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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에서 700통 편지보내온 사형수의 절규
박삼중 스님 대증언 <잊을 수 없는 사형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애꾸눈 비둘기 보며 살아있음에 감사…무기수 김진태 절규

김진태 사형수는 꿈을 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떠나면서 ‘내가 너의 죄를 대신해서 간다.’면서 예수님을 꿈속에서 영접했다. 그의 간증과 함께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삶을 다시 태동시켰다. 생시처럼 생생한 예수님의 모습을 영접한 김진태는 독실한 모태 신앙이다. 종교를 떠나서 김진태는 불자인 삼중스님을 무척 좋아한다. 삼중스님도 독실한 기독교인 김진태를 진심으로 아낀다.
 
삼중 스님은 말한다. “진태 어머니도 모태신앙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매일 11년 동안 아들을 면회했습니다. 사형수의 부모는 날마다 면회가 가능합니다. 천근만근보다 더한 고통의 무게를 짊어진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식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시 ‘어머니’는 모든 재소자들에게 눈물을 펑펑 쏟게 합니다. 자신들이 비교할 수도 없는 죽음에 발을 담그고 있는 최고수의 한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재소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감동을 받습니다. 시퍼런 칼날이 어머니의 심장에 11년 동안이나 깊숙이 박혀있어서 그 아픔을 토해냈습니다. ‘내가 죽었다면 저 놈이 저리 고생을 하지 않았는데, 이 못난 어미를 살리려고 내 귀한 아들을 죽입니다.’ 어머니는 내 장삼자락에 매달려 통곡을 했습니다. 진태도 자신의 가슴을 후벼 파는 상상할 수 없는 아픔으로 시와 글을 썼습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이 논하는 고통과 아픔과는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의 글에는 심오한 색이 덧칠해져 있을 것입니다.”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감방 근처에는 비둘기들이 많이 날라 다닌다. 아이들은 흔한 비둘기를 잡아서 장난을 치곤 한다. 실로 비둘기의 발을 묶는다. 재미로 하는 아이들의 장난에 비둘기는 불구가 된다. 어쩌다 한 쪽발이 없는 비둘기들도 눈에 띈다. 감방에 갇힌 자들은 소소한 비둘기의 모습에서도 세상 밖의 사연으로 눈여겨본다. 자신의 처지와 같은 외따로 있는 새를 들여다보는 그들은 참회의 순간을 접한다.
 
불쌍한 비둘기 살리는 성자
 
“김진태는 불쌍한 비둘기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발이 실로 묶여져 절뚝거리는 비둘기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먹이를 손바닥에 놓아 비둘기를 유인합니다. 먹이를 마당에 흩뿌리면 다른 비둘기들이 어디에선가 날아와서 쪼아 먹습니다. 실상 먹어야 할 비둘기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참아 냅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부족하면 일주일을 더 기다립니다. 자신의 굶주린 애정으로 비둘기에게 애정을 구걸합니다. 드디어 먹이를 먹는 비둘기의 발에 묶인 실을 풀어주고는 약을 발라줍니다. 치료된 비둘기가 훨훨 나는 모습으로 자신의 죄를 들여다봅니다. 참회를 합니다. 김진태는 비둘기를 살리는 성자라고 불리었습니다.”
 
김진태는 감방 안에 들어 온 재소자들에게 전도를 아주 잘했다. 말없이 행동으로 전도를 하는 대가였다. 비둘기를 보살펴주는 김진태의 모습은 성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재소자들도 그의 모습에 반하여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감동받은 재소자들이 출소를 한 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삼중스님을 찾아온다. 김진태의 구명운동을 위한 자신들의 마음을 더하기 위해서이다.
 
사형수에게 당하는 시달림
 
“김진태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정대철 씨는 그에게 책, 영치금을 가장 많이 넣어주었습니다. 유인태 장관, 그리고 사형폐지운동에 앞장 선 국회의원들과도 편지로 교류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유명 인사들과의 편지만으로도 책이 한 권도 넘게 나올 분량일 것입니다. 진태는 참 다정다감한 사람입니다. 내게 보낸 진태의 편지마다 내 당뇨병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의 걱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더욱이 말 못할 나의 속앓이를 진태는 알고 있었습니다. 구명운동으로 세상에 발을 디딘 사형수들 몇몇에게 시달림을 당한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나를 볼 때마다 울먹였습니다. 교도소 안의 소식통은 무섭도록 정확합니다. 면회할 때 얼굴이 조금이라도 상하다 싶으면 나를 걱정하여 많이 울었습니다.”
 
