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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장 눈물바다 만들고 떠난 사형수
사형수 6백명 만난 삼중스님 대증언/사형수 고금석 스토리
 
김성애 논설위원

고금석 사형수의 추모비를 세우겠다는 삼중스님의 결심은 진중했다. “누가 사형수의 추모비를 세우느냐는 말을 던져도 제가 죽기 전에 세우려고 합니다. 새로 지을 경주 사찰에 금석이를 기리는 추모비는 세워 질 것입니다.
 
금석이 이름만 불러도 마음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내손에 차고 있는 염주 알은 금석이가 만들어주었습니다. 내가 늘 달고 삽니다. 염주 알에 새겨놓은 금강경에는 금석이의 맑은 영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형수 고금석은 금강경 법문을 염주 알에 새겼다.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 육체의 소멸은 죽음이 아니다. 육체 속에는 마음이 있다. 육체가 소멸되었다고 해도 마음은 죽지 않는다. 집이 없는 마음은 다음 생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끝없는 윤회의 길로 영혼에는 죽음이 없는 것이다.
 
염주알은 내 귀한보물
 
“이 염주 알은 내 귀한 보물입니다.  3년 동안 금석이를 만날 때마다 젊은 그의 맑은 영혼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현재를 알고 있는 젊은 영혼은 죽음을 말했습니다. ‘23살의 젊은 나이에, 나는 잘못 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나도 모르게 죽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합니다.
 
죽음은 새 인생의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잘못 산 인생 그대로 죽음을 맞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는다면 다음 생도 내 한 짓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남은 시간에 의식의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의 문을 통하여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짧은 시간에 영혼을 세척하여 맑은 영혼을 정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나를 구명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삼중스님은 고금석과의 만남에서 구명운동이라는 것을 한 번 시도했다. 고금석의 어머니가 삼중스님을 찾아왔다. 형도 찾아왔다. 이들이 삼중스님을 찾아 온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막내아들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금석은 동네의 효자였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인 존경받는 반듯한 교육자였다. 어머니와 형이 고금석의 어린 시절을 전해주었다.
 
동네효자로 어진마음
 
“고금석은 순박한 시골에서 교직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얼마나 기특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꼭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에 들어와서 큰 절을 했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에 갈 때도 부모에서 방안에 들어와서 인사하고 다녔답니다. 참 범상치 않는 예절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얼마나 어진 마음씨였는지 동네에서는 칭찬하는 소리가 파다했답니다. 동네 노인들을 살피는 일을 스스로 자청했다고 합니다.
 
술 취해서 길바닥에서 쓰러져서 자고 있는 어른들을 일일이 업어서 집에 눕히는 일을 도맡아 했답니다. 이런 착한 심성을 가진 녀석이니, 꼭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고금석 자신은 한 번도 제게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씨가 어질다보니 남의 딱한 사정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도대학에 입학했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방에는 자연히 고향 친구들이 모여 들었다. 어려운 친구들인지라 내치지 못하고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가 친구가 가담한 조직에 있는 형이 고금석을 무척 아꼈다. 친해진 형의 권유로 조직에 가담하게 되었다.
 
유도대학간 게 불행
 

▲ 삼중  스님이  손에 든 염주는 고금석이 준 것이다.    ©브레이크뉴스
“집을 떠나 유도대학을 간 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너무 심성이 착해서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다보니 그만 조직 패거리들과 어울리게 된 것입니다. 조직에 들어간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고금석은 조직 폭력 패싸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조직 간의 패싸움에서 상대 조직 몇 명이 죽었답니다. 그래서 금석이를 포함한 조직 5명은 구속되었습니다. 3명에게는 사형, 2명은 무기로 구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내막에도 금석이의 천성적인 의리심이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나를 만난지 2년쯤 지난 시점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서 그의 구형이 가중하게 내려졌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패싸움에서 나는 주로 하체 쪽만 겨냥했습니다.’ 이 말에는 상대방의 상체를 겨냥하는 흉악한 의도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금석을 끔찍이 아끼는 삼중스님은 처음으로 고금석의 구명에 나섰다. 피해자의 가족이 진정서를 내주면 고금석의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희생자의 가족은 목포에 살고 있었다. 수소문하여 희생자의 형과 친분이 있는 지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지인은 스님을 잘 알고 지내는 화가였다. 화가와 희생자의 형은 아주 친했다.

