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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짇고리.
 
수필가 박종희

   버릴 요량으로 마음에 저울질을 하던 것이 몇 번이던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도 모르고.
 
   딸애가 벗어 놓은 교복 치마를 손질하려고 반짇고리를 꺼냈다. 붉은 기가 도는 주홍색과 청색이 어울려 고상한 무늬를 만들어 낸다. 사각형의 반짇고리는 17년이 지났지만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새 것처럼 화장대 수납장 안에 얌전히 앉아있다.  
 
   평소엔 눈길도 안 주다가 갑자기 아는 척을 해서인지  굳게 잠긴 문고리가 열리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하였다. 힘들여 뚜껑을 여니, 색색들이 실이 감겨있는 실패가 화사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겉모습처럼 내용물도 바뀐 것이 없다. 금박지에 곱게 쌓여 있는 바늘쌈지도 그렇고 골무와 가위, 크고 작은 단추가 담긴 봉지, 모두가 17년 전  직장 동료가 결혼 선물로 가져온 그 모습 그대로인데 반짇고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주인 여자의 얼굴만 변했다. 바느질을 하면서 늙어가는 모습도 지켜보라고 그런 건지 반짇고리 안쪽에 달려 있는 작은 거울엔 새댁이 아닌 낯선 중년 여자가 앉아 있다.     
  
교복 치마가 군청색이라 군청색 실을 바늘귀에 꿰려고 하니 도무지 실이 꿰어지지 않는다. 실을 가지고 애쓰는 모습을 보던 딸애가 "엄마, 내가 해 줄께" 하더니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늘귀를 꿰어 놓는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돋보기를 들고 바늘을 보니  선명하게 잘도 보인다. 마흔이 넘으면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다더니 라식 수술을 한 후론 눈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내게도 올 것이 온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눈이 침침해지고 가까이 있는 글자는 보기가 어려워져서 손잡이 돋보기를 책상 위에 두고 사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허리 부분에 단추 하나 옮겨 다는 쉬운 일이지만 분홍빛이 도는 가죽골무를 끼어본다. 반짇고리안의 장식품쯤으로 여기곤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아 투박하고 손에 설겠다 싶던 생각과는 달리  손에 끼니 의외로 말랑말랑하니 부드럽다. 처음 끼어보는 골무의 신기함과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골무를 낀 손가락으로 바늘귀를 누르니 제법 바느질 하는 여인의 테가 나는지 거울 안에 있는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외할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분이셨다. 늘 바느질을 하시던 모습을 보고 커서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앉은뱅이 재봉틀과 돋보기안경이 먼저 떠오른다. 도수 높은 돋보기안경을 콧등까지 내려 쓰고 손녀들의 몸매를 아름으로 재서 한나절이면 원피스 하나를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손은 도깨비방망이였다. 저고리와 단치마는 물론이고 이불보, 커튼, 버선, 자투리 옷감도  할머니 손에만 들어가면 훌륭한 옷이 만들어졌다.  친정엄마도 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아 바느질솜씨가 좋았다. 덕분에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보다도  쌓여있는 바느질감과 실패들이 먼저 나를 반겼고 이모하고 실타래를 무릎에 걸고 실패에 감으며 무료해지면  실뜨기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의 어머니세대에 의생활 담당은 여성의 일이었기에, 바느질은 여성이 익혀야 할 기본적인 과제였고 양반집 여자아이들은 조모나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7세가 되면 반짇고리를 받아서 바늘을 잡기 전에 실과 친해지는 실뜨기 놀이를 하며 바느질의 기본을 익히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집이나 안방의 보료 옆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반짇고리가 우리 눈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세월이 좋아지니 전화 한 통이면 세탁소나 수선 집에서 달려와 주기 때문에 집안에 반짇고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반짇고리의 부재를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벗어 놓은 딸애의 교복 치마 덕분에 우리 집 반짇고리도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하며 호사를 누린다. 
  
   순식간에 단추를 달아버리고 매듭을 짓는 모습을 지켜보던 딸애가 옆에 붙어 앉아 바느질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바느질이 하고 싶어 외할머니를 조르던 것처럼 딸애도 바느질 하는 내 손이 신기한 모양이다.
 
   외할머니와 친정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나도 바느질엔 재주가 있어서 학창 시절 가사시간엔 선생님의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3대까지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반짇고리가 훗날 딸애한테는 어떻게 기억이 되어 질까. 요즘 아이들에게 바느질은 외계인이나 하는 것처럼 낯설어 보일 테지만  딸애를 보면 정말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바느질을 못 한다. 바느질 쪽엔 영 숙맥이라 오히려 3대의 바느질 솜씨를 의심스러워 할 지경이니 말이다. 바늘을 어떻게 잡는지도 모르고 바느질의 기본인 박음질도 할 줄 모르는 딸애는 기술시간이면 바느질 잘하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고 한다.
 
   예전엔 혼수품으로 요강과 함께 빠지지 않던 반짇고리가 요즘 신부들의 혼수품 속에도 따라가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좋아지다 보니 옛것들은 이제 그리움으로만 남게 된다.  긴 겨울밤 아랫목에 둘러앉아 양말을 기우고 내복을  기우며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언제 또 반짇고리의 문을 열게 될지 나 또한 기약이 없지만 오랜만에 꺼낸 반짇고리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정돈을 해서 있던 자리로 다시 들여 놓는다.  오늘밤은 반짇고리 안에서도 도란도란 가족회의가 일어날 것만 같다.

충북 출생.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충북여성문협회회원. 충북수필가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회원. 중부매일 에세에뜨락 수필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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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23 [17:42]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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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전체목록
충북출생.월간문학세계 수필신인상.충북 여성문협사무국장.청주문협회원
보험증서
엄마는 부재중
빈집
밤 기차안에서
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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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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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참외.
반짇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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