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낙엽처럼 흩어진 대전엑스포...잊어도 되는 대전엑스포

솔향 김종태 | 기사입력 2023/10/09 [22:16]

가을낙엽처럼 흩어진 대전엑스포...잊어도 되는 대전엑스포

솔향 김종태 | 입력 : 2023/10/09 [22:16]

 

▲ 김종태 칼럼니스트     ©김정환 기자

 

대선이나 총선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면 대전의 선거 결과를 보면 안다고 한다. 대전지역 득표율이 전국 득표율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전은 다양한 지역 색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고 그래서 역동적이다. 지역적 성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여론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호남선 경부선 충북선 등 철도와 호남, 경부, 대진 고속도로 등 교통의 요충지라는 걸 늘 내세웠던 도시의 특징 때문인지 충청. 전라, 경상, 강원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1.4후퇴 때 내려와 정착한 실향민들 까지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면서 다른 지역의 토착민처럼 애향이나 유대감이 짙지 않는 것이 새롭게 형성된 대전의 특색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각기 다른 개성들로 인하여 기억되어야 하는 역사도, 자랑하고 싶은 것들도, 모두가 아닌 부분적인 이슈로 전락되고 경향이 강하다.

 

한때는 공연기획자들이 대전지역은 기피하는 현상이 있었다. 문화적 소비성향이 월등히 타 지역보다 떨어져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이다. 사통팔달 교통이 편리한 곳은 정착보다 잠시 머물고 간다는 경향이 있어 소비성향이 일반도시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공연, 전시 등이 대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곤 했었다. 대전지역출신 발라드가수로 성공하였던 A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매진하여 주는데 대전에서 공연을 하면 유일하게 매진하지 못하여 어떻게 고향에서 홀대를 하는가?”라고 하며 다시는 대전에서는 공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는 루머도 있었다.

 

실제로 대전엑스포 과학 공원에서 무대까지 가져와 세팅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뮤지컬 켓츠오리지널 공연이 있었는데 지역 공연기획자들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유치하여 진행하였는데 전국투어에서 유일하게 매진하지 못한 곳이 대전이었다. “대전이 전국에서 매진시키지 못한 유일한 도시입니다.” 씁쓸하게 말하던 후배 기획자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지금은 SNS 덕분에 전국이 같이 쉽게 공유하고 지역을 넘나들며 함께 누리는 경향이 있어 그러한 현상은 많이 없어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안타까운 부끄러움이었다.

 

대전엑스포93도 마찬가지이다. 수도권 분산이라는 국가 정책방향과 대덕연구단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무런 노력 없이 국가가 대전으로 유치를 결정하여 올림픽에 버금가는 세계박람회라는 커다란 선물을 대전이 받았고 대규모 국비사업들이 대전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었다.

 

108개 국가와 유엔기구가 참여한 대전세계박람회는 수많은 기록과 세계인의 찬사 속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우리나라의 과학, 경제, 문화, 산업 전반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었다,

 

실제로 대전엑스포 이후 우리나라의 가전제품들이 세계 주요도시의 백화점의 중심부분으로 이동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한다.

 

자랑스러워도 되는 역사적 행사였고 우리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행사였고 박람회공인기구인 BIE가 인정하는 최고의 박람회로 기록된 행사가 바로 대전세계박람회이다.

 

한국의 작은 도시이며 특별한 특징도 없고 밋밋하게 갓 광역시로 승격되었던 대전이라는 도시가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대전발전을 20년 이상을 앞당겨 주었던 대전엑스포가 대전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긍지와 자랑거리였는데 이상하게도 10주년이 되어도 20주년이 되어도 30주년이 되어도 그저 그런 행사 속에 묻혀 지나간다.

 

당시 조직위원장이었던 오명 전 부총리께서 언론사사장, 회장이 되거나 건설부, 건설교통부, 과기부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만 역대시장들이 기념식을 하고, 평가를 하고, 재조명하는 기이한 현상이 있곤 했다.

 

▲ 솔향 김종태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외교적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조직위원회는 물론 외교부와 코트라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 노력을 하였고,

 

박람회 공인기구인 BIE 승인을 받아낸 후 외신기자들이 짧은 기간 내에 제대로 된 박람회장을 만들지 못할 거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가장 첨단의 전시장을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우리의 문화, 공연, 전시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K-cultur 시작을 만들고 기획하고 연출하였다.

