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3) - 태극과 동북간방

이응국 | 기사입력 2007/12/31 [14:42]

주역으로 보는 세상 읽기(53) - 태극과 동북간방

이응국 | 입력 : 2007/12/31 [14:42]
 

*태극과 동북간방

  주역에서 ‘역 속에 태극이 있다(易有太極)’라 하니, 과연 태극은 무슨 뜻인가? 태(太)는 ‘클 태’로 태(太)자는 최대지칭(最大之稱)이며, 극(極)은 ‘끝 극’이니 극(極)자는 지극(至極)하다는 의미이다.

  ‘크다’는 것은 단지 모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만물을 생하시는 덕이 크다는 뜻이니 그 덕의 크기가 무한(無限)하다는 것이다. 주역 건괘(乾卦)에서의 ‘크도다(大哉). 건의 원(乾元)이여!’라는 말이 바로 태(太)자의 뜻에 부합한다.

  ‘지극하다’는 것은 단지 한 쪽으로 치우친 끝 부분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땅이 만물을 기르는 덕이 지극하다는 것이니, 주역 곤괘(坤卦)에서의 ‘지극하도다(至哉). 곤의 원(坤元)이여!’라는 말이 바로 극(極)자의 뜻에 부합한다. 다시 말하자면 극(極)은 양단(兩端)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중(中)을 가리키는 것이며, 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속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태극은 ‘건곤의 덕과 같다’는 것으로 태극의 원리로 만물은 생장(生長)하는 것이니, 태극이란 만물을 발생케 하는 근원처로서 말한 것이다.

  주역에 또한 ‘건곤(乾坤)은 역(易)의 문(門)’이라 했다. 옛 사람들은 문(門)을 만물이 출입(出入)하는 곳으로 곧잘 비유하였다. 봄철에 만물이 소생함을 ‘문을 열었다(闢戶)’고 말하니 이는 乾(건)을 뜻하는 것이고, 가을철이 되어서 만물이 죽기 시작하고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문을 닫았다(闔戶)’고 말하니 이는 곤(坤)을 뜻하는 것이다. 이때의 건곤은 만물의 시(始)와 종(終)으로 말한 것이니, 건곤은 전체를 포괄한 개념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는 ‘문(門)’을 말하고 어느 곳에서는 ‘호(戶)’를 말하니 이는 무슨 이유일까? 주역에서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모두 깊은 뜻을 담고 있으니 범상하게 읽어 나가면 안 된다. 문(門)은 두 짝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건곤의 상대하는 뜻으로 말한 것이고, 호(戶)는 한 짝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일(一)인 태극의 의미로 말한 것이다. 따라서 ‘합호’니 ‘벽호’니 하는 것은 태극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태극의 문을 활짝 열면 만물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태극의 문을 꼭 닫으면 만물은 땅 속에 간직되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서 살펴보면, 태극(太極)의 뜻이 좀 더 분명해진다. 하나는 만물 발생의 근원처로 말할 수 있다. 주역에서 ‘역 속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음과 양)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생하고 사상이 팔괘를 생한다’는 내용이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또 하나는 시종(始終)을 포괄하는 덩어리로 말할 수 있다. 주역에서 ‘천지의 조화를 범위했다(範圍天地之化)’라든가, ‘만물을 마치고 만물을 시작한다(終萬物始萬物)’라는 내용의 글이 그러한 의미이다. 또한 굳이 말하자면 ‘형이상자는 도요(形而上者謂之道) 형이하자는 그릇(形而下者謂之器)’이라 한 것도 태극을 형용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形而上)을 도라 말하고, 눈에 보이는 것(形而下)을 그릇이라 말하니 태극은 이 둘을 포함한 것이다.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범해(泛海)>라는 시에서 태극을 형용한 구절이 있다.

日月無何外(일월무하외) 해와 달 비추는 곳이 어찌 밖이 없으랴.

乾坤太極中(건곤태극중) 건곤은 태극 속에 있노라.