“희생자의 가족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사건이겠습니까? 목포에 내려가서 조심스럽게 형과의 만남을 추진하였습니다. 희생자의 큰 형을 만나서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고금석의 성품과 집안 내역을 이야기했습니다.
 
 ‘길이 없겠습니까?’는 말로 의중을 떠보았습니다. 희생자의 형도 마음을 다 털어 놓으면서, 자신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하더군요. 더욱이 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에 더 할 말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형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자신은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과 상의를 한 후 알려주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틀 뒤쯤 연락이 왔더군요. 그냥 용서를 할 수는 있지만 도저히 문서로 도장은 찍어주지 못하겠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삼중스님은 고금석의 구명운동이랄 것 까지는 없는 진실이 통하는 일을 한번은 거들었다.  고금석은 절대로 자신의 구명운동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버린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이 꼴로 죽으면 부모가 얼마나 한평생 아파할 지에 눈물을 흘렸다.
 
두 사형수간의 우정
 
“착한 생명에 거들어 보았지만 헛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교도소 내에서 금석이의 생명을 살리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같은 사형수인 최재만이었습니다. 그 시절은 최재만의 구명운동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재만은 정작 자신의 생명은 뒷전이었습니다.
 
 ‘자기와 같은 놈은 살아봤자 그냥 그렇게 산다. 이 아우가 자기를 대신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나이들의 우정은 아름다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조직 폭력배들에 가담한 사건으로는 어떤 구명운동도 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최재만이야 억울하게 사건을 만들어서 사형수가 된 사건이니만큼 해 볼만 한 일이었습니다. 최재만이 내비치는 말의 의미는 깊습니다. 그만큼 금석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대신하여 준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비쳐지는 고금석의 옥중생활은 진솔하고 맑았다. 고금석의 첫사랑의 이야기에서도 맑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첫사랑은 고향의 소꿉친구였다. 서울에 같이 올라왔다. 세상에서 사귈 때에 느끼지 못했던 절절한 사랑을 첫사랑은 뒤늦게 느꼈다.
 
첫사랑의 순애보
 
“금석이의 첫사랑은 순애보 그대로인 여자였습니다. 저를 찾아와서는 무릎을 꿇으면서 살려달라고 빌더군요. 어떤 기대치를 남기지 않으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자신을 금석이와 옥중결혼을 시켜달라고 하더군요.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놓은 후 저승으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진실 된 사랑이죠. 그런데 사형수는 미결수이라서 옥중결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무기수까지는 기결수이므로 허락이 가능합니다. 내가 아가씨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한가지였습니다. ‘곧 집행될 것이다. 집행 후에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지를 지금부터 준비해라.’ 이 말뿐 다른 희망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금석의 첫사랑은 어린 나이에도 단호한 성격이었다. 자신은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해서 비구니가 되겠다고 밝혔다. 고금석을 위해 기도하는 비구니로 살겠다는 각오는 대단하였다. 그런 각오로 절에 자주 들렀다. 그 시절 최재만의 마누라는 절에서 공양주로 일을 하였다. 고금석과 최재만이 교도소 담장 안에서 우정을 깊게 하듯, 담장 밖에서는 여인네들이 우정을 나누었다.

“금석이의 첫사랑은 최재만의 마누라와는 돈독하게 정을 나누었습니다. 첫사랑은 감옥에 있는 금석이에게 혼을 빼앗겼습니다. 면회를 다닐수록 금석이가 성자처럼 보인다 하더군요. 저 역시 혼을 빼앗겨 버린 상황이니 이해가 되더군요.
 
금석이는 첫사랑의 면회를 거절하면서 부탁을 하더군요. 자신을 위해 비구니가 되려는 여자를 이제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형수인 자신을 떠나지 않고 매일 면회를 오는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생명살릴 한번의기회
 
고금석에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왔다. 고등법원에서 5명 중 3명은 사형, 2명은 무기로 언도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3명의 사형수 중 1명은 형량을 낮출 수 있다는 언질을 받았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혜택에서도 고금석은 사나이의 의리를 지켰다. 사형을 언도받았던 조직의 두목은 교도소 내에서도 여전히 군림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고금석에게 증언을 하게 만들었다.