감옥에서는 죽음에 발을 담그고 사는 사형수들은 성자의 모습으로 지낸다. 참회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성자이다. 갇힌 환경에서 성자로 변해야만 그나마 하루하루를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열 번 넘게 죽음의 문턱을 오고가는 철장 안 실생활에서는 종교에 몰입하지 않고는 한 시간도 배기지 못하는 게 철장의 진실이다. 그런 성자들은 세상 밖의 공기를 마시면 또 변화를 시키는 것 또한 세상사다. 그들의 탈바꿈을 누구에게 탓을 하겠는가? 사실 그네들을 걱정하는 삼중스님은 입으로 담지 못할 사연들을 매달고 산다.
 
김진태 너만은 믿는다
 
“아마도 진태는 세상 밖으로 나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진태만은 믿습니다. 감옥에서 구명된 몇몇 사형수들은 자신의 삶에 쪼들린 고통스런 한을 내게 퍼 붇습니다. 받아야지요. 그네들이 어디에다가 풀겠습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구명운동을 했으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 한 몸 어찌 당해도 괜찮습니다. 함께 울어 줄 진태가 있으니 그 녀석 앞에서만 앉으면 대견하고 좋습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가슴앓이를 진태만이 이해해줍니다. 설마? 네가 나를 그리할 수가 있느냐는 생각에 사실 저는 사형수들에게 질린 면이 많습니다. 그래도 진태 하나만은 그리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둘은 종교를 떠나서 서로 많이 사랑합니다.”
 
김진태는 서울구치소에 사형수일 시절은 지인들의 손길이 많았다. 삼중스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찾았다. 무기수로 광주교도소로 이관된 김진태를 찾는 삼중스님의 발길도 자연히 뜸해졌다. 작년 추석, 삼중스님은 광주교도소에 갔다. 그리운 만남에 김진태는 편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옥 안 무기수의 생활이 담겨 있다. 다음은 그의 글이다.
 
삼중스님께 드리는 고마움
 
▲ 김진태가 삼중 스님에게 보내온 편지     ©브레이크뉴스
“존경하옵고 고마우신 삼중스님께 올립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타관 객기에서 예상에 없었던 면회 호출에 누굴까 궁금해 하며 나갔더니 꿈에도 그리던 스님께서 먼 길 찾아주셔서 얼마나 놀랍고 반갑고 기쁘던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스님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느신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이 더욱 제 가슴을 시큰하게 했습니다.
 
스님! 못난 저를 잊지 않으시고 멀고 힘든 길을 찾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거의 4년 만에 뵈오니 참으로 반갑고 기뻤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 보통 바쁘신 분이 아니신데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돌봐주시니 그 큰 은혜 무엇으로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못난 몸이 무엇이건데 큰 스님께서 서울과 전주에 이어 이 곳 광주까지 면회를 오시는지, 팔자에도 없으신 전국교도소 면회장의 철장 앞을 서성이게 하는지 너무나 송구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보셨다시피 스님 염려 덕분에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늘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감내하며 지내기에 마음도 편하고 하루하루가 천국입니다. 성경 말씀에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긴 세월을 내다보지 않고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지내니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마음은 전혀 없고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는 느낌뿐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열심히 하며 살 것이오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추석 차입물과 영치금 감사
 
