 종교생활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탕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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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8 [17:41]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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