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84회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와 국내외 기념행사 현황

신상구 국학박사 | 기사입력 2023/11/17 [23:25]

<특별기고> 제84회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와 국내외 기념행사 현황

신상구 국학박사 | 입력 : 2023/11/17 [23:25]

<특별기고> 제84회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와 국내외 기념행사 현황 

▲ 신상구 국학박사     

 

순국선열(殉國先烈)이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일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자발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일제에 항거하다가 전사ㆍ옥사ㆍ병사한 이들로 독립운동 참여자 연인원 300만 명 중 1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순국선열로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김좌진(金佐鎭, 1889- 1930),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아명 金肯植, 1878-1937),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 1889-1944), 유관순(柳寬順, 1902- 1920), 이봉창(李奉昌, 1900-1932),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 1896-1934), 나석주(羅錫疇, 1892-1926), 이준(李儁, 1859-1907), 한지(韓志) 김상옥(金相玉, 이명 金永鎭, 1890-1923), 백포(白圃) 서일(徐一, 본명 徐夔學, 1881-1921) 등을 들 수 있다.

 

순국선열의 날이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939년 11월 21일, 한국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백산(白山) 지청천(池靑天, 본명 池大亨, 1888-1957) · 동암(東岩) 차이석(車利錫, 일명 徐立煥, 1881-1945) 등 6인의 제안에 따라 망국일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였다.

 

8·15광복 전까지는 임시정부 주관으로 행사를 거행하였고, 1946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1962년부터 1969년까지는 국가보훈처에서, 1970년부터 1996년까지는 다시 민간단체 주관으로 현충일 추념식에 포함 거행하였다. 그러다가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오랜 여망과 숙원에 따라 1997년 5월 9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정부기념일로 복원되어 그해 11월 17일부터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해 오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84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17일(목) 오전 11시, 독립의 역사적 상징성이 큰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순국선열추념탑에서 거행했다.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기념식은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미래세대 등 약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는 공연, 국민의례, 순국선열추념문 낭독, 독립유공자 포상, 기념사, 헌정 공연, 기념곡 제창 등의 순서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국가 기념식에 앞서 순국선열추념탑 참배를 통해 선열들을 추모하고 그 얼을 되새겼다. 

 

먼저 여는 공연은 순국을 눈앞에 두었던 선열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조차 막지 못한 광복을 향한 강인한 의지를 표현한 ‘장부가’를 임강성 음악극(뮤지컬) 배우와 고수 이영태 명창이 함께 선보였다.

 

이어 1945년 순국선열 추념대회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이 낭독하고 백범 김구 선생이 예를 표했던(배례) 추념문을 영상으로 낭독했다. 특히, 추념문은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인물(휴먼)로 제작한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 그리고 생존 애국지사 세 명(오성규 지사, 강태선 지사, 이석규 지사)이 영상 속에서 직접 육성으로 낭독했다.

 

순국선열추념문에는 국권 상실의 참담함과 이를 딛고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끝내 되돌아오지 못한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며 그 의기(義氣)를 본받겠다는 다짐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다음으로, ‘제84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이 이뤄졌다.

 

포상은 67명의 독립유공자 포상자를 대표하여, 1943년 3월 일본 동부신학교 재학 중 동지들과 조선독립 실현 방법을 협의하다 체포된 고 강재은 지사(건국훈장 애족장)를 비롯해 1940년 5월 신사참배 강요 등을 거부하다 체포된 고 최인규 지사(건국훈장 애족장), 1939년 일본에서 여우회에 가입하여 일제 통치를 비판하다 체포된 고 민병구 지사(건국포장), 1919년 4월 충남 예산군에서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한 고 전혁규 지사(대통령표창), 1924년 4월 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일본어 교사 배척 등 동맹휴학에 참여한 고 정사섭 지사(대통령표창) 등 5명의 유족에게 전수되었다.

 

정부포상 후에는 순국선열들이 남긴 글을 통해 ‘광복’이라는 ‘저버릴 수 없는 약속’을 이루어내기 위해 헌신했던 순국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영상을 통해 전달했다.

 

헌정 공연은 성악가 길병민이 곡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한다. ‘지금 이 순간’은 노랫말을 통해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순국선열들께서는 조국 독립을 향한 굳센 의지와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광복을 이루어냈다는 의미(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했다. 끝으로, ‘순국선열의 노래’를 참석자 전원이 제창하며 기념식이 마무리되었다.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는 대전, 대구, 부산, 경기도 성남, 충북 청주, 충남 홍성과 부여, 경북 구미, 전북 익산, 전남 광주, 미국 워싱턴과 LA,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 여러 곳에서도 개최되었다.    

 

국가보훈부는 제84회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을 앞두고 정두옥(1889-1972) 애국지사와 배우자 이봉아 님의 유해를 하와이에서 국내로 봉환해 오는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정두옥 애국지사 유해봉환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148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다. 