저희들에게 명절은 달갑지 않은 연휴일 수밖에 없는 데 이번 추석은 스님의 사랑과 정성 덕분에 즐겁고 마음 풍성한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먼 길 노체를 이끄시고 찾아주신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많은 차입물과 영치금까지 넣어 주셨으니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함께 있는 독거수들 여럿과 조금씩 정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 넣어 주셨다고 하니 모두들 고마워하더군요. 그리고 제게 은인이신 문 차관님께서 추석 지나서 꼭 감사 편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감형에 수많은 분들의 노고가 계셨다는 걸 새삼 스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은인들에게 감사하며 보답하는 삶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스님! 저를 돌봐 주시는 목사님들께 스님께서 찾아 주셨다고 소식 전하려고 합니다. 사실 목사님들은 썩 달가워하지 않으실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제가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가 상당히 폐쇄적이고 타 종교를 배척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초월해 사랑을 베푸시는 스님을 이해 못 하실 리도 없고 제가 그 분들께 숨긴다면 제 스스로 떳떳치 못 할 것입니다. 스님과 저의 소중한 인연과 만남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스님! 그 덥던 여름도 꿈처럼 지나가고 이제는 오곡백과가 영그는 결실의 계절이 왔습니다. 밤으로는 귀뚜라미 울음이 옥뜰을 가득매우고 기온이 제법 선선해 기분 좋게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징역살기 좋은 때가 왔습니다. 제 마음에도 풍성한 결실을 거두고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스님! 모쪼록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서 불쌍한 영혼들 더 많이 구제해 주시길 빌며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8. 9.11. 광주성에서 진태(드림)“
 
그가 보내온 글은 생명력의 힘은 대단하다. 척박한 생활에서도 아름다움과 선함은 진하다. 감옥의 창틀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는 애꾸눈 비둘기에게 무한한 행복한 마음을 담았다. 자식을 출가시킨 기쁨을 말했다. 뛰어난 그의 글 솜씨에 빠져들었다. 그(김진태 글)가 담아내는 ‘오월 그리고 애꾸눈 비둘기’와 ‘까마귀’에 대한 사랑에 흠뻑 젖어보자.
 
오월 그리고 애꾸눈 비둘기
 
“이른 봄부터 내방 뒤창을 찾아오기 시작한 비둘기 한 마리. 덩치가 다른 비둘기에 비해 유난히 작은데다 우중충한 깃 색에 호전적이기까지 해 정이 더 안가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왼쪽 눈이 찌그러진 채 말라붙어 있고 발가락도 두 개나 잃은 장애 비둘기로 잘 날아다니지도 않고 늘 뒤창과 조금 떨어진 담장에 앉아 졸곤 했다.
 
옛 말에 사나운 개 콧등 아물 날 없다는데 호전적인 성격 탓에 싸우다 눈을 쪼여 다친 자리에 진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조금은 미우면서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 과자부스러기나 땅콩을 던져주면, 어디에 있다가 오는지 몰라도 다른 비둘기들이 귀신같이 알고 떼로 몰려들어 순식간에 훑고 지나가니 그 녀석은 입도 다시지 못 할 때가 많았다.
 
절름거리는 다리에 한쪽 눈으로 먹이 초점을 못 맞추다보니 다른 녀석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당연히 먹이부족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옆에 오는 비둘기를 향해 부리 질을 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던 그 녀석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먹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면 되겠다 싶어 시도했지만 좀처럼 다가오질 않아 긴 기다림과 싸워야만 했다. 처음엔 다친 몸 때문에 더 경계하였으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더니 애정을 구걸한 지 근 보름 만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엄두도 못 내는데 그 녀석은 땅 바닥에 앉아 있는 무리들을 향해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내 손에 앉아 먹이를 먹는 모습이 대견했고 귀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살도 오르고 털에 윤기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언제 부터인가 멋진 색을 가진 덩치 큰 암컷을 데리고 온 것이다. 내 손에서 받아먹은 먹이를 담장에 앉아 바라보기만 하던 그 암컷에게 토해 먹이고 짝짓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애꾸눈비둘기의 신방
 
장애를 가진 볼품없는 녀석이 드디어 멋진 짝을 구한 것이다. 정말 내 일처럼 통쾌하고 신이 났다. 더 놀라운 것은 한동안 두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창가를 들락거리며 기웃기웃 살피더니 사방을 쏘다니며 부지런히 주워 온 나뭇가지와 마른 풀로 구석에다 엉성한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에다 하얀 알 두 개를 낳아 놓아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알을 낳고 예민해진 녀석들에게 내 간섭이 괜히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먹이 주는 일도 거기서 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두 녀석이 번갈아가며 알을 품지만 대부분 암컷이 많이 품고 애꾸눈 수컷은 먹이를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슴 찡했고 그 안에서 새 생명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왠지 나도 신이 나서 비둘기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 따라 나도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방바닥을 맴돌았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기웃거려 보기도 하지만 방해만 될 것 같아 그만두고 둥지 있는 쪽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가려주었다. 알을 까면 신경이 더 예민해질 것 같아 암수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마치 자식 신방에 새로 도배를 해 주는 것 같아 즐겁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알까기를 조급하게 기다리지만 더 큰 인내를 배우게 하는 듯 했다.
 