“금석이는 사나이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나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에서나 사나이로서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첫사랑은 면회를 거부하는 금석이를 보고자 대신해서 절로 매일 출근했습니다.
 
그 시절 금석이의 생명을 건 질수 있었던 단 한 번뿐인 기회였습니다. 사실상 3명의 사형수 중에는 금석이가 제일 나이가 어렸습니다. 더구나 조직에 가담한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금석이에게 감형의 기회는 당연히 부여되어야 합니다.
 
두목 장지명(가명)은 자신을 변호할 기록을 조제했습니다. 모든 칼질은 금석이가 전부 했다는 증언을 요구했습니다. 금석이는 마지막까지 사나이들이 저지른 의리를 껴안았습니다. 두목에게 ‘내가 못 다한 일을 형이 내 몫까지 해 달라. 좋은 일 많이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습니다.”

두목 장지명의 형량은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었다. 삼중스님은 이런 관행의 부담함을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있을 때 토로했다. 같은 싸움판에서 누가 칼질을 많이 했고 안하고가 어느 누가 판단한단 말인가? 아무리 고금석이 자신이 다 했다는 서류를 제출했더라도 현장참작을 해야 한다. 판사의 심리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금석이는 적어도 자신이 살고 싶어서 후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도소 내에서의 정보는 삽시간에 퍼집니다. 과거 교도소 내에서는 조직의 두목은 자신의 권한을 풀 가동시켰습니다. 자신의 역량을 다시 세울 욕심에 더욱 더 악랄한 짓을 더 일삼았습니다.
 
교도소 내에서의 두목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단하게 군림했습니다. 무기로 삶을 연장한 두목이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대한 소문은 금석이를 후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성자같이 참회하고 있는 금석이를 못 견디게 했습니다.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선배는 찬물을 마시고, 어린 후배에게 뜨거운 물을 먹인다.’ 악을 보고 악에 대한 울분으로 그리 말하는 금석이가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두 사형수 마지막시간
 

▲ 고금석이 도움을 주었던 시골학교     ©브레이크뉴스
삼중스님은 고금석을 3년 동안 계속 만났다. 최재만의 구명운동은 드디어 끝이 났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된 기쁨은 최재만보다 고금석이 더 컸다. 운이 좋게도 최재만과 고금석은 면회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면회실에는 두 명의 우정 어린 대화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참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드디어 무기수로 감형된 최재만이 면회실에 금석이와 함께 했습니다. 흔치 않은 만남이었습니다. 금석이의 얼굴은 달덩어리처럼 환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최재만은 울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금석이가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저에게 올리더군요.
 
‘스님! 아이고 참 고맙습니다. 우리 형님을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죄 없는 형님에게 이리 생명을 선물해 주신 은혜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에 최재만이 울더군요. 금석이에게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내 대신 금석이가 살아야 하는데, 나 혼자 살아서 정말 미안하다. 스님, 우리 금석이를 마지막까지 도와주십시오.’ 이 두 사나이들은 이승에서는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재만은 무기수로 감형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관됐다. 그러니 두 사람의 만남은 마지막 시간이었다. 사형수들은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이다. 미결수는 일반 경제사범들과 같은 방을 함께 쓴다.
 
따라서 함께 지내는 경제사범들은 사형수의 현실을 불쌍히 여긴다. 자신들이 감옥을 출소할 때 쓰다 남은 영치금을 사형수에게 넘겨주고 간다. 아니면 가족에게 사형수의 영치금을 넣어달라는 부탁으로 사형수에게는 돈이 생겼다.
 
선물로남긴 기부선행
 
“최재만이 감옥생활을 성불처럼 지내다보니 돈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재만은 자신의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매달 5만원을 기부했습니다. 강원도 정선 용서 분교에 매달 5만원으로 학용품을 사서 보냈습니다.
 
최재만이 무기수가 되어 다른 교도소로 떠나면서 금석이에게 남겨준 선물이 있었습니다. 매달 5만원의 기부금을 금석이에게 인계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니 금석이는 용서 분교 어린들에게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면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두 사나이의 우정은 좋은 선행으로 아름답게 이어졌습니다.”