 

그 불가능했던 모든 일들을 주도하고 이끌어 내었던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 직원들은 내 모든 공직생활 중 가장 빛나고 보람 있었던 행사였다라고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다고 한다.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 동우회원들이 금년도 엑스포 30주년을 맞이하여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찾지도 않으니 자기들끼리 서로의 SNS를 통하여 연락을 하며 엑스포 개막식 날짜에 맞추어 한빛탑에서 모였다.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 나왔던 직원, 도우미, 자원봉사자, 민간기업 운영요원 등 발바닥 부르트고 더위에 실신도 하며 피와 땀, 모든 열정을 다하여 개발도상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대전엑스포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아직도 가슴 설레고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치민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대전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기억해 주지도 않지만 그들은 그 불가능했던 시간, `93, 93일간 고생하였던 93미터의 한빛탑에서 모여 뜨거운

마음으로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대전에서는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나요,?”

아니, 대전의 가장 빛나는 역사인데 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지요?”

 

, 다른 지역은 몰라도 대전은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부산엑스포 유치를 하면서 대전엑스포를 원류로 내세워 성과를 소개하면서 유치 경쟁해야 하지 않나요?

 

“BIE역사상 가장 성공한 엑스포라고 당시 테드 알렌 회장이 자서전에 기록할 정도 였는데 일부 국내 학자들이 대전엑스포를 실패한 엑스포라고 폄훼하는데 왜 대전에서는 아무도 반론하지 않지요?” ( 글쓴이 김종태 )

 

< 솔향 김종태 약력 >

대전 관광공사 이사회의장

대전 동구, 대덕구 축제위원회 위원, 위원장

대전 킥복싱연맹 고문/ 스포츠공정위원

대전척수장애인협회 자문위원장/허브센터 센터장

CMB대전방송 문화사업자문위원

`93대전엑스포 동우회 간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t is said that if you want to predict the results of a presidential or general election, you can look at the election results in Daejeon. It is said that the Daejeon area's vote rate is a miniature version of the national vote rate.

 

Daejeon is a city with diverse regional colors and is therefore dynamic. It is difficult to predict regional tendencies and public opinion is not biased to one side.

 

Chungcheong may be due to its characteristics as a city that has always been considered a transportation hub, including railways such as the Honam Line, Gyeongbu Line, and Chungbuk Line, and the Honam, Gyeongbu, and Daejin Expressways. A city where people from the Jeolla, Gyeongsang, and Gangwon regions live together, and with the influx of new populations, including the displaced people who came down and settled during the 1.4 Retreat,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ly formed Daejeon is that they do not have a strong sense of home or bond like the indigenous people of other regions.

 

Perhaps that is why, due to the different personalities, the history that should be remembered and the things that one would like to boast about have a strong tendency to be relegated to partial issues rather than all of them.

 

There was a time when performance planners avoided the Daejeon area. This is because the cultural consumption propensity is much lower than in other regions, making it difficult to become a box office hit. In places with convenient transportation in all directions, there is a tendency to stay for a while rather than settle down, so the consumption tendency is different from that of general cities.

 

Perhaps that's why performances and exhibitions had a particularly difficult time in Daejeon. Mr. A, who was successful as a ballad singer from the Daejeon area, was the only one who failed to sell out when he performed in Daejeon, even though he was selling out in all other regions, so there was a rumor that he said, “How can I treat my hometown poorly?” and said he would never perform in Daejeon again. .

 

In fact, there was an original performance of the globally loved musical ‘Kats’ that was brought to the stage at the Daejeon Expo Science Park, and local performance planners were competing hard to attract it, but Daejeon was the only venue in the national tour that failed to sell out. “Daejeon is the only city in the country that has not been able to sell out.” I vividly remember the expression on the junior planner’s face as he spoke bitterly.

 

Nowadays, thanks to SNS, people across the country can easily share and enjoy things together across regions, so this phenomenon may have disappeared a lot, but at the time, it was an unfortunate shame.

