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71) - 문경에 깃든 야산선생의 자취를 생각하며...

이응국 | 기사입력 2008/07/14 [15:55]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71) - 문경에 깃든 야산선생의 자취를 생각하며...

이응국 | 입력 : 2008/07/14 [15:55]

▲    也山 李達先生
      (1889~1958)
 
 
문경에 깃든 야산선생의 자취를 생각하며...

 
야산선생은 후천의 시작이 무자년, 즉 단기로는 4281년이요 서기로는 1948년부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후천을 맞이하는 첫 자리를 동북간방인 우리나라로 보았다. 대저 선후천을 말하고, 후천이 오는 시기를 주역을 통해서 전한 분이 공자이신데, 공자의 뜻을 계승해서 이를 전한 분이 송대의 소강절 선생이시고 현금의 야산선생이라 말할 수 있다. 소강절선생의 저서인『황극경세서』에 그 뜻이 담겨 있고, 야산선생의 저설인 ‘선후천고정설’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후천이 시작되는 시점을 논함에 있어 두 분의 설이 다르기는 하지만 강절선생은 천도를 근거삼아 설명한 것이고, 야산선생은 인사를 주장해서 설명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천도는 법수대로 흘러가지만 인사에는 과불급이 있기 때문이다. 강절선생의 말대로라면 아직도 후천은 요원하다. 하지만 야산선생은 소강절선생이 말한 연도보다 1236년을 당겨 잡았다. 무기(戊己)중궁인 1200년과 갑경변도시 36년이 천도가 운행하는 가운데 자연히 윤화된다고 본 것이다. 선후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 한계상 어렵고 다만 ‘선후천고정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후천의 시작점은 야산선생 홀로 안 것이 아니다. 이미 이전의 성인들이 밝혀 놓은 것이다. 요임금의 바둑판과 단황의 윷판, 강태공의 사작경신과 공자의 춘추연대가 이를 증명하는 것들이다.

선후천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즈음해서, 선생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裡里)하고도 묵동(墨洞)이라는 지명을 택해서 들어갔다. ‘속리(裡)’자나 ‘검을 묵(墨)’자 모두가 숨는다는 뜻이다. 아마 신명도 속이려 했을 것이다. 신사년(1941)인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일년전의 일이다. 거짓 미친(佯狂)척 해가면서 세상을 속이면서도 선생은 광복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고향인 김천 재실 한쪽 칸에 서까래 좌우를 7개씩 만들고 가운데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 그중 한 증거다. 음력 7월 7일 칠석 다음날이 광복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만을 집착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포부를 선생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선천의 마지막 자리에 서서 후천을 잇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신 것이다. 아마도 ‘명을 받았다(受命)’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일제 침략시에 방랑객처럼 전국을 떠돌아 다녔지만 이 시기에는 이리에서 거주하였고, 가족들은 이리에 거주했지만 선생은 주로 문경에 머물면서 광산을 경영하고 이곳 지역을 탐색하였다. 그러기를 몇 년 후, 선생은 후천에 이르는 길목으로 문경을 택했으니 그 역사적 현장이 바로 문경새재다. 왜 하필 문경을 택했을까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 아마도 선생은 경사(慶事)를 듣기 위해서 문경에 왔을 것이고, 경사를 이루기 위해서 문경에서 행사했을 것이다.

선천에서 후천을 건너는 일이 참으로 험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후천에 이르는 것을 경사로 보았을지 모른다.

때는 단기4277년(1944년)이니 양력 8월 24일이요 음력으로는 7월 6일이다. 일진으로는 갑신년 임신월 경신일 갑신시다. 지지(地支)자 ‘신(申)’자만 네 글자 들어 있다. 신(申)자는 절구(臼) 와 공이(丨)의 合字니 방아찧는 모습이다. 선생은 문경새재(鳥嶺)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시궁동(矢弓洞)에서 기약하지 않고 모인 남녀 36명과 더불어 방아찧는 행사를 시작했다. 아울러 풀무놀이도 했다 한다.

한 판의 바둑이 끝나고 한 판의 윷놀이가 끝나는 시점(정해년으로 서기 1947년)을 기준해서 3년전의 일이요, 갑을 경으로 고치게 되면 경신년.월.일.시가 되는 강태공이 방아를 찧는 시점이요, 공자 작고 후 춘추도수에 근거한 2420년(신사년으로 서기1941)에서 3년을 더한 시점이다. 천도에 의해 인사가 오는지 아니면 인사로서 천도가 이르는 것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이때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36년간 침탈했던 기간 중 광복을 1년 앞둔 시점이다. 주역으로 설명하자면, 산풍고괘(山風蠱卦)에 해당하니 산 아래에 바람이 드는 모습이다. 간은 산이 되고 손은 바람이 되니 동북 간방 우리나라에 가을의 후천 바람이 부는 때다. 손방은 동남방으로 일본을 가리키니 간방인 우리나라에 일제가 침략한 모습이기도 하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변혁하는 시기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으니 마치 고괘의 상과 흡사하다. 고(蠱)자를 파자하면 그릇(皿) 위에 벌레 세 마리가 있으니 그릇(皿)은 간괘를 상징한다. 야산선생은 그릇 위의 세 마리 벌레를 일본과 미국, 소련이라 말씀하셨다 한다. 선생은 고괘의 뜻을 취하였다. 나무를 갉아 먹는 세 마리 벌레를 제거하고 부패된 나무그릇을 새 그릇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야산선생의 뜻이었을 것이다. 고괘를 잘 다스리려면, 즉 부패된 그릇을 새 그릇으로 만들려면 ‘선갑삼일(先甲三日)하고 후갑삼일(後甲三日)’해야 한다고 주역에서 말하고 있다. 고괘의 단사에 나오는 말이다. ‘선갑삼일’은 신(辛)을 뜻하고 ‘후갑삼일’은 정(丁)을 가리키니 ‘사작경신’의 해인 갑신(甲申:1944년)년을 기준하면 신사(辛巳:1941년)년이 선갑삼일이 되고, 정해(丁亥:1947)년은 후갑삼일이 된다. 따라서 신사년에서부터 정해년의 7년은 말하자면 칠일래복(七日來復)의 도가 되니 선생은 이 기간에 걸쳐 고(蠱)를 다스리고 후천에 이르려 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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