용서 분교의 어린이는 17명이었다. 아주 강원도 오지에 외딴 산골짜기에는 가도 가도 산속 깊숙이 숨어 있는 분교였다. 용서 분교 교감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사형수라는 사실을 숨겼다. 어린들은 키다리 아저씨에게 매달 오는 편지와 학용품을 학수고대했다.

“금석이는 자신이 자랐던 시골 산천을 그리워했습니다. 아주 순박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 아이들과는 아주 잘 통했습니다. 그러다 편지에 아이들의 소원을 물어보게 되었답니다.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 물장구를 치고 싶어요.’ 는 아이들의 소원에 덜꺽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바다구경을 선물하겠다는 편지를 썼답니다. 금석이는 이승에서 마지막 약속을 한 셈이죠. 그러나 그 시절 집행을 수시로 했던 시기였습니다. 금석이는 불안한 예감에 울면서 자신의 약속을 털어 놓더군요.”

고금석의 약속은 자신이 모아놓은 영치금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형수로서 삼중스님을 믿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짐승도 자신이 죽을 시기를 알듯이 시간을 초초하게 보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분교어린이 바다잔치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자신이 거짓말쟁이 아저씨로 아이들에게 기억되는 것을 슬퍼했습니다. 제 앞에서 그 뚝심 있는 녀석이 펑펑 울더군요. 그래서 내가 약속을 대신 넘겨받았습니다.
 
‘내가 너 대신 산골아이들의 바다잔치 약속을 지키겠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아라.’ 금석이는 살아 있는 동안 산골 아이들이 바다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있는 절이 해운대에 있습니다. 해운대라면 가장 좋은 바다잔치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여름철 가장 좋은 날, 1987년 8월 12일에 2박 3일, 어린이 17명을 해운대에 초청하는 편지를 금석이가 띄웠습니다.
 
신도들도 신이 나서 바다잔치 준비를 성심성의껏 도와주었습니다. 실화로는 드문 이야기가 한 사형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다잔치는 한창 무르익었다. 호텔을 계약하고 행사일정을 재미나게 짰다. 그러던 8월 3일, 저녁 9시에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부산 구치소 당국자에게서 온 전화는 삼중스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사형수 고금석은 내일 아침 서울구치소에서 집행합니다.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으면 7시까지 참석하시시오.’라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환청처럼 아늑하게 들렸다.

“한참 잔치를 준비하던 때였어요. 정말 돌아버렸습니다. 당뇨로 몸무게가 많이 빠져 있던 시절이라 술은 곡차정도로만 흉내만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으로 양주 2병을 입에다 들어부었습니다.
 
 바다잔치를 준비하던 신도 회장을 보고 권총을 가져오라고 소리쳤습니다. 미친거죠. ‘내 노태우 대통령을 쏴 죽여 버리겠다’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신도 회장을 깜짝 놀라 ‘아니, 스님이 이리 하시는 행동은 처음 본다. 왜 그려시냐?’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날 밤 술이 만신창이 되어 야간열차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영업용 택시를 대절해서 120킬로로 달렸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순간 처음으로 남을 살해할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서 그 놈이 죽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이 운전기사를 밀쳐서 내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게 낳지 않겠는가?’하는 죄 없는 택시기사와 함께 죽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인가로 집행된다. “노태우 대통령을 권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고함쳤던 삼중스님은 미친 사람이었다. 그 만큼 고금석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고금석이 내일 집행장에서 사형이 된다는 사실에는 미치지 않고는 베기지 못했다.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 서울구치소에 7시까지 도착했다. 구치소 문에 들어서자 한여름이었지만 싸늘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교도관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고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내정문을 통과해 교무과에 들어갔더니 역시나 직원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울음바다 집행순간
 
“집행장에는 밧줄은 이미 내려와 있었고, 검사, 신부, 목사와 승려인 내가 금석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고 내 앞에서 오체투지하고 삼배 절을 넙죽이 하더군요.
 
환하게 웃으면서 ‘스님! 저 갑니다’는 이 사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중앙에서 나는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사형수는 웃고 죽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할 스님은 통곡을 하고, 정말 뜻하지 않는 광경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여전히 웃으면서 ‘스님, 왜 그리 슬피 우십니까? 제가 가기도 편치 않습니다. 저를 위해 웃어주세요.’하는 말에도 울음은 여전히 그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고금석에게 유언을 물었다. 고금석은 또렷한 목소리로 유언을 차분히 남겼다. 깨끗한 영혼으로 남긴 유언은 집행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감명을 받았다. 모두 눈시울을 적혔다. 삼중스님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눈물을 쏟았던 경우는 돌이켜보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매달린 눈물이었을 겁니다. 금석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언을 남겼습니다.
 