  최치원 선생도 태극 속에 건곤을 집어넣고 있은 것을 보면, 태극은 그야말로 밖으로는 ‘기대무외(其大無外)’요 안으로는 ‘기소무내(其小無內)’의 무한함을 이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를 파자(破字)를 통해서 설명해 보겠다. 태(太)를 破字하면 한 일(一)자에 둘로 갈라져 나오는 모습이다. 좌로 삐친 것은 양(陽)의 모습을, 우로 삐친 것은 음(陰)을 나타내고 있으니 태극에서 음양이 생한다는 의미이다. 태극은 이(理)요 음양은 기(氣)니 태극은 원리(原理), 원동력(原動力)으로 말한 것이고, 음양은 일기(一氣)의 유행(流行)으로 말한 것이다. 점(點)은 배젖(核仁)을 의미한다. 배젖으로 인해서 씨앗이 발아(發芽)하기 때문이다. 바로 태극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점을 좌측에 붙인 이유는, 좌(左)는 양(陽)이요 우(右)는 음(陰)이니 점은 비유하자면 남성의 심볼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서 만물이 생생유전(生生流傳)하게 되는 것이다.

  극(極)자는 ‘나무 목(木)’변에 ‘빠를 극(亟)’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극(亟)의 글자가 二+人+口+又의 합성자니 이(二)는 천지(天地)를 말한다. 사람이 천시(天時)를 따르고 지리(地利)를 탄다는 것이니, 입으로 천지의 일을 도모하고 손(又)으로 천지의 일을 잡는데 때와 형세를 이용하면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목(木)변을 붙인 이유는 목(木)은 ‘동방 목’으로 만물이 시생하는 자리이니 태극의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태극이 이(理)냐 기(氣)냐 하는 문제는 옛 선비들에게도 오랜 논쟁거리였으니, 필자로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태극은 근원의 뜻이 담겨 있으므로 만사(萬事) 만물(萬物)이 모두 태극에서 나왔다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때문에 태극은 태초(太初)의 뜻이 담겨 있으며 주재자로서 상제(上帝)로 보기도 한다. 절기로서는 만물이 생하는 봄에 해당하고 방위로서는 해 뜨는 동방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참 묘(妙)하다. 일찍이 우리나라를 동북(東北) 간방(艮方)이라고 불러 왔다. 주역을 보면 ‘만물을 마치고 만물을 시작하는 자(終萬物始萬物者)는 간방보다 더 성한 곳이 없다(莫盛乎艮)’ 했으니 만물의 시종을 이룬다 함은 태극을 의미한다. 태극의 이치가 성대한 곳, 이곳 간방은 해 뜨는 근원이 되는 곳이며 세상의 태극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태(太)를 ‘콩 태’라고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불려지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자의(字意)라 할 수 있다. 콩을 물에 불리면 콩 안의 배젖에서 을(乙)자 모양의 싹이 나오며 두 개의 떡잎을 만든다. 태극에서 음양이 생하는 원리다. 이 사이에서 대가 나오고 잎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데 콩이 세 알씩 들어있다. 삼태극의 원리다. 콩에는 오색(五色)이 있으니 즉 태극에서 오행이 생하는 원리를 보여준다. 콩이 태극과 그곳에서 나오는 음양, 삼재, 오행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므로, 태(太)를 ‘콩 태’라고도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콩은 오곡(五穀) 중에 가장 먼저 나온 곡물이다. 아마도 그러한 의미에서 콩을 시원의 뜻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예(禮)라는 글자에도 ‘콩 두(豆)’자가 들어 있는데,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미의 ‘예(禮)’자도 근원을 숭상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콩’과 ‘태극’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태극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곳 간방에서, 태극이 그려진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어진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 필자는 대전광역시 유성문화원과 학회에서 주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14:00~16:00 : 주역상경.(학회강의실)
매주 목요일 19:00~21:00 : 주역기초.(유성문화원)
매주 화요일 19:00~21:00 : 대학중용.(학회강의실)
※ 수강료 : 50,000원 /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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