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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던져 두생명 구한 건널목 간수 스토리
<박삼중 스님 증언> 감동어린 아름다운 인연
 
김성애 논설위원

변순자, 땡땡 거리 철길을 지키는 건널목 안내원(간수) 아내의 이름이다. 삼중스님은 그녀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23년 전, 부산에 있는 가장 큰 기차건널목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밤 10시쯤 건널목 철길을 지키는 안내원은 기차의 경보신호음과 동시에 차단기를 내렸다. 기차 건널목에는 행인들과 차들이 차단기 뒤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건이 벌어졌다. 술에 만취한 취객 두 남자가 건널목의 차단기를 밀고 철길로 들어섰다. 어깨동무를 한 두 사내들은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면서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기찻길 선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술이 사람의 간을 키운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현실로 나타났다. 다가오는 기차에서 비쳐지는 불빛이 마치 성냥개비 불빛인 듯 넘실거려 보였을 것이다. 두 사내들의 몸은 술독에 빠져서 허우적허우적 흔들댔다. 이미 두 사내들은 철길 선로사이에 서서 기차의 헤드라이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불빛으로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리면서 잠시 멍하게 다가서는 기차를 쳐다보았다. 기차는 두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몸 던져 취객목숨 살려

기차의 선로 철길에 걸쳐 서있는 사내들에게 덮친 것은 기차가 아니었다. 건널목 안내원였다. 안내원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불교에서 지향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중무장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급박한 경우에 처한다면 ‘어어어~’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어쩌지도 못한 채 제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술 취한 사내들이 술기운에 일어난 일이니 어찌하겠는가? 그냥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건널목 안내원의 두 손은 두 사내들의 등판을 하나씩 잡았다.
“야~아! 기차! 비켜!”
“뭐야! 이~놈 새끼는?” 두 사내들은 등판을 잡은 안내원의 손을 뿌리쳤다. 술김에 뿌리치는 두 사내들의 힘에 밀려서 끌어낼 수가 없었다. 이미 기차는 목전에 다가왔다. 때는 늦었다. 그 순간 안내원의 양발은 두 사내의 가슴팍을 쳤다. “억!"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두 사내의 몸은 철길 밖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정작 안내원 자신의 몸은 철길에 걸쳐있었다. 몸을 비틀어서 철길을 벗어나려 할 때 이미 기차는 지나갔다. 파열음 소리와 함께 기차는 철길을 길게 미끄러지면서 정차했다.
 
▲ 변순자 씨    ©브레이크뉴스
“자신의 몸을 던져서 두 생명을 구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하는지 참으로 신비했습니다. 안내원은 참 성인의 모습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난리 통에 두 사내들은 그때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지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안내원은 자신이 지킨 그 철길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경찰조차도 원인을 제공한 두 사내들을 처벌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정말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문에서 기사를 크게 다루었더군요. 그 때 안내원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아주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4명씩이나 있었고 아픈 아내가 누워있다는 기사의 내용을 읽었습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유별나게 부부금실이 좋았다는 안내원의 죽음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가장을 갑자기 잃은 가족들의 슬픔이 그대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거리 모금을 하여 돈을 만들었습니다.”

건널목 안내원은 부처모습나라를 위한 사람들만이 성인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건널목 안내원의 마음 역시 성인의 대열에 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삼중스님은 모금한 돈을 들고 안내원 가족이 살던 셋방을 찾았다. 어린 4명의 자식들은 마치 풀죽은 강아지 새끼들 모양,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의 주변에서 떨고 있었다. 그 아내 역시 남편의 죽음을 믿지 못한 듯 황망한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셋방의 살림살이는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조그만 방 하나에 6식구가 옹기종기 살았으니 오죽 하겠습니까? 그런데 초라한 셋방에서 참으로 멋진 이야기를 듣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병색이 깊은 안내원의 아내가 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자리는 너무나 남달랐습니다. 아내의 마음 역시 남편의 마음을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 역시 부처의 마음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삼중스님은 아내에게 모금한 돈을 건너 주면서 격양된 목소리로 울분을 터뜨렸다.
“이 놈의 새끼들! 술을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집안을 박살을 내다니. 사과 한 마디도 안하고! 이놈의 새끼들 찾아 왔나요?”
“오기는요! 누가 와요?”
“그 술주정뱅이 놈들 두 놈이요. 그 나쁜 놈들이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하면서 삼중스님은 방바닥을 손으로 탁 내리쳤다. 이런 삼중스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안내원의 아내는 차가운 물을 확 뿌렸다.
 
“아니! 스님이 왜 남의 일로 흥분을 하시나요? 스님! 저는요. 이미 술 잡수신 두 분을 용서했습니다.”
 
삼중스님은 ‘이 여자가 돈 여자인가? 그 놈들에게 술 잡수신 분들이라니? 너무 울어서 어떻게 되었나? 아니! 평생 혼자서 애들 4명을 데리고 어찌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는 스치는 생각에 안내원의 아내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사람의 생명을 죽였으니 어찌 그 놈들을 용서할 수 있나요? 좋은 말이긴 하지만........”

