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 연락처 : 대전동방문화진흥회 (042)823-8812
* 위편삼절(韋編三絶)과 주역의 전술(傳述)
공자는 기린이 잡혀 죽은 뒤 붓을 꺾었고, 2년 뒤인 임술 년(서기전 479)에 작고하였다. 향년 만 72세다. 그러면 공자가 과연 주역에 손을 댄 것은 언제쯤일까? 사실 2,500여 년 전의 역사를 지금에 와서 추론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지만 자료에 근거해서 말하자고 한다. 공자가 쓴 춘추의 내용을 살펴보면 점례(占例)로써 당시를 기술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공자는 춘추를 쓰기 이전에 이미 주역을 충분히 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공자가 십익(十翼)으로써 주역에 손을 댄 시점이 과연 춘추 전일까 후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공자는 기린이 잡혀 죽은 뒤 느낀 바가 있어서 춘추를 썼으니 춘추의 글은 잡혀 죽었던 기린을 염두에 두고 기술한 것으로, 기술되는 242년이라는 기간은 후천을 위한 대법(大法)으로 삼은 것이다. 주역의 십익 역시 마찬가지다. 십익은 진리를 밝히려한 목적도 있겠지만 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역시 후천시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기린이 잡혀 죽기 이전에 주역에 손을 댔을 수도 있었겠지만 춘추나 주역 모두 기린이 죽은 이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기린이 잡힌 해는 공자 춘추 70이 되는 해다. 70이 되는 고령(高齡)에 이제 더 이상 도를 펼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칠 수는 없고 도를 후세에 펼쳐야 되겠는데 먼 훗날에 천지가 뒤바뀌는 후천의 개벽시대가 올 것이니 그 때에 가서 도가 펼쳐질 것을 내다본 것이다. 논어에 ‘내가 수한 나이에 오십을 더해서 역을 배운다면(假我數年 五十以學易) 대과를 없이할 것이다(可以无大過矣)’ 하였다. 이때 ‘수년(數年)’은 공자 나이 70을 의미하고 ‘오십(五十)’은 오십대연수(五十大衍數)를 의미하니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주역의 용수(用數)를 말하며, 대과(大過)는 주역의 대과괘를 의미하니 역시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대과괘는 주역 상경(上經)의 마지막 괘다. 즉 선천의 마지막 괘이니 ‘대과를 없이 한다’라는 것은 선천을 무사히 넘기고 후천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글은 공자의 비결이 담긴 문장이니 범상히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글 속의 대과는 오늘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소강절의 『황극경세서』를 보면 지금의 시대를 대과괘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의 澤風大過( 못은 서방을 가리키고 나무는 동방을 의미하니 즉 서양의 물질문화에 동양의 정신문명이 침체되어버린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를 대과시대라 하는 것이다. 선천에서 후천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대과가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공자는 어떻게 하면 대과를 없이할 수 있을까를 근심한 것이고, 대과를 없이할 비결을 주역 속에 담아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강절 선생의『황극경세서』와 야산 선생의 ‘선후천고정설’을 비교하면서 참조하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춘추에 주역 점례(占例)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 주역 점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사기(史記)에 ‘孔子께서 늘그막에 역을 좋아했다(晩而喜易)’ 했고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韋編三絶) 역을 읽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공자를 모르는 후세의 학자들은 이 글을 보고 평하기를, 공자도 주역을 몰랐기 때문에 가죽으로 엮은 주역 책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은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공자가 어찌 주역의 뜻을 몰랐겠는가?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하신 분이다. 즉 ‘배우지 않고서도 아신 분’이다. 성인(聖人)이란 무불통지(無不通知)하신 분을 말한다. ‘성인 성(聖)’자가 ‘耳+口+壬’의 합성자니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데 으뜸이 되는 자를 말한다. 귀로 들음에 막히는 것이 없고 입으로 말함에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이니 ‘무불통(無不通)’이 이를 의미한다. 공자가 말한, 육십(六十)에 ‘이순(耳順)’이라는 말과 칠십(七十)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그러한 공자가 어찌 주역을 몰랐겠는가? 다만 자신의 도를 주역(周易) 속에 담기 위해 고심(苦心)하는 가운데 위편삼절하신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논어 속에서 공자를 대하고 그저 예의격식이나 갖추고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공자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주역을 보면 공자야말로 만세불역의 대스승임을 알 수 있다. 2천5백 년의 뒤를 내다보고 쓰신 공자의 간절한 염원을 생각하고 주역을 대하면 한 자 한 자가 더욱 경이롭기만 하다. 성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천금을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역을 그저 한번 읽고 해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책을 덮어서는 결코 주역의 깊은 내용을 헤아릴 수가 없다. 주역의 글 속에는 성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으므로, 주역을 대하는 태도 또한 보다 간절한 것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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