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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66) - 공자의 철환천하(轍環天下)와 육경(六經)정리
공자의 철환천하(轍環天下)와 육경(六經)정리
 
이응국

공자(孔子)의 휘(諱)는 구(丘)요 자(字)는 중니(仲尼)니 그의 선조는 송(宋)나라 후예요 송나라 시조는 미자(微子)다.
 
미자는 은(殷)나라 제을(帝乙)의 맏아들이며 주(紂)의 서형(庶兄)이 된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치고 나서 미자를 송나라의 제후로 봉한 것이다.
 
공자를 동이족이라 말하는 것도 그의 집안이 결국 은나라 후예가 되기 때문이다. 선친인 숙량흘(叔梁紇)이 칠십 고령에 안씨(安氏)의 여식을 취하여 니구산(尼丘山)에 기도해서 공자를 낳았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의 정수리 부분이 움푹 팬 것이 마치 니구산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름을 구(丘)라 하고 자를 중니(仲尼)라 한 것이다.

 때는 노나라 양공(襄公) 22년 10월 27일이니 이는 주(周)나라의 역법으로 계산한 것이고, 하(夏)나라의 역으로는 8월 27일이 된다. 지금은 서력(西曆)으로 계산해서 서기전 551년 양력 9월 27일로 정하고 있다. 또한 공자의 별명을 ‘소왕(素王)’이라고도 한다.
 
『공자성적도』를 보면, 공자가 탄생하기 전 기린(麒麟)이 나타나 옥서(玉書)를 토했는데, 그 글에 ‘수정자는 쇠한 주나라를 계승해서 소왕이 되리라[水精子繼衰周而爲素王]’고 적혀 있었다고 하니 공자의 탄생은 기린과 연관이 있다.

 어려서부터 제기(祭器)를 차려놓고 예절을 익히고 놀았으며, 젊어서는 벼슬도 하였다. 혹자는 공자를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찌 배움 없이 알 수 있을 것이며 배움 없이 성인이 될 수 있으랴! 공자 나이 7세에 안평중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는 말도 있고 주(周)나라의 노자(老子), 위(衛)나라의 거백옥, 제(齊)나라의 안평중(晏平仲), 초(楚)나라의 노래자(老萊子), 정(鄭)나라의 자산(子産), 노(魯)나라의 맹공작(孟公綽) 등의 인물들은 공자가 근엄하게 섬긴 분들이다.
 
사양자(師襄子)에게서 거문고를 배웠고, 장홍(萇弘)에게 음악을 배웠다.

  아마도 공자의 ‘나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자립하였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는 말은, 이 같은 배움의 길을 통해서 30세를 전후해서 학문적 기초가 견고해졌음을 의미한 말일 것이다.
 
『논어』學而篇에서도 공자는 “배움에 싫어하지 않았고,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學而不厭誨人不倦]”고 스스로 말씀하셨으니, 가르치는 일 이외에 배움의 길도 평생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공자가 노나라 태묘(太廟)에서 제사를 도운 적이 있었는데 이때 매사를 물으며 행동했다. 혹자가 말하기를, “누가 추(鄹)읍 대부 숙량흘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하였는가?
 
태묘에 들어와서 매사를 묻는구나!” 하니, 공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다” 하였으니, 알고도 물을 줄 아는 것이 바로 예를 행하는 자세임을 보여준 것이다.

  33세를 전후해서 공자는 좀 더 견문(見聞)을 넓히기 위해서 주(周)나라에 갔고, 그곳에서 노자(老子)를 만나 예(禮)를 물었다. 주나라에서 돌아와서는 따르는 제자가 더욱 많았다.
 
 43세에 이르러서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예기(禮記)와 악기(樂記)를 편수한 것이다.

  평생을 배움과 가르침의 길 속에서 살면서도, 공자는 좀 더 크게 도를 행하기 위해서 다시 노나라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주유(周遊)하였다. 그가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제자인 남궁경숙이 마련해준 수레 덕분이었다.
 
이에 대해 공자는, “南宮敬叔이 나에게 수레를 주어 타게 한 뒤로 나의 도(道)가 더욱 행해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공자가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14년 간의 기간에 걸쳐 공자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다녔다. 위(衛), 진(陳),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 6개 국가에서 머물렀고, 광(匡), 포(蒲), 추향(鄒鄕), 협(叶:초나라)등의 지역을 경유하였다. 힘들고도 오랜 객지생활을 마치고 공자는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에 공자는 더 이상 벼슬을 구하지 않고 종일 은행나무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육경(六經)을 정리하였다 한다. 지금도 곡부의 공자사당 앞의 뜰 가운데에 ‘행단(杏壇)’이라고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곳이 바로 공자께서 강학을 하셨다는 곳이며, 이는 만세(萬世) 입교(立敎)의 머리로 삼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 향교나 학교 교정에 은행나무가 세워져 있는 것은 바로 공자의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려는 뜻에서이다.

  육경은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춘추(春秋), 주역(周易)을 말한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보면 공자께서 ‘시경과 서경의 불필요한 곳을 깎아 없애고, 예기와 음악을 정리했으며, 춘추를 짓고, 주역을 찬술했다(刪詩書 定禮樂 修春秋 贊周易)’고 적고 있다.
 
 이는 공자께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누비며 도를 펴시려다 끝내 펴질 못하고 말년에 다시 노나라에 돌아와서 육경을 정리하셨음을 표현한 글이다. 이 육경을 옛날 선비들은 천지자연의 도를 실은 글이라고 말하였는데 공자께서 이러한 이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경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육경을 통해서 천지자연의 도를 밝게 깨우쳤던 것이다.

  옛날 주나라 시대에는 이미 시서예악(詩書禮樂)의 글이 있었다. 이 네 가지 글을 통해서 나라 안에 있는 자제들[國子]을 가르친 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예악(禮樂)으로 가르치고 여름과 겨울에는 시서(詩書)로 가르쳤다.
 
일반적으로 시서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지만, 주로 시(詩)로써 성정(性情)을 다스리게 하였고, 서(書)로써 정사(政事)에 익숙하게 하였다. 예악은 모두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지만, 주로 예로써 모습을 바르게(正儀) 하는 절도를 가르쳤고, 악으로써 신기(神氣)를 부드럽게 하고자 하였다. 이 네 가지 글을 선비들이 도에 나아가는 법전으로 삼은 것이다.

  육경에는 천지사시(天地四時)의 상이 있다. 시경은 주로 사람을 흥기시키니 봄의 생하는 이치를 담고 있고(춘생), 서경은 주로 군왕의 언행을 기록하였으니 가을의 수확(추수)하는 이치를 담고 있다.
 
또한 음악은 사람을 화창(和暢)하게 하니 여름의 만물이 자라는 이치를 담고 있고, 예절은 주로 엄숙한 상을 보이고 있으니 겨울의 추위로 만물의 정숙(靜肅)한 이치를 담고 있다.
 
역은 만물이 있기 이전에 상을 드리운 것이고(垂象), 춘추는 만사지후(萬事之後)에 법을 본받게 한 것인즉(效法), 하늘은 덮고 땅은 싣는(天覆地載) 의미인 것이다.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 연락처 : 대전동방문화진흥회 (042)823-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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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5/08 [16:47]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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