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6) - 술몽쇄언(述夢瑣言)

이응국 | 기사입력 2008/01/21 [13:56]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6) - 술몽쇄언(述夢瑣言)

이응국 | 입력 : 2008/01/21 [13:56]
 
 
 

* 술몽쇄언(述夢瑣言)

  양력으로 한 해를 마치고 새해가 시작되는 날 아침 새벽, 나는 문득 꿈을 꾸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사형을 당하는 꿈이었다. 사형집행이 임박해 오는 순간에 어느 결인가 장모가 앞에 앉아 계셨다. 하필 장모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장모께 과거의 잘잘못을 말씀드리고 난 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꿈속에서 자세를 반듯이 하고 눈을 감는 중에 꿈에서 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에(1월 13일 임자) 죽는 꿈을 또 꾸었다. 이번에는 누이가 말하기를 내가 죽어야 자신이 산다며 내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고 압박했다. 칼로 짓누르는 것을 의식하며 아픔을 느끼던 중에 깼다.

  꿈이란 때로는 영험할 수 있지만 대개는 부질없는 것이라 여겨 온 것이 나의 소신이다. 평소에도 간혹 꿈꾸기는 했으나 애써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죽는 꿈을 두 번이나 꾸다니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신명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생각만 하고 마음속으로 덮어두려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도 공부처가 되겠다 싶어 기술하려는 것이다.

  올해는 무자(戊子)년 쥐띠 해다. 나 역시 경자(庚子)생 쥐띠로서 양력으로 따진다면 내 나이는 이제 49세가 된다. 경자생 쥐띠로서는 네 번이 지나고 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해다. 49라는 숫자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묘하게도 두 번째 꿈 꾼 날이 13일 임자(壬子)일이니 이 역시 양둔상원(陽遁上元)인 갑자(甲子)로부터 49번째의 일진(日辰)에 해당한다. 양력으로 13일이니 4와 9를 합해서 금(金)으로 종혁(從革)되는 이치도 된다. 49의 숫자가 내 앞에 연달아 펼쳐지니 49라는 숫자 속에 무슨 조화의 기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신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예로부터 49라는 숫자의 의미를 사람들은 평범하게 보지를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9는 변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불가에서는 망자(亡者)가 이승을 하직하고 저 세상으로 다시 환생하기까지의 기간을 49일로 잡고 있다. 이 기간에 올리는 재(齋)를 49재(齋)라 한다. 혹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말하는데, 이승의 탈을 벗어 던지고 저승으로 가는 변혁 기간을 말한다. 누에가 태어나서 뽕잎을 먹으며 고치를 짓기까지도 49일이 걸린다. 49일이 지나서야 누에가 변해서 나방이 된다. 이 외에도 주역에서 점을 칠 때, 49개의 산가지를 이용한다. 기실 50개(大衍之數)의 산가지를 이용하지만 하나는 태극을 상징하므로 나머지 49개로 대련수를 쓴다는 것이다.

  주역에 혁괘(革卦)가 있다. 혁(革)은 변혁의 뜻이다. 묵은 때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혁괘 역시 49번째에 있다. 옛날 문왕이 주역 괘의 순서를 정할 때, 49라는 수의 의미를 생각하고 안배해서 혁괘를 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49가 갖는 변혁의 의미는 확실히 있는 모양이다.

  혁괘(革卦)를 괘상으로 살펴보면, 위는 태괘(兌卦:못을 상징)요 아래는 이괘(離卦:불을 상징)다. 못[澤] 속에 불[火]이 있는 모습이다. 물과 불은 상극(相剋)하니 서로 변혁하는 모습이다. 태괘는 또한 오행으로는 금(金)을 상징하고 방위로는 서방을 가리키고 계절로는 가을을 말하며, 이괘는 오행으로 화(火)요 방위로는 남방이요 계절로는 여름이다. 문왕팔괘를 공부하면 이 뜻을 알 수 있다. 화극금(火克金)이 되니 금(金)이 변혁하는 모습이요 태양이 서쪽으로 기우는 오후(午後)의 모습이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다.