‘산골 아이들이 바다에서 뛰어노는 사진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떠납니다. 스님이 약속하셨던 바다잔치를 잘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신도들이 잘 보호해 주세요. 아무 사고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스님에게 힘든 일만 남겨 놓고 갑니다.
 
다음은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가난해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여 어머니는 끝내 불구가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자가용을 사서 불구가 된 어머니를 시골에서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자식으로 온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스님을 꼭 돕고 싶었습니다. 이승에서는 제가 돕지 못하였으나 저승에서라도 가서 돕고 싶습니다. 스님이 가지고 계신 당뇨병은 제가 가지고 저승으로 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분서주 일하면서 견디는 것을 보면 분명히 금석이가 저의 당뇨병을 껴안고 간 것 같습니다.”
 
여관방틀어박혀 울다
 
형장의 고금석은 덜컥 소리와 함께 저승으로 갔다. 그는 죽음을 참으로 편하게 맞았다. 그렇지만 삼중스님은 그 충격으로 만사가 귀찮았다. 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싫었다. 한 여관방에 홀로 앉아 울고 또 울었다. 고금석의 죽음으로 다가선 고통은 참지 못할 정도였다. 삼중스님이 여관방에 틀어 밖혀 있던 며칠 동안은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고금석이 남긴 유언이 실행되고 있었다.

“내가 여관방에 있을 때, 일본인 가끼루마 스님이 서울에 방문했나봐요. 난 그 스님을 싫어했어요. 아주 꾀죄죄한 가난한 스님이었습니다. 가난해서 싫어한 게 아닙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고집이 대단한 스님이었습니다.
 
일본인 통역을 통해서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스님이 다른 일이 있어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도 굳이 만나게 해 달라는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 사정을 이야기했답니다. ‘3년 동안 만났던 사형수의 집행을 보고난 후 여관에 틀어 박혀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고 하더군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난한 가끼루마 스님이 돈 오만 엔을 주면서 죽은 사형수에게 향초라도 사서 피워달라고 했답니다. 정말로 가난한 스님이었습니다. 그 향초 때문에 가끼루마 스님에 대한 편견을 버렸습니다.”

가끼루마 스님의 도움으로 삼중스님은 여관방을 나왔다. 가끼루마 스님은 삼중스님을 만나서 그 유명한 일본의 이총에 대한 실마리를 꺼냈다. 고금석의 죽음이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역사적인 이총의 영혼을 모국인 한국으로 옮기는 일을 진행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참 좋은 일이 터진 것이다.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인 이총 업적쌓다
 
“금석이의 죽은 후에 하나 둘 씩 좋은 일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졌습니다. 만나기도 싫었던 가끼루마 스님을 만나게 된 동기 역시 금석이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금석이의 맑은 영혼은 이총의 역사적인 일에 대한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기업체에서 강연이 들어 왔습니다. 강연료가 100만원이다 보니 대학교수들이 주로 많이 했습니다. 나야 어쩌다가 불자인 기업가가 부르면 간혹 하던 시절이었죠.
 
기업체의 강연에서는 근로자의 혼을 빼앗아야 합니다. 노사분규로 엉킨 응어리를 없애야 합니다. 강연의 이야기꺼리는 금석이의 영혼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했습니다. 금석이를 떠난 보낸 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절절 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눈물을 쏟으면서 내 심정을 이야기하니 당연히 모든 이들도 눈물을 함께 흘렸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 나는 한때 짐승의 짓을 했다, 남은 시간은 짧지만 굵게 정리하고 싶다, 맑은 영혼으로 이사 가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강연 청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고금석이 유언으로 남겼던 바다잔치는 풍성하게 치러졌다. 용서 분교 어린이들은 바닷가에서 추억을 만들었다. 어린들이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자장면과 대중목욕탕, 바닷가의 파도놀이, 모닥불 잔치 등 삼중스님과 신도들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드디어 마지막 8월 15일 어린이 17명을 버스에 태웠다. 삼중스님은 마이크를 들고 어린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풍성한 바다잔치얘기
 
“어린이들이 나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겨우 참으면서 ‘인사를 잘못했다. 이 바다잔치에 대한 인사는 내가 받을 수 없다. 그럼 누구일까? 어린이들과 편지로 약속한 키다리 아저씨가 베풀어준 사랑이다.
 
