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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에서.
 
수필가 박종희

 일 년 전에 남편과 딸애한테 더 나이 들기 전에 머리를 길러보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설레어야 할 미장원을 가는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처녀 시절엔 늘 긴 생머리를 다소곳이 묶고 다녔다. 그 모습이 제일 예뻤다고 입버릇처럼 하는 남편이었는데 10여 년 동안 생뚱맞게 짧은 단발 컷트 머리만 하는 내 헤어스타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언제부턴가 아예 들어내 놓고 불만을 내비친다. 


  단골로 다니던 집 앞 미장원이 싫증나서 새로 생긴 대형 마트 안에 입주한 이름 있는 체인점으로 옮긴 지 6 개월이 지났다. 돈은 곱으로 비싸게 받으면서 오히려 전에 다니던 집 앞 미장원만큼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과  출, 퇴근길이나 슈퍼를 갔다 오다 미장원을 지날 때면, 꼭 죄지은 사람처럼 주인여자와 눈이 마주칠까봐 불안했는데 오늘은 아주 큰마음 먹고 집 앞 미장원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의 작은 미장원이지만 워낙 수단 좋고 친절한 주인여자는 내가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거울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보곤 손님의 머리를 만지다 말고 반색을 하며 다가온다. "어머, 언니! 난 하두 안 보여서 언니 이사 간 줄 알았잖아" 다 알면서도 속을 내놓고 하는 말에 가슴이 뜨끔해져 "어 , 아는 사람이 무료 티켓을 여러 장 주는 바람에 못 왔어 . 오만원이나 되는 이용권을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몇 번 갔었는데 영 아닌 것 같아서 아깝더라도 다시 왔어" 

  어색함을 감추려고 애써 변명을 하는 내 속을 알고도 남을 여우같은 주인 여자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며 서둘러 잡지책과 커피 한 잔을 내민다. 몇 개월 동안의 공백으로 주인여자와의 대면을 서먹해하는 어정쩡한 내 표정과는 달리  여자는 또 한 명의 단골고객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에 찬 당당한 얼굴이다. 

  평소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웬일인지 미장원에 오면 커피 생각이 난다. 차례를 기다리며 머쓱하게 그냥 앉아 있기도 어색해서 조금씩, 조금씩 커피 향을 음미하며 잡지책을 넘긴다.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와 우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머리 모양새가 많이 나와 있다. 

   내가 자리를 비운 6 개월 동안에 미장원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벽면 군데군데에 걸린 유명배우들의 멋스런 헤어스타일 사진과 새로 개발된 펌의 연출사진들을 보고 있는 내 눈과 주인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다시 마주친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손님의 머리를 만지면서도 오랜만에  온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불안한지 곤두선 신경으로 내 안색을 살피는 화술 좋은 주인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선풍기바람을 타고 실려 오는 독한 파마약 냄새가  커피 향과 어우러져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낸다. 

    결혼 전 다니던  직장에 유난히도 파마머리를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노총각인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는 못생긴 얼굴에 안경까지 써서 어쩌면 저렇게 못생긴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매일 같이 옆자리에 앉아 근무를 하고 나이 어린 새내기 직원이라고 큰 오빠처럼 챙겨주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 사람한테 정이 들어 버렸다.  

  그런 그 사람을 무척 화나게 만든 사건이 한 번 있었다.  아가씨티를 내고 싶은 마음에서 한 파마머리 때문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파마를 하고 싶은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간 미장원의 주인 여자가 얼굴이 작으니 파마를 하면 아주 예쁠 거라고 하는 꼬임에 빠져서 친구와 같이 빠글빠글한 아줌마 파마를 하고 출근한 다음날, 근무복을 갈아입고 앉아 있는 낯선 배추머리를 본 그 사람은 친동생을 나무라듯 난리를 쳤다. 

  그 머리가 도대체 뭐냐고? 당장에 가서 풀고 오지 못하겠냐며 화를 냈고 파마머리를 풀지 않으려면 출근도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파마도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데 내 얼굴엔 도무지 파마머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 딴에는 변화도 주고 멋을 부리고 싶어서 한 파마인데 너무도 무섭게 화를 내는 그 사람 때문에 그날 밤 미장원으로 가서 하루 만에 파마를 풀어버렸다. 

