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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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오 기자 | 기사입력 2007/11/24 [17:02]

미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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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오 기자 | 입력 : 2007/11/24 [17:02]
“5억원만 내면…” 美 새 투자이민제 ‘eb-5’ 인기




《서울 강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7) 씨는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의 아파트를 팔고 성동구로 옮겼다. 작은 아파트로 옮기면서 남은 돈에 증권을 처분한 돈을 합쳐 마련한 5억 원을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농장 사업에 투자했다. 김 씨의 돈은 한국 대만 등에서 온 다른 9명의 돈과 합쳐져 젖소 3000마리 등 총투자 규모 500만 달러짜리 농장을 설립하는 데 들어갔다. “예전에는 사우스다코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김 씨가 거액을 미국에 투자한 이유는 새로운 사업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을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시키고 장차 본인들이 원하면 미국 시민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영주권이었다.》

“아이들이 좀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자라게 하겠다는 생각을 쭉 해 왔어요. 미국에 삼촌이 계시지만 직계 가족이 아니어서 초청이민은 어렵고 ‘닭 공장의 애환’이니 뭐니 하는 취업이민도 막막해 보이던 차에 투자이민(eb-5) 제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 끝에 결행했어요. 사실 저는 영구히 미국에 살 생각은 없어요. 영주권이 나와도 1년에 6개월까지는 한국에 있어도 된다고 하니 일단은 식당도 계속할 겁니다.”

김 씨는 현재 조건부 영주권 청원서(i-526)를 신청한 상태다. 6개월 이내에 승인이 나오고 조건부 이민 비자를 받게 된다는 게 이민 수속을 도와주는 법률회사의 설명이다. 미국 입국 1년 9개월 후엔 ‘조건부’의 해제를 신청하게 된다. 이민국에서 고용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등을 까다롭게 심사하는데 여기서 통과되면 정식 영주권을 받는다.

미국 정부가 낙후된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자이민 제도를 정비한 이래 이 방법을 통해 미국으로 가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기존의 투자이민은 투자액이 최소 100만 달러이고 10명 이상의 직접 고용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외면당해 왔다. 한 해 쿼터 1만 개가 배정돼 있지만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모두 6024명이 비자를 받은 데 그쳤다. 2003년에는 71명에 불과했다.

그러자 미 이민국은 2002년 말 이민법을 개정해 절차를 더욱 투명하고 명료하게 만들면서 ‘리미티드 파트너십(limited partnership)’이라는 간접투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즉, 인구가 2만 명 이하인 지역이나 실업률이 높은 지역을 해당 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리저널 센터(regional center)’로 지정한다. 이런 지역은 최소 투자액이 50만 달러로 낮아지고 간접적 일자리 창출도 인정된다. 사실 리저널 센터 개념은 1992년에 도입됐지만 제도가 정비되며 간접투자까지 인정된 것.

낯선 땅에서 직접 10명 이상을 고용하며 사업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의 도입은 귀가 솔깃하게 다가왔다. 주 정부, 시 정부 등과 공동으로 해외 투자자를 모집하는 전문회사도 여러 곳 생겨났다. 현재 미 전역에는 워싱턴 내 낙후 지역을 포함해 27곳이 리저널 센터로 지정돼 있다.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에 사무실이 있는 h사는 사우스다코타 주 정부와 공동으로 지난해 10월부터 10차례에 걸쳐 투자이민 프로젝트 참여자를 모집했다. 프로젝트당 10명이 정원이나 평균 한 달이면 마감됐다. 미달은 한 건도 없었다. 투자자 70명을 모집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6개월째 진행해 왔는데 다음 주쯤이면 정원이 찰 것으로 보인다. 이 중 85%가 한국인이다.

h사 관계자는 “요즘은 한 달에 500건 이상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미 이민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투자이민 영주권은 803건이 발급돼 2004년의 247건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투자이민 비자를 받은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은 839명(14%)으로 대만인(2329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이런 투자는 원금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한 변호사는 “투자이민은 투자에 따른 모든 위험을 투자자가 감수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한다”며 “계약서에 원금 보장에 관한 조항이 들어가면 신청 자체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a 씨는 농장 프로젝트에 50만 달러를 간접투자해 조건부 영주권을 받고 부인과 아이들을 캘리포니아 주로 보냈다. a 씨는 “나중에 주립대에 가면 해당 주에 거주하는 영주권자는 학비가 몇 분의 1로 싸지며, 비영주권자가 미국 의과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걸 감안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1, 2년은 축사를 짓는 등 정착 기간이어서 수익이 나지 않겠지만 그 후에는 연간 7∼8%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최악의 경우 사업이 망해도 땅과 건물은 남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57층 건물 재건축사업에 50만 달러를 투자해 조건부 영주권을 받은 정모 씨는 “대형 기업에 돈을 빌려 주는 형식이어서 이자율이 아주 낮지만 원금을 날릴 염려가 적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 뒤 정식 영주권을 신청했을 때 거절당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리저널 센터로 지정된 지역 가운데는 사업 여건이 안 좋은 곳이 많기 때문에 고용이 꾸준히 유지될 만큼 사업체를 유지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영주권 신청 자격은 주어지지 않지만 투자이민보다 적은 액수로 체류 신분을 받을 수 있는 투자비자(eb-2)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2004년 친척이 뉴저지 주에 개업한 커피숍에 20만 달러를 투자하고 eb-2 비자를 받은 최모(40) 씨는 “규정상 나도 일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학교 뒷바라지만 하고 지낸다”며 “한국의 은행 이자만큼도 투자 수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울의 오스틴 김(한국명 김수기) 변호사는 “어떤 게 제일 안전한 건지, 어떤 게 진정 이민국이 요구하는 규정을 충족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인지 투자자들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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