안내원아내 역시 부처의 마음

“술 취한 두 분이 우리 집안을 계획적으로 망치려고 했던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리 하지 않았겠죠. 그저 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실수를 한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물론 두 분이 감정이 있어서 그리 했다면 나도 감정이 났을 겁니다.”
 
삼중스님의 가슴은 쇠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뭔지 몰라도 어눌한 마음들이 산산조각 부셔졌다. 그 자리에 환하고 밝은 빛이 쏟아졌다. 그녀의 마음은 불을 훤히 비추는 아름다운 등대처럼 보였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는 이 여인네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어찌 이런 사건을 이런 마음으로 마감을 지을 수 있을까? 이런 큰마음은 그녀만이 가질 수 있다. 그녀의 어느 구석에서 이런 부처의 마음이 나오는 것일까?’
 
안내원의 아내는 많이 아팠다. 심장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남편이 거북이 매달이 달린 금목걸이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거북이 금목걸이의 선물에 담긴 남편의 기원은 아픈 아내가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선물에 펄쩍 뛰었다.
 
“무슨 돈으로 이런 비싼 금목걸이를 샀어요?”
“내 다 알아서 했으니 선물이나 목에 걸어봐!”
 
아내는 목걸이를 손에 준 채 남편을 추궁했다. 겨우 점심값만을 지갑에 넣고 다녔던 남편이 값비싼 금목걸이를 샀다는 사실에 목돈의 출처를 궁금해 했다. 아내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지자 남편은 실토했다.
 
“당신이 점심값 하라고 준 돈을 6개월간 모아서 산 것이니 오해는 마라.”
 
이 말에 아내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젖었다. 어린 자식 4명도 엄마의 금목걸이를 서로 만져보면서 좋아했다.
 
“당신이 우리 집 가장인데 밥은 꼭 챙겨 먹어야지. 아니 점심값으로 왜 이딴 것을 사와요? 아파서 도시락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항상 가슴이 아팠는데. 그 돈으로 밥은 안 먹고. 그럼 6개월 동안 점심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단 말이예요? 이 답답한 양반아! 난 이딴 금목걸이는 필요 없어요.”
“당신이 오래오래 살아야 애들도 건강하게 잘 자랄게 아니냐? 그래야 우리 모두가 행복하지. 화 풀고 자~ 웃어. 애들도 웃고 있잖아.”
 
남편의 살뜰한 정으로 부부의 금실은 동네에서 소문이 나있었다. 서로 무척이나 아꼈다.

인연의 끈은 23년간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삼중스님과 안내원의 아내 변순자는 지금까지 20년이나 넘은 인연은 아주 튼실하다. 바로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받는다면, 도움을 준 사람과의 인연은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매우 짧은 기간으로 아쉬움만 남긴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자존심이 상하고 불편한 게 많은지 연결되지 않은 인연들이 다반사이다.
 
“인연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다른 이야기 하나가 생각이 나는군요. 박정희 대통령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었던 분과의 인연이 떠오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구속사건을 맡은 검사였습니다.
 
그 뒤에는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고검장까지 했던 분입니다. 법원에서 옷을 벗고 나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어쩌다가 잘못되었는지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쯤 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서울구치소의 교도소장이 재소자 한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고검장을 했던 분이 구치소에 있는데 독실한 불자라면서 한 번 만나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무계장과 면회실을 들어선 변호사는 초면인 나에게 삼배를 하더군요. 그 대단한 검사가 절을 하는데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머리가 허연 노인네가 삼배를 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화려하고 막강한 힘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왜 이러시나요? 아니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이리 절을 하시면 안 됩니다.”
“스님! 존경하는 스님께 절을 올리는 것은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말리지 마십시오.”
“그래도 송구합니다. 이리 고생을 하시니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스님을 한 번 뵙게 해달라고 교도소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리 만나 뵐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쁩니다. 스님의 맑은 기운을 전달 받고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고생하시는데 아무런 도움을 거들지 못하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천만예요. 스님! 이곳에서 지내다보니 제 인생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생각할수록 후회가 많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을 마구 감옥에 집어넣었던 게 가장 큰 후회가 되더군요. 여기는 지옥살이입니다. 법을 잘 몰라서 들어온 사람들이 태반이더군요. 그래서 이 곳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드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삼중스님은 속으로 ‘진작 그리 생각했어야지. 자신이 직접 느껴보니 더욱 실감이 날게다’ 생각했다. 늦게나마 참회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고 좋게 보였다. 좋은 마음을 담은 그는 삼중스님에게 약속했다.
 
