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9) - 숭례문이 무너졌다!

이응국 | 기사입력 2008/02/18 [13:16]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9) - 숭례문이 무너졌다!

이응국 | 입력 : 2008/02/18 [13:16]
 
 
 

*숭례문이 무너졌다!

  예(禮)가 무너져서 숭례문이 무너진 것일까? 600여 년 간 역사의 중심지에서 더 험한 경우도 당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서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tv에 비치는 숭례문 화재 장면이 필자에게는 마치 분신자살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도 버텨왔고, 일제 36년은 물론 6.25사변 때에도 버텨왔던 ‘숭례문(崇禮門)’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졌다고 경악하고, 혹자는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절망하기도 하였다. tv를 지켜보며 내내 서글픈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우울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단순히 한 미친 사람이 방화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방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문화의 소중함을 모르는 나라에서 언젠가는 터져야 할 것이 지금 터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대문에 깃든 신명이 계셨다면 아수라 같은 현대판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으셨을 것이다.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아니면 분신자살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던 것일까? 폐허가 되어버린 저 숭례문을 보고 애도하며 그의 진정한 이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글을 쓰려는 것이다.

  전해지기로는 정도전이 이름을 붙이고 양녕 대군이 현판의 글씨를 썼다고 한다. ‘숭례’는 무슨 뜻인가? 아마도 주역의 ‘숭덕광업(崇德廣業)’의 뜻에서 취한 듯싶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역(易)의 지극함을 찬양하면서, 성인(聖人)이 역으로써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히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지(知)는 높이는 것이고, 예(禮)는 낮추는 것이니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받는 것이고, 낮추는 것은 땅을 본받는 것이다’ 하였다. 말하자면 덕을 높이는 것은 지식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고, 업을 넓히는 것은 예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덕(德)은 안에서 쌓는 것이고, 업(業)은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하를 위한 사업은 예(禮)에서 이루어지고, 예(禮)는 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공자는 말한 것이다. 예로부터 ‘성인(聖人)은 남면(南面)해서 천하의 소리를 듣는다’ 했다. 남면하는 이유는 정사(政事)를 밝게 펼치기 위함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이 ‘숭덕광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숭례(崇禮)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궁궐터를 자좌오향의 남향으로 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울에는 과거 4대문이 있었는데 모두가 오행의 원리에 입각해서 이름을 달았다. 동방의 목(木), 남방 화(火), 서방 금(金), 북방 수(水) 사방(四方)에 대해, 공자는 오행의 덕성(德性)을 붙여 인(仁), 예(禮), 의(義), 지(知)로 설명했다. 서울의 4대 성문(城門)이 흥인(興仁:동문), 숭례(崇禮:남문), 돈의(敦義:서문), 숙정(肅靖:북문)으로 이름 삼게 된 것이 바로 이에 근거한 것이다. 인의예지 중에 홀로 북문만이 지(知)자를 넣지 않은 이유는, 북쪽은 오행이 수(水)이므로 감춰진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덕(知德)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간직되는 것이므로 쓰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모두 주역에서 설명되는 것들이다.

  짧은 지면에 4대문의 뜻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이 중에 동쪽의 흥인과 남쪽의 숭례는 비보적 풍수에 이용되었다 한다. 동쪽의 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해서 다른 문보다 한 글자를 더한 4글자를 썼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볼 때 동쪽의 청룡맥이 서쪽의 백호룡보다 허약(虛弱)하므로 보완하기 위해서 지(之)자를 더 넣은 것이니 ‘갈 지(之)’자는 지현(之玄)굴곡(屈曲)의 용맥을 의미하는 글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숭례(崇禮)의 비보적 의미는 무엇인가? 숭례문 현판은 또한 다른 성문의 현판과는 달리 세로로 글을 썼다. 남방은 화(火)이므로 불꽃이 위로 치솟는(炎上)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경복궁에서 바라볼 때 저 멀리 남쪽의 조산(朝山)격인 관악산(冠岳山)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이므로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 세로 액자를 달았다 한다. 말하자면 이화제화(以火制火)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합리성이 없어 보인다.

  불도 덕(德)이 있으니 불이라는 것은 잘 쓰면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액자를 세로로 한 것은 불이 위로 타오르는 성질을 표현한 것이며, 덕을 높이고(崇) 예(禮)를 행하는 것은 바로 화덕(火德)의 아름다움을 취하려 함인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려 하지만 예는 자신을 아래로 낮추려는 것이니 상반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은 불이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예(禮)다. 이 둘은 둘이면서도 하나다. 예가 있는 곳에서라야 문명(文明) 사회가 이루어지고 예의 토대 위에서라야 문화(文化)대국이 가능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도덕을 천시하고 예의를 무시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영광스런 수식도 이제는 부끄러워 입에 담을 수 없을 지경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마치 몸뚱어리만 존재하고 넋이 나간 모습과 같다. 추모하는 속에서 전통은 계승되고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조상이 남긴 자취는 곳곳에 있건만 누구도 사모하거나 돌보지를 않았으니 만약 신명이 계시다면 그곳에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마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와 같이 겉만 번지르르 하지 넋이 빠져 나간 지 오래다. 어찌 보면, ‘폐허 전의 숭례문 모습과 폐허가 된 뒤의 저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든다.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 연락처 : 대전동방문화진흥회 (042)823-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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