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들고 다니려면 불편하지 않니?

최종욱 수의사 | 기사입력 2008/10/05 [20:13]

나침반 들고 다니려면 불편하지 않니?

최종욱 수의사 | 입력 : 2008/10/05 [20:13]
우리네 집들은 대부분 남향으로 지어진다.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그래야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심리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관습적이라고 행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은연중 우리 몸의 생리와 맞음을 느낄 때가 많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분명히 tv를 켜 놓은 채로 동서방향으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날 때에는 방바닥을 회전하여 남북 쪽으로 향해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나만 그런가 하고 식구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더니 아침결에 누워 있는 방향은 대개가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나침반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 몸을 순환하고 있는 피, 즉 적혈구는 철과 산소가 결합하는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 몸을 온통 순환하는 세포가 이렇듯 철이 주성분이니 외부의 자기장에 어느 정도 반응하리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일진대 그곳에 깃들여 사는 우리가 그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철 지난 영화 중에서 ‘코어(core)’란 영화가 있다. 영화 중 지구 자기장의 소실로 비둘기가 날다가 집단으로 방향을 잃고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코어는 ‘지구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진다’라는 전제를 근거로 만들어진 sf 영화이다.

그러나 철새라면 몰라도 비교적 텃세권을 가지고 짧고 자유롭게 비행 생활을 하는 비둘기가 굳이 자기장을 의지해 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한 상상일 것이다. 주로 남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의 경우라면 지구 자기장에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고 그걸 증명하는 여러 실험결과도 나와 있다. 새들뿐만 아니라 연어, 바닷가재, 바다거북 같은 먼 대양을 몇 년씩 이동하는 회유성 동물들도 몸 안에 안정적인 방향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면 도저히 이 같은 지구단위의 회유를 감히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연어는 원래 돌아온 곳의 물 냄새를 찾아, 비둘기는 지형지물을 기억해 찾아온다는 학설들도 있다. 대륙이나 대양을 횡단하는 지구적인 이동에는 자신들만의 내재된 나침반으로 목표지점에 가까이 접근한다는 이론이다. 즉, 기억력이나 냄새 등 좀 더 세밀한 도구들로 도달하는 것이다.

위의 가정들은 우선 지구자기장의 흐름이 영구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지구 자기는 지금도 조금씩 남북극 축이 이동하고 있고, 지질조사에 의하면 지구 자기장이 일시적으로 소멸 시기를 겪은 후에 아예 남북극이 역전되는 현상도 20만 년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 현상은 우리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먼 가상의 일일 테지만, 이럴 경우 과연 이동하는 동물들은 북극으로 향하던 것들이 남극으로 향하고 남쪽으로 향하던 것들이 갑자기 북극으로 이동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지구 자기장에 의존한다지만 자북(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과 진북(지리상의 정확한 북쪽)은 엄연히 차이가 있고 지금도 자북은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데도 철새들은 해마다 똑같은 보금자리를 찾아가니 말이다. 즉 자기조절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지구 자기장의 역전보다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지구자기제로’ 현상이다. 이 경우 지구는 자기 보호막을 완전히 상실하고 해로운 태양풍을 그대로 맞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죽음의 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고래가 자살하는 현상에 대한 여러 가설 중에 지구 자기장 교란에 의한 이론이 있다. 고래의 몸 안에 나침반이 있다면 일반 동물들에 비해서 훨씬 더 정밀하고 복잡해야 할 것이다. 거대 항공모함이나 원자력잠수함이 그렇듯 고래 역시 대양을 떠도는 방랑자이자 대식가이니만큼 정확히 바다의 변화를 파악하고 먹이의 위치를 찾아가려면 일반 연안 어류들보다는 더욱 안정적이고 탁월한 감각기관의 존재가 필수사항일 테니 말이다.

그 상태에서 만일 지구 자기장에 예고 없는 변화라도 일어난다면 이 무던한 고래에게 갑작스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10년 정도 주기로 일어나는 태양풍의 증가는 지구 자기장을 일시 교란시켜 고래를 육지로 올라오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 조사에 의하면 300년 동안 발생한 고래 자살 97건 중 중 87건이 이 바로 이 태양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한다.

얼마 전 촬영한 ‘구글’ 위성사진에 의하면 방목하는 가축이나 야생 초식동물의 60% 정도가 쉴 때나 먹이 섭취 시 남북으로 향해 있다고 한다. 크게 이동하지 않은 동물들조차 본능적으로 남북을 인식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식생대가 남북으로 분포하니 향후 이동할 방향을 사전에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태양빛을 쬐기에 좀 더 유리한 데로 방향을 잡는 것인지는 앞으로 더 조사해 볼 과제이다.

벌이나 개미 같은 이동성 곤충들은 더욱 방향에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그들 몸 중 많은 부분은 이러한 본능을 활용할 것이다. 다소 엽기적이긴 하지만 최근 중국의 한 과학자는 몸 안 자성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강력한 자석 사이에 곤충들을 두고 공중 부양하는 실험을 한바 있는데, 작은 곤충들은 거의 모두 손쉽게 부양되었고 심지어 물고기나 개구리까지도 부양시켰다고 한다. 그는 현재 사람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자신하고 있다.

남북극점 부근의 신기한 오로라는 지구 자기장 보호막의 안정적인 존재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묶여 사는 우리는 직간접으로 당연히 이 강력한 자석의 영향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거대한 힘을 부정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체념할 수도 없다. 동물과 식물이 다른 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움직인다는 건 때론 타고난 본능을 뛰어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인류는 자연과 문명으로부터 주어진 능력에 감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겸손함이 필요할 때다.

글 :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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