  파마 풀지 않으면 출근하지 말라고 한다며 풀어달라고 하는 나를 보고 주인여자는 별난 직장도 다 본다고 하면서 머리를 풀어 주었다. 변변한 기술도 없이 달랑 미용사자격증 하나 따서 하는 작은 미장원이라 몇 번을 약을 바르고 펴도 요즘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아 한 동안은 곱슬머리 상태로 사무실 구석구석을 독한 파마약 냄새를 풍기며 다녔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예전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파마를 하지 않은 생머리의 여자를 두고 정숙한 여자 , 청순한 여자의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무조건 긴 생머리의 여자를 선호하는 남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나도 그날 그렇게  한 아줌마 파마 사건 이후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할 때 머리를 올리기 위해 해 본 이후 이제껏 한 번도 파마  머리를 한 기억이 없다. 그런 나를 두고 요즘 남편은 길러 파마해서 묶고 다니라고 안달을 한다. 

  중년을 넘기고 머리가 희끗 희끗 해져 있을 그 사람은 아직도 파마머리를 좋아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커피는 늘 추억을 끄집어내고 사람을 몰고 다닌다.  한 잔의 커피와 파마 약의 냄새 때문에 추억 속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솜씨 좋고 수단 좋은 주인여자는 육 개월 전 내 헤어스타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듯이 싹둑 싹둑 잘라 버리고 얼굴에 맞지도 않게 엉망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며 잠시 동안 외도를 했던 미장원의 미용사 흉을 봤다. 

  남편 때문에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하는 내 말과는 다르게 얼굴에 살이 없으니 기르지 말고 짧게 커트한 모습이 깔끔한 내 이미지와 맞는다며 여름 내내 기른 머리를 말도 없이 껑충하게 잘라 버렸다. 미장원을 오면서 상상을 했던 오드리헵번을 닮은 우아한 내 헤어 스타일은 간곳이 없고 거울에 비친 내 머리는 3년을 한 결 같이 그 여자 손에 맡겨 두었던 예전의 스타일로 다시 되돌아 와 있었다. 

  제법 많이 잘려나가 바닥 가득 까맣게 떨어진 내 머리칼을 보니 중학생이 된 딸애가 잘못 자른 머리를 감싸고 누워 며칠을 속상해하며 울던 일이 생각났다. 한번 어긋난 인연은 돌이킬 수 없듯이 이미 잘려져 나간 머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되 붙일 수가 없다. 미장원에 들어 설 때면 언제나 우아하게 멋진 헤어스타일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고 가슴 설레어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껏 한 번도 내 마음에 썩 드는 모양을 만들어준 미용사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침마다 매일 감는 머리지만 누군가의 손에 맡겨져 감겨지는 머리는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감는 잠깐 동안에도 소로시 눈이 감겨온다. 방황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준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오늘따라 더 신경을 써서 자근자근하게 안마까지 해주는 보조 미용사의 눈치가 보통이 넘는다고 생각을 하는 사이 드라이기 바람과 함께 풍겨오는 싱그러운 삼푸의 향기가 신선하게 밀려온다. 20여 년 전 별빛이 촘촘한 밤에 형광등처럼 환하게 내 가슴에 안겨졌던 보랏빛 라일락꽃의 낯익은 향기였다. 


  나이를 먹어가고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자주 거울을 보게 되고 외모에 대해서도 신경이 간다. 조금이라도 더 젊게 보이고 싶고 앳되게 보이고 싶어 전에 없이 밝은 색상의 옷을 사들이고 깊어져 가는 주름살을 감추어 보고 싶어 레티놀 제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을 보면 나도 여자인가보다. 1년만 지켜봐 달라고 , 1년 후면 나도 당신이 좋아하는 긴 머리에 우아하게 웨이브를 넣어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멋진 머리를 하고 다닐 거라고 자신 만만하게 말했던 내가 다시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가면  남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 안엔 어디선가 많이 본 눈에 익은 머리를 한 중년의 여자가 서있다. 수수한 얼굴이라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가 어울리는 탓에 10여년을 한 결 같이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해온 바로 그 모습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곧, 편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잠깐, 엘리베이터 안에 서있는 1분 만에 나는 다시 깨닫게 된다. 

충북 출생.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충북여성문협회회원. 충북수필가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회원. 중부매일 에세에뜨락 수필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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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21 [09:49]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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