“스님! 제가 이곳을 나가면 스님 가방을 들고 비서로 따라 다니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제가 스님께 아부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올리는 약속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한 약속이 세상 밖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구치소 안에서는 아부하려고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한 약속일지라도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한다. 찾아오기는커녕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짧은 인연에 익숙한 삼중스님

“세상 밖에서야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겠습니까? 구치소 안에서 몇 번 더 만났습니다. 참 특별한 곳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었습니다. 그 분은 구상 선생의 먼 친척 벌이었고, 배명인 장관과도 친분이 있던 분이었습니다. 다~아 이해가 됩니다. 세상에서 저를 만나 보십시오. 다시 지옥으로 돌아갑니다.
 
아픈 과거를 다시금 들춰지니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합니다. 빨리 잊어버리고 다시 자신의 삶 형태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됩니다. 거의 99%정도 그리 인연들이 하루살이처럼 짧습니다. 저야 대부분의 인연들이 재소자들이니, 다시 만나서 인연으로 맺으면서 사는 방법에는 참으로 서툰 사람입니다.”
 
그러나 순박한 여인네, 변순자는 달랐다. 그녀는 인연의 끈을 자신이 영글어갔다. 놓지를 않았다. 삼중스님이 전해준 고마운 도움의 손길을 평생 동안 마음에 담고 살았다. 그 빚을 갚기 위해 그녀는 힘닿는 때까지 노력했다.
 
“안내원의 아내는 제 절에 다니고 있습니다. 부산 포교당에 다른 신도들보다 더 많이 시주했습니다. 절을 다시 단장할 때나 명절 때만 되면 목돈을 보탰습니다. 남편 없이 자식 4명을 데리고 사는 어려운 형편이 더 나아질 리가 있었겠습니까?
 
더욱 더 어려운 형편이었을 겁니다. 절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옷은 가장 남루하게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네의 마음과 시줏돈은 한없이 크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3년 동안 그녀의 어린 자식 4명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은혜갚기 위한 여인의 고백

삼중스님은 빙그레 웃었다. 23년 전, 건널목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그녀의 이야기를 특강의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 시절 청와대 30 경비단에서 특강을 요청해왔다. 청와대 군부대 실장의 힘은 막강했다. 군부대 실장이 그녀의 부처를 닮은 마음에 감동했다. ‘그 가족을 위해 좀 거들게 있으면 말해 달라.’는 실장의 부탁에 삼중스님은 도움을 청했다.
 
“청와대 군부대 실장이 철도청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안내원의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면 안 되겠지만, 23년 전, 5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철도청에서 보상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막강한 힘이 발동하니 안 나오는 돈도 나오게 되더군요. 그 아내는 고맙다면서 저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절에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 절에 다니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아이들이 잘 성장했습니다. 제일 큰 자식은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경찰관의 첫 봉급을 들고 어머니와 큰아들은 제가 있는 절에 찾아 왔더군요.”
 
삼중스님은 감동했다. 안내원의 큰 아들이 첫 봉급을 고스란히 내미는 손에 감동했다. 그 옆에는 흐뭇하게 지켜보는 안내원의 아내는 행복해 했다. 대견한 큰 아들의 첫 봉급을 고마운 스님께 드려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준 아들이 기특했다. 안내원의 아내는 ‘스님 덕분에 제가 살아있고, 아이들이 잘 성장했습니다. 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지금의 우리 가족의 모습은 스님이 다 만들어 주신 겁니다. 감사드립니다.’면서 눈물로 고백했다.

자식 첫봉급을 삼중스님께

“돈이 많고 작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첫 봉급을 들고 나타난 어머니와 아들의 표정은 부처님의 형상처럼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 뒤 몇 해 후 딸의 첫 봉급을 들고 모녀가 절을 찾았습니다. 딸은 공부를 아주 잘해서 독일 유학을 마치고 아주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의 첫 봉급을 들고 나타난 모녀의 행복한 모습에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흐뭇한 이야기에 눈물이 납니다.
 
또 몇 해 뒤에 셋째 아들의 첫 봉급을 들고 모자가 절에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마음이 꽉 차오르는 듯 뿌듯해서 언제나 이런 이야기에는 행복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셋째 아들은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여인이 자식 4명을 키우면서 쓸 돈이 전혀 없는데도, 절에서 무슨 행사만 있으면 적은 돈이라도 보탰습니다. 자식들도 보탰습니다. 백중이나 초파일, 쌀 몇 가마니, 절을 다시 단장할 때는 백만 원이나 시주를 했습니다. 바쁜 스님에게 폐가 된다면서 저와는 눈인사만 간단히 할 뿐, 전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뒤에서 도왔습니다.”
 
그 여인의 나이는 55세 정도, 지금도 낡은 옷을 입은 이 여인은 절에 조용히 드나든다고 한다. 그 모습은 겸손한 부처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녀의 막내아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마도 막내의 첫 봉급도 분명히 삼중스님에게 전달 될 것이다. 그 봉급 봉투를 끝내 뿌리칠 스님, 스님의 손에서 다시 아들의 손에 넘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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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18 [23:08]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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