작은 생명 고귀함에 감동
 
5월 그리고 애꾸눈 비둘기를 통하여 측은지심과 인내를 배웠으며 역경을 이겨내는 용기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 동안 작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며 인내의 기다림 없이 결과만 성급하게 구하는 마음 때문에 지금 이렇게 영어의 몸이 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자연에게서 또 한 가지를 배웠기에 혹시 저 비둘기가 나를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요즘 정부에서 분변과 다다 번식으로 피해가 켜져 집비둘기를 유해 조수로 지정해 먹이 금지의 알 소탕용하는 등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는데, 남모를 아픔과 쓸쓸함에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가정의 달을 맞아 내게 찾아온 생명의 촛불을 어찌 끌 수가 있겠는가?
양심과 고통을 분연히 이겨내고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고 희생으로 기다리는 애꾸눈 비둘기를 보며 새삼스레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탄생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뜻 깊은 5월의 어느 경건한 일요일이다.”
 
습식사우나에서 쓴 편지
 
김진태는 삼중스님에게 2009년 7월 2일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서는 감방안의 무더위가 그대로 재현되어 전달되었다. 노력하면서 추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편지에서 ‘일간지에 난 스님의 강연소식을 봤습니다. 연로하신데도 매년 강연을 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뵈면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걸 느끼며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한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입니다.’는 삼중스님의 일정을 감옥에서도 지켜보고 있다.
 
편지에는 온 몸에 풀칠로 한 채 습식 사우나 속에서 편지를 썼다. ‘아시다시피 여름이 저희들에겐 가장 힘들고 가혹한 계절입니다. 온 몸에 풀칠을 하고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하여 불쾌지수도 높아 육체의 건강보다는 정신 건강을 잃을까봐 조심하며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운동 열심히 하고 땀도 더 흘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무더운 감옥 안에서도 무엇인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전했다. ‘얼마 전 워드 1급 필기시험과 독후감 경진대회에 참가했는데 다음 주에 그 두 가지가 결정이 나옵니다. 모두 최선을 다했으니 합격과 입상의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이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발전적인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황폐해져 가는 교도소의 근황을 접할 수 있었다. ‘전국 교정시설 분위기는 점점 더 질서 속에 잡혀가는 추세라 작은 여유도 없고 인정도 메말라 시름도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름 없이 결실의 계절이 없듯이 제게 오는 고난은 제 인생을 더욱 성숙된 인성으로 만들고 굳은 신앙인으로 만드시기 위한 단련임을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삶이 주는 고통이 정신수양에 대한 스승이 되는 만큼 지혜도 감내하겠습니다.’ 감옥 안 그의 마음에 힘을 건네주고 싶다. 다음은 김진태의 글이다.
 
까마귀
 
“살아있음을 진하게 느끼는 운동시간, 평소 보기 드문 까마귀 한 마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고개를 좌우로 살피며 특유의 울음을 남기고 파란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보니 인생 벼랑 끝에 매달려있던 서울구치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까~악 까~악, 어느 늦가을 아침나절 고요한 방안의 정적을 까마귀 울음이 산산이 깨뜨린다. 무거운 침묵에 빠져있던 여섯 명의 눈들이 동시에 화들짝 긴장하며 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징역 베테랑이라고 자처하는 내가 그들의 긴장을 모를 리 없어 보고 있던 성경책을 덮고 얼른 얼굴에 웃음을 담은 채 창가로 다가가 “야! 이놈들아 밥 많이 먹었냐? 다른 애들은 배가 고파야 우는데 이들은 어찌 밥 먹을 땐 조용하다가 배만 부르면 시끄럽게 우는 것이냐?” 사동 건너편으로 보이는 교무과 옥상 안테나 이에 앉아있는 커다란 까마귀 한 쌍을 향하여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나니 그제야 방안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이 가까워지는 때에 사형수가 있는 방의 오전 시간이니 당연한 일 일수 있겠지만 당사자인 나보다 더 긴장하는 동료들이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에 “언제 사형수와 함께 있어보겠습니까? 인새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세요.”라며 위로 아니 위로를 해주곤 했다.
 