 

정두옥 지사는 1903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해서 1914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대의원, 1919년 3월 대조선독립단 총단장, 1940년 5월 중국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을 후원하기 위한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1941년 8월, 미주지역 내 모든 단체를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되자 하와이 호놀룰루 지부 의사부의 선전부 위원장으로 선임돼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외교, 선전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박민식(朴敏植, 1965)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오로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신을 바치셨던 순국선열들의 강인한 독립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근간이자, 미래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나침반” 이라며 “이번 기념식이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되새기고,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집권 여당과 정부의 정치 이념과 성향, 이해관계에 따라 국민 여론과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무시하고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를 달리해서 공분의 사고 있다. 

 

앞으로는 정권을 초월해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와 국민 여론을 반영해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를 공정하게 해서 애국 시민들을 또 다시 실망시키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국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국학박사 신상구 약력>

.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출생

.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 경제학사, 충남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 석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국학박사 2호

.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민속학자, 칼럼니스트

. 통일문학상, 전국 향토문화 논문공모 대상(국무총리상) 수상

. 학술논문「태안지역 무속인들의 종이 오리기 공예에 대한 일고찰」등 119편.

. 대표 저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도서출판 근화, 2019)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Special Contribution> Origin of the 84th Patriots’ Day and current status of commemorative events at home and abroad

 

      Daesan Shin Sang-gu, Director of Chungcheong Culture and History Research Institute (Ph.D. in Korean Studies, poet, literary critic)

 

   The independence movement refers to those who voluntarily gave up their families and their own safety for the independence of their country and resisted Japanese colonial rule from the date of the signing of the Japan-Japan Treaty in 1905 to August 14, 1945, at home and abroad. It is estimated that there are 150,000 out of 3 million participants.

 

Representative martyrs widely known to the public include An Jung-geun (1879-1910), Maeheon Yun Bong-gil (1908-1932), Danjae Shin Chae-ho (1880-1936), and Kim Jwa-jin (金). 佐鎭, 1889-1930), Ilsong (一松) Kim Dong-sam (金東三, nickname 金肯植, 1878-1937), Songam (松菴) Oh Dong-jin (吳東振, 1889-1944), Yu Gwan-sun (柳寬順, 1) 902-1920 ), Lee Bong-chang (李奉昌, 1900-1932), Gupa Baek Jeong-gi (白貞基, 1896-1934), Na Seok-ju (羅錫疇, 1892-1926), Lee Jun (李儁, 1859-1907), Han Ji (韓志) Kim Sang-ok (Kim Sang-wook, Lee Myeong Kim Yeong-jin, 1890-1923), Baekpo (白圃) Seo-il (徐一, real name 徐夔學, 1881-1921), etc.

 

   Martyrs’ Day is a legal memorial day established to pass on to future generations the spirit of independence and sacrifice of martyrs who devoted themselves to restoring national sovereignty, and to commemorate their souls and feats.

 

   On November 21, 1939, at the 31st extraordinary general meeting of the Provisional Council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hich was the cent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Baeksan Ji Cheong-cheon (池靑天, real name 池大亨, 1888-1957) and Dongam Chai-seok At the suggestion of six people, including (車利錫, a.k.a. Seok-立煥, 1881-1945), November 17, the day of the fall of the country, was established as the Joint Memorial Day for Patriotic Martyrs.

 

   Until liberation on August 15, the event was held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from 1946, it was held by a private organization, from 1962 to 1969, it was held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and from 1970 to 1996, it was again held by a private organization as part of the Memorial Day ceremony. Then, in accordance with the long-standing hopes and aspirations of the families of those who contributed to independence, it was restored as a government anniversary on May 9, 1997 by revising the 'Regulations on Various Anniversaries, etc.' and has been celebrated as a government-sponsored event since November 17 of that year.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held the '84th Patriots' Day Commemoration Ceremony' at 11 a.m. on the 17th (Thursday) to inherit the spirit of independence and sacrifice of martyrs who sacrificed and dedicated themselves to restore national sovereign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held at the Patriotic Martyrs Memorial Tower in Seodaemun Independence Park in Seoul.

 

   This commemorative ceremony, held under the theme 'A promise that cannot be forsaken,' was attended by about 300 people, including bereaved families of those who contributed to independence, key government figures, and future generations, and included an opening performance, national ritual, reading of the memorial to the martyrs, awards to those who contributed to independence, and commemorative speeches. It was held in the order of a tribute performance and the singing of commemorative songs. And before the national commemoration ceremony, we paid tribute to our ancestors and remembered their spirit through a visit to the Memorial Tower.

 

   In the first performance, music theater actor Kang-seong Lim and master singer Young-tae Lee performed ‘Janggaga’, which expressed the loneliness and fear felt by the ancestors who were on the verge of death, as well as the strong will for liberation that even death could not prevent.

 

   Next, the memorial text that Widang Jeong In-bo read and Baekbeom Kim Gu saluted (bowing) at the 1945 patriotic martyr memorial service was read out in video. In particular, the memorial text commemorates Baekbeom Kim Gu (金九, 1876-1949), who was created as a digital character (human) based on artificial intelligence (AI), and three surviving patriots (Governor Oh Seong-gyu, Governor Kang Tae-seon, and Governor Lee Seok-gyu). ) was read aloud directly in this video.