  이를 괘(卦)로써 뿐만이 아니라 효(爻)로서도 설명할 수 있다. 주역은 상경(上經)과 하경(下經)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경은 천도(天道) 위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건곤(乾坤)괘부터 시작했고, 하경은 인사(人事)를 위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남녀가 서로 만나서 감응(感應)하고 부부가 된다는 택산함괘(澤山咸卦)를 첫 번째 괘로 삼고 있다. 함괘의 구사(九四)효에서 남녀가 ‘동동왕래(憧憧往來: 남녀의 합궁)’한 후, 열 번째 괘인 산택손괘(山澤損卦) 육삼(六三)효에서는 자식을 출산한다는[三人行 則損一人] 뜻이 담겨 있다. 이 사이가 꼭 60효이니 이는 열 달(十卦)을 지나서 자식이 나오는 이치다. 이로부터 49번째 되는 효가 택화혁괘(澤火革卦) 구사(九四)효다. 구사효사에서 말하기를, ‘개명(改命)하면 길(吉)하리라’ 했으니 진정 변혁의 이치를 표현한 글이다.

  신(神)이 오는 것이 방소(方所)가 없고 역도(易道) 역시 체(體)가 없듯이, 주공(周公)이 과연 이러한 뜻에 근거해서 효사(爻辭)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근거 없다고만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는가? 49라는 수는 7수를 다하는 7을 곱해서 이루어진 수다. 역의 원리에서 6은 괘가 6효로 이루어진 것처럼 ‘극수(極數)’의 뜻을 갖고 있고, 7은 극즉반(極則反)의 원리에 의해 ‘칠일래복(七日來復)’ 즉 ‘소생(蘇生)’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49라는 수의 의미는 변혁의 의미요 다른 새로운 도약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두 번 연이은 꿈에 한번은 음을 마주하고 한번은 음이 뒤에 있었으니 음을 전후로 맞이한 모습이다. 내가 양에서 음으로 바뀌는 변혁의 시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리라. 칼을 들이댄 것은 무슨 뜻일까? 양은 만물을 생하고 음은 만물을 죽이는 이치니[陽生陰殺] 역시 마찬가지로 음도(陰道)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 49세의 나이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죽음을 준비하는 나이라 볼 수 있으니 기쁜 일은 분명코 아니다. 그러나 꿈을 통해서 늦게나마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십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나는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백 년 몸뚱이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오래 산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초로(草露)의 인생과 같이 덧없기만 할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하였으니 부지런히 노력하는 후배를 두고 한 말이다. 후생(後生)이 지금이야 별 볼일 없지만 앞으로 공부할 나이가 많고 힘도 강하므로(年富力强) 그 세를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40-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알려짐이 없다면 그 인생은 백년, 천년을 산다 한들 덧없는 인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혁괘(革卦)의 구사효를 들여다보자. ‘구사(九四)는 뉘우침이 없으니(悔亡) 믿음을 두면(有孚) 개명(改命)해서 길(吉)하리라’ 했으니 글 뜻을 음미해 보면 선천을 마치고 후천에 이르는 ‘개명(改命)의 길(吉)’은 ‘뉘우칠 회(悔)’자 속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미래의 길(吉)은 과거의 자취를 되돌아보고 내 삶의 자취가 어땠는지를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미래의 길흉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과거의 자취가 선(善)하지 않다 해도 반성하며 잘못을 뉘우친다면 여생(餘生)을 길(吉)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번의 꿈은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을 갖게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로 하여금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계기로 삼고자 한다. 아마도 신명은 나에게 ‘뉘우칠 회(悔)’자 한 글자를 전하기 위해서 꿈으로 보여주었으리라 여겨진다.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 연락처 : 대전동방문화진흥회 (042)823-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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