 

The same goes for Daejeon Expo 93. For various reasons, including the national policy direction of dispersing the metropolitan area and the Daedeok Research Complex, the government decided to host the event in Daejeon without any effort, so Daejeon received a huge gift of an World Expo equivalent to the Olympics, and large-scale government-funded projects were started centered around Daejeon.

 

The Daejeon World Expo, in which 108 countries and UN organizations participated, was successfully held with numerous records and praise from people around the world, creating an opportunity for groundbreaking development in Korea's science, economy, culture, and industry as a whole, and becoming an important watershed in Korea's advancement from a developing country to a developed country. It was done,

 

In fact, after the Daejeon Expo, it is said that Korea's home appliances have moved to the central areas of department stores in major cities around the world.

 

It was a historical event that we could be proud of, an event that made the power of our people known to the world, and the Daejeon World Expo was recorded as the best expo recognized by BIE, an expo official organization.

 

Daejeon, a small city in Korea that had no special features and had just been promoted to a metropolitan city, became known worldwide, and the Daejeon Expo, which accelerated the development of Daejeon by more than 20 years, was a source of pride and pride in the memories of Daejeon citizens, but strangely enough. Whether it's the 10th anniversary, the 20th anniversary, or the 30th anniversary, it's all just buried in those events.

 

Only when former Deputy Prime Minister Oh Myung, who was the chairman of the organizing committee at the time, became the press president or chairman, or served as the Minister of Construction, Ministry of Construction and Transportation, or Minister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re was a strange phenomenon in which past mayors held commemorative ceremonies, evaluated, and reexamined the event.

 

In order to host the Expo, the organizing committee,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KOTRA made all-out efforts to secure diplomatic support from countries around the world.

 

After receiving approval from BIE, the expo's official body, foreign reporters dispelled concerns that they would not be able to create a proper exhibition hall within a short period of time, and created the most cutting-edge exhibition hall, receiving praise from countries around the world as a miracle.

 

Through our culture, performances, and exhibitions, we created, planned, and directed the start of K-cultur, which grandly promotes our people's culture to the world.

 

The staff of the Daejeon Expo Organizing Committee, who led and led all the impossible tasks, are said to have engraved it in their hearts like a proud medal, saying, “It was the most brilliant and rewarding event of all my public service.”

 

Fellow members of the Daejeon Expo Organizing Committee celebrated the 30th anniversary of the Expo this year, and since no one remembered or visited them, they contacted each other through social media and gathered at Hanbit Tower on the date of the Expo opening ceremony.

 

At that time, employees dispatched from various government ministries, helpers, volunteers, and private company operating personnel, with their feet swollen and fainting from the heat, put in all their blood, sweat, and passion to make the Daejeon Expo, the first held in a developing country, a success. He says that his heart still flutters and something hot swells in his chest as he reminisces, and his eyes turn red.

 

Although no one in Daejeon calls them or remembers them, they gathered at the 93-meter-tall Hanbit Pagoda, where they worked hard for 93 days in 1993, during that impossible time, and held a passionate ceremony.

 

I speak with all my heart.

 

“Aren’t there any events held in Daejeon?”

 

“No, it’s the most brilliant history of Daejeon, so why doesn’t anyone remember it?”

 

“Why, even if other regions don’t know about it, shouldn’t Daejeon be proud of it?”

 

“When trying to attract the Busan Expo, shouldn’t we compete to attract the Expo while introducing the achievements of the Daejeon Expo as the origin?

 

“The then-Chairman Ted Allen wrote in his autobiography that it was the most successful expo in BIE history, but some domestic scholars disparage the Daejeon Expo as a failed expo. Why does no one in Daejeon refute it?” (Written by Kim Jong-tae)

 

< Biography of Solhyang Kim Jong-tae >

 

Chairman of the Board of Directors, Daejeon Tourism Organization

Daejeon Dong-gu, Daedeok-gu Festival Committee Member, Chairman

Daejeon Kickboxing Federation Advisor/Sports Fair Committee

Daejeon Spinal Cord Disabled Association Advisory Committee Chairman/Herb Center Center Director

CMB Daejeon Broadcasting Cultural Business Advisory Committee Member

 

`93 Daejeon Expo Alumni Association Secre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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