 

   The memorial text vividly contains the tragedy of losing national sovereignty, retracing the footsteps of independence fighters who overcame this and devoted themselves to restoring national sovereignty, and remembering those who never returned, and a pledge to imitate their spirit.

 

   Next, on the occasion of the ‘84th Patriotic Martyrs’ Day,’ government awards were given to those who contributed to the independence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award was presented on behalf of 67 recipients of independence services, including the late Governor Kang Jae-eun (Aejok Medal of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who was arrested in March 1943 while discussing ways to realize Joseon's independence with his comrades while attending Eastern Seminary in Japan, and was forced to visit the shrine in May 1940. The late Governor Choi In-gyu (Ajok Medal,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who was arrested for refusing to give birth, and the late Governor Min Byeong-gu (National Foundation Medal), who was arrested for joining the Women's Association in Japan in 1939 and criticizing Japanese rule,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Yesan-gun, South Chungcheong Province in April 1919. It was handed down to the bereaved families of five people, including the late Governor Jeon Hyeok-gyu (Presidential Citation), who participated in the 1924 Jeonju High School, and the late Governor Jeong Sa-seop (Presidential Citation), who participated in the allied leave of absence by rejecting a Japanese teacher while attending Jeonju High School.

 

   After the government award, the meaning of remembering the spirit of independence of the martyrs who devoted themselves to achieving the ‘unforgivable promise’ of ‘liberation’ was conveyed through a video through the writings left by the martyrs.

 

   In the tribute performance, vocalist Gil Byeong-min will sing the song ‘This Moment.’ Through the lyrics of the song, ‘This Moment’ conveyed to the people the meaning (message) that despite all the hardships and difficulties, the martyrs did not stop their strong will and efforts for the independence of their country and finally achieved liberation. Finally, the ceremony ended with all attendees singing in unison the ‘Song of Patriots.’

 

   Events commemorating Martyrs' Day were also held in Daejeon, Daegu, Busan, Seongnam, Gyeonggi-do, Cheo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Hongseong and Buyeo, South Chungcheong Province, Gumi, North Gyeongsang Province, Iksan, North Jeolla Province, Gwangju, South Jeolla Province, Washington and LA in the U.S., and Almaty, Kazakhstan.

 

   Ahead of the 84th Patriots' Day (November 17),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announced that the remains of patriot Jeong Du-ok (1889-1972) and his spouse Lee Bong-ah will be repatriated from Hawaii to Korea and buried at the Daejeon National Cemetery on the 15th. The day was revealed. Including the recent repatriation of the remains of patriot Jeong Du-ok, a total of 148 remains have been repatriated to Korea so far.

 

Governor Jeong Du-ok immigrated to Hawaii, USA in 1903 and served as a delegate to the Hawaiian Regional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1914, as the general director of the Korean Independence Group in March 1919, and as the executive chairman of the Hawaiian branch of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to support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formed in China in May 1940. He served as a director and supporte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August 1941, when the Korean-American Joint Committee, which integrated all organizations in the Americas, was organized, he was appointed chairman of the Propaganda Department of the Honolulu Branch, Hawaii, and took the lead in sponsor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promoting diplomatic and propaganda projects. In recognition of his teacher's achievements, the government posthumously awarded him the Patriotic Medal of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1995.

 

   Park Min-sik (1965), Minister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said, “The strong spirit of independence of our martyrs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independence of their country despite all kinds of difficulties in the past is the foundation of the freedom and prosperity we enjoy today and the compass that will lead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future.” “I hope that this commemorative ceremony will be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the noble lives and spirit of our martyrs and to be remembered as a proud history that will never be forgotten by our future generations,” he said.

 

   However, recently, depending on the political ideology, inclinations, and interests of the ruling party and government, public opinion and scholars' research results have been ignored, and patriotic martyrs and independence activists have been treated differently, causing public outrage.

 

   In the future, we will take legal and institutional measures to ensure fair treatment of martyrs and independence activists by transcending the regime and reflecting the research results of historical academia and public opinion on martyrs and independence activists, so as not to disappoint patriotic citizens again. It must be urgently prepared and actively reflected in national policy.

 

                                <Biography of Doctor of Korean Studies Shin Sang-gu>

   . Born in 1950, 63 Samnak-ri, Cheongcheon-myeon, Goesan-gun, Chungcheongbuk-do

   . Baekbong Elementary School, Cheongcheon Middle School, Cheongju High School, Bachelor of Economics from Cheongju University, Master of Social Education from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2nd Doctorate in Korean Studies from International Brain Education Graduate University

   . Local historian, poet, literary critic, folklorist, columnist

   . Won the Unification Literary Award and the Grand Prize of the National Local Culture Paper Contest (Prime Minister's Award)

   . 119 academic papers, including “A Study on the Paper Cutting Craft of Shamans in the Taean Region.”

   . Representative book: 『An In-Depth Study of Korea’s Nobel Prize in Literature Award Conditions』 (Geunhwa Publishin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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