그 아저씨는 사형수였다. 너희들도 커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키다리 아저씨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맑은 영혼이 너희들을 사고 없이 잘 지내도록 지켜주었다.’ 이렇게 말하고 목이 매여, 인사를 대충 끝낸 채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떠나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주먹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왜 이리 금석이 말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는지 금석이와는 아마도 저승에서 같이 할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용서 분교 교장선생님이 삼중스님에게 돈 20만 원에 대한 고민거리를 전했다. 고금석이 교도소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속에 돈 20만 원을 넣었던 것이다. 자신이 더 이상 학용품을 사서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고금석은 자신의 전 재산을 보냈던 것이다.

“편지 내용에는 ‘이제는 더 이상 돈을 보낼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돈 20만 원을 보내드립니다. 이 돈으로는 학용품을 살 4개월 밖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써주십시오.’ 이런 내용으로 교장은 그 돈이 무서워서 쓰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 끝에 교장과 거래를 했습니다.
 
그 당시 분교에는 교실이 한 칸뿐이었습니다. 무서워서 쓰지 못하는 20만 원으로 교실 한 칸을 새로 증축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모자라는 돈은 내가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 때부터 미국, 일본에서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기부금은 충분히 거쳤습니다. 고금석은 법명이 ‘금송(金松)’이었습니다. 드디어 금석이의 법명 ‘금송’의 현판식이 있는 교실의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금송’ 교실 준공식
 
용서 분교 촌 골짜기에 잔치가 벌어졌다. 어린이 17명, 부모, 동네 유지, 면장, 파출소 소장, 이웃 동네 사람까지 모두 모였다. 삼중 스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용서 분교의 숙원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을 위한 교실 한 칸을 더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소망은 누가 풀어주었는가? 이 동네의 부자인가? 아니면 서울에 사는 부자인가? 아니다.

“마이크를 들고 참 술술 말도 잘 나왔습니다. ‘한 사형수가 매달 5만원을 용서분교에 보냈다. 어린이들에게는 ‘키다리아저씨’로 불리었다. 어린이들은 바다잔치를 원했다. 산골에서 산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싶어 했다. 처음으로 바다구경을 했다. 아이들의 소원을 고금석 사형수가 풀어주었다. 그는 바다잔치를 하기 열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유언엔 아이들의 걱정을 했다. ‘바다잔치’에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키다리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선물을 남겼다.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만들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전 재산 20만 원을 분교 교장선생님에게 보냈다. 이 돈이 모체가 되어서 교실의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갔지만 어린이들과 더불어 이 분교에 살아있다.‘ 지금도 용서 분교에 ’금송‘이라는 간판을 단 교실이 있습니다. 금석이는 분명히 해맑게 웃고 있을 겁니다.”

삼중스님은 기업체 강연에서 사형수가 세워준 교실이야기를 했다. 돈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에 기업체의 노사는 함께 울었다. 하루에 3번 십년동안 1만회의 강연을 했다. 1만 회의 강연에는 체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고금석과 함께 삼중스님의 당뇨병 증세도 갔다. 고금석의 유언대로 그가 삼중스님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내가 아주 힘든 일만 있으면 ‘금석아 나를 좀 도와 달라’는 생각으로 멍하게 그 놈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금석이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금석이의 이야기로 강사료를 받은 돈은 부끄러움이 없는 돈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6개월 동안 3일에 한 번씩 전 직원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그
 
 해만큼은 처음으로 노사분규가 없었다는 말을 전달받았습니다. 상무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올해 노사분규가 없게 만든 장본인으로 깊이 감사한다는 내용을 연하장에 적었습니다. 저의 강연으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조원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멋지게 떠난 고금석의 이야기는 노조원들의 혼을 맑게 한 것입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순수하고 맑아집니다. 그의 추모비에서도 분명히 맑은 영혼을 담게 하고 싶습니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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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7/27 [23:41]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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