저들도 재판을 받기위해 수용되어 있는 똑같은 미결수용자들인데 팔백여개의 거실 가운데 하필이면 사형수가 있는 방으로 배방이 되어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저들 입장이라면 정말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내가 있던 방에선 그런 일이 없었지만 다른 최고수 방에 있던 어느 수용자는 면회 온 가족에게 사형수와 함께 있다는 말을 해 가족들의 항의로 전방을 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 나도 석 달에 한 번씩 십년 넘게 전방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혐오스런 사형수의 표정관리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늘 미안한 마음 앞에 좀 더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고 일부러 농담도 던지고 장기, 바둑도 두며 함께 어울려 분위기를 화목한 쪽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또한 일반 사람들이 인상 쓰는 것과 내가 인상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에 굳은 표정보이지 않으려고 늘 의식적으로 밝은 표정을 지어야 했고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겐 언제나 눈웃음을 건네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비쳐진 나는 혐오스러운 사형수였기에 그런 노력에도 그들의 긴장감을 다 덜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까마귀들까지 가세해 그 부분에 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라고 본다.
 
예부터 까마귀는 흉한 모습과 지저분한 식성에 울음까지 거칠다 보니 흉조로 낙인 찍혀 철저히 배척 받아온 새였는데 더더구나 사형장이 있는 구치소에서 보는 까마귀를 그 누가 환영 하겠는가? 하지만 혐오스러운 존재끼리 동병상련의 감정이 들었는지 몰라도 나는 무게감 있는 그 한 쌍의 친구들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그들은 구치소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집비둘기들처럼 분변과 깃털먼지로 성가시게 하지도 않고 가볍게 영역을 바꾸지도 않을뿐더러 가끔 수용자들이 닭 뼈 같은 먹이를 던져주면 염치와 체면을 아는 듯 조심스레 받아먹으며 멀리가지 울려 퍼지는 바리톤의 중후한 울음소리는 만용이 배어있는 듯 한 장닭의 울음처럼 들려 가히 나쁘지 않았다.
 
듣기좋은 장닭의 까마귀 울음
 
한 동안 까마귀가 사람에게 좋다는 민간요법의 속설 대문에 남획되던 때가 있었고 농약 사용으로 인해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가 힘든데 서울과는 청계산 하나를 사이에 둔 수도권에서 보게 되니 험한 세상을 이기고 맥을 잇는 모습이 대견했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까마귀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으로 큰 까마귀와 떼 까마귀 두 종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큰 까마귀는 텃새이고 떼 까마귀는 겨울 철새로서 울산 지방에 많이 날아들어 농촌생활에 많은 불편을 주는 걸로 악명이 높다.
 
요즘은 인식이 조금 바뀌고 있지만 예전엔 까지를 길조로, 까마귀를 흉조로 여겨왔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치는 농작물에 끼치는 피해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송전탑이나 전봇대에 철사 등을 물어다 집을 짓는 바람에 합선 등으로 천문학적이 피해를 기치는 반면 까마귀는 까치에 비해 농작물에 끼치는 피해가 미미하며 육식을 주로 하여 동물의 사체나 벌레 등을 먹어치우기에 자연 청소부와 환경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조류 중에 머리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반포지효라는 고사성어가 있을 정도로 예부터 효도를 가르치는 새 이기에 길조와 흉조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처럼 인간에게 유익한 까마귀가 수천 배 수만 배 혐오스러운 나로 인해 더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배척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 마음속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도 난 그 때 그 큰 까마귀 한 쌍을 생각하며 후회와 과오의 때를 닦아내려고 노력중이다. 지금도 그 곳에 그 까마귀들의 2세 3세가 살고 있는지 오늘따라 많이 궁금해진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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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